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끝나지도 않은 채로, 

2023년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애달픈 사랑이야기인 '연인'에서 길채는 포로가 되어 노예시장에 서 있다. 

가상의 국가 아스달의 두번째 시즌인 '아라문의 검'에서 아스달의 타곤,은 은섬,이 태우는 숲 가운데, 섰다. 


1.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https://blog.aladin.co.kr/hahayo/10172449

6.25 전쟁수기,를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이 책을 읽고, 전쟁,에 대해 썼었다. 


밥 하기 싫어서 뭐라도 생기면 겨우 먹는 배 곯는 원주민을 부러워하는 나는, 전투기의 비행소음이 멋지다고 방방거리는 평화 중에 자란 어린애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책 속의 이상주의자이고 공산주의자인 젊은 남자는 전쟁을 겪으면서 이상을 놓치는 거였던가. 


나는 전쟁이라는 문명의 허약한 울타리가 부서진 진공의 상태를 책 속에서 보고는 무서웠다. 


2. 나목, 도둑맞은 가난

https://blog.aladin.co.kr/hahayo/14868275


엄마가 내게, '얼마나 배고플 거야'라고 말했을 때, 내가 느꼈던 부끄러움이나 한심함,을 읽는 내내 느꼈다. 


전쟁을 겪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경외심을 갖는다. 내게 배고픔을 일깨워 나를 부끄럽게 만든 엄마는 군인 구경조차 못 한 전쟁을 겪었다지만, 그 삶을 어찌 내가 알겠나 싶은 순간 순간들을 내게 전한다. 

생각하는 게 나와 다를 바 없는 젊은 여자가 참혹한 일들을 겪고도 살아남는다. 살아남을 수 있는 건 그 자체로 강인한 거라서, 길을 잃고 헤매고, 비행기에서 우는 그 여자들을 보면서 살아가는 어쩔 수 없음을 본다. 




3. 전쟁같은 맛

https://blog.aladin.co.kr/hahayo/14841842


나목,이랑 같이 이 책을 읽고 있어서, 가소롭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나 보다. 

죽이지 않는데도 죽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물리적 폭력이 사라진 자리에서 다른 걸 폭력이라고 스스로를 괴롭힌다는 생각이 들었달까. 

괴롭지, 괴롭지 않다는 게 아니라, 가소롭다고. 

자기 엄마에게 '배 지나갔다고 티 나냐'면서 양공주라도 해서 돈을 가져오라는 압박에 쫓기듯 결혼하는 젊은 여자의 이야기-위의 책 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를 읽다가, 동양인은 하나뿐이라고 소수자 정체성에 대해 말하는 걸 들으면 참. 싶었다. 전쟁의 맛을 모르는 딸이, 엄마가 도망친 세상이 어떤지 모르는 딸이 그 와중에도 사람들이 친절하기를 바라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어머니의 병이, 어머니의 삶이 고통으로 점철된 삶이었다고 해석하는 딸의 어떤 말이 나는 가소롭다. 그렇게 쪼개기만 해서야 사는 게 가능한가 싶은 소수자성에 대한 이야기를, 소수자 정체성에 대한 말들을 참기 어렵다.


전쟁으로 펼쳐지는 무법의 공간에 대해 듣는다. 

시사인인가 한겨레인가, 과거사위원회가 전쟁범죄로 인정하지 않는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다. 전쟁 중에 군인 신분이었던 사람이 오랜 사적인 원한을 해소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죽였다. 그 죽음은 국가가 배상해야 하는 전쟁범죄로 최종적으로 평가되지 않았다,는 기사였다. 그 기사가 기억에 남는다. 

길을 걷다가, 명랑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는 집에 들어가 일가족을 죽인 살인자에 대한 기사도 기억하고 있다. 자신의 쓸쓸하고 외로운 처지에 참을 수 없었다고 했던가. 


인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다. 

앙심을 품는 데는 이유를 알 수 조차 없다. 

평화 시에 문제삼는 어떤 말들,의 억압은 결국 사라질 수 없다. 그 억압이 사라진 자리에는 무엇이 또 나타날까.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해 감수하는 불편이 결국 사라질 수 있을까. 


아라문의 검,에서 예언의 아이들,이 꿈꾼다는 세상이 너무 추상적이라 이야기를 따라가면서도 고개를 갸웃한다. '약한 것이 죄가 되지 않는 세상'이라니. 약하다는 건 과연 무엇인가. 누구보다 강하다는 뇌안탈은 어떻게 약한 존재들에게 밀려났는가. 약하면서도 연합으로 강해졌다면, 이제 그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약하고 강하다는 건 불변이 아니고, 거대한 나라에 대해 강한 나라라고 해도 모두 다 강한 건 또 아니고 말이다. 약하다고 해도 뭉치면 강하고, 강하다고 해도 하나 뿐이라면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 

전쟁이 아니라, 전쟁 다음이, '약한 것이 죄가 되지 않는 세상'이라는 꿈을 증명하는 공간이 될 테지만, 전쟁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보복의 멈출 수 있을 것인가. 


연인,에서 길채는 '일하는 언니가 사람들 입길에 올라서 부끄럽다'는 자신의 여동생에게, '사람은 밥을 안 먹으면 죽는 거'라고 말한다. 


살고 죽는, 단순함이 가득 찬 서사 가운데, 수없이 쪼개는 말들이 하찮아서 어떤 괴로움의 토로가 너무 가볍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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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의

법가에 대한 묘사에서, 대부 이상의 자결을 금지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스스로를 죽임으로써 벌을 면하는 것이 금지되었다,는 이야기. 

권력을 가진 대부는, 벌을 받기보다 스스로를 죽임으로써 지지부진한 심판을 피했다. 

'자결하라'라는 명은, 사약을 내리거나, 목을 베어버리거나, 사지를 묶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 같은, 벌이라기보다는 어쩌면 혜택이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부이상의 권력자들은 삶과 죽음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였다. 죄를 저질러 죽어야 할 때조차,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내어주지 않았다,라는 인상을 받았다. 

현대 법체계 하에서도 자결은 어쩌면 그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법의 가장 큰 처벌은 이뤄지지 않은 지 여러 해인 '사형'이고, 죽은 자에 대해서는 공소권,없음으로 더 이상의 분별은 이뤄지지 않는다. 스스로를 죽이는, 건 '절대'가 붙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2. 왜 사람들은 자살하는가?

읽고 한 마디도 남기지 않았지만, 책 속에서 이것도 자살인가? 싶은 묘사를 만난다. 

늙어 숟가락조차 들 수 없을 때, 곡기를 끊음으로써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자살인가? 

나는 자살이라고 생각하는가?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했다. 

그래 그것도 자살,이라고는 할 수 있겠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잘못이라는 생각은 안 드는데, 라고도 생각했다. 

이탈리아에선가, 전신이 마비된 채로 생명유지장치에 의존하던 남자가 자신을 좀 죽여달라고 청원하는 이야기를 기사에서 본 적이 있다. 가족들은 반대하고, 그 남자는 청원하는 와중에 나는, 그 남자의 가족들이 나쁘다고 생각했다. 

산다는 건 뭘까. 죽는다는 건 뭘까. 

전신이 마비된 상황에서도 의식이 있는 채로 1~2년?을 보내다가 깨어나는 사람이 쓴 책도 있으니, 나는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나는 연명치료거부 의향서를 미리 써둬야겠다고 생각한다.



3. 나를 찾고 너를 만나

이 책을 읽는데, 자결하는 선비의 묘사가 있다.(아름다운 가풍을 이어가려면, 이라는 쪽글이다) 프랑스 함대의 침략에 죽어 여귀가 되어 원수를 갚겠노라 자결하는 형 뒤를 따라 아우가 뒤따라 자결한 묘사 다음에 '그 의리 정신도 장하지만, 형제 사이의 깊은 우애를 넘어 서로 한 마음을 이루고 있었음을 말해준다'는 작가의 말에 이상한 감정을 느낀다. 


망해가는 나라의 운명에서 죽음을 택하는 선비들을 '장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죽지만, 나를 보아, 너는 움직여 달라,는 걸 '용감하다'고 할 수 있을까. 





스스로를 죽이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고 바라지만 어떤 선택으로의 죽음이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공개된 나의 죄를 내 스스로 벌하는 죽음도 있고, 더 이상 내 손으로 내 몸을 건사하지 못할 때 곡기를 끊음으로써 더 빨리 죽음을 당기는 방식도 있다.

더하여, 살아서는 갚지 못하는 갚을 수 없는 나의 깊은 원한을 죽음 후에 갚겠다는 선택인 죽음도 있다.


사는 게 괴롭고 힘든 순간에 다른 사람을 죽이겠다는 것도 아니고, 나 혼자 죽겠다는 게 뭐 그렇게 비난받을 일이야,라고도 가끔은 생각하는 것도 같다. 그런데, 그게 다 순간이니, 뭐 그러지 말라고 너를 아는 나를 위해 그러지 말라고 하고 싶다. 나를 아는 너를 위해서라도 어차피 닥칠 죽음을 당길 필요야,라고도 생각한다. 

각각의 다른 이유 가운데, 나는, 우리 사회가 움직이는 어떤 방향이 세번째 죽음을 응원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심난하다. 

괴로운 상황을 마주하고, 나를 괴롭히는 사람을 괴롭힐 방식을 궁리하다가, 나를 죽이기로 하는 어떤 선택이 싫다. 

그런데, 그런 선택 다음에 화가 난 사람들은 그 죽음을 들어, 죽은 자의 소원을 풀어준다는 태도로 응징하려 든다. 그런 이유인지 아닌지 말할 수 없는 이미 죽은 자를 앞세우고, 무언가 자신의 분노를 덧 씌워서 응징을 하려 든다. 

살아있는 누군가는 그걸 보고, 복수하는 원혼,에 대한 이야기를 또 듣고, 지금 약하고 대책없고 괴로운 자신을 죽이는 건 아닐까. 

 

나는 뭐라고 말하고 싶은가. 


복수던 뭐던 네가 하라고. 가장 좋은 복수는 '잘 사는' 거고, 잊는 거라고, 원망을 가득 담은 유서 같은 거 남기고 죽어서 뭐하냐고. 죽지 말라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고. 아무리 나를 괴롭게 했더라도, 나를 죽이지 않았으면 죽이지 않은 거라고. 살라고, 살아서 복수던 뭐던 직접 하라고. 난 너 대신 복수 따위 하지 않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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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0-18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림이 있는 좋은글입니다.

별족 2023-10-19 09:1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치킨을 시켜서 밥반찬으로 먹는 저녁, 아들이 묻는다. 

"돈이 많아지면 물가가 오르잖아?"

"그렇지."

"돈이 많은데, 왜 물가가 올라?"

"돈이 많으니까. 옛날에는 아예 돈이 나라 전체에 천원밖에 없었어. 그러니까 짜장면이 오원이지. 그런데, 지금은 나라 전체에 돈이 백만원이 있는 거야. 그러면 짜장면값도 거기 맞춰서 오르는 거야."

"뭔가 이상한데."

"돈은 수단이니까. 돈 자체가 늘어나면 가격이 올라."

"다 오르는데 월급은 안 오른다고 하잖아."

"그건, 옛날에는 나라 전체에 천원밖에 돈이 없으면 많은 사람이 많이 가져봐야 백원있는 건데, 나라 전체에 백만원이 있으면 많은 사람은 그 중에 구십만원도 가질 수 있거든. 나라 전체에 백사람이 있어서 천원을 나눠 가질 때는 부자가 백원가지고 남은 9백원을 99명이 나눠가지는 수준이지만, 백만원일 때는 달라지거든."

이렇게 말하지는 못했다. 뭔가 버벅거렸다. 

돈이 많아진다고 내 돈도 많아지는 건 아니다. 

돈이 많아지면, 물가가 오른다. 돈이 많아지면 돈은 돈끼리 모여서 불어난다. 돈이 돈끼리 모이는 동안, 없는 사람은 더 돈이 없어지지. 

땅 아흔아홉마지기 가진 사람이 땅 한마지기 가진 사람 땅을 빼앗는 거 같은 거지, 뭐. 

나야, 

물가가 오르면 아껴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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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2023년 9월 9일, ep280) 놀라운 토요일, 을 보고 있었다. 

빽가, 전소미, 정동원이 게스트로 나왔다. 게스트소개를 하고, 시장을 한 바퀴 돌고, 1라운드 음식으로 얼큰해물수제비가 소개되었다. 

빽가가 "작가들이 너무했네. 나는 해산물을 못 먹는데"라고 투덜거리니까, 

문세윤이 잽싸게 "귀인이로구나!!!"라고 말했다. 

그 짧은 순간, 확 변하는 분위기가 좋았다. 

엄마라서 그런가, 어릴 때라면, 빽가에 이입했을려나. 나는 빽가가 그렇게 말했을 때 좀 미운 마음이 생겼고, 내가 그 작가라도 된 듯 불편한 마음이 되었다. 그런데, 문세윤이 "귀인이로구나!"라고 말하는 순간, 조그맣게 뭉치던 미운 마음이 훅 풀어져서는 픽 웃음이 났다. 열명 넘는 사람들 입맛을 모두 다 맞출 수 없다. 누구는 샐러드가 좋고, 누구는 국물이 있어야 한다. 해산물을 못 먹는 사람이 손님으로 오면 그 사람이 못 먹는 걸 내가 먹을 수 있으니 그 사람은 나에게 귀인이 된다,고 문세윤은 말할 수 있는 거다. 뒤에서 태연은 열무비빔밥이 같이 나온다고 그걸 드시면 된다고 빽가에게 말해주고 있다.

분위기,라는 게 있다. 좋은 분위기라야 좋은 장면을 만들 수 있다. 드러내어 말할 수 없는 미운 마음,은 분위기를 다르게 만든다. 생각해보면 내가 말은 못하고 뒤에서 미운 마음을 뭉치곤 하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도 같다. 상황에는 언제나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고, 모든 면을 완벽하게 누구나를 완전히 만족시킬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다른 해석을 빠르게 낚아채서 웃을 수는 있다. 빽가는 자신에 대해 알아주지 못한 작가가 서운했을 수 있고, 발언권 없는 작가는 그저 미운 마음을 뭉치고 있을 수도 있었는데, 문세윤은 날렵하게 상황을 눙쳤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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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표지 두 장에서 의문이 생겨서, 두 장을 나란히 걸고, 별 말 안 쓴 페이퍼가 있다. ( https://blog.aladin.co.kr/hahayo/12801476

이렇게까지 저자에 대한 상이 다른 것은 자아상의 차이일까, 생각했다. 

더하여 서양에서는 어떤 사람이 '저자'가 되는가 생각하기도 했다. 

자신의 정신적인 문제 때문에 혹은 저자가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기까지 하는 지경이다. 적어도 관종이니까 책을 쓰겠지, 싶은 태도에 더하여, 가끔은 책 속의 이런 태도는 무엇에 도움이 될까 싶기도 하고 말이지. 도저한 자기 연민, 참기 어렵다. 


1. 소녀를 둘러싼 퍼즐

무료책이 풀렸었나, 꽤 오래 전에 이걸 다운받아 읽었었다.

시대적으로 동양을 우월하다고 하는 서양인의 묘사가 있어서 좀 놀라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좋은 인상은 아니다. 

소녀는 유명인사가 되고 싶어 글을 쓴다. 그녀가 쓴 글은 내게 치기어린 걸로 보였다. 

읽으면서, 소녀에게 유명인사가 되라고 부추기는 엄마-기억은 왜곡이 있을 수 있지만-가 의아했다.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무언가 좋은 일을 하라는 조언이 아니라, 유명해지라는 조언이라니. 그건 좋은 조언인가. 그건 과연 엄마가 딸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인가. 서양인의 악명조차 유명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드러나는 거 같달까. 

소녀에게 어떤 조언을 지금의 한국사회가 한다면, 과연 책 속의 조언과 비슷이나 할까. 유명해지고 싶어서 글을 쓴다면, 그 글은 무엇을 쓰게 될까.   




2.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 https://blog.aladin.co.kr/hahayo/12520560 )

사람들이 같이 살아간다. 정신과 의사?인 남자는 자신이 만난 비정상인 사람들에 대해 썼다. 그런데 나는, 읽는 내내 정상과 비정상이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비정상이라고 측정하는 의사가 가진 기준은 어떤 의미의 척도인가, 라는. 결국 그 사람이 가진 표본 이상이 될 수 없는 연구들인데 말이지. 표본이 남성 뿐이라면, 여성이 세상을 보는 방식은 비정상이라고 할 수도 있고, 표본이 서양인일 뿐이라면 동양인이 세상을 보는 방식은 비정상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에서 그 사람이 소수자일 때, 언제나 비정상의 딱지는 붙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의문까지 드는 지경이었다. 

읽다가, 서양인은 왜 정상이 필요하지,라는 의문까지 드는 지경이었다. 사람은 다 다른데, 기준점이 필요한 건가, 싶었다. 



3.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이 책 때문인가. 이 책의 한글 제목이 맘에 들어서 받았는데, 전혀 상관없는 제목이다. 한글 제목이 다른 거였다면 나는 읽을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텐데, 번역해 놓은 한글제목은 전혀 내용과 상관없어보이고, 영문제목을 그대로 번역했으면 쳐다도 안 봤을 거다. 

나는,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란 책을 읽고 나서 이게 서구화된 사고의 틀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거라고 생각했다. (

https://blog.aladin.co.kr/hahayo/10737472 ) 그리고, 이 책 제목의 '존재에 대해 사과한다'는 말이,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을 때 느꼈던 '내가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쩌라고'라는 반항적인 감정을 떠오르게 했고, 그래서 읽고 싶었다. 존재에 대해 사과해서는 안 된다. 사과는 행동에 대해서만 해야 하는 거다. 

아직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끝까지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자가 붙인 적 없는 제목에 공연히 기대하고 책을 고른 내 잘못이다. 저자는 그저 자신이 배운 과학을 통해 인간을 설명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과학책이라기에는 자아가 너무 돌출해서 읽기가 싫다. '출근하는 일처럼 여러분에게는 아무 일도 아닌 일이 나에게는 큰 장애가 된다'는 식. 어차피 다른 사람 마음 속은 알 수가 없잖아? 그런데, 자신은 진단명이 있다고, 남들에게는 그게 쉬울 거라고 생각한다고???

박사학위를 받고 멀쩡?하게 공부하면서 책도 쓰는 학자가 자신이 자폐스펙트럼에 ADHD라고 말하는 걸 듣고 있자니, 그런 진단명이 어디에 쓸모가 있는가 생각한다. 자신의 성취에 스토리를 보태는데 도움이 되는 건가. 

윤스테이를 보다가 깊은 데서 올라오던 분노 '먹으면 죽어????'같은 게-그 때 티비에서 외국인 투숙객의 못 먹는 음식 리스트를 체크하고 있었다. 비건이라는 건 뭐 그렇다 쳐도, 해산물도 못 먹고, 견과류도 못 먹고, 못 먹고, 못 먹는 것들, 도대체 지가 해먹을 거 아니면 적당히 좀 해라,라는 깊은 화가 갑자기 폭발했었다.- 닥친다. 그냥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 불편을 조금씩 참을 수는 없는 거야. 네가 자폐에 ADHD면 어울려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네가 할 역할은 없는 거야? 내가 알고 너를 그저 이해해줘야 하는 거야? 라는 전혀 상관없는 방식의 화가 닥친다.

서양인들은 자기만 빼고 다른 사람은 다 괜찮고 좋은데, 자기는 괴로워 죽을 것처럼 좀 작작해야 한다. 이 저자의 책이 왕립학회의 좋은 책이 되었다면,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서 베스트셀러도 된 거라면, 인간세상에 살아가는 게 모두에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걸 좀 인정해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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