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랑 보고 있다. 아이유도 변우석도 좋은데, 그 공간들이 맘에 들지 않는다. 

우리가 식민지도 전쟁도 없었다면, 세상은 저런 식으로 재수없었을까. 

우리의 지금은 식민지와 전쟁을 겪었기에 지금 이런 것일까. 

내가 싫어하는 건 뭘까. 

나는 성희주(아이유)가 가지는 그 절대적인 신분의 감각이 싫었다. 지금도 누군가가, 자기는 뒷배가 없어서, 배경이 없어서, 계급이 이래서, 더 나아질 수 없다고 말한다면 나는 싫을 건데, 극 중에서 성희주가 많은 것을 누리면서도 가지지 못해서 아쉬운 그 신분의 벽,이라는 게 거슬렸다. 있다 하더라도, 저렇게 노골적이라면, 저 수준의 근대화가 가능했을까, 라는 생각도 했다. 

궁,에서는 그게 어쩌면 좋았었는데, 대군부인,에서는 왜 그게 싫을까, 생각하면서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이 대체 역사물이 대체한 역사는 어디부터인지 검색도 했다. 궁,에서 조선은 일제시대를 겪었다. 왕족은 눈에 띄는 독립운동의 구심점이었고, 독립한 후 황실은 복원되는 설정이다. 그런데, 대군부인에서 조선은 정조의 아들 문효세자가 죽지 않고 왕이 되어 정조의 부흥을 좀 더 유지하고 성공적으로 근대화하는 설정이다. 보기에 식민지도 전쟁도 겪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야기에 구멍이 숭숭 뚫린다. 설정을 지어내기에는 너무 길고, 그 상태로 이야기는 비어버린 것도 같다. 신분제가 저런 식으로 공고하다면 어떻게 저런 풍요가 가능해?싶었다. 

언니랑 보면서, 조선에서 양반,이라는 말은 어쩌면 지금의 고위공직자,같은 말이라고도 했다. 문반과 무반,으로의 양반, 과거를 통해 등용하는 저 공직은 산업이 빈약한 시기에 유일한 산업일 수 있었던 거고, 천민이 아니라면, 서얼이 아니라면, 조선은 상인이 양반이 될 수 있는 길어 없었던 게 아니라고 했다. 과거를 볼 수 있었어. 신라나 고려같은 귀족사회가 아닌데, 왜 저런 식으로 묘사하는지 이해가 안 되네,라고도 했다. 

왕후장상에 씨가 따로 있느냐,라며 민란을 일으켰던 그 태도 그대로, 사람은 모두 같다,는 감각이 나에게 있고, 신라가 무너지고, 고려가 무너지고, 성리학의 나라 조선이 육백년이 이어졌다면, 공간이 계급의식이 저렇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봤다. 

지금 대한민국의 내세울만한 문화적 자부심이 대군부인의 공간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영국의 왕립학교,를 옮겨놓은 듯 뾰족하게 솟은 고딕양식의 학교 건물도 그렇고, 궁궐에서 이뤄지는 서양식 파티,묘사나 대군자가가 집무를 보는 공간은 높고 위압적이다. 궁,에서 묘사되는 어쩌면 작아보이는 공간은 사랑하고 결혼하는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공간이 그러한 이유는 유교나 성리학 때문이 아닐까,라고도 생각하는 거다.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신성한 장소는 뾰족하고 높기보다 넓고 낮다. 종묘가 가지는 공간적 상징성이 그러한데, 600년을 이어올 수 있었다면 어디까지 얼마나 변화했길래 가능했을까,라는 생각에 더하여, 그런데 그런 식으로 그저 선진국을 따라 흉내를 내고, 쫓아갔다면, 어떻게 저런 풍요가 가능했을까,라고도 생각했다. 

대체역사물이 고난과 역경을 지워버리고도 저런 풍요가 가능한 것처럼 말하는 것이 사실일까, 생각한다. 고난과 역경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우리의 감각들이 있었던 거구나,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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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답답이들, 소리가 자꾸 자꾸, 자꾸 나온다. 

용우,는 답답이는 아닌데,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일을 그르친다. 차무희는 캐나다에서 한국가는 비행기를 그냥 탔어야 했다고! 

차무희,는 그냥 답답이. 오죽했으면 도라미가 튀어나왔나 싶은 답답이. 

주호진,은 또 답답이. 혼자 있는 게 너무 편해서 상상 속의 짝사랑을 혼자 만들어 모든 사랑을 피하는 한심이. 

오래도록 자라지 못하는 답답한 어른들의 연애를, 음, 나는 좀 더 남자나 여자가 연령대가 낮았으면 좋겠네,라고 착취적인 늙은 여자의 태도로 봤다. 

내 딸이 그렇게 늦게까지 답답한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고, 시간 가운데 나는 시간의 흐름을 모르니 그 사람들이 그렇게 늦게까지 답답이인 건 그 사람 탓은 아니라는 생각은 든다. 

어린 딸,을 사로잡은 엄마의 말은, 엄마라는 존재의 잔혹함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엄마란 무서운 존재다. 차무희를 사로잡은 그 말, 사랑을 파탄내는 그 말.  

'세상에 널 사랑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라는 말은 함께 죽기를 요구하는 엄마가 딸에게 하는 말이다. 엄마가 할 법한 말이다. 자식의 삶을 분리하지 못한 오만한 부모가 자신의 두려움을 자식에게 전가하는 말이다. 

여행홍보책자같은 예쁜 배경에, 상표가 잘 보이게 모자를 쓴 사람들이 등장하는, 공중파?에서는 방영불가한 그래서 전 세계인을 상대해야 가능했던 이야기다. 시장이 커졌고, 취향은 좀 덜 빡빡해진 것도 같다. 나는 좀 더 공중파, 취향.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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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토론대회,를 웃기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은 반대인데, 찬성 표를 받아들고, 찬성입장을 발언해야 한다면, 그게 의미있는 토론이냐,고 생각했다. 거짓을 연기하는 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2회의 더 로직을 보면서, 그게 생각을 더 넓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회차에서 참가자는 찬성과 반대,를 자신의 의사로 고르지 않았다. 백명의 참가자는 열명씩 조를 짜고, 리더를 뽑았다. 주제는 '외국인 밀집지역을 치안특별구역으로 지정하는 건'이었다. 찬성깃발 다섯 개, 반대 깃발 다섯 개를 각 조별로 골라서 해당 입장으로 1대 1 조장 논쟁을 했다. 그건 차별이라서 찬성하기 어려운데요,라고 인터뷰하던 사람들이, 깃발을 놓쳐서 찬성 입장에서 의견을 단련해야 했다. 다섯명의 고등학생이 토론을 보고, 자신이 더 설득당한 입장으로 스케치북을 들었다. 그건 차별이라 반대,야 라면서 번개같이 달려들어 깃발을 선점한 조는 쉽게 반대논리를 상상해내지 못했다. 

차별이고 차별이 아닌 것,이 그렇게 분명해지는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안특별구역,이 어떻게 운영되느냐,의 문제가 아닌가. 우리는 파출소가 가깝고, 인구수 대비 치안인력이 더 많은 지역을 살기 좋고 안전하다고 느끼니까, 만약 치안 특별구역이 그런 곳이라면 좋을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안특별구역이 낙인효과를 일으키고, 집값을 떨어뜨릴 거라는 반대논리가 수긍이 되지 않았다. 내가 찬성하고 있었던 걸까. 

어떤 상황에서 살더라도, 그 상황이나 세상을 차별이나 억압으로 인식하거나 인식하지 않는 것은 살아가는 사람에 달린 게 아닌가 싶다. 

가끔, 행정편의주의적인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그래서 편리해지는 부분도 있는 게 아닌가. 우리가 말이나 의미에 깊게 매몰되서 현실의 장점을 못 본다면 것도 참 곤란해지지 않는가 싶다.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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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처음 시작한 방송이다. 늦게 시작했는데, 끝까지 봤다. 

토론을 게임으로 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말하고 싶어하는 걸 듣고 있는 게 좋았다. 논리는 부족할 지 몰라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는 게 좋았다. 

싸움구경을 좋아해서 그런가,

참가번호가 적힌 흰 티셔츠를 입은 백명의 사람들이 처음 가진 토론의 주제는 '주 4.5일제'였다. 찬성과 반대가 50대 50으로 갈리고, 토론을 한다. 구한말 공원에 벌어졌다던 만민공동회?와는 단상이 두 개라는 게 다를까, 찬성과 반대가 번갈아 이야기하고 나는 화면 밖에서 듣는다. 

나의 입장은 반대,인데 그렇게 짧은 시간에는 말할 자신이 없다. 나의 입장을 설명하는 건 쉽지 않아. 찬성의 입장은 내가 모르지 않는 것들이라-우리는 일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일하는 겁니다- 시큰둥한데, 반대의 입장은 다종다양해서 재밌기는 하지만, 멋지게는 들리지 않는 것도 같았다. 반대가 레드카드를 두 개나 받아서 결국 게임으로서의 토론은 반대가 졌다. 

나의 반대는 어쩌면 반대파의 '그럼 교육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와 조금 통하는데, 찬성파에 등장한 현직 선생님이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로 반박당했다. 그렇지,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서, 학원이 생겼지. 우리는 세상과 경쟁하고 있는 거니까. 

주 5.5일제였던 게 주 5일제로 바뀔 때 나는 사람들이 좀 더 느긋해지고 행복해질 줄 알았지. 그런데, 상황은 어땠냐면, 관광 여행업이 붐업되고, 사람들은 서로를 비교하면서 삶에 더 많은 돈을 원했다. 주 5일제는 시간을 돈으로 사는 문제라 물가는 올랐고, 박탈감이나 편중은 더 심해졌다. 주 5일제,를 적용받는 정규직 일자리는 공무원과 공기업과 대기업, 학교 정도가 남고 점점 프리랜서가 대세,가 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들, 스스로를 경영하는 프리랜서,들. 

나는 주4.5일제를 새벽배송을 금지하자,는 말처럼도 듣는 것 같다. 

국가가 정해주는 최소한의 기준이라는 주장에는 누구나 주 4.5일은 일할 수 있게 하자,여야 하는는 거잖아?싶기도 하고 말이다. 지금은 누구도 주 4.5일 이상은 일하지 말아라,가 아닌가도 싶다.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데, 일이란 무엇인가, 부터 정의해야 하는 게 아닌가. 주 4.5일 일하는 걸로 생활이 될 것인가? 도 질문해야 하는 게 아닌가. 

주4.5일제는 돈을 받고 하는 노동의 고용과 피고용관계를 정의하는 말이고, 이게 가능한가,는 역시 모르겠다. 사람들은 주40시간 노동을 10시간씩 나흘 일하는 식으로 선택하려고 한다. 주30시간이라니 여섯시간씩 5일을 일하는 방식보다 9시간씩 사흘 일하고, 나머지 세시간을 하는 방식으로 일 할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어떻게 하려는지 원하는 게 뭔지 나도 나를 모르는데, 그걸 제도로 정의할 때 어떻게 하려는지도 모르겠다. 

재밌었다. 나는 게임이 끝난 다음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알겠고, 더 말하게 하고 싶었다. 게임이 아니라, 진심으로 말하고 싶어하는 거니까. 폭력이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말하는 걸 듣고 싶었다. 마이크를 빼앗은 게 센스인가, 싶었지. 더 말하고 더 듣고 다시 찬 반을 나눠도 좋았겠다고, 그게 설득이 아닌가,고도 생각했다. 

여러 날 하는 토론의 대주제는 이민,이다. 크게 관심있는 주제는 아닌데, 재밌을 거 같다. 너무 늦게 해서 아쉽지만 목요일이니 다음에도 봐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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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한 낮에 하는 EBS 일요시네마로 하이랜더 를 봤다. 

영화설명에 설정이 모두 다 있는데, 영화를 볼 때는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봤다. 아니지, 아마도 읽었을 것이다. 젊은 날에, 저예산으로 세계적으로 흥행한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을 것이다. 젊은 날에 읽고도 잊은 어떤 이야기를 다 늙어서 이제 아이들도 시끄럽지 않은 일요일 낮에 본 거다. 모르고 보는 사람처럼 재미나게 봤다. 

토요일 낮에는 극장에서 나우 유 씨미 3를 보고 실망해서 그런가, 재미나게 보고 다 늦게 설정에 대해 생각하면서 웃고 있다. 

영화 속 불멸자는 늙지 않는다. 주인공 코너 맥클라우드에게 무술을 가르치는 라미레즈는 확실히 코너보다는 늙어보이기 때문에, 언제부터 늙지 않게 될까, 가 나의 웃음 포인트다. 아마도, 불멸자는 한 번 죽어야 각성하는가 본 데, 그 시점이 참. 싶은 거다. 

최후에 1인이 상을 받는다는 이유로 서로를 찾아 목을 뎅겅뎅겅 잘라대는 불멸자 설정에 그럼 어느 시점에 불멸자가 불멸자로 각성해서 늙지 않게 되는 시점인가, 까지. 늙어서 죽는 남자가 불멸자면 노인도 생기겠네, 금방 목이 잘리려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와글와글 상은 못 받겠네. 

결국 최후의 1인이 되어 상으로 죽음을 받아든 주인공. 

참으로 기이하게 평화로운 이야기다. 

이걸 시리즈로 어떻게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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