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랩 걸

https://blog.aladin.co.kr/hahayo/13372988

여기서 저자는 아이에게 엄마가 아니라 아빠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그럼 도대체 엄마란 뭘까? 엄마가 뭐길래, 아빠가 되겠다고 하는 걸까?

남자여서 아빠고, 여자여서 엄마인 게 아니라면, 과연 엄마는 뭘까?











2.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3054698

완벽한 엄마는 아이에게 성장할 공간을 주지 못한다. 

엄마는 필요에 반응하되, 어리석음을 연기?하여 아이가 스스로 자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 

아빠는 추상 세계-사회-에 존재하지만, 엄마는 아이와 함께-가정- 존재하는 어른이기 때문에 너무 완전한 어른은 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에 두려움을 갖게 만든다. 

완벽한 어른이 존재하는 세상 속에 사는 아이는 어른이 되는 걸 두려워하고, 어른이 될 필요를 느끼지도 못한다. 평화로운 현대의 문명사회에서 점점 자라지 못하는 어른이 가득 차는 것은, 길어진 수명과, 직접 살아내기보다 이야기를 구경하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한다. 

책 속에는 역시 완벽한 존재가 되고 싶어 아이들을 비웃고 대신 해 주는 아빠도 등장하기는 한다. 부모란 역설인가 싶기도 하네.  



3. 젠더

https://blog.aladin.co.kr/hahayo/13206446

명백하게 아이의 잘못이라고 해도, 엄마는 아이를 감싸고 아빠는 아이를 야단친다,고 가족을 묘사한다. 

엄마인 나는 남편이 아이를 혼낼 때마다, 아이의 대변인 노릇을 하려고 한다. 엄마인 나는 내가 아이의 마음을 알고 있다고, 자만한다. 

엄마와 아이의 연결은 아빠와 아이의 연결보다 동물적이고 직접적이고, 감정적이다. 








4. 파친코

https://blog.aladin.co.kr/hahayo/13372988


선자는 노아를 결국 이해하지 못한다.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생명을 주고, 먹이고 입히면서 물적 필요를 충족시키지만, 추상의 영역에서 엄마는 무력하다. 









5.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https://blog.aladin.co.kr/hahayo/10227225

엄마와 아빠,는 상징하자면, 

속과 성일까. 

자연과 문명일까. 

땅과 하늘일까. 

감성과 이성일까. 








읽지 않은 책 중에 '엄마됨을 후회함'이라는 책이 있고 이 책을 읽고 마립간님이 남긴 서평(https://blog.aladin.co.kr/maripkahn/8861264)에 댓글을 단 적이 있다. 엄마,라는 존재는 아이의 생존을 책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성범죄수사대SVU 에피소드와 아동학대 뉴스를 보면서 '여자이기만 한 여자들'(https://blog.aladin.co.kr/hahayo/12329640)이라는 글을 썼었다. 


역할로서의 '엄마'가 없다면 아이는 살아남기 어렵다. 엄마는 먹이고, 입히고, 보호한다. 아이가 절대적으로 약한 순간부터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 때까지, 엄마는 아이를 보호하고 돌본다. 보호하고 돌보지만, 그 역할은 한정적이고, 완벽하지 못함으로써 세상에 나아갈 여지를 만든다. 지금 생존의 많은 부분이 돈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엄마라는 역할에는 이제 경제활동도 포함되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기 전에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고, 아이를 낳기 전에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도 썼었다.

엄마라는 역할은 추상성으로 구성되지 않았다. 추상성은 아빠다. 성공, 명예, 이상, 이 모든 추상성은 아빠,라는 추상적인 존재에게 의존한다. 랩걸의 저자가 어린시절을 추억하며 아빠만을 선명하게 그렸던 것에 삐딱해지던 심사는 '엄마말고 아빠가 되겠다'는 저자의 결심에 폭발해서 생각은 이어진다. 그 결심은 삶을 구성하는 어떤 부분들을 무시하는 말처럼 보였다. 


이렇게 쓰면서도, 이게 전부 딸인 나의 생각이라는 자각이 닥쳤다. 

보통은 여자에게 배정된 엄마의 수고를 알면서도 자신은 하려하지 않고 심지어 하찮게 생각하는 것이 추상성이 비대해진 문명세계의 어리석은 말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남성인 아들은 어떤 입장일까 궁금해진다. 엄마에게 보호받으면서 아빠가 되어야 하는 아들에게 엄마와 아빠는 어떤 존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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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윌스미스가 아카데미시상식에서 크리스 록을 때린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둘 다 나쁘지만 윌 스미스가 아예 매장되는 것은 과하지 않나,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으려나. 아이는 유튜브 읽어주는 남자,에서 보고 어느 정도 서구의 반응이 수긍이 되더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유튜브를 찾아 보았다. (http://https:www.youtube.com/watch?v=_atVK7RjUmA) 여기서도 그런 이야기를 한다. 서구권,은 윌스미스가 크게 잘못했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가족을 그런 식으로 말하면 그럴 수 있다,는 반응이 많다. 그렇지만, 그건 맥락을 오해하고 있는 거다. 윌 스미스 가족의 지금까지의 어떤 태도가 그런 농담을 가능하게 했고, 윌 스미스는 그 전까지 웃다가 부인을 보고 나가서 때린 거라면서, 제목조차 '여자에게 휘둘려 모든 것을 잃고 있는 남자'다.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조종해, 감정적으로든 뭐로든, 조종해서 자신의 뜻 대로 움직이게 만들었어. 그러면 누가 더 나쁜 사람이야? 조종한 사람, 조종당해서 나쁜 짓을 한 사람."

"둘 다 나쁘지. 연예계에서 벌어진 일도 그랬잖아?"

"그래, 둘 다 나쁘지. 둘 다 나쁜데, 우리 나라는 조종한 사람을 더 나쁘다고 말하는 문화인 거고, 나는 그게 더 좋은 문화라고 생각해. 윌 스미스 부인이 윌 스미스를 조종해서 자신의 혼외정사를 수용하게 했고, 그래서 아이들에게 혼돈의 정체성을 넘기고, 윌 스미스를 불안하게 만든 것도 나쁘고, 크리스 록이 말로 그런 윌 스미스를 자극하는 것도 나쁘다고." 

물어본 것에 대해 대답을 하기는 했지만, 뭔가 부족해서 쓰고 싶다. 

유튜브 읽어주는 남자,는 계속 남자는 질서, 여자는 혼돈,이고 질서가 혼돈을 정리하지 못해서 아이들이 폴리 아모리에 플루이드 젠더, 따위의 이상한 소리나 하고 있는 이 가족의 문제가 윌 스미스가 가장으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가장으로서 가족의 질서를 잡지도 못 했으면서, 그런 공개적인 자리에서 가부장 노릇을 하겠다고 폭력으로 행사했다고 문제삼는다.


내가, 폭력은 절대 안 되,를 수긍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말로 자극하는 것에도 당연 책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나는 역시 윌 스미스의 업계퇴출이 과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유읽남,조차 그 동영상 제목을 그렇게 뽑은 걸 보면, 그 부인을 가장 나쁘다고 생각하는 거 갈다. 나도 윌 스미스가 좋은 여자를 만나지 못한 것 같다. 


폭력은 절대 안 된다,라는 말은 '폭력이 무엇인가'를 정의해야 한다. 언어폭력도 폭력이고, 방임도 폭력이고, 시선도 폭력이라는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 직접적인 폭행,만 폭력인 양 저런 말을 붙인다는 데 의아하다. 브런치에서 '모욕에 맞서는 방법'(https://brunch.co.kr/@youngmusic/139) 이라는 글을 보고 공감하고는, 저자의 책에 나는 공감할까 의심했다. 한국이 폭력이 허용되는 나라라서 윌스미스 옹호론이 크다는 글(https://brunch.co.kr/@brunchog1f/17)도 보이지만, 나는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은유로서 말하자면, 남성의 방식이 물리적인 충돌과 폭력이라면, 여성의 방식은 대화와 교묘한 괴롭힘이나 조종이다. 남성의 폭력이 제도적으로 여러가지 해결책들을 만들어왔다면, 여성의 폭력은 문화를 통해 제어되어 왔다. 문제를 해결하는 긍정정인 방식은 대화가 맞지만, 말 그 자체가 무해한 것은 아니다. 말로도 사람을 찌르고 죽일 수 있다. 말이라고 해서,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점점 말들도 법적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남성적인 문화에서는 교묘한 괴롭힘을 비열하다고 보지만, 여성적인 문화에서는 물리적 폭력을 미개하다고 본다. 그래서 물리적 폭력은 여성적인 문화에서 더 적고, 여성적인 문화권에서는 교묘한 괴롭힘이나 말을 이용한 조종에도 물리적 폭력만큼의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라는 오래된 경구처럼, 힘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고 여성적인 문화는 생각하는 거다. 강한 힘을 우위에 두는 남성적인 문화는 부드러운 통제나 조종조차 제압하지 못하는 남성의 문제로 보는 게 아닌가 싶다. 서구권에서 윌 스미스가 심하게 비난받는 이유는 서구의 문화가 남성적이기 때문이고-부인을 통제하지 못한 것이나 가부장이 되지 못한 것조차 윌 스미스의 잘못이다!-, 한국에서 윌 스미스가 옹호되는 이유는 한국의 문화가 여성적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https://blog.aladin.co.kr/hahayo/13486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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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을 때 마음이 불편한 대목이 있었다. 

책의 저자는 근근히 공부를 이어가는 대학원생일 때, 명절을 맞아 작은 선물을 준비해서 선배와 선생님께 드리는 이야기를 한다. 선물을 드리는데, 선배가 '뭐하러 하느냐, 안 해도 된다'라고 말하는데 '나는 이런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인가'싶어 상처받았다고 쓴다. 

그럴 수는 있지만, 나는 나도 그렇게 말할 사람이라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모든 선물이 그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후배들이, 해외여행에서 돌아와서 여행지의 과자 따위를 돌릴 때, 나도 그렇게 말한다. 그럴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내가 그걸 받을 자격이 없어서 하는 말이다. 나의 자격은 주는 사람이 정하는 거고, 선물은 주는 사람 마음이기는 하지만, 또 선물은 그렇게 선,하지만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학생일 때 군대도 안 간 젊은 영어선생님이 친구가 그 선생님께 준 음료수를 면전에서 다른 사람에게 건넬 때 '준 사람 성의는 생각도 안 하세요?'라고 따진 적도 있는데, 지금은 선물이 선물이려면, 준 순간 그 사람의 처분에 맡겨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선물과 함께 건네지는 나의 마음은, 받는 사람의 마음에 빚이 된다. 

다른 의견 속에 궁금해서 적어놓은 책 '세계에서 제일 이상한 사람은 누구인가(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3478318&start=slayer)도 문화에 따라 선물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유튜브에서 은괴와 초콜릿 중에 고르라는 인터뷰 내용을 보고 초콜릿을 고른 사람이 교육수준이 낮아 은이 비싼 줄 몰라서라는 해석을 보고도(https://www.youtube.com/watch?v=ga-oNV-OVxc&t=533s) 나는 역시 의심하는 거다. 누구나 더 가치있는 걸 원할 거라는 WEIRD한 서구인의 시각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선물하는 사람은 뇌물이 아니더라도 댓가를 바란다. 노골적이고 경제적인 무언가는 아니더라도, 최애가 내 선물을 들고 사진이라도 SNS에 올려주기를 바라는 거 같은 것. 그게 어렵나, 하면 되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참. 

지금의 나는 선물이 선물이려면, 건네 준 순간 모든 처분은 상대에게 있다는 걸 받아들인다. 

그리고 선물은 어쩌면 우월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 속의 저자가 가지는 슬픈 마음-나는 이런 작은 선물조차 할 수 없는가-은, 선물을 하면서 느끼려는 어떤 뿌듯한 마음이 좌절되서라고 생각하는 거다. 늘 무언가를 받던 작은 존재였다가, 이제 줄 수도 있는 존재가 되면 스스로 기분이 좋은 걸 안다. 

선물은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다. 상대가 감사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정말 끔찍한 -바느질도 못하는 주제에 옷을 만들어 선물하려고 한 적이 있고, 1년 중 처음 생일을 맞은 언니가 언제나 그 끔찍한 선물을 수령했다- 선물을 제 기분에 신이 나서 여기 저기 뿌린 적도 있고. 남편이랑 아이들 게임 다운받아 주는 걸로 싸운 적도 있고, 어린 친구에게 '책은 싫어요'라는 귓속말을 들은 적도 있다. 내가 하는 선물에도 의도가 있고, 나는 그 의도를 자제하기 위해 노력한다. 나의 취향을 권하는 마음, 너보다 나의 취향이 나을 거라는 자부심, 같은 게 선물을 고를 때 있다는 거다. 어렵고 귀한 분께 몇 날 며칠 선물을 고르지 못하는 마음과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쉽게 골라서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나의 우월감의 표현이고 나의 취향의 어쩌면 강권이고, 그래서 나는 쉽게 선물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무언가를 골라 선물하고 싶던 마음이, 그래 역시 돈을 주고 직접 고르라고 하는 편이 좋겠지,로 바뀌었다. 내가 엄마에게 주고, 엄마가 다시 아이에게 주는 용돈의 트라이앵글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받고 싶은 마음보다 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것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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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굉장히 오글거리고 어이없는 드라마를 볼 거니까, 먼저 들어가서 자라고 남편에게 말하고 봤다. 완전 클리셰 폭탄인데, 왜 재미있을까, 생각이 많다. 

로맨스의 환상이 응축되어 드러난다. 

직장에 다니는 여자주인공은 친구의 맞선자리에 대신 나가서는 자기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과 만난다. 적당히 떼어내는 게 목표였던 맞선에서, 일은 꼬여버렸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있는데 저래도 되나 싶은 설정도 보이고, 스토킹방지법도 있는데 좋아한다고 할 때까지 고백한다는 장면도 있다. 드라마 유튜버도 요즘 남자는 저렇게 고백 안 하니까, 잘 생각하고 대답하라고 조언하더라. 

시대에 뒤떨어진? 이제는 한 물 간 줄 알았던 신데렐라 설정에, 법적으로 문제삼을 수 있는 지뢰같은 설정도 많고, 완전 클리셰 폭탄인데 말이지. 그걸 재밌다고 보는 나는 뭐란 말인가. 

클리셰들에도 불구하고, 왜 좋았던 걸까. 카카오페이지까지 깔고, 원작웹소설과 웹툰도 보고 있다. 처음 깐 카카오페이지라서, 도대체 기다무는 누군데, 이 많은 소설과 웹툰을 쓸 수 있을까, 오해했다. (기다리면 무료,의 준 말이었다.) 인스타에 김세정과 안효섭과 설인아와 김민규를 팔로우 추가도 했다. 

그걸 다 보고 뭔가 분석적인 글을 쓰려고 했으나, 내가 무슨, 싶어서 그냥 쓴다. 


읽으려고 쌓아둔 책 중에 '충분히 좋은 엄마' 본문은 '새엄마에 대한 이야기들이 사라진다면, 새엄마에 대한 편견이 사라질 거라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로 시작한다. 정확한 인용은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하고 싶다.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새엄마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하는 것에는 그 이야기가 어떤 면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이 신데렐라 스토리의 클리셰도 무언가 그런 게 있어서일 거라고 생각한다. 클리셰 안에, 무언가를 담고 있다. 그건 사랑의 본질일 수도 있고, 사람들이 추구하는 무엇일 수도 있다. 


드라마와 웹소설을 비교하다가, 둘 다 뭐가 좋았던가 생각하다가, 여성과 남성의 전형적인 어떤 태도들에 눈이 간다. 현대인들은 수동성보다 능동성을 선호한다. 능동성을 고양시키라고 그게 강한 거라고, 그런데 나이먹고 늙어가는 중인 나는 수동성이 더 강할 수 있는 순간들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애초에 태어난 건 자체가 나의 선택이 아니고, 나의 가족이 나라가, 고향이, 시대가 나의 선택이 아닌데,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 삶은 얼마나 가능할 수 있겠나, 싶은 순간들이 있다. 살아간다는 것의 수동성 가운데서, 일찌감치 마음을 정하고 돌진하는 남자 주인공과, 상황에 떠밀려 휩쓸리는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를 보는 거다. 나쁘지 않아, 삶의 파도에 휩쓸리는 것이,라는 마음이 된달까. 휩쓸리는 파도 속에 사랑이 꽃피는 로맨스의 세계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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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kIU 2022-04-29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다무는 누군데 ㅎㅎㅎ 넘 귀여우셔요
사내맞선, 저도 넘 잼나게 읽고 봤어요. 클리셰 범벅도 캐릭터, 스토리가 좋으면 충분히 즐길수 있는거죠

별족 2022-04-29 11:34   좋아요 0 | URL
웃어주셔서 감사^^. 웹소설과는 많이 달라서 실망하는 원작 팬들도 많다던데, 드라마도 재밌게 보셨군여.
 

1. 마징가Z 지하기지를 건설하라

https://blog.aladin.co.kr/hahayo/749219

읽고 서평을 썼지만 쓰지 못한 말이 있다. 

책은 토목회사가 자신의 일을 홍보하기 위해, 일본답게 만화 속의 지하기지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의 진행방식을 보여준다. 뭔가 매뉴얼 스러운 책 속 묘사 가운데, 내가 좀 놀란 대목은 이런 거다. 

'하루가 멀다하고 괴수가 출몰하여 시가지를 파괴하는' 이야기 속 묘사가 토목건설업계의 블루 오션?이라고 했던가. 딱 한 줄이었을 텐데도 놀랐다. 다른 관점이란 이런 것인가. 괴수가 출몰하여 시가지를 파괴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사람들이 대피할 텐데, 내가 건설업자면 무슨 일을 내가 할 수 있을까, 떠올리면서 은밀한 기쁨을 느낄 수도 있는 건가. 

산업이 되고, 그 업에 종사한다는 건, 좀 모호한 포지션이 될 수도 있구나, 싶었다.

환경영향평가,관련 교육에서도 약간 그런 인상을 받는데, 대규모 건설사업에 대해 일종의 장애물로 기능하는 환경영향평가를 하게되는 사람들이, 정작 그런 사업이 없다면 유지될 수가 없는 거다. 산업이 되는 것은 무언가를 왜곡시키게 되네,라는 인상을 받았다. 


2. 파친코1,2 

https://blog.aladin.co.kr/hahayo/13512685

재일 조선인은 직업적 선택에서 배척당한다. 

그래서, 파친코를 하게 된다. 혹은 야쿠자가 된다. 혹은 야쿠자라서 파친코를 한다는 오해를 산다. 혹은 파친코라서 야쿠자일 거라는 오해를 산다. 

재일 조선인의 삶을 벗어나고 싶어하던 노아는 재일 조선인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드러내어 과시하려던 대학의 여자친구에게, 드러내어 차별하는 사람에게 받는 듯한 멸시를 받았다고 느낀다. 방식만 다를 뿐 같은 차별에 괴로워한다. 재일 조선인임을 숨기고도 결코 하지 않으려던 일을 하게 되고, 결국 삶을 받아들이기보다 달아난다. 

산업이 되었고, 그 자체에 이제 옳고 그름을 말할 수 없는 다른 단계가 되어 버린다.  

군부정권 하 운동권은 취업시장에서 배척당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많이들 사교육업계에 발을 들였다고도 들었다. 

그래서, 사교육업계가 팽창하고 지옥도가 펼쳐지는 데도, 이미 산업이 되어버려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산업이 되는 것, 그 일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 많다는 건, 그 업 자체의 가치를 공동체를 위한 것인가로 제제할 수 없게 만드는 건 아닌가,도 싶다. 미국에서 총기규제가 실현되지 않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가 건전하게 판단할 수 있기를 바란다. 스스로 일의 본질적인 의미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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