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한 봄비가 강가의 늙은 나무 한 그루를 깨운다.  
몇 일 사이 나무 몸통에 부쩍 화색이 돌고 수액이 요동치는 소리가 들린다. 저 기세로 가면 꽃도 피우겠다고 할 판이다. 나는 축축하고 비린 나무에 기대 가만히 듣는다. 까마득한 세월로도 쉬 떨쳐지지 않는 오래된 거짓말-'봄을 기다리지 않겠어'

머리를 말리지 않고 한강을 따라 걷는다.
마음처럼 풀어진 머리카락이 무거운 바람에 자주 들썩인다. 늙은 몸통에 피가 돈다. 이 기세로 가면 강을 헤엄쳐 건너겠다고 할 판이다. 물컹한 흙길을 찾아 밟는다. 눈에 밟히는 기억들이 발등을 타고 기어오른다. 더듬어지는 세월을 앞서는 오래된 거짓말-'모든 걸 다 걸겠어'

김경미의 시집을 읽는다.
시를 읽는다기보다 늙은 나무와 내 거짓말을 위로하는 마음을 읽는다. 

나는야 세컨드 1 

누구를 만나든 나는 그들의 세컨드다 
, 라고 생각하자고 한다
부모든 남편이든 친구든
봄날 드라이브 나가자던 자든 여자든
그러니까 나는 저들의 세컨드야, 다짐한다
아니, 강변의 모텔의 주차장 같은
숨겨놓은 우윳빛 살결의
세컨드,가 아니라 그냥 영어로 두번째, 
첫번째가 아닌, 순수하게 수학적인
세컨드, 그러니까 이번,이 아니라 늘 다음,인
언제나 나중,인 홍길동 같은 서자,인 변방,인
부적합,인 그러니까 결국 꼴찌, 

그러니까 세컨드의 법칙을 아시는지
삶이 본처인 양 목 졸라도 결코 목숨 놓지 말 것
일상더러 자고 가라고 애원하지 말 것
적자생존을 믿지 말 것 세컨드, 속에서라야
정직함 비로소 처절하니
진실의 아름다움, 그리움의 흡반, 생의 뇌관은, 
가 있게 마련이다 더욱 그곳에
그러므로 자주 새끼손가락을 슬쩍슬쩍 올리며
조용히 웃곤 할 것 밀교인 듯 

나는야 세상의 이거야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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