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여자였을 때 나를 사로잡은 이미지는 이런 거였다. 강간하려는 남자를 피해 다세대 주택 옥상 물탱크 뒤에 숨어 있다가, 뛰어내려 죽는 젊은 여자. 그 이미지 가운데, 나는 나라면 어떡할까 상상했다. 여성을 옥죄는 순결에 대한 강박 가운데, 나는 그게 뭐 별건가, 죽지는 말아야지!라는 강경한 입장이 되었다. 그러면서, 라이크 어 버진,을 부르는 마돈나에 열광하고, 순결이라는 이데올로기로 내 자신을 얽매지 않았다. 다시 또 그러면서, 이건 내 마음이니, 번드르르한 어떤 남자애가 그런 말로 나를 꼬드겨도 내가 싫다고 비웃어줄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싫으면 싫은 거지. 순결 이데올로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너랑 하기 싫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거지. 이데올로기로서의 순결은 내게 힘이 없지만, 임신에 대한 두려움, 질병에 대한 두려움, 서로에게 오락이 아니라는 믿음 따위는 관계에서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혼인빙자 간음,이나 간통죄가 우습다고 생각했다. 순결을 가볍게 여기는 나의 마음과 법이 충돌하고 있다고.

혼인빙자 간음,도 간통도, 낙태도 더 이상 형법 상의 죄가 아니다. 이제 공동체는 처녀애와 '결혼한다고 속여서 관계한 남자'나, 결혼하고도 결혼 밖에서 성교한 남녀나, 임신을 중지한다고 해도, 공동체의 윤리를 위해 처벌할 일이라고 보지 않는다. 둘 사이에 벌어진 마음을 상하게 한 일, 개인 간의 송사로 처리해야 할 일이 되었다. 나는 그걸 받아들이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그러한 공동체 윤리의 재정립 가운데, 순결에 대한 강박이나 억압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했다. 지금이라면, 별볼일 없는 놈팽이랑 잠을 잤다고 해서, 딸아이를 깨진 그릇 취급하면서 그 놈에게 치우는 부모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 나는, 처녀의 순결이 가벼워지는 것을 원해 왔다. 그깟 일로 깨어지는 유리같은 존재가 아니라, 그 정도 일로는 손상되지 않는 단단한 존재라고 주장해 왔다. 

그래서, 나는 그 여자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다. '혼인빙자 낙태종용'이라는 불가해한 언어의 조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정말 누군가가 파렴치한,이고 내가 함께 서서 비난해야 하는 존재인가, 에 대답할 수 없었다. 만약, 그 놈이 '결혼을 할 거니까 절대 임신중지를 하지 말라'고 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지금 책임지지 않는다,는 폭로라면 나는 함께 서 줄 수 있다. 그렇지만, '결혼을 할 거니까, 낙태를 하자'라고 듣기에 따라서 종용이랄 수도 있는 말을 결국은 수용한 여자가, 종국에 나와 헤어졌다고 다 늦게 하는 폭로에 왜 내가 같이 욕해줘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더라. 연인의 데이트는 숙박을 포함한 여행이 당연히 있고, 아기가 생겨야 겨우 결혼을 고민하는 세태에 비추어, 게다가 공동체의 합의를 통해 임신을 중지하는 것이 범죄도 아닌데, 사귀다가 헤어진 연인 사이에 임신중지가 있었다고 한 들, 도대체 서로에게 무슨 해악을 끼쳤다고 저런 폭로를 한단 말인가.

아무 것도 모르는 친구에게 사건을 중계하고 '왜? 너, 팬이냐?'라는 반응에 분개하면서 통화하다가 사무실에 오십대 아저씨가 그걸 봤다. 덕분에 사무실에서 아저씨들이랑 이야기한다. 이야기하면서 내가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날까, 나는 무엇 때문인 걸까, 알아차렸다. 아저씨들은 그 놈은 세상 파렴치한에 못된 놈이라고 여자를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여자를 아이 취급하는, 성교를 했고, 임신중지까지 했으니 깨어진 그릇처럼 취급했던 그런 생각들 가운데, 남자가 파렴치한이 되어 버린 거라는 생각이 든다. 

왜요? 도대체 왜요? 여자가 뭐가 돼? 낙태한 여자가 된 거죠, 뭐.

세상이 달라지고, 도덕률이 바뀌고, 이제 아무도 모든 임신을 완전히 끝까지 유지하라고 그건 살인이라고 여자를 옥죄지 않는다. 임신중지한 게 뭐 별거라고 남자가 여자를 책임져야 하는가. 종용이든 설득이든 임신을 중지했는데, 남자가 여자를 왜 책임지는가. 여자는 여자의 인생, 남자가 굳이 누군가의 인생에서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자신의 아이인 거지. 여자는 아니다. 결혼은 함께 나눠지는 인생의 짐 같은 거지, 누가 누구를 책임지는 게 아니고, 결혼하기 전의 관계라면 언제든 틀어질 수도 있는 거다. 

새털처럼 가벼워진 순결이데올로기,의 다른 면은 이렇게 남자라면 당연히 책임져야 할 행위의 범주가 줄어드는 것이다. 오래된 생각의 습관들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이제 여자는 자유로워진 만큼 자기 자신을 책임져야 하는 세상이고, 나는 그 여자의 판단 다음 벌어진 일들에 남자를 함께 욕해 줄 마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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