[eBook] 상나라 정벌 - 은주 혁명과 역경의 비밀
리숴 지음, 홍상훈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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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워서 읽는 데 오래 걸렸다. 상나라-내가 배울 때는 은나라였다-에 대한 최신의 발굴결과를 토대로 상나라가 어떠했는지, 주나라는 어떻게 세워졌는지에 대해 재구성한 이야기이다. 상나라,에 대해 내가 아는 이야기는 주지육림의 마지막 왕에 대한 이야기와 봉신연의다. 봉신연의는 책으로도 드라마로도 봤다. 

상나라에 대한 최신의 발굴결과들을 묘사하는 내용들은 무섭다. 무섭지만 계속 읽었다. 무섭지만, 재밌었다. 인간의 잔인함을 보는 일은 경각심을 준다. 


한자에 대한 책을 볼 때, 한자는 '전쟁과 제사를 위해 만들어졌다'라는 묘사를 본 적이 있다. 한자라는 문자의 많은 부분이 전쟁과 제사에서 비롯되었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전쟁과 제사,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는 제사,를 개별 가문에서 이뤄지는 선대 조상에 대한 공양, 정도로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최신의 고고학적 발굴이 드러내는 제사,는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인 공자가 제사 예법 전문가로서 안내하던 그 제사의 원형은 잔인하고 무시무시하다. 피와 살이 튀는 언어,의 묘사가 함축적이거나 현대에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문자의 형상 가운데 숨어 있었던 거다. 코를 베고(劓), 귀를 베고(刵), 눈을 뚫고(民), 창으로 목을 치고(伐), 묶어 질질 끌고 가고, 고통으로 소리지르고, 그 소리가 하늘에 닿게 하고, 죽여 그 살을 나눠먹는 제사의 모습이 문자로 남아 있었다. 이제 새로이 발굴된 제사갱의 뼈로도 남아 있다. 


국가,가 생기기 전 고만고만한 부족들이 터를 잡고 살아가는 시대에 두드러지게 강력한 부족이나 나라가 돌출한다. 생존을 위협하는 강력한 존재의 등장 가운데, 그 존재의 믿음을 알게 된다. 저 강한 나라/부족이 신에게 선택을 받아 자신을 지배하고 있고, 그 신께 무엇을 바치고 있는지 보는 순간의 두려움을 상상한다. 다시 역사 가운데, 그 두려움을 어떻게 이겨내고, 새로운 나라의 믿음을 구성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다시 후대에서, 새로운 나라의 믿음을 구성하기 위해서 어떻게 과거를 덮었는지도 상상한다. 


믿음,은 무섭고, 믿음을 이겨내기 위해 다른 걸 믿기로 한 새로운 국가와 새로운 국가의 새로운 믿음을 위해 아예 이전의 역사를 날조하기로 공모하는 후세에 대한 이야기로 역경과 사서에 대해 썼다. 애달프고도 간절하다. 


우리가 이걸 알게 되는 건 도움이 될까.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는 모두 일상적으로 쓰이는 용어지만, 이 두 용어의 의미는 전혀 대등하지 않다. 청동기는 석기를 완전히 도태시키지 못했으며, 그저 상류사회 사름들의 생활이 바뀌었음을 나타낼 뿐이었다. 마치 문자를 발명한 뒤에도 대다수 사람이 여전히 문맹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사회의 발전 수준은 종종 소수 엘리트 계층이 대표하곤 한다. - 12%


바꾸어 말하자면 그들은 '야만'의 이족異族을 신들과 선조에게 바치는 방식으로 하늘의 축복과 보우를 기원하고 그것을 통해 대지에 군림하면서 여러 부족을 통치할 칼자루를 획득했던 셈이다. 

상나라 사람들의 인신공양제사가 흥성할 무렵에 왕실은 그런 제사의 최대 주관자가 되었다. 이것은 왕권과 신권이 고도로 융합했음을 나타낸다. - 22%


게다가 사회의 잉여 생산품을 소모하여 부의 지나친 집중으로 인해 직업적 통치계층이 나타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26%


상나라 사람들의 관점에서 세계는 냉혹하고 폭력과 살육, 약탈, 불안전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그들은 귀신에게 명확한 선악개념이 있다고 여기지 않았고, 어쩌면 그들에게 본래 명확한 선악개념이 없으니 당연히 귀신이 그런 것을 가졌으리라 상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34%


선조가 되는 신들의 관계가 화해를 이루어야 인간 세상의 각 부족의 관계도 화해를 이룰 수 있다. - 50%


사기 은본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주왕은 달변인 데다가 견문이 무척 민첩하여 용력이 남들보다 뛰어나 손으로 맹수를 때려잡았다. 


그러나 그의 결점도 바로 여기에 있었을 수 있다. 자신감이 지나쳐서 세상 사람들의 능력이 모두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기고 남의 의견을 듣지 않았고,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변명할 재능이 있었다. 그야말로 이런 격이었다. 


지혜는 간언을 막기에 충분했고, 말 솜씨는 잘못을 꾸미기에 충분했다. 신하들에게 능력을 자랑하고 천하에 명성이 높아서 모두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겼다. - 61%


이 때문에 상 왕조와 적대한다는 것은 귀신 세계의 의지를 위반한다는 뜻이니, 성공할 수 없었다. - 63%


사기 은본기에서는 또 주창이 석방된 뒤에 '낙서의 땅'을 바치며 주왕에게 포락형을 폐지하라고 청하자, 주왕이 허락했다고 했다. 사실 이것은 후세에 만든 도덕적 서사일 뿐 당시의 규칙에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주왕 시기의 큰 특징은 다른 부족의 인간 희생뿐만 아니라, 상족의 귀족도 죽여 제사에 바쳤다는 것이다. - 71%


신과 소통하는 이 두 사람은 모두 각자의 문명을 변화시켰다. 다만 모세는 하느님과 특정 부족에만 묶여 있었으나, 문왕은 상제와 특정 부족 사이의 연결을 풀어버렸다는 점에서 달랐다. - 75%


'덕'에 대한 그의 해석은 그저 보통 사람의 아름다운 바람일 뿐이었다. 즉, 살인하고 싶지도 않고, 까닭없이 살해당하고 싶지도 않으며, 성스럽고 명명한 군주의 통치 아래 안정적으로 살 수 있기를 갈망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형 주발은 반드시 '덕'이 있는 군주가 되어야 했으니, 그렇지 않으면 주족 전체가 죽어도 묻힐 곳이 없어지는 지경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 79%


때로 주공은 노골적으로 폭력을 사용한다고 위협하고 이익을 내세워 유혹하기도 했는데, 이 역시 상족이 이런 것들은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그들에게 도덕을 이야기하면 지나치게 심오해서 쇠귀에 경을 읽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물론 이것은 긴급한 일이 있을 때였고, 평소라면 상족에게 도덕을 설교해도 괜찮았다. -86%


이번 주공과 소공의 대화 가운데 일부는 『상서』「군석 君奭」에 수록되었다. 거기서 주공이 가장 많이 언급한 것은 왕조의 흥망과 교체의 교훈이었다. 그는 이 일의 배후에 하늘-상제의 변화 의지가 있으나, 천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요소는 바로 사람의 '덕', 그러니까 현실 문제를 처리하는 인간의 준칙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공은 "하늘은 믿을 수 없다 天不可信"라고 하면서 사람이 상제의 뜻을 짐작하려는 것은 지나친 욕망이니, 그저 인간 세상에서 해야 할 의무를 잘 이행해야 할 뿐이라고 했다. - 87%


너 주봉이 형벌을 가하고 죽이는 경우가 아니면, 다른 누구도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하라. 네 주봉이 또 코를 베고 귀를 자르라고 한 경우가 아니라면, 다른 누구도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하라. 

非汝封刑人殺人, 無或刑人殺人. 非汝封又曰劓刵人, 無或劓刵人.(『尙西』「강고」) -88%


이것은 주나라의 전통적인 '동성불혼 同姓不婚' 즉, 존외혼 族外婚 관습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 90%


첫째, 그것은 상족의 문자 체계를 계승했으나 일부 언어 습관은 주족에게서 비롯되었다. 둘쩨, 그것은 상족의 '상제'관념을 계승했으나 또 점차적으로 약화시켜서 뜻이 애매모호한 '하늘天'로 바뀌었다. 셋째, 그것은 상족의 인신공양제사 종교를 엄격히 금지하고 인간과 신 사이의 거리를 멀리 벌려놓아서, 신들이 직접 인간 세상의 일에 관여하는 것을 거절했다. 넷째, 주족은 신중하고 겸손하며 집단을 중시하고 우환 의식이 풍부했는데, 이런 것들이 모두 새로운 화하족의 전형적인 품격이 되었다. - 90% 


부귀한 자는 처첩과 노비를 저승으로 데려가서 계속 자기를 모시게 하고 싶었으므로, 고대 사회에서 인간 순장은 단절되지 않고 청나라 때까지 면면히 이어졌다. - 92%


3000년 전의 고대 인류 문명에서 오직 화하만이 독자적으로 신권의 통제에서 벗어나 하나의 '이류異類'가 되었더. 이것은 지나치게 조숙한 세속 문명으로서 지금까지 줄곧 지속되고 있다. - 93%


하지만 주공의 가장 중요한 작업은 상족의 인신공양제사 종교와 그와 짝을 이루는 약육강식의 종교적 가치체계를 소멸한 것이었다. - 93%


주공의 사상이 나타나고 형성된 것은 주로 인신공양제사를 지내는 종교에 대한 두려움과 그런 종교를 소멸해야 할 필요성에서 비롯되었다. - 93%


이런 세속적 도덕 원리는 '추기급인推己及人'즉, 자기와 타인의 입장을 바꾸어 고려해서 타인을 대하는 방식을 결정하라는 것이었다. - 93%


말하자면, 민족 간의 정복과 살육에서 화해와 융합으로 나아갔고, 공자는 그 수혜자이자 이 은밀한 비밀을 풀어낸 사람이었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으나 분명히 말하지 못하고, 그저 꿈속에서만 하소연할 수 있을 뿐이었다. - 95%


어쩌면 인간은 깊은 연못을 응시하지 말아야 할 듯하다. 설령 깊은 연못이 거기에 있더라도. -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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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5-11 1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나라는 사기에 기록되어 있었지만 중국에서도 신화로 취급했지요.근데 갑골문에서 발견한 역대왕의 이름이 사기와 동일해 실존하는 나라로 판명되었지요.그리고 상나리시대의 청동기는 현대에도 복원이 불가능한데 주조방법이 노예의 희생을 담보로해서 현대에는 제작불가라고 합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살아남기 - 밈과 혐오의 세계 생존 전략
마이너 리뷰 갤러리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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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재밌다고 자꾸 권해서 읽어보았다. 유튜버 마이너리뷰갤러리,의 두번째 책이다. 

만화책으로 많이 나오는 '살아남기'류의 안내서다. 

나는, 음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읽는데, 딸아이가 재밌다면 뭘까 궁금하기는 하다. 

"내가 커뮤니티는 안 해서"라고 감상을 시작하려고 했더니, "거기 나온 거 거진 다 알지?" "응", "엄마는 하는 거야", "안 쓰는데?", "그래도 하는 거야", 라고 한다. 뭐 그런 건가. 

나는 하릴없이 폰을 볼 때, 다음에 가서 펀 게시판을 계속 링크따라 여는데, 그러면서 커뮤의 글들을 본다. 그리고, 굳이 꼽자면 알라딘을 하고 있고, 여기는 글도 쓰고 있다. 커뮤의 말들을 내가 거진 아는 이유는, 펀 게시판을 계속 열어보기 때문인가, 싶다. 

게다가, 인터넷 세상이 처음 열린 순간부터 어쩌면 밀도는 낮을지 몰라도 꾸준하게 계속 해 오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은 인터넷 세상에 막 진입한 어떤 사람이 인터넷 커뮤니티의 반응에 깊게 몰입하지 않아도 된다고 인터넷 세상의 성격을 알려주려고 쓴 글이다. 여기는 가상의 공간이고, 실재의 삶이 너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먼저 화내는 사람이 지는 사람'이라는 태도로 달려드는 공간이라는 거다. 조롱과 혐오가 기본값이고, 너무 진지한 건 웃음거리가 되는 가장 사랑하는 걸 공격하기 위해 숨죽이고 그게 드러나길 기대하는 공간. 

주목받고 싶었던 날들에 '무플보다 악플'이라는 말에 공감하며 들락거리는 어떤 곳, 현실이 커지면 외면하다가, 커졌던 현실이 작아지는 순간이나, 커졌던 현실에서 내쳐졌을 때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어놓는 곳, 커뮤의 말들이나 커뮤의 태도라는 안경으로 현실을 봤다가는 큰 코 다칠 수도 있는 공간, 현실과 다르지만 그 나름대로는 현실이 되는 공간. 함께 만드는 어쩌면 지옥.

나는, 이 안내서가 알려주는 '혐오와 조롱이 기본값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고지식하게 살기로 결심했다. 예전에 다른 책을 읽고 비슷한 감상을 남긴 적이 있다. ( https://blog.aladin.co.kr/hahayo/9134986 ) 삶의 균형은 내가 잡아야 하고, 어디에 살든 사람이 살고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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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5-10 1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MZ세대들이 과거 세대보다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과도한 SNS탓이란 의견도 있더군요

별족 2025-05-10 17:10   좋아요 0 | URL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가운데 행복은 없죠. 그게 뭐라도 말이죠.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89140.html


카스피님의 글( https://blog.aladin.co.kr/trackback/caspi/16358277 )을 통해 칼럼을 보았다. 매체의 지면을 가진 기자가 칼럼을 통해 무엇을 원하는 건지, 생각해 보았다. 

기자는 '여자가 서른다섯이 넘어가면 임신출산의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걸 아무도 공공연히 말하지 않기를 바라는 건가? 남자들이 속으로는 젊고 어린 여성을 원하더라도, 그걸 입 밖으로 내는 것은 절대 안 되는 일이라는 건가? 

나는 임신이나 출산,이 어리고 젊은 여성이 가지는 권력의 원천,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기자의 태도에 동의가 되지 않는다. 광수의 질문이나 그 질문을 여과없이 방송에 내보낸 매체가 '여성을 도구로 생각하고, 사람을 나이로 차별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끝없이 동안,을 추구하는 여성들이 스스로 그걸 알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내가 몇 살로 보이느냐?'고 묻는 여자 출연자들이 떼로 나오는데, 그 여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권력은 타인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종류의 힘이고, 짝짓기가 이뤄지는 공간에서 힘의 우열은 확실히 젊고 어린 여성에게 있다. 다루지 못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위태롭고 위험하고 두려운 일이기는 해도, 그게 힘이 아닐 수는 없다. 

그래서, 여자들의 무리 가운데서 '언니'라는 호칭은 가끔 모멸이나 무시,를 의미하기도 한다. 여자들끼리만 있을 때 언니,와 남자들도 있는 데서 부르는 언니,는 다르다는 걸 여자들은 안다. 

불편하고 감당하기 어려울 수는 있지만, 말하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말은, 어쩌면 문명의 도구이고, 우리는 말을 해야만 한다. 말이 실질과 다르더라도, 그 말과 실질을 맞춰 보면서 상대를 탐색하고 그 말 가운데 서로를 옭아매면서 내가 아닌 남을 이해하고 더 깊은 관계들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뭐, 신문사 데스크의 기자님과 내가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건 아니지만, 좀 더 내밀한 영역까지 공개하고 있는 그런 연애프로그램 가운데, 둘의 대화를 어디까지 공론의 영역으로 보아야 할까. 공공의 영역에서 할 수 없는 말이 너무 늘어나서, 이제 방송이 점점 내밀한 영역으로 파고 들어간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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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평등주의, 그 마음의 습관 SERI 연구에세이 47
송호근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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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잃어버렸다. 

2006년에 출간된 책을 2025년에 읽었으니, 시의성이 떨어져서 공감이 안 되는 건가,하면서 읽었다. 그런 것만은 아닌 게 그 때 읽은 사람 중에도 별이 작은 사람들이 있네. 


내가 읽으려고 고른 크리스마스 선물로 산 책이었는데, 언니는 이 저자가 너무 싫다고 했다, 여러 해를 묵혔다가 다 늦게 읽었다. 내가 궁금한 것은, 한국인의 평등주의,였고, 언니가 싫어한 것은 저자의 선민의식,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도 나의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았고, 언니가 왜 싫어하는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펀 게시판 같은 데서 '이렇게 힘들게 대학에 왔는데, 학벌주의가 더 공고해졌으면 좋겠어요'의 잘 포장된 다른 말처럼도 보이는 책이다. 교양없는 부자와 교양있는 가난뱅이가 같이 올라간 도마 같다. 

아예 다른 종류의 문화를 향유하면서 계급을 공고히 구분한다는 서양 중산층의 분별 기준을 가소로워하는 나는,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바라는 게 뭘까, 계속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이 부유층의 어떤 행태를 덜 좀 깠으면 좋겠는 걸까. 지나치게 돈자랑하는 꼴을 못 보는 대중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걸까. 

한국인은 이러저러하다,는 어떤 특성에 대한 책들이 말미에 그런 점을 고쳐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하면 나는 좀 싫어하는데 좀 그런 책이다. 우리가 디뎌야 할 한 두 세 계단 쯤이 앞에 더 있는데, 평등주의 때문에 못 갈 거라는 말이 우스웠다. 평등주의 때문에 더 살만해진 어떤 걸 모르는가, 싶다. 전국민의료보험제도가 있고, 어느 정도 공평하게 이뤄지는 교육이 있다.   

총기조차 통제하지 못하는 미국에서 살고 싶지 않아, 나는 한국에서 살고 있는 게 꽤 좋아서 그런 것도 같다. 샘이 많아서, 휩쓸린다면 끝간 데 없이 괴로울 나라지만, 덕분에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단점이라고만 하지도 못한다. 어떤 세상이라도 자기 중심은 자기가 잡아야지. 

지금의 나에게, 보고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의 사회나 국가 형태로 '선진국'이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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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셀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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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의 책 짐에서 찾아 읽는다. 

길지도 않은데, 그렇게 많은 말들을 들으면서 쉽게 읽지는 않게 되는 바로 그 책이다. 

변주된 이야기들을 이미 알고, 소개해주는 말들도 여러 번 듣는다. 

그래도 원작을 읽는 건 아마 처음인 거 같다. 

악당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린다. 한심한 오셀로를 비웃고, 내가 에밀리아, 일 수 있을까 질문한다. 

해설까지 읽고, 다시 한 번 '절대적'인 것들에 가지는 믿음에 대해 생각한다. 


이아고   천성요? 그까짓 거! 우리가 이런 저런 인간이 되는 건 다 우리한테 달렸어요. 우리 몸은 정원이고 우리 의지는 정원사와 같은 거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쐐기풀을 심거나 상추씨를 뿌리거나, 히솝풀은 꽂아놓고 사향초는 뽑아버리며, 한 가지 약초로 정원을 채우거나 여러 가지를 마구 심어놓거나, 또는 태만을 부려서 불모로 만들거나 부지런히 비료를 주거나 간에 글쎄, 그렇게 할 힘과 바로잡을 권한은 우리의 의지에 있다 이겁니다. 우리의 삶이라는 저울에서 한쪽의 이성이 다른 쪽의 욕정과 균형을 맞춰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저급한 본능 때문에 정말 어처구니없는 시도를 하게 될 거란 말씀이죠. 하지만 우리에겐 이성이란 게 있어서 발광하는 충동, 색욕의 자극, 무절제한 욕망 따위를 식혀주는 거라고요. 그런데 당신이 사랑이라 부르는 것도 그 따위 것들에 붙어있는 한 줄기 또는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p54-55


에밀리아   밝혀질 거예요. 조용하라고요? 안 돼요. 난 공기처럼 자유롭게 말을 할 거예요. 하늘과 인간과 악마들 모두가, 모두가 나에게 창피를 주더라도 말을 할 거예요.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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