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이유가 불편해서 아무 말도 못 남겼던 책이다. 다들 좋다는데, 나는 불편하네, 내가 뭐라고 나쁜 말만 남기나, 이러면서 남기지 않았었는데, 이제 내게 책이 없으니 뭐라도 남기기로.  


1. 뗘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되는 법


나는 왜 '주저하는 근본주의자'의 좋은 서평을 보고, 저자의 이 책을 사서 읽었을까. 이게 더 궁금했기 때문이었나. 

책을 읽고 무언가 앙상한 느낌이라 아무 말도 남기지 못했다. 

나는 이게 오리엔탈리즘, 처럼 느껴졌다. 

그 남자의 삶을 따라가는 것이 문학적인 느낌이 남았다기 보다, 서양이 동양을 보는 방식처럼 느껴졌다. 

뭔가 서양인이 부유해진 것은 달랐단 말이야, 싶은 반발심이 들었다. 

어디라고 달라? 싶은 반발심이다. 




2. 작은 것들의 신


슬픈 사랑이야기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의 배경이 껄끄러워서 집중하지 못했다. 인도를 배경으로 쓰여진 아픈 이야기가, 영국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나는 이 이야기의 어떤 면이 그럴 수 있었는지 생각했다. 이야기의 가장 큰 갈등은 전통적인 카스트제도에서 비롯된다. 카스트제도에 묶여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이 가장 나중에 드러나는 어떤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의심한다. 카스트,라는 절대 악이 존재했었던 과거의 세계를 결국 극복하지 못한 지금의 인도가 묘사되기 때문에, 영국인이 좋아했던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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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가지가 기억에 남아서, 게다가 너무 개인적인 거 같아서 그러나 저러나 짧은데도 서평에는 못 쓰고


1. 랑랑별 때때롱

외계인-다른 별의 다른 존재니 외계인이 맞는 말일 텐데, 동화적인 세계속이라 그저 사람이다. 먼 별에 사는 사람들-이 나오는 동화인데, 나는 매 끼니 같은 걸 먹는 이 사람들의 식탁 묘사에, 아 작가는 매 끼니 고민하는 수고를 아는 사람이구나,라고 고마워했다. 

정말 밥하는 게 너무 힘든 날들이 있었다. 

먹을 게 없다며 밥상 앞에서 얼굴을 찡그리는 아이도 남편도 미운 날들에, 가난하여 단촐한 매 끼니 같은 식사에 대한 조금은 장황한 책 속의 묘사가 고마웠다. 





2, 쿠쿠스 콜링

여기서 기억에 남는 건 택시를 탈 수 없어서 걸어가는 묘사. 주머니에 남은 돈과 남은 거리를 한참을 계산하는 가난한 탐정의 묘사, 였다. 

사람은 참 신기하지, 주머니에 돈이 있고, 걸어갈 때는 그런 마음이 안 되는데, 주머니에 돈이 없어서 걸어갈 때는 다 나를 보는 것처럼 비참한 심정이 되는 게 왜 그런 걸까. 가난한 탐정이 주머니에 돈을 셈하면서 걸어가는 가난의 묘사가 꽤나 길었어서, 그 묘사가 꽤나 생생해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을까?라는 터무니없는 생각도 했다. 


3. 삼체

면벽자인 중국인에게 고용된 중국의 군인이 서양인에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서양인은 이유를 다 알아야 하나? 나는 군인이고 시키는 일을 하는 거지. 왜 시키는지 알 필요는 없어. 뭐 이런 대사였는데, 내가 그 서양인처럼 이유를 알면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서 기억에 남았다. 

복종에 대해 생각했던가. 가끔 이유를 알지 못하고도 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모든 것을 알고 한다는 게 인간에게는 오만한 일은 아닌가,라고 생각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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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잔을 찾아서

대학 때, 뭔가 여성주의적인 영화라고 봤다. 상황은 잘 기억이. 

계급이 분명히 다른 두 여자가 뭔가 사람을 찾는 이야기였는데, 잘 기억은 안 난다. 기억나는 건, 시작. 미용실에서 온 얼굴의 털을 미는 장면이다. 왜? 왜? 왜?

티비에서 다리털을 밀고 실크 손수건을 떨어뜨리는 장면이 나왔을 때도 역시 그런 느낌. 왜? 왜? 왜?

고등학교 때 친구는 '있잖아, 나는 아깝다. 잘 먹고 잘 자서 이렇게 내 몸에 있는 것들인데 아깝잖아'라고 여자애치고는 잘 보이는 팔뚝 털을 조금은 어루만지면서 말했었다. 그 친구가 그 말을 하면서 살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말했다. 폭식이나 나쁜 습관이 아니라, 잘 먹고 잘 자고 잘 살고 있는 동안 내 몸을 받쳐주는 내 몸에 생겨난 나의 살들도 그렇게 아깝다고. 그 진지한 표정을 기억하고 있어서, 얼굴털을 다리털을 싹 다 밀어버리는 여자들이 이상했다. 내 몸인걸, 나는 좋아한다구. 이건 어쩌면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같지만 묘하게 다른. 

털을 미는 문화가 개화되기 전에 있었을까, 많은 불편부당하다고 분노하는 것들이 서구화와 근대화 가운데 우리에게 들어온 건 아닌가 싶다. 서양여자들은 저렇게 털을 싹 다 밀어???이러면서 놀라면서 봤던 기억이. 

  


2.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남장여자인 김윤희가 대물이 되는 이유는, 남자들 안에 있는 위계와 문화를 아예 모르기 때문이다. 왕만이 지나갈 수 있는 문으로 성큼 걸어들어가려는 여자는 궁정의 문화나, 여러 불가능한 일들-저질렀을 경우 큰 벌을 받게 되는 일들-에 대해 무지하다. 아예 알지 못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남자들의 눈에는 대범하게 보인다. 

여자들에게는 여자들의 문화가 있다. 남자들이 '사회'라는 구조를 만들면서 쌓아올린 어떤 규칙들처럼, 여자들은 여자들의 방식 가운데 판단한다. 위계 대신 친소로 새로운 관계 가운데서 판단을 한다. 김윤희같이 글을 배운 여자라면, 여자들 가운데서도 남자들 가운데서도 쉽지는 않겠다. 





3. 사막의 꽃

소말리아 출신의 수퍼모델, 아프리카 여성할례를 철폐하기 위한 활동을 한다. 직접 쓴 수기의 제목은 자신의 이름 와리스에서 왔다. 사막의 꽃은 소말리아 어로, '와리스'다.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오래 전에 읽었는데, 모든 수기들이 그러하듯이 더 복잡하고 더 많은 이야기들을 전한다. 글로는 주제가 하나, 집중된 게 읽기 좋겠지만, 삶은 그런 게 아니니까, 삶을 쓴 글이다. 

나는, 사막에서의 삶을 묘사할 때, 부유함,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의 부유함이 무엇을 치른 댓가인가, 이런 생각. 묘사된 사막의 삶에서 부유한 적 없던 와리스의 가족은 고기가 생기면 마을 사람들과 나눠 먹는다. 줄 수 있을 때 베풀어야 하는 문화는 어쩌면 저장의 한계 때문이겠지만, 가난이 아닌 공동체를 본 나는 부러웠다. 나눠먹을 사람들이라, 나는 만들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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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천도룡기 

이국의 사람들과 싸움이 붙었다. 몸으로 칼로도 싸우지만 입으로도 싸우면서 "아프지 말고 살다가 죽어라"라고 페르시아 상인들에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건 덕담처럼 들리지만 악담이라면서, '비명횡사'를 바라는 말이라고 해서 놀란다. 아, 오래 산다는 건 늙고 아픈 걸 피할 수 없는 거라는 걸, 그 옛날 사람들도 알고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정말 안 아프고 오래 살다가 죽기를 바라는 구나, 맥락없이 터무니없게,라는 자각을 했다.





 

 

 

2. 5학년 3반 청개구리들 

절판이고 그림도 없지만 무언가 넣고 싶었다. 언제 읽었는지 모르겠다. 

내 기억에 남아서 아직도 답을 모르겠는 질문이 있다.  

책 속에서 아이는 부모에게 집안의 어려움을 나에게 말하지 말아달라,고 청한다. 아이인 자신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부모의 그런 말은 나에게 부담이 되므로 부모가 그런 말을 자신에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 뭐 이런 말이었던 거 같다. 그 때 나는 그게 이상했다. 그리고 여전히 모르겠다. 아이도 가족인데, 집안의 어려움을 몰라야 할까? 알아야 할까? 아이가 받아들이는 무게감이 부모와는 다를 수 있으니, 부모가 보호자로 역할을 해야 하겠지만, 아이였던 나는 부모가 부모의 어려움을 내게 한마디도 안 한다면 좋을까? 

책 속의 아이와 다르게, 나는 알기를 원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도 알기를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할 수 있기를. 나의 부모가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기 힘들 거 같다. 

그래도, 무언가를 요구하는 입장이 되었을때, 상대의 모든 말이 그저 변명같을 때, 그걸 내가 왜 알아야 하지, 싶은 순간들이 있어서, 여전히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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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살림을 하고 있어서 그런가. 책을 읽을 때 아주 단편적인 이상한 부분들이 기억에 남았다.

1. 모래요정과 다섯아이들 

엄마랑 아빠랑 이야기하는 장면이 아마도 이 책일 것이다. 아이들이 모래요정을 만나고, 이런 저런 모험을 하기 훨씬 전에. 

아빠는 엄마에게 묻는다. 

'큰 집에 살고 싶어? 아이를 많이 낳고 싶어?'

'아이를 많이 낳고 싶어'

그래서, 큰 집 대신 보모와 하녀를 두고 아이를 다섯 낳았다,로 시작하던가. 

그걸 읽는데, 어, 요즘에는, 나라면, 이런 대답을 할까, 하면서 신기한데, 이러면서 읽었다. 아이를 많이 낳고 싶은 마음을 순순히 인정하는 엄마는 신기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2.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이 책에서 만난 장면은 이런 거였다. 

작가가 웨이터노릇을 할 때, 노련하고 숙련된 호텔 웨이터가 자부심을 가지는 묘사였다. 

많은 손님을 능숙하게 처리하는데 가지는 숙련된 웨이터의 자부심에 대한 묘사는 뭔가 신기했다. 그게 뭐라고 얕잡아보이는 마음이 글에서 드러났던가, 아니면 내게 그런 마음이 있었던가. 별것도 아닌 것에 그런 식의 자부심, 그런 식의 위계라니, 했던 것도 같은데, 그게 어떤 마음인지는 궁금했다. 

그런데, 가족이 늘고 밥을 해 먹이고, 회사에서 고참이 되고, 후배가 느니까, 먹이는 일이, 얼마나 큰 일인지 매번 자각하게 된다. 

지금은 좀 더 순수하게 멋진데, 라는 마음이 되었다. 




3.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여기서 만난 장면은 이런 거였다. 

아직 헤지지 않았는데, 빨래를 한다고 무리로부터 모욕당하는 이야기. 와, 좋은데. 

물이 귀한 몽골의 사막에서 유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니까 그럴 수 있는 거지만, 나는 그 때 빨래가 정말 싫었나보다. 그 이야기를 보니까, 옷을 좀 더 입고, 빨래를 좀 덜 하는데 변명이 되었다.^^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더 있는데, 사실 전쟁의 이야기니까, 권력을 찬탈하고, 여자를 약탈하는 유목의 삶에 대한 이야기니까, 나는 여자들이 얼마나 힘들까,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장면이 더 기억나는 것도 같다. 여자가 귀하니까, 아이가 귀하니까, 여자의 정절에는 좀 더 무딜 수도 있는 거구나, 같은 것. 그렇다면, 그건 또 그런 데로 장점인걸, 싶었다. 


또 생각나면 마구 마구 붙여야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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