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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han22598님의 "무엇이 다름을 만들까?"

저는 음, 25%까지 확대한다는 게 앞으로 25%선에서 억제한다,가 될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초등학교교사의 남녀성비같이)
도대체 왜 인위적으로 숫자를 통제하려 하는가,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반대하는 사람이 뼈속까지 남녀차별적인 생각이 박혀서 하고 있는 반대는 아닌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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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6일과 7일 아이들의 학교가 재량휴업일이었다. 휴가를 내고 친정엘 갔더니 앞선 휴일에 들렀다는 동생이 아이들의 어린이날 선물이라고 종이백에 책과 이것저것들을 넣어주었다. 환경직 공무원인 동생의 선물이다. 무엇이든 해야 하는 마음과 충돌하는 삶은 누구에게나 있을 테고, 나는 아이들의 책을 꺼내 읽는다. 모두 서양인 저자들의 책-https://blog.aladin.co.kr/hahayo/603247 , 나는 고릴라 이스마엘을 읽고 피식민지 동양인이었던 감정으로 서양인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쓴 적이 있다.-이다. 다시 식민지가 될 수는 없는데, 라는 충돌하는 감정이 닥친다. 야만에 굴복했던 문명인이 야만을 학습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 가운데, 다시 그 야만이 뒤늦은 문명을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삐딱하게 읽는다. 아무리 시스템과 체제와 위기에 대해 말해도, 두려움이 더 크다. 물러설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는 거다. 


1. 기후에 관한 새로운 시선

중3인 딸의 종이백에 있던 책. 6개월 간 열심히 공부하고 썼다는 일러스트가 많이 들어간 책이다. 정치와 시스템에 대해 말하는데, 나는 정치와 시스템에 대한 확신이 없다. 왜 사회주의가 실패했는가?(실패했다고 하지 않을까?)에 대한 고민이 빠진 거 같다. 사회주의는 실패했고, 자본주의는 위태로운데,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에 대항해야 한다는 말은 뭔가 공허하다.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이 하는 정치적 선택이 과연 환경에 이로운가, 회의하는 순간이 훨씬 많다. 더 싼 전기요금에 대한 요구가 더 환경친화적인 전기생산에 대한 요구보다 클까? 

개개인의 행동을 요구하는 것-분리수거, 일회용품줄이기-이 개개인의 만족을 높이지만, 실질적인 효용은 없다고 산업과 시스템이 문제라는 말이 나는 공허하다.  

 

2. 내일을 지키는 작은 영웅들 

초5인 둘째 가방 속에 있던 책. 드라마틱한 순간과 사람을 묘사하는 이야기. 

가득 들어찬 화려한 문화 가운데, 역시 또 냉소적이 된다. 새우양식을 위해 해안가의 맹그로브 숲을 파괴하는 것에 저항하는 운동가, 원자력발전소에 저항하는 운동가, 벌목에 반대하다가 살해당하는 운동가, 운동가들의 이야기에 나는 말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사라질 것들인가, 싶어서. 나도 나의 아이들에게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방식을 가르치고 있지 못하다. 도시는 아니지만, 도시인처럼 살고 있고, 아이들은 많은 시간 유튜브를 본다. 또래가 보는 문화 안에서, 지금 저 운동가의 삶의 방식은 다음을 상상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인간은 티끌처럼 작고, 다음을 상상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싶은데, 숲이 잘려나가는 것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고 저항하는 어떤 삶의 태도가 다음 세대에 전해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3. 내일을 바꾸는 작지만 확실한 행동

초2인 셋째 가방 속에 있던 책. 그림이 들어갔지만 글밥도 많다. 서양인 저자의 책이고, 어쩌면 태도를 가르치기 위해 이런 저런 짧은 글들을 담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역시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서양인이 쓴 생태주의 책에서 보이는 어떤 단정적인 태도, 자신만만함이 나를 물러서게 한다. 서양인이 쓴 동화에서 묘사되는 공포스러운 자연,과 다른가, 생각한다. 



노력하는 중일 텐데, 나는 겁이 난다. 인간을 위해서 환경도 자연도 지켜야 하는데, 언제나 경계가 분명하고 적이 필요한 사고방식 가운데, 나같이 미적지근한 사람을 용납하지 않을 것 같다고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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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을 돌리다가, 영화당( https://www.youtube.com/watch?v=LWBM33mmx0c )을 봤다. '경계선'과 '포제서'라는 두 편의 영화를 소개해주고 있었는데, 나는 '경계선'을 소개할 때만 봤다. 보면서, 거슬리는 부분이 계속 생겼다. 인간이 아닌 트롤, 인간과 동물사이의 존재, 동물과 인간 사이의 존재인 트롤, 들로 계속되는 묘사가 거슬렸다. 

좋아해서 아무 말도 못 쓴 책 중에 하나인 산해경에서 사람의 범주들에 놀랐던 적이 있다. 인간,이라고 하지는 않지만, 이런 식 '이 곳 사람들을 보면 얼굴은 사람얼굴과 비슷하지만 새부리가 달려 있어 고기를 잡기에 좋다'-환두국 사람-, '이 곳 사람은 피부가 숯처럼 까맣고 장생불사한다'- 불사민국 사람-, '이 나라 사람들은 모두 이상하게 생겨서 몸은 하나인데 머리가 셋이나 달려있다.'-삼수국 사람-, '삼신국 사람은 머리가 하나에 몸통이 셋 달려 있다', '일비국 사람은 팔이 하나뿐이고 눈도 하나에 콧구멍도 하나다.' '반체국 사람은 비록 팔은 하나지만 2명이 몸을 나란히 붙이면 비목어와 비익조처럼 함께 걸을 수 있다'.... 산해경을 읽고 있을 때, 이비에스 지식채널 e- 이상한 쇼 (https://www.youtube.com/watch?v=iG-r37qH4cI - 가슴과 엉덩이가 큰 아프리카 부족의 여인이 프랑스의 쇼에서 전시되다가 사창가를 거쳐 해부되어 126년 만에 고국에 돌아가는 슬픈 서사가 있다)를 봤기 때문에 그 대비가 더 극명했던 걸 수도 있다. 

아이가 '인간도 동물이냐?'고 물으면 나는 '동은 움직일 동'이거든, 인간도 움직이니까 당연히 동물이지,라고도 대답할 거다. 모순을 가지고 있어서 과학적 발달을 더디게 했다는 동양의 한자문화권 안에 사는 나는, 서구인이 언어가 가지는 한계 때문에 human과 animal을 구분해내려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짧은 영화 클립 안에 트롤은 왜 인간이 아닌가? 왜 살아있는 벌레를 먹어서? 얼굴이 못 생겨서? 후각이 예민해서? 동물과 교감해서? 도대체 왜? 계속 묻는 거지. 산해경 속에서 머리가 셋이어도, 몸통이 셋이어도 팔 하나에 눈 하나에 콧구멍이 하나여도 사람이라고 되어있던데, 도대체, 서양사람들은 저런 이유로 인간이 아니라고 하는 거야? 생각하는 거다. 

human과 animal 사이에 ape가 있었다가-지식채널 e 이상한 쇼,에서 서구인들은 그 여인을 진화한 유인원이라고 보고,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찾기 위해 해부했다고 한다-, 이제 트롤이란 걸 개발했나보네,라고 생각했다. 경계에 대해 질문하는 좋은 영화라는 소개가 무색하게도 나는, 전형적인 서구인의 태도 안에서 만들어진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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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5-14 15: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구인들의 기본 인식체계가 일단 분류하는데서부터 시작되는거 같아요. 동양적 세계관과는 차이가 많이 나죠. 움직이는건 다 동물이니 사람도 동물이라고 아이와 얘기하는 모습에서 아 그렇구나싶기도 하네요. 글 읽으면서 동의할 부분이 많아 잠시 인사하고 갑니다. ^^
 
 전출처 : 단발머리님의 "궁금한 거 많을 나이 "

예시로 든 것처럼 제 앞에서 지적하는 사람과 제 뒤에서 험담하는 사람 중에 고르라면 저는 제 앞에서 지적하는 사람이 더 좋습니다. 그 사람의 지적이 맞는 말이면 받아들이면 되고, 나와 다른 생각이라면 같이 이야기해볼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제게 한 마디 해 본 적도 없으면서 뒤에서 험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음 친구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몸이 부딪치는 현실계에서의 위선과 인터넷상의 위선에는 좀 더 다른 태도입니다. 현실계에서의 위선은 바람직?불가피하다고 생각하지만, 인터넷에서의 위선은 끔찍하다고 생각합니다. 위선이든 위악이든 극으로 치달을 수 있는 가상의 공간에서 결국 확인할 도리가 없는 말들 가운데서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게다가 말은 얼마나 쉽습니까?
나쁘다,와 위선적이다,라는 말이 무언가 좋고 싫음으로 옳고 그름으로 판단되려면, 결국 그 다음이 있어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위선적인 걸 더 싫어하는 데에는 그 다음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친절하게 말했는데, 알고 보니 사기를 쳤어. 같은 거요. 나쁜 놈이 나쁜 짓을 하면 피할 수나 있지, 같은 거요.
사람의 겉과 속, 행동과 말, 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고 그저 노력하는 것일 뿐이지만, 위선에 더 나쁜 평가를 하는 데에는 일치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위선‘이 더 낫다,라고 말할 때의 위선은 ‘선‘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나 노력같은 거지만, 사람들이 위선이 싫다,고 할 때의 위선은 다른 것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 같은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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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족 2021-05-03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댓글이 달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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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님) 저같은 경우 앞에서 대놓고 말하는 나쁜 사람과 위선적인 사람의 구체적인 실례가 있는 경우이고 별족님은 별족님 경우가 있을테니 그건 무언가가 더 낫다고 생각하기 어렵겠지요.
다만 인터넷상의 위선이 끔찍하다고 하시니 그건 좀 의아합니다. 어떤 사람이 별 영양가 없고 내용도 없는 제 글을 읽고 ‘말도 안 되는 말, 하지도 마라.‘ 혹은 ‘김치년들 노답(실제로 제 글에 달렸던 댓글입니다)‘이라고 댓글을 달았다고 하면 그게 별족님의 댓글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각자 생각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고 그래서 다르게 판단합니다. 말은 쉽죠. 특히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는 말은요. 하지만 별족님마저도 자신의 본의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이렇게 긴 댓글을 달고 계시지 않습니까. 별족님이 제게 대해 어떤 판단이나 생각을 하고 계신것과는 상관 없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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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을 달고 싶지만, 그래도 될 지 자신이 없어서, 그냥 여기다 일없이 단다. 다른 의견을 달았다가, 댓글이 지워진 적도 있고, 조롱을 당한 적도 있다. 나는 댓글을 언제나 환영하지만, 내 서재는 인기가 없고^^, 다른 분들은 서재를 ‘자신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반대의견을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더 많은 거 같다.

단발머리님은 내가 하는 말이 ‘위선‘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을 언제나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말과 행동, 인터넷과 현실. 어제와 오늘. 얼굴 붉히는 부끄러운 말들을 남기면서 지금이지만, 여전히 그래도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선,을 위장하기 위해 말을 꾸민 건 아니다. ‘악‘을 위장하기 위해 말을 꾸미는 게 아닌 것처럼. 현실계에서 천사를 연기하면서 분노를 인터넷에서 쏟아내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나의 말이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알면서도 말하고 싶어한다. 내가 거쳐왔던 날들이고, 내가 어쩌면 반성하는 과거라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말하고 싶다. 인터넷,에서의 위선,이 싫다는 말에는 극으로 치닫는 태도가 싫은 건데 설명하기는 역시 어렵다. 지나치게 높은 선-늑대가 양과 친구가 되는 이야기처럼-은 인간의 선을 고양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로 하는 극단적인 선,은 극단적인 악,만큼 해롭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다.
 

엄마의 화장품에 관심을 보이던 아이였을 때, 엄마는 내게 '사람의 몸에는 원래 나는 빛깔도 광택도 있어, 자꾸 가리면 사라져버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했다. '결혼하고 얼마 안 되서 아빠랑 온천에 갔거든. 따로 탕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만나기로 했지. 목욕하고 화장하면 화장 잘 받거든. 그래서 곱게 화장하고 나갔더니 아빠가 뭐랬는지 아냐? 도대체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했냐는 거야. 뭐, 그래서 그 다음부터 화장 안 했지, 뭐.'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두 분이 천생연분이네, 좋네, 그랬다. 그런데, 나중에 내가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한테 전하자, 그 사람은 '아마 아빠가 화장품 값이 아까워서 그랬을 거'라고 말했다. 에? 엄마가 막 꾸미고 싶어한 사람이 아니어서, 둘 사이의 대화가 해피해서 다행인 건가,라고 생각했다. 

동양과 서양은 다르고(https://blog.aladin.co.kr/hahayo/10530930), 많은 여성억압의 장치들이 근대화와 함께 들어왔다고(https://blog.aladin.co.kr/hahayo/11198936) 생각하고 있어서, 자신의 삶에 비추어 책을 읽지 않는 것이 걱정스럽다. 

너는 어땠어?라는 질문에 대답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나에게 만약 억압이 있었다면 그건 나나 내 또래집단의 것이었다. 여자친구들이 모여서 웅성웅성 하던 이야기. 중학교 체육대회에 열심으로 뛰던 여자선생님이 얇은 브래지어 때문에 젖꼭지가 도드라진다고 흉보던 순간,이나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 옷 못 입는다고 사모님 흉을 보던 순간 같은 거다. 자유가 폭발하던 풍요의 마지막 시기였기 때문에(X세대라고들-_-;;) 남들이 뭐라던 신경 안 쓴다는 애들 천지였다. 화장을 하기에는 게으른 인간이었고, 화장을 하지 않는다고 뭐라고 할 만한 사람이 주변에 없었다. 여자들이 많은 공간에서 더 많이 벌어지는 그런 미에 대한 강박을 왜 여기서 지금 말하면서 남 탓을 하는지 의아한 순간들이 많다. 

친구가 한복처럼 성적이지 않은 옷이 없다고 말했던 기억도 있다. 중국의 악명높은 전족과 화양연화를 다시 보니 고문같은 치파오, 일본의 기모노와 달리 한복은 허리도 가슴도 강조하지 않는다. 이 땅의 여자들은 훨씬 강하고, 허리춤을 바짝 묶고 뛰고 도망가고, 혹은 호랑이를 쫓은 강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는 거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만큼 강한 존재이면서, 왜 약하기 짝이 없는 여자들의 한심한 말들을 그대로 받아 듣는가. 

결국 선택은 나의 몫이고, 그걸 억압할 만큼 구분하는 사회가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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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1-04-30 1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 페미니즘 찬양을 계속하고 있는 분이 쓴 댓글에서 남성 성기의 비속어를 여과없이 사용하고, 젊은 남성에 대한 성적 표현을 당당히 쓰는걸 보고 경악했습니다. 얼마 전 일인데, 수정했더군요...

별족 2021-05-01 05:38   좋아요 1 | URL
그 댓글은 못 봐서 제가. 그렇지만, 지금의 페미니즘이 뭔가 자신의 말들로 자신을 비추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꾸 멀어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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