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서평도 썼지만(https://blog.aladin.co.kr/hahayo/10488723) 하지 못한 말들이 꽤 많은 책이다.
이 책은 부모보다 또래집단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말한다. 가족의 규모가 작은 현대의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같은 또래집단이라고 해도 여성과 남성에게도 다른 문화적 결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누천년을 이어온 남자들의 문화와 여자들의 문화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는 거지.
성적 동의,에 대한 반유행열반인,님의 글을 보면서 사무실에서 했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좀 오래 되었다. 아직 코로나 전에 결혼한 삼십대 남자, 여자, 미혼의 여자, 사십대 여자, 나 이렇게 넷이 앉아서 이야기 하고 있었다. 나는 남편이 먼저 가,라고 하면 먼저 가서 좋아요, 라고 말했다. 구내식당에서 나와 같은 파트에 근무하는 직원이랑 남편까지 같이 합석했었는데, 남편이 빨리 먹었길래 먼저 가라고 했더니 먼저 갔다. 그런데, 동석한 직원(남)이 눈이 동그래져서 나한테 싸웠냐고 물었거든. 아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태였다. 그런데, 남편은 내가 먼저 가라고 하니까, 그래, 그러고는 식판을 들고 일어났다. 나는 남편의 그런 면을 좋아한다. 내가 그 이야기를 하니까, 삼십대 여자, 미혼의 여자, 모두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말했다. 동석했던 직원처럼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내가 가라고 했지만, 남편은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말했다. 왜????? 그거야 남편이니까요??? 내가 가라고 했잖아? 그렇게 말할 수는 있지만 가면 안 되죠. 기다려야죠. 그래야 하는 걸 어떻게 알죠? (삼십대 남)그러니까요, 제가 소개팅을 시켜준 적 있는데, 남자는 분위기 좋았다고 생각하더라구요. 그런데 여자는 싫었다고 하던데, 참 그렇더라구요. 연애하는 중이라면, 여자가 거절의사를 밝혔을 때, 한 번 더 권해야 하는지 멈춰야 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설명할 수 없다. 설명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나는 그 자리의 2,30대 여성이 모두, 남편의 행동을 비난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가 어렸을 때 유머일번지,인가에서 박미선이 나와서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고 말하는 유머가 있었다. 남자와 단 둘이 간 여행지에서 여길 넘으면 짐승,이라고 경고하고 자고 일어나서 하는 말이다. 킬킬거리면서 웃었지만, 나는 그런 사람-A를 말하고 B를 원하는-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시대가 바뀌었고, 더 이상 그런 말은 농담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나의 남편의 행동에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두 명을 보고 있자니,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그런 대화들에 많이 남자들에 이입하고 있다. 왜 그런 걸까.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표면과 실질이 다르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 저렇게 행동하기를 원하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은가. 의중을 읽고 약빠르게 행동하는 건 눈치가 있는 일이라고도 하고, 그게 미덕이 되기도 하지 않는가. 직설적으로 원하는 것을 말하기 보다, 에둘러 말하고, 가급적이면 거절에라도 두 번은 권하라고도 하지 않는가. 어떻게 성적인 부분에서만 명확할 수 있나. 데리러 갈까?라는 질문에 하는 대답에도 정말 데리러 오지 말라는 건지, 그래도 데리러 가면 좋아할지 알 수가 없는데, 게다가 아니 괜찮아,라고 대답했으면서도 정말 데리러 오면 더 좋은 것도 내 마음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간사한가.
성적 동의,가 나는 법으로 정의될 수 없다고, 그걸 법의 처벌 근거로 삼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간통죄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인 채로, 성적 동의 여부에 따라 강간과 강간 아닌 걸 구분할 수가 없다. 그걸 도대체 제 3자가 어떻게 알겠다는 거야? 나의 사생활에 얼마나 개입할 셈인 거야? 법으로 물리적 폭력이나 협박의 존재를 가정한 건 어쩌면 그만큼 사생활을 보호하고 있는 거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서, 도대체 법률기관에 무슨 짓까지 할 수 있게 할 셈인가. 지금도 '키스, 해도 될까요?'라고 묻는 남자에게 '그걸 왜 물어봐,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라고 타박하는 여자들이 나오는 연애상담 프로들이 있는데, 이제, 우리 여기 동의서,에 서명부터 할까요?로 시작하라는 건가. 심지어 하면서 중간중간? 그걸 정말 여자들이 원하는 게 맞나?
내가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은 '껍데기에 겁 먹지 마라', '분명하게 말하라'이다. 여자들의 말하는 방식도 동양인의 말하는 방식도, 눈치빠른 한국인의 말하는 방식도 아니겠지만, 좀 더 분명하게 거절하고, 좀 더 분명하게 표현하라고 말한다.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가끔은 쿨하고 힙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보수적이고 촌스럽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하기 싫은 걸 하고 싶은 척 할 필요 없다, 이다. 네가 그런 사람이 되고, 상대도 그런 사람인 것처럼 대접하라고. 네가 원하는 방식으로 상대를 대접하라고, 네가 원하지 않는 걸 상대가 원한다고 줄 필요 없다고도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