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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루왕(蓋婁王)은 도미의 아내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의리와 절행(節行)이 높다는 말을 듣고 이를 의심한다. 그러자 도미는 자신의 아내가 죽더라도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 단언하였다. 이에 개루왕이 도미 처의 정절(貞節)을 시험하고자 도미를 궁에 머물게 하고, 도미 처에게 의복과 사람을 보내 “너의 아름다움을 듣고 도미와 내기를 하였다. 너를 불러 궁인을 삼을 것이니 이제 네 몸은 나의 소유다.”라는 말을 전하게 하였다. 개루왕이 도미의 처를 취하려 하자, 도미의 처는 “따르지 않을 수 없는 명령이라 옷을 고쳐 입고 뒤따라 들어갈 터이니 왕께서 먼저 방에 들어가 계시라.”라고 말하고, 계집종을 자신의 모습처럼 꾸민 후 자신 대신 개루왕의 수청(守廳)을 들게 하였다.

후에 개루왕은 속았음을 알고 화를 내며, 도미의 두 눈을 멀게 하고 사람을 시켜서 강에 배를 띄워 보냈다. 그리고 개루왕은 도미의 부인을 데려다 성관계를 강제로 맺으려 했다. 그러나 도미의 처는 월경(月經)을 핑계 삼아 다른 날 모시겠다고 말한 후 도망쳤다. 도미의 처는 도망치다가 강어귀에 이르렀는데, 강을 건너갈 수 없어 하늘을 부르며 통곡했다. 그때 홀연히 배 한 척이 도미의 처 앞으로 왔다. 도미의 처는 그 배를 타고 가 천성도(泉城島)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남편을 다시 만났다. 두 사람은 풀뿌리를 캐 먹다가, 함께 작은 배를 타고 고구려 산산(䔉山)으로 갔다. 고구려 사람들이 도미 부부에게 옷과 음식을 주었다. 도미 부부는 가난하게 살다가 객지(客地)에서 일생을 마쳤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7449 )


이 이야기를 나는 언제 읽었을까. 초등학교 도서관에 두꺼운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같은 이야기들을 읽었던 거 같은데, 달 밝은 밤에 정분이 나는 신라시대 복색의 처녀총각 삽화가 있었던 것도 같다. 이런 이야기들로 어른의 세계를 엿보는 애였던 거다. 권력과 사랑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 


이 이야기를 계속 생각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 속의 도미부인이 나는 좋았다.  


그런데도, 도미부인 이야기를 좋아했다고 쓰는 건 망설여지는 일이다. 

검색하고, 이야기에 대해 다시 듣고, 더하여 '정조를 강조하기 위해' 이 이야기가 쓰였다는 것도 본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 이야기를 정조에 대한 이야기,로 들었던 걸까 생각했다. 

이 이야기는 정조나 정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내 마음. 이익과 합리와 그게 무엇이든 설득할 수 없는 강경한 내 마음에 대한 이야기. 


왕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고 추정되는 세계, 속에서 왕이 취하고자 하는 여자를 취하려 하는 걸 벌할 법은 없었겠지.

여자가 남자의 소유였다고 추정되는 세계, 속에서 아내를 걸고 내기를 하는 남편을 벌할 수는 없었겠지. 

남편이 내기를 했건, 안 했건, 왕이 폭력이었건, 설득이었건, 도미의 처가 고분고분했다면 이야기가 없었겠지. 남편이 눈을 뽑히지도 않았을 테고. 

도미 부인은 자기 마음을 지키기로 한 사람이니까, 이야기가 되어 남았다. 이름이 남은 도미는 형체를 잃었지만, 이름을 남기지 못한 부인은 천년 뒤의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지키겠어! 이유로 설득하지 못 해도 싫은 건 싫은 거야! '라고 마음을 단단히 하게 하는 버팀목이 되어 주는 거지.

이야기가 되어 남는 그 강경한 마음의 선택이 섬에 떠밀려 온 쪽배 위에 눈 먼 장님과 그 남자를 건사할 자신 뿐이라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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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에서 진료를 기다리면서 꺼낸 그림책에서 보고 반가웠다. 어디선가 들었거나 본 적이 있는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다.


양반이 머슴을 부린다. 

세경 주는 게 너무 아까워서 실컷 부려먹고는 딱딱한 누룽지를 세경대신 준다. 

머슴은 별 말없이 누룽지를 받는다. 

전쟁이 터지고, 양반과 머슴은 귀한 것들을 챙겨 피난길에 오른다. 

집문서와 땅문서와 금붙이를 챙긴 양반과 그 동안 받은 누룽지를 챙긴 머슴은 고된 피난길을 함께 걷는다. 피난길에 양반은 집문서와 땅문서와 금붙이를 누룽지와 바꿔 먹는다. 

전쟁이 끝나고, 이제 누룽지는 그렇게 귀하지 않고, 양반은 집문서와 땅문서와 금붙이가 아쉬워서 다시 머슴에게 말한다. 


"그건 돌려줘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지요."


언제나 그러지요,라고 대답할 수 있는 머슴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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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날, 티비를 보고 있었다. 

엄마가 같이 있었지만 같이 봤는지는 모르겠다. 

티비에서 스키틀즈 광고가 나왔다. 

평범하게 걷던 사람들이 스키틀즈를 입에 넣고는 춤을 추며 걸었다. 

나는, 엄마에게 "저런 거 먹고 싶네."라고 말했다. 

"뭔데?"

"먹으면 기분이 좋아져서 춤을 추네."

"...... 그런 건 마약 아니라니?"

광고에 깜빡 속을 뻔 했다. 

그저 광고일 뿐인데, 그런 게 있으면 먹고 싶다고 생각했고, 정말 그런 건 마약이 아니냐는 엄마 말에 깜짝 놀랐다. 그런 건 있을 수 있지만, 좋은 게 아니다. 

엄마가 그걸 그렇게 간파하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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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절대적인 진리,는 없어. 

정말. 

딱 하나 있어. 

???

그건, 모든 것은 변한다,는 거야.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대. 

그것 말고는 물리법칙도 땅도, 바다도, 하늘도, 내 마음도 다 절대적이지 않아. 

진리,가 언제나 참,을 의미한다면 그런 건 없는 거지. 


언제나 참,인 건 세상에 딱 하나. 


모 든 것 은 변 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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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날, 집에 굴러다니던 잡지에 들어있던 짧은 이야기. 


잘 차려입은 교수가 식당에 밥을 먹으러 들어갔다. 

손가락이 하나 없는 종업원이 서빙을 했다. 

교수는 주인을 불러서 저런 종업원을 고용하는 것은 손님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식당의 주인은 교수의 말을 가만히 듣고 나서, "저는 배운 걸 실천하고 있는 겁니다."라고 대답한다. 


그 배움이란 것이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지 말라는 거였던가. 


많이 배웠어도 하나도 실천하지 못하는 삶보다 적게 배웠더라도 배운 것들을 실천하며 사는 삶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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