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보다가, 불화하는 부자관계와 이 때문에 촉발되는 부부관계의 갈등묘사를 만났다. 


[혼례대첩]에서 절대 악의 축은 정경부인인데, 남편보다 정치적으로 뛰어난 인물로 묘사된다.  ( https://program.kbs.co.kr/2tv/drama/thematchmakers/pc/detail.html?smenu=e126f2 ) 세자의 혼사를 막고, 자신의 조카인 대군을 세자로 만들려고 하고, 더하여 이전에 이미 세자를 독살하려는 실패한 음모를 꾸미기도 했다. 그런데, 정치적 야심가인 정경부인은 시끌벅적한 성혼의 소동극 가운데, 정치적 동지이자 대외적인 자신의 대리인인 남편이 자신의 아들을 살해했다는 걸 알게 된다. 부인은 자신의 아들을 살해한 남편을 살해한다. 정치적 판단,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자신의 아들을 살해한 남편에 대한 분노가 묘사될 뿐이다. 남편은 아들을 살해했고, 아내는 남편을 살해한다. 


[밤에 피는 꽃]에서도 절대 악의 축인 좌의정은 정치적으로 갈등하는 선왕을 시해했다. 선왕은 좌의정을 피해 자신의 군대에 임무를 주어 궁을 내보냈다. 좌의정은 밀명을 받아 길을 나선 왕의 군인 중 한 명의 누이를 자신의 며느리로 삼는다. 단, 아들은 이미 자신의 사랑을 찾았다며 집을 나간 뒤이니, 이 며느리는 며느리라기보다 인질이다. 자신의 아들을 아내에게 죽었다고 하고, 집을 나가는 아들에게 다시 돌아오면 죽인다고 한 뒤다. 아내에게 죽었다고 한 아들이 15년만에 돌아와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한다. 좌의정에게 이는 용납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머니는 남편이 찾고 있다는 말을 믿었고, 아들이 죽었다는 말도 믿었다. 이제 살아돌아온 아들을 기쁘게 끌어안으며,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아버지와 아들이 어떤 날선 말을 주고받는지 아예 모른다. 


부부 사이의 비밀은 어디서 생기는가. 

왜 아버지는 아들과 불화하는가. 

왜 이야기는 이런 상황들을 묘사하는가. 

고릴라 이스마엘을 읽고, 서양의 이야기들이 더 피와 살이 튄다,(https://blog.aladin.co.kr/hahayo/603247 ) 고 생각했다. 피와 살이 튀는 동물적인 이야기 가운데, 부친 살해의 서사 가운데, 앞으로 나아간다.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나는 이유는, 부계를 단절하기 위해서이고, 시간축이 사라진 서양의 서사 가운데, 아들인 단독자는 아버지를 죽여야만 자신의 세상을 가질 수 있다. 

문명을 말하는 동양의 이야기들은 긴 시간축에 가문을 만들고, 효와 충을 말한다. 자신의 세상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들이 아비와 적대하는 것은 자연인가? 

어미가 딸과 적대하는 것은 자연인가?


자연을 거스르기 위한 문명으로 효가 필요했던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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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서 끝내지. 

이상한 엔딩이네. 

"야, 아빠가 애들을 패면 애들이 가출하고, 아빠가 다정하면 애들이 저 나이가 되도록 독립을 안 하는 거라니?"

아이들이 보는 드라마라 같이 봤는데, 아이들한테 이런 소리나 하게 되더라. 

무인도에서 15년을 버티고 살아남은 목하나, 폭력적인 친부로부터 도망쳐서 살아남은 기호나, 이제 아빠가 필요없을 나이인데도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걸까. 애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했어야 할까. 


검사실의 대질신문 장면에서, "아, 솔로몬의 재판에서 아이를 찢어 달라던 여자가 생모일 수도 있었겠네." 그랬다. 희박하다고 해도 그럴 수도 있겠네. 아이를 보호할 사람에게 아이를 맡겨야 한다는 면에서, 솔로몬의 재판은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겠네. 싶었다. 


기이하게 다정한 새 아버지의 묘사 가운데, 그 아버지가 목하에게까지 다정한 아버지가 되어 주고, 드라마의 마지막이 목하와 기호의 새롭고 독립된 가족이 아니라, 목하까지 포섭한 그 아버지의 가족이라는 것에 놀랐다. 


친구에게 '너는 원가족에 유대가 약해?'라고 질문 받았을 때 '유대의 강약이 문제가 아니라, 거기서는 내가 쫄따구니까 대장이 하고 싶었다고!' 라고 대답했던 터라. 저 기이한 행복의 묘사에 좀 무서웠다. 

나는 이제 아이가 아니라 부모니까, 내가 아이들을 너무 다정하게 대해서 독립하지 않는다면 큰일인데,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대장인 이 가정에서 아이들이 안정감도 만족감도 느꼈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이 독립해서 대장이 되어 보겠다고 결심하지 않는다면 너무 무섭다.

다정한 부모도 폭력적인 부모도 답은 아니고, 적당한 부모가 되어야 하고, 아이는 자랐으면 어른이 되어야지!!! 무슨 아이처럼 이 행복이 영원했으면,으로 끝을 냈을까, 싶은 결말이었다. 


서목하의 공연무대로 끝내는 편이 나는 더 좋았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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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에게 어깨를 잡힌 저는 정절을 잃은 것이옵니까?"라고 은애가 물었다. 

남연준은, 그렇다고, 어깨를 잡힌 여인은 자결했어야 한다고 대답한다. 아무 것도 속이지 않은 당신이 내게 그 얘기를 지금껏 숨겼다니 오랑캐를 용서할 수 없다고도 했지. 


남연준의 결벽적인 태도에 대해 생각하고, 젊은 유생들이 따르는 장철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아빠는 너무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 수 없다,라고 내게 이야기했다. 

교양수업으로 들었던 행정수업에서인가 교수님이 너희들이 알아들을 리 없다는 표정과 태도로 '부패란 게 절대 악처럼 보이겠지만, 그렇지만은 않다'라고 이야기하셨던 기억이 있다.

오염되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던 조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던 엄마 연구자의 말(돌봄과 작업, https://blog.aladin.co.kr/hahayo/14235302)도 떠오른다. 

충분히 좋은 엄마,를 읽을 때는 아이들의 타고난 도덕성이 얼마나 결벽적인지에 대한 묘사에 밑줄을 그었다.(사실 아이의 타고난 도덕성은 날것의 공포로부터 발달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엄마나 아빠의 도덕성보다 훨씬 더 강렬합니다. 아이에게는 오로지 진실되고 진짜인 것만이 중요합니다. 아이가 실제 감사함을 느껴서가 아니라 그저 예의로 감사하다고 말하게 하기 위해선 우리가 훨씬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p187~188 (https://blog.aladin.co.kr/hahayo/14013722)


극단적으로 흐르는 의견의 흐름은, 젊은이에 부응하는 사람들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세상에 나서지 않았고, 스스로 모순된 상황에 처해본 적 없는 젊고 어린 사람들이 세상의 일들을 보면서, 타고난 결벽적 도덕성으로 단죄하려 든다. 젊은이들의 태도에 부응해서 자신의 입지를 높이는 장철같은 사람들이 또 있다. 

너무 맑은 물에는 물고기조차 살지 못해서, 장철은 자기 아버지의 죄를 인정하고 스스로 오염되는 대신, 무고하게 노비가 된 정적의 자식을 때려죽이고, 자신의 딸을 스스로 죽도록 명령하고, 자신의 아들이 아비와 절연하도록 만들고, 결국 아들조차 죽게 한다. 

어깨를 잡히는 것조차 정절을 잃은 것이라 자결을 택했어야 한다고, 흔들리는 눈으로 질문하는 아내에게 답하는 남연준은 아내가 떠난 집에서 목을 멘다. 다시 돌아온 아내 품에서, '나는 여전히 당신의 남편이냐'고 묻는 남연준은 안쓰러웠다. 

겁에 질린 사람들은 잔인해져서 결벽적인 기준으로 사람들을 밀어낸다. 

겁에 질린 사람들의 결벽적인 기준은, 세상을 잔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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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 가족 가운데, 유일한 청인 인 하은결은 모범생으로 가족들의 통역사로 살아가는 중에, 기타를 배운다. 자기만의 비밀로 기타를 배우고, 거리공연을 하다가 정식으로 밴드멤버가 된다. 하은결의 아버지는 아직 고등학생인, 공부를 잘 해서 자랑스러운 자신의 아들이 다른 직업을 갖기를 바라면서 반대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아버지와의 갈등이 폭발-폭발이라 하기에는 소리가 없지-하는 와중에 타임슬립해서 하은결은 지금 자신과 같은 나이의 아버지가 사는 시대로 이동한다. 2023년의 하은결인 채로, 1995년의 아버지 하이찬을 만나서 같이 밴드를 한다. 사고로 청력을 잃은 후천적 농인인 아버지의 청춘이 어땠는지, 선천적 농인이었던 어머니는 어땠는지 만난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데, 계모에게 말하기를 강요받는 어머니의 애달픈 삶을 개선하고, 아버지의 사고를 막겠다는 아무도 주지 않은 미션을 스스로 부여해서는 1995년의 모험을 한다. 돈 번다고 자신의 딸은 학대하는 계모 아래 두고 밖으로만 도는 어머니의 부자 아버지, 그러니까 있었던 미래에는 존재를 몰랐던 연락도 없던 외할아버지를 1995년 아직 들을 수 있는 하이찬(아버지)이 미래의 어머니 윤청아와 함께 만나서 이야기한다. 


"아버지는 세상 풍파를 막는 방패라고, 나에게는 그런 아버지가 없었지만, 청아(미래의 부인이고, 하은결의 어머니)에게는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한 말은 아니고 헤밍웨이가 한 말이라고 합니다."

"헤밍웨이, 아니고 스탕달. 아버지 아니고 어머니. 무슨 뜻인지는 알아들었어"


타임슬립물에서 미래를 해피하게 바꾸는 설정,에 거부감을 갖는다. 기존의 미래?라는 것과 너무 멀어지지 않아야, 이 타임 슬립 자체가 유효한 게 아닌가, 생각하는 거지. 같은 과거를 거치지 않고, 같은 존재의 사람이 과연 될 수는 없는 게 아닌가, 생각하는 거다. 바꿀 수도 없는데 여행을 왜 하겠어?라고 뭔가 목적론자 같은 태도가 있을 수는 있지만, 여행 후에 달라진 게 나 뿐이어도, 삶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즐겁게 따라온 청량한 드라마의 엔딩에는 실망한다. 


그대로 옮겨놓고 싶었던 저 대화는 즐거웠고, 미래에서 온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동년배 소년에게 아버지에게 받을 만한 느낌을 받았다는 외로운 소년은 좋았다. 

부유하고 화려한 미래,라는 나의 불편한 엔딩은 이 이야기를 보는 사람이 사십대 자아가 없다는 나같은 사람이 아니라, 아직 청량한 젊은이들이길 기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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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2023년 9월 9일, ep280) 놀라운 토요일, 을 보고 있었다. 

빽가, 전소미, 정동원이 게스트로 나왔다. 게스트소개를 하고, 시장을 한 바퀴 돌고, 1라운드 음식으로 얼큰해물수제비가 소개되었다. 

빽가가 "작가들이 너무했네. 나는 해산물을 못 먹는데"라고 투덜거리니까, 

문세윤이 잽싸게 "귀인이로구나!!!"라고 말했다. 

그 짧은 순간, 확 변하는 분위기가 좋았다. 

엄마라서 그런가, 어릴 때라면, 빽가에 이입했을려나. 나는 빽가가 그렇게 말했을 때 좀 미운 마음이 생겼고, 내가 그 작가라도 된 듯 불편한 마음이 되었다. 그런데, 문세윤이 "귀인이로구나!"라고 말하는 순간, 조그맣게 뭉치던 미운 마음이 훅 풀어져서는 픽 웃음이 났다. 열명 넘는 사람들 입맛을 모두 다 맞출 수 없다. 누구는 샐러드가 좋고, 누구는 국물이 있어야 한다. 해산물을 못 먹는 사람이 손님으로 오면 그 사람이 못 먹는 걸 내가 먹을 수 있으니 그 사람은 나에게 귀인이 된다,고 문세윤은 말할 수 있는 거다. 뒤에서 태연은 열무비빔밥이 같이 나온다고 그걸 드시면 된다고 빽가에게 말해주고 있다.

분위기,라는 게 있다. 좋은 분위기라야 좋은 장면을 만들 수 있다. 드러내어 말할 수 없는 미운 마음,은 분위기를 다르게 만든다. 생각해보면 내가 말은 못하고 뒤에서 미운 마음을 뭉치곤 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도 같다. 상황에는 언제나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고, 모든 면을 완벽하게 누구나를 완전히 만족시킬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다른 해석을 빠르게 낚아채서 웃을 수는 있다. 빽가는 자신에 대해 알아주지 못한 작가가 서운했을 수 있고, 발언권 없는 작가는 그저 미운 마음을 뭉치고 있을 수도 있었는데, 문세윤은 날렵하게 상황을 눙쳤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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