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두려운 것은 저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 입니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980205.html
2016년부터 2019년까지 회사의 성희롱고충상담원,이었다. 나름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아무도 만족시킬 수 없고 나조차도 만족할 수 없었다. 교육을 받았지만, 질문이 생겼고 질문에 들은 대답에 동의할 수 없었다. 나에게 생긴 질문은 이 행위가 정말 조직에 이로운가, 였고 매뉴얼 교육을 받으면서 강사에게 한 질문은 '어떻게, 문제제기가 들어오자마자 분리했는데 주변에서 아무 말도 안 할 수가 있죠?'였다. 그 때 강사는 조직을 믿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조직과 나를 분리하지 못했다. 나는 고충상담원이고 어떤 식으로 개입하게 될 텐데, 사건은 처리하는 과정에도 처리한 후에도 충분히 전파되지 않는다. 피해자의 요구에 부합하는 결론을 내리려고 노력한다고 해도, 조직에 막 진입한 사람이 원하는 처벌수위는 지나치게 높아서 원하는 수위보다 낮다고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욕을 먹고, 느리고 긴 처리과정에서 '은폐'라고 욕을 먹는다. 교육받은 사례 중에 스무 명 남짓 되는 작은 조직에서 벌어진 걸 처리했던 이야기를 들었는데, 작은 조직이라 피해자거나 가해자, 목격자나 증인, 위원회의 위원, 어디든 걸쳐 있었다면서 외부위원으로 참여한 분이 이야기를 했다. 나는 들으면서, 그 모든 행위들이 조직에 도움이 되었을까, 의심이 들었다.
춘추전국 이야기를 읽다가 '절영지회'라는 고사를 읽었다. 장왕의 연회에서 갑자기 불이 꺼지고 어떤 신하가 왕을 모시던 미인에게 수작을 건다. 미인은 그 자의 갓끈을 끊고 왕에게 고해서는 그 자를 잡아내라고 청한다. 왕은 불을 켜기 전에 모두의 갓끈을 끊으라고 명한다. 여기서 살아남은 신하는 3년 후에 용맹히 싸워 나라를 구한다는 이야기.
성희롱과 추행과 강간, 성과 관련된 범죄들도 법이라면 경중을 따질 수 밖에 없다. 각각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에 무게에 맞게 벌을 정해야 한다. 가벼운 죄에 무거운 벌을 내리는 것이, 무거운 죄를 막는데 도움이 될까? 갓끈을 끊어놓고 왕께 고하는 미인처럼, 벌을 청한다고 벌을 줘야 할까. 지금의 이야기들은 오히려, 가볍기 때문에 드러낼 수 있고, 드러냈기 때문에 더 무거운 벌을 받는 상황이 된다. 무거운 죄라면 피해자가 드러내길 꺼리기 때문에 , 형사법의 처리과정에서 확정되기 전까지 보호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벼운 죄라면, 법으로 처벌할 수 없기 때문에 공개되고 오히려 사회적으로 매장된다. 균형은 깨어지고 적개심은 커진다.
무얼 위해 싸우고, 무얼 위해 공개하는가? 폭력이 사라지는 미래가 존재한다고 믿는가? 관계의 불균형 가운데, 모호한 정의들로 가득 찬 그 말을 정의는 할 수 있을까? 성희롱과 추행과 강간을 성폭력,으로 뭉뚱그리고, 그 모든 피해를 동일 선상에 놓는 것은 어떤 면에서 공동체에 이로운가. 강간과 살인을 같은 무게의 범죄로 보는 것은 순결 이데올로기와 무엇이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