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enasia.hankyung.com/article/2024123063294?cm=news_headline


드라마를 안 보고 기사를 쓰나. 드라마를 봐도 이입은 하지 않은 걸까. 

도둑,이라, 도둑이라. 


나는 재미나게 보고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돈을 깔고, 쓸 수도 없는 돈을 깔고, 그저 아무도 믿지 못할 선심으로 치매 의심이나 받는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모두 다 알아버렸는데, 그래도 비밀을 지키려고 서로 말도 못하는 그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나는 구경한다. 다림이가 아프지 않았다면 그 돈을 굳이 가져왔을까. 알고도 말 못하는 심정을 왜 이해하지 못할까. 

드라마의 무엇이 절도, 은폐 방법을 알려준다는 걸까. 

100억이 파묻힌 걸 알아도 쓸 수가 없다는 걸 알려주고 있는데 말이지. 

억,이라는 단위가 흔해졌지만, 실상 그 출처를 알지 못하는 돈은 쓰지를 못 한다고 드라마는 내내 알려준다. 그 돈을 헐어 눈을 뜬 다림이도 울고, 경찰인 우림이도 울고, 그 돈을 어떻게든 갚아보려고 애쓰는 강주도 있는데, 왜 이들이 도덕심이 없다는 걸까. 

같은 드라마를 보고 있는 걸까. 사람은 얼마나 다른 걸까. 

내가 8억이면 눈을 뜰 수 있는 아픈 손녀가 있는 할머니인데, 돈가방 파묻는 걸 봤으면 안 파올 거야? 이미 그 돈이 깨끗한 돈이 아니라, 도둑맞은 돈 주인도 경찰에게 신고하지 못한 건데, 왜 이렇게까지 잘못이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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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를 본 어머니의 감상은 '여기는 남자가 안 나오는구나'였다. 

정년이를 본 내 감상은 '주인공이 밉상이네'고, 딸래미의 감상은 '영서가 제일 착해'다. 


마지막회차,에서 나를 불편하게 만든 건, 주란이의 선택에 대한 시선이다. 주란이는 바보 멍청이가 아니고, 국극단을 나가고 결혼을 하기로 한 건 주란이가 한 선택이다. 주란이가 정년이를 보면 정말 너무 떨리고 설레서 연기조차 못 할 지경이었던 묘사나, 그런 주란이한테 배신감을 느끼고 제 목을 망가뜨리는 정년이의 묘사나 역시 좀 과했지만, 그게 결국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남자-주란이의 약혼자, 주란이의 아픈 언니의 치료비를 감당하고, 앞으로 주란이를 부양할 예정인 바로 그 남자-와 결혼에 대한 적대로 드러날 때는 작금의 여대 사태가 같이 떠오르는 지경이었다. 여자로만 구성되었던 국극은 결국 사라졌다. 길게 붙인 에필로그에도 불구하고, 정년이가 나중에 무엇을 했던지 간에 국극 자체는 소멸했다.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라니 척화비에도 안 쓸 문구로 - 원래는 척화비에나 쓸 말에 혹해서는 이라고 했지만, 사실 구한말 척화비의 태도는 '살아남기 위해서 개방하지 않겠다'였다- 학교를 망가뜨리면서 자신이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기이한 여자들이 겹쳐 떠올랐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그 마음은 그 무엇으로도 비난받을 만한 일은 아니다. 나라가 이성애를 '권장'하는 이유는 이성애는 아이가 생기니까,가 아닐까. 권장하고 독려하는 이유가 그런 거라면, 권장이나 독려에도 불구하고 이성애를 택하지 않는 사람은 불이익에 대해서 수용할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생각도 한다. 권장이나 독려하지 않았다고 해서 강요라고 받아들이고, 울분을 토하는가? '말안하기 게임'을 읽었을 때의 감상( https://blog.aladin.co.kr/hahayo/14297055 ) 그대로, 어쩌면 동성을 좋아하는 것은, 이성을 혐오하는 것은, 인종차별과도 다를 바 없는 게 아닌가,라고도 생각하고 있다. 백인이 흑인을 차별하는데 이유를 백가지 붙이는 것처럼 지금 그러고들 있는 게 아닌가.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고 할 만큼 목숨을 내놓을 만큼 남자가 싫은 거야?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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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너무 많다. 

월요일의 마지막 장면에서 현오를 죽였을까봐 미쳤나봐,라고 했는데, 현오는 죽지 않았다. 그렇지만 최종화 내내 '차라리, 죽이지' 할 만큼 꼴 보기 싫었다. 

이제 나는 조직에 너무 오래 몸 담고 있는 사람이라서, 현오나 은호가 상사들의 요청이지만 명령을 사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어이가 없다. 

여기는 방송국이고, 누군가 죽어나가도 방송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이 웃겼다. 방송국 아닌 어떤 조직도, 그런 이유로 조직을 만들어서 키우고 운영하는 거다. 내가 아니어도 굴러가게. 완벽은 아니어도 이러구러 굴러가게. 

현오가 은호때문에 아홉시 뉴스를 거부한다는 설정도 어이가 없고, 은호가 오후뉴스는 싫다고 뻗댈 때도 어이가 없었다. 조직 내에서 부탁의 형식을 취하지만 명령인 것들, 내가 하지 않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해야만 하는 것들, 그래서 부탁의 형식을 취하지만 다음 카드가 언제나 있는 것들을 나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묘사하는 게 싫었다. 

뭐 싫은 걸로 치자면, 자기는 결혼 안 한다고 애저녁에 뻥 찬 여친 주위를 뱅뱅 돌았던 현오와 그렇게 자신을 뻥 찬 남자 때문에 해리성인격장애를 앓으면서도 또 그 주위를 뱅뱅 도는 은호인 거겠지. 현오가 주연이 질투하는 거 보면, 은호가 현오랑 헤어지자 마자 다른 남자랑 결혼이라도 할 거처럼 굴었다면 냉큼 달려와서 결혼하자고 했겠구먼, 그눔의 새끼, 이러면서 봤다. 

결혼을 하고 싶지만 난 아직 부족해,라면서 돈 벌 궁리하는 남자들. 

결혼은 이 남자랑 하고 싶지만 지금은 아니야,라면서 커리어를 쌓으려는 여자들. 

결혼이란 게 혼자만의 마음으로 혼자만의 시간표에 딱 맞춰 가능한 게 아닌데 말이지. 

온 우주에서 함께 늙고 싶은 혹은 함께 아이를 키우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는 기적에 더하여, 그 사람과 마침맞게 사귀고 마침맞게 결혼할 결심을 했다는 것도 기적인데. 

현오가 좀 더 싫었던 건 8년이나 사귀면서 자신의 어떤 처지를 하나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 결국 선택은 은호가 했어야 하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은호에게 통보했다는 거지. 그래, 그걸 내가 못 받아들이니까, 이 메인커플 대신 환상 속의 커플, 혜리씨와 주연씨가 더 좋은 거지. 

현오와 은호는 행동은 이렇게 하면서 말은 저렇게 너무 많이 하는 커플이었다!!! 

난 너무 T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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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 2024-11-04 1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이를 먹은탓인지 모르겠지만 F도 똑같이 생각했습니다 ㅋㅋ
 

15화를 볼 때, 모든 갈등이 끝났는데, 16화는 뭘 하려나, 싶었다. 

결혼을 하려나. 주인공 커플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양가부모의 허락도 받았고, 서브커플도 맺어졌다. 프로포즈를 벌써 두 번쯤은 한 것도 같고, 도대체 16화는 뭘로 채우려나, 싶었는데 내심 결혼하려나 기대도 했는데, 역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연애지상주의자들이 연예계에 가득한가. 두 번이나 청혼받은 석류는 받기만 한 게 미안하다면서 청혼도 했으면서 당장 결혼하기보다 결혼을 미루고, 아직 젊은 자신의 부모들에게 드레스를 입힌다. 이건 뭘까. 

티비라는 올드매체의 시청자가 젊은 커플보다 커플의 부모세대이기 때문에, 결혼이 평화롭고 다시 한 번 드레스를 입기를 원했던 걸까. 정말 지금 젋은 세대들은 결혼이 그렇게까지 두려운 걸까. 석류와 승효가 결혼을 미룬 이유는 못 해본 연애를 원없이 하고 싶다, 이고, 모음이랑 단호가 결혼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모음이가 남극기지로 파견갔기 때문이다. 

젊은이는 결혼을 왜 하는 걸까. 젊은 여성들은 왜 결혼이 두려운 건가. 연애와 결혼의 차이는 뭔가. 정말이지 내가 궁금해서 누구라도 붙들고 물어보고 싶은데, 이런 질문은 너무 무례해서 할 수가 없다. 

나는 연애가 정말 너무 귀찮은 사람이라서, 젊은 커플들의 결혼거부증을 이해할 수가 없다. 좋아서 죽겠다면서, 정말 네가 너무 좋다는 로맨스의 결말들이 이러니까 내가 또 이해가 안 되는 거지. 영원히 너만 사랑하면서 늙고 싶다면서 왜 결혼을 두려워하는가 싶은 판타지 속의 젊은 연인들- 사내맞선 하태커플도, 선재업고 튀어의 솔선커플도, 일타스캔들의 열선커플도 그랬다-을 모르겠다. 아니면, 나같은 올드한 시청자들이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게 '결혼하자'에 '좋아'라고 대답하는 장면에서 드라마를 끊지 않는 지금의 세태를 모르겠다. 그게 더 멋있나? 역시 모르겠구나. 사랑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믿는 로맨스 창작자들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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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업고 튀어,가 종영하고도 유튜브로 영상을 보고 있다. 

대만 팬미팅에 선재 등신대를 업고 온 팬에게 웃으며 손하트를 만드는 변우석 영상도 보고, 팬미팅 사진이라는 사진들도 좀 본다. 김혜윤이 나온 틈만나면,도 본다. 

왁자지껄한 팬미팅과 선재에 대한 열광을 보면서 애초에 내가 드라마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생각했다. 

1,2회차 선재가 자살,했다고 생각한 나는 사랑에 대해 쓰려고 했었다. 오래 사랑한 사람이 나를 아예 기억하지 못할 때의 절망에 대해서 쓰려고 했었다. 심지어 팬으로 나를 사랑한다고, 살아있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때의 절망에 대해서 쓰려고 했다. 안전하게 짝사랑만 하려는 세태에 대해서 쓰려고 했었다. 

수십, 수백, 수천, 수만, 수십만의 열광적이랄 수 있는 사랑을 받는 류선재는 단 한 사람 임솔의 팬심에 절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랑이란 참으로 이상하고 잔인한 감정이라서. 

류선재의 죄책감과 뒤엉킨 애달픈 짝사랑은 임솔의 뒤늦은 팬심이 오히려 슬프다. 

열아홉 솔이는 선재의 마음을 알 수 없고 알아도 받을 리 없고, 지금 선재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 감정은 나란히 서서 마주 볼 수도 있는 독점적인 관계의 마음이 아니라, 먼발치에서 보내는 누군가와 나눠 가지는 팬의 마음이다.  

드라마의 도입에서 나는, 그 마음의 불균형이 가져오는 파국이, 드라마가 말하려는 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강태성을 따라다니느라 선재를 보지도 못하는 열아홉 솔이처럼, 자기 주변의 꽤나 멋질 수도 있는 누군가를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팬심은 좋지 않다고 말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다 늦게 내가 처음 매혹당한 어떤 이야기의 의도가 떠오른 것은, 지금 세계를 열광시킨다는 선재에 대한 이슈 때문이다. 

이야기가 하고자 하는 어떤 주제는 이야기가 보여주는 이미지 가운데 퇴색하고, 오히려 반대 쪽으로 현상을 강화시킨다. 

등신대를 업고 온 팬은 자신을 짝사랑하는 이웃집 총각의 애달픈 사랑을 모르는 채로, 류선재의 팬미팅에 가 있을 수도 있는 게 아니겠는가. 사람들이 두렵고 위험한 미지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사랑 대신, 안전하고 무해한 가짜 사랑으로 도피한다. 독점적이고 밀도높은 지속적인 관계를 찾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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