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간절히 필요한 순간, 두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지적 유희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정란 옮김 / 예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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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다 문득 반달의 나머지 검은 부분이 궁금해졌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항상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소금같았을까요? 설탕같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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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流男兒 2011-12-30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읽어봐야겠어요! ㅎㅎ

굿바이 2011-12-30 13:15   좋아요 0 | URL
풍류님의 상상력이 훨씬 우월할 것이오, 그러니 패쓰하시오~! ^___^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 (일반판) 문학동네 시인선 8
성미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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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와의 사랑>에서 출발해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라니요! 그래도 겨자씨보다 조금만 크게 살자는 당신, 예쁘고 대견하고 쓸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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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1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주변에 부쩍 채식을 한다는 사람이 늘었다. 또한 집에 놀러오겠다는 사람도 늘었다.

하여 뭔가 기쁘고 즐겁게 나눠 먹을 채식요리를 연습하려고 하던 중 눈이 번쩍 귀가 쫑긋한 요리책을 발견하였는데 그 녀석은 바로 이놈이다.


 

 

 

 

 

 

 

 

 

 

 

 

 

 

보자마자 주문한 <Plenty : Vibrant Vegetable Recipes From London's Ottolenghi>라는 아름다운 요리책이 도착했다. 혼자 신이 나서 레시피를 훑어보다 이내 좌절했다. 소개된 요리의 70%정도는 오븐이 필요한 요리였다. 아------ 

집에서 쉬는 동안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요리를 좀 해볼 요량이었는데 정작 오븐은 없고, 오븐을 사기 위해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는가. 아-------

우선 오븐이 필요없이도 할 수 있는 요리에 포스트잇을 붙여 놓았는데 뭐랄까 이 수습할 수 없는 기분이란, 김수영시인의 시를 읽고 시는 절대 아무나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은 좌절감과 흡사했다.  

이 책은 야채 종류별로 만들 수 있는 요리가 소개되어 있는데, 아------ 이런 생치즈랑 듣도 보도 못한 허브는 또 왜 이렇게 많은 것일까. 오븐만 있으면 해결될 것처럼 황군에게 말했는데 그것도 아니구나. 아-------  

 

뒤숭숭한 소식을 전하는 뉴스들을 보면서 이 책을 같이 보고 있노라니 참으로 백석의 시가 떠오르는 것이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요리책을 만나서 오늘밤은 눈이나 푹푹 내려라,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요리를 못하는 것은 요리책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요리 같은 건 식욕이 없어서 버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요리책은 나를 유혹하고 어데서 진열되어 있는 오븐은 이런 내가 좋아서 후끄후끈 달아오를 것이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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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ia 2011-12-20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하^^ 굿바이님 덕분에 오늘 아침 웃어요 :>
보기만 해도 군침도는 사진이네요 쓰읍~

굿바이 2011-12-20 14:41   좋아요 0 | URL
알리샤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책을 열면 미치게 맛있어 보이는 요리들이 쏟아져요 :) 그래서 슬퍼요 ;)

또치 2011-12-20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어, 아름답군요! 저는 오븐이 있습니다 히힛.
혹시 샨티에서 나온 <평화가 깃든 밥상>이라는 책 보신 적 있나요?
이 책만큼 아름답지는 않지만, 채식요리책으로 꽤 좋았거든요.

굿바이 2011-12-20 14:45   좋아요 0 | URL
역시!!!! 오븐이 있으시군요 ㅜㅜ
<평화가 깃든 밥상>은 저희 집에 온 어떤 인간이 집어갔습니다. 엉엉~
오늘부터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존재합니다.
오븐이 있는 인간과 오븐이 없는 인간! 아~ 부러워요 ;)

라로 2011-12-20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오늘 하루 좌절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저는 이 페이퍼를 보고 좌절,,,ㅠㅠ
가지요리 표지가 정말 유혹스러워요~.ㅠㅠ

굿바이 2011-12-20 14:46   좋아요 0 | URL
나비님도 가지요리 좋아하세요?
저 요리에는 심지어 석류도 들어가더라구요. 가지에 뿌려진 보석같은 녀석들이 석류알이더라구요. 그럼 뭐합니까???? 구울 수가 없는데...ㅜㅜ

라로 2011-12-21 13:59   좋아요 0 | URL
저는 가지와 모짜렐라 치즈, 그리고 토마토,,,베이즐같은 허브의 환상적인 맛의 앙상블을 좋아해요!! 아~~~~먹고싶다,,,쓰읍
어제에 이어 오늘도 이 페이퍼가 머리 속을 떠나지 않으니 어쩌면 좋으우???ㅠㅠ

치니 2011-12-20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 백석이 살아 있었으면 무척 마음에 들어했을 패러디 같아요.
모두들 쉬면 요리를 해보자, 싶어지나 본데 전 왜 쉬면 더 쉬고만 싶으까요. ㅋ켁.

굿바이 2011-12-20 14:52   좋아요 0 | URL
백석이 억울해서 벌떡 일어날 패러디죠? ㅋㅋㅋㅋㅋ

당분간 요리와 요가를 좀 해볼 생각이었는데, 요리는 오븐이 없고, 요가는...말이 안나오네요. 서러워요 ㅜㅜ

웽스북스 2011-12-20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효로 모양은 맛있는 음식을 내놓으라며 응앙응앙 울을것이다~

굿바이 2011-12-20 14:53   좋아요 0 | URL
나타샤야 울음을 멈추어라~~~내 속은 타들어간다~~~~

웽스북스 2011-12-20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저도 파/마늘/양파 없는 요리에 포스트잇 붙이는데 ㅋㅋㅋㅋ

굿바이 2011-12-20 14:5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그대를 위한 레시피를 발견했지 :) 또 다시 문제는 오븐!!!;)

웽스북스 2011-12-20 22:59   좋아요 0 | URL
앗 언니 근데 외국요리도 파랑 마늘 양파가 많이 들어가요? ㅜㅜ 슬픈데요 어쩐지.
원효면옥으로 오세요!! 이제 채식레스토랑으로 바꿔볼까요.
저녁에 야채 볶아먹었어요. (분명 한그릇 만들어서 다먹었는데 배고파요 ㅋㅋ)

쉽싸리 2011-12-20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석의 맛`이란 책 있는데요. 백석시에서 음식 관련된 엮어서 책으로 낸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도 아직 읽어보진 못했어요.
요리하면서 긴긴 겨울밤을 보내는 것도 굉장하죠. 오븐없으면 그냥 두껑 덮고 후라이팬에 굽죠 뭐!

굿바이 2011-12-20 14:57   좋아요 0 | URL
아, 그책 저도 알아요 :)

뭐랄까 겨울이면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만들어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그런 로망이 있었어요. 물론 대부분 술판으로 번지지만요 ;)
그나저나 후라이팬 뚜껑이라도 덮고 한 번 시도해볼까 합니다!!

페크pek0501 2011-12-20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굿바이님은 요리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그러니 요리도 잘 하실 테죠?
저는 요리 잘하는 사람이 부러워요. 더 부러운 건 요리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이런 사람 앞에 서면 괜히 제가 작아지죠. 그런데 설겆이는 이상하게 재밌어요. 이어폰 끼고 음악 들으며 물로 그릇들을 씻으면 내 마음을 씻어내는 기분이랄까. 더러운 그릇들이 하나씩 줄어드는 것도 재미를 주지요. ㅋㅋ 그래서 설겆이는 누가 해 준다고 해도 양보 안 해요. ㅋㅋ

음식 사진이, 맛있게 보여요.

굿바이 2011-12-20 15:00   좋아요 0 | URL
pek0501님 안녕하세요? :)

저도 요리 잘하는 분들이 제일 부러워요, 거의 마술에 가까운 사람도 봤는데 우와~ 정말 감동이었어요. 저는....못해요. 먹지 못할 수준은 아닌데, 그래도 형편없어요 ㅋㅋㅋ
그나저나 설겆이는 저도 나름 잘해요 :) 평균속도를 넘는 것 같고, 깨끗하게 하는 것 같아요. 그거라도 잘해서 어찌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ㅜㅜ

風流男兒 2011-12-20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훗. 그래도 뭔가 누나가 하면 엄청 맛있을 거 같은데요!
아-------- 맛있겠다 ㅎㅎㅎㅎ

굿바이 2011-12-21 17:35   좋아요 0 | URL
재료와 오븐만 있으면 누가 만들어도 맛있을 요리들인 것 같아^----^
오늘은 황군의 요청으로 떡볶이를 할 예정이지.
심지어 양지로 육수를 낸 떡볶이!!!!

네꼬 2011-12-22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채식하면서 계란도 먹어도 되는 거예요? (사진 보고 묻는 거예요.) 그렇다면 안심이에요. (저는 채식 안 해요. 육식을 주로 하고 채식은 조금만 해요. 계속 육식을 이어갈 수 있을 만큼만 조금만요.) 채식하는 분들도 계란은 꼭 드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이 댓글 엄청 이상한 거 알아요. 그리고 진심이에요.) 그나저나

요리 같은 건 식욕이 없어서 버리는 것이다,

굿바이님 멋있어.

굿바이 2011-12-22 14:04   좋아요 0 | URL
채식도 단계가 많은 것 같더라구요.
계란이나 우유를 먹는 분도 있고, 전부 다 안 먹는 분도 있구요.
이책을 쓴 쉐프도 모든 육류를 거부하는 분은 아니라고 책에 썼더군요.
이분이 요리칼럼을 썼는데 요리에 달걀이나 치즈 기타 등등의 재료가 들어가서 채식주의자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한 모양이에요.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저는 이 요리사가 교조적이지 않아서 좋았어요.

저는 원래 고기를 안 좋아해 자주 먹지 않아요. 그렇다고 채식주의자도 아니구요. 제가 채식한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비웃죠. 원래 잘 안 먹던 걸 뭐하러 끊는다고 하냐구요 :)

그나저나 식욕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ㅜㅜ
 
몬스터 멜랑콜리아 - 상상 동물이 전하는 열여섯 가지 사랑의 코드
권혁웅 지음 / 민음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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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은 <몬스터 멜랑콜리아>의 글을 시작하며 괴물들(상상 동물들)을 통해 사랑의 논리를 짚어 보고자 한다,라고 썼다. 덧붙여 이 책을 롤랑 바르트가 쓴 <사랑의 단상>의 몬스터 버전,이라고 설명했다. 시도도 근사하고 설명도 유쾌하다.

 

책은 사랑이라는 테마를 16개의 키워드(이름, 약속, 망각, 짝사랑, 유혹, 질투, 우연/필연 등등)로 분류하고, 각 키워드에 부합하는 다양한 몬스터(상상 동물)를 출현시키고 있다. 등장하는 괴물들 중 어떤 괴물들(몽쌍씨, 강시, 골룸, 좀비, 세이렌, 미노타우로스, 스핑크스, 프랑케인슈타인, 지킬과 하이드, 헐크, 도리언 그레이, 체셔 고양이, 구미호 등등) 익히 알아서 반갑고, 독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경우 낯설어 더 반가운 괴물들도 많았다. 재미있는 것은 초면인 괴물인데도 심정적으로 매우 가깝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는데 당혹스럽다기 보다 '내 안에 너 있냐?' 라는 혼자말을 하며 찬찬히 그들의 운명과 사연에 몰입하고 또 마음으로 어루만졌다. 어쩌면 지구에는 실제하는 인구와 동일한 혹은 더 많은 수의 괴물들이 존재하는 지도 모를 일. 다들 가슴 속에 하나 혹은 그 이상의 그것들을 품고 사는 지도 모를 일이니까 말이다.

 

여하튼 권혁웅의 장기인 몸의 감각을 더듬는 작업은 게다가 시인의 문장으로 풀어내는 작업은 이 책에서도 반짝인다. 물론 어떤 건 좀 지나치다고 느껴지는 대목도 있지만 그건 매우 지엽적인 것이라 내 경우 무시했다. 시간의 특징을 들여다 보면서 서술한 [약속]이라는 키워드에는 우로보로스, 다 아이도 흐웨도, 요르뭉간드르, 지귀, 파프니르, 골룸 등의 괴물들이 출현하는데, <니벨룽겐의 반지>를 거쳐 톨킨의 판타지 소설 <호빗>과 <반지의 제왕>까지 이르는 사유가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 내가 관심을 갖었던 [유혹]을 다룬 부분에는 그 유명한 이제는 너무 유명해 헐리웃 미녀가 연기까지 하는 세이렌(Seiren)이 등장하는데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통해 유혹의 작동방법을 성찰하는 작가의 내공은 뛰어났다.

 

이 책의 테마는 식상하다고 느껴질 수 있으나 그것들을 풀어내는 작가의 상상과 사유는, 또 한 번 강조하지만 그의 문장은 결코 쉽게 흉내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책의 내용을 더 소개할까,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능력이 안되서 그건 빠르게 포기하고 다시 작가의 들어가는 말,을 좀 더 소개할까 한다. 작가는 들어가는 말,에서 괴물들이 보여 주는 것은 몸의 몸이며 사랑의 사랑이다. 모든 괴물은 순수한 멜랑콜리아를 구현한다, 라고 썼다. 그의 말 처럼 '한 몸이 되다', '반쪽이 되다', '가슴에 구멍이 나다'와 같은 비유들을 떠올리면 신화에 등장하는 상상 동물들이 우리의 은유를 어떻게 몸소 실현하고 있는지 잘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유행가 가사의 '총 맞은 것처럼'은 멀고 먼 신화 속 [관흉국인]을 그대로 모셔온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현실에서는 그 뚫린 가슴이 급속도로 빠르게 채워지기도 하더라마는.

 

시베리아에서 계속 날선 바람을 보낼 예정이라면 추워질 일만 남은 시절이고 잠 못 드는 밤이 길어질 것은 분명하다. 이것도 저것도 하기 싫고 오로지 따뜻한 방을 벗삼아 낡고 오래된 기억들을 들춰 볼 예정이라면 몬스터들의 멜랑콜리아를 곁들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마지막으로 "고백이 목소리라면 에코야말로 고백의 정수다. 그러나 그녀는 제 고백의 내용을 채울 수가 없었다.(p.161)"라고 작가는 에코를 소개했다. 이 말이 그대로 내게 돌아왔다. 이 책의 리뷰가 그렇다. 그렇지만 또 무얼 어찌하겠는가. '좋소'라고 외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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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流男兒 2011-12-20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의 몸. 사랑의 사랑. 정말 확 끌려요.

굿바이 2011-12-21 17:36   좋아요 0 | URL
^----^ 역시 풍류를 알아, 그대는!
 
흑산 - 김훈 장편소설
김훈 지음 / 학고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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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신작 <黑山>의 후기 중 일부분이다. 

나는 흑산에 유배되어서 물고기를 들여다보다가 죽은 유자儒者의 삶과 꿈, 희망과 좌절을 생각했다. 그 바다의 넓이와 거리가 내 생각을 가로막았고 나는 그 격절의 벽에 내 말들을 쏘아댔다. 새로운 삶을 증언하면서 죽임을 당한 자들이나 돌아서서 현세의 자리로 돌아온 자들이나, 누구도 삶을 단념할 수는 없다.  

누구도 단념할 수 없는 삶,이라니. 이 대목을 중얼거리며 소설 속 인물들을 하나하나 복기했다. 
이내 누구도 단념할 수 없는 삶,이라는 말에 가로막혀 한 발도 더 나아갈 수가 없었다. 말의 낭떠러지 앞에서 상념들이 거침없이 풀렸다.
남풍이 부는 초겨울의 해안가를 벗어나 흑산으로 들어가는 약전에게 뭐 그리 큰 희망이 남아 있었을까, 상복을 입고 배론으로 떠나는 안개 자욱한 새벽 황사영에게 기약할 날들이 있었을까, 제 목숨 하나를 위해 염탐하고 밀고하는 박차돌에게 얼마나 큰 영광이 준비되어 있었을까, 군소리없이 약전을 받아들이는 순매의 몸에는 또 어떤 열락이 허락되었을까, 그럼에도 고등어나 날치나 게처럼 누구도 단념할 수 없는 삶이라니. 기막히고 뒤숭숭한 마음은 절로 터져 누군가에게 따진다. 신기하게도 돌아오는 응답은 황사영이 무릎 꿇고 바치는 기도문이었다.  

주여 우리를 매 맞아 죽지 않게 하소서. 
주여 우리를 굶어 죽지 않게 하소서.
주여 우리 어미 아비 자식이 한데 모여 살게 하소서.
주여 겁 많은 우리를 주님의 나라로 부르지 마시고
우리들의 마음에 주님의 나라를 세우소서.
주여 주를 배반한 자들을 모두 부르시고
거두시어 당신의 품에 안으소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 기도문 안에는 낡고 무력하고 위압적인 세상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리고 기도문 밖에는 매 맞지 않고 굶지 않고 사람이 가축처럼 팔리지 않는 세상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다. 또한 새로운 세상은 노래같은 기도문을 타고 사람들의 가슴에 이미 세워졌다. 꼭 올 것만 같은 세상이고 반드시 와야만 하는 세상이 매 맞고 굶어 죽는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이었다. 방울 세 개를 단 기발로는 어쩔 수 없는 마음들이 이미 차고 넘쳤음을, 때리는 사람도 맞는 사람도 알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분명하기에 두려운 세상이고 갈급한 기도문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게 돌아온 저 기도문이 나는 더 싫었다. 차라리
어서 맞아 죽게 하소서. 
어서 굶어 죽게 하소서.
당신 보기에 이런 우리가 불쌍하거들랑 하늘을 움직이고 땅을 엎어서라도 우리를 구하소서.
그럼에도 주여 당신이 새로운 세상을 내어 줄 수 없거들랑 
삶을 단념하는 우리를 기꺼이 품에 안으소서.
이렇게 고쳐서 기도하고 싶었다. 
기도가 될 수 없는 말이고 말도 안되는 말이다.  
       
책을 덮고 속표지에 그려진 '가고가리'라는 괴수의 그림을 보았다.
김훈이 시조새의 화석 사진을 보면서 그렸다는 괴수 '가고가리'는 어딘지 엉성하고 조악했다. 괴수는 태초로부터 하늘과 바다와 땅에 함께 있어야 할 풍경 같았지만 그럼에도 열외 존재처럼 느껴졌다. 모든 불행의 근원이 그림 한 장 안에 다 들어있는 듯 했다.
저리 생긴 것이 가고 또 가는구나.
가고 또 간다,라는 말이 그제야 눈물겨웠다.
처음부터 이 소설은 가고 또 가야만 하는 것들의 이야기였구나. 그러니 처음부터 함부로 가늠하고 휘저을 수 없는 이야기였구나. 뭐든 끝까지 가보지 못한 내가 끝도 없이 가는 것들의 속내를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억압적이고 불평등한 세상에서 문학이라도 불온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무참했다. 끝까지 버텨보지 못한 나는 말도 마음도 아꼈어야 했는데 후회는 늘 이렇게 아무런 힘이 없다. 

눈 앞에 흑산이 보이고 해안에서 무심히 생선의 아가미를 들여다보았을 약전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심 나도 그렇게 가고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싶다. 명확하지 않은 것들을 어설프게 떠들지 않고 어줍잖게 휘젓지 않으며 그렇게 가고 또 가면 좋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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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流男兒 2011-12-07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사실 별 생각안하고 들었다가, 많이 멍했었어요.

굿바이 2011-12-08 12:02   좋아요 0 | URL
그대처럼 나도 짧게 남길 걸....

나는 배론성지도 갔었고, 절두산도 갔고, 흑산도 갔는데... 그래서 더 멍했었어. 진짜 멍-------

風流男兒 2011-12-09 09:26   좋아요 0 | URL
길게 쓸 능력이 안되서 짧게 남기고 있어요 요즘은 :)
쓰다가 어느 순간 보면 너무 어설프고 부끄러워요 ㅎㅎㅎ

웽스북스 2011-12-09 12:13   좋아요 0 | URL
저도요. ㅜㅜ 길게 쓰는 것이 뭐든 어려운 것 같아요.
굿바이님의 글을 읽는 걸로 늘 아쉬운 마음을 달랜달까요.

그러니까 글좀 많이 많이 써주십셔~ 굽신굽신

흰 그늘 2011-12-07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굿바이님.. 그동안 홉스골 호숫가로 가신줄 알았드랬어요^^
흑산에도 가셨던 거여요..

'명확하지 않은 것들을 어설프게 떠들지 않고 어줍잖게 휘젓지 않으며
그렇게 가고 또 가면 좋겠다 싶다.' 정말이지 마음에 담을수 있엇으면 하는 말이네요..

굿바이 2011-12-08 12:04   좋아요 0 | URL
아이고, 흰그늘님 잘 지내고 계시죠?
참으로 반가워요~:)

그나저나 홉스골 호숫가에 정말 가고 싶은 날들입니다~!

비로그인 2011-12-07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의 [남한산성]에 여러 번 등장하는 말이 떠오르네요.
그리 되었으니 그리 알라. 김훈은 늘 그런 마음으로 소설을 쓰는 걸까요? ( '')~

굿바이 2011-12-08 12:06   좋아요 0 | URL
아마도 그런 마음으로 쓰지 않을까 싶네요 ;)

저는 작가의 <현의 노래>와 <내가 읽은 책과 세상>이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이후의 작품은 어떤 건 기대가 컸던 것도 있고...여튼 한 편이라도 더 남겨주시면 좋겠다 싶어요 :)

2011-12-08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8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꽃도둑 2011-12-14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을 휘젓고 다니는 요상한 한 뇨자가 있는가 봅니다..
(어흥, 그러면 쓰나?...)

흑산에 계속 눈길이 가긴 가는데.. 언제 읽지 싶네요...
줄세워둔 책들에 밀려 한 일년쯤 뒤? ㅎㅎ엄살이고요 굿바이님 리뷰 읽고 나니까
급속도로 거리가 가까워진 느낌이네요..

굿바이 2011-12-14 12:38   좋아요 0 | URL
꽃도둑님도 알고 계셨군요?^^

저도 책상에 쌓인 책이...아무래도 몽땅 팔아야겠습니다 ㅋㅋㅋ
김훈작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찌찔한 삶을 위로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좋고, 그래서 또 답답하고!

블리 2011-12-19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제 리포트 마감이라 [흑산]으로 7장짜리 글을 썼는데 여기서 또 언니의 흑산을 만나니 반갑고 아프고;; 이런 책을 독서 과정 분석 과제로 내주신 교수님께 고맙기도 하고 -리포트 아니었음 읽지 않았을테니- 따지고 싶기도 하고 -아니, 분석을 하기엔 너무 절절한 얘기들이 잖아요;- 뭐 그런 맘으로 썼어요. 전 박차돌과 한녀의 얘기 이후로 계속 속이 울렁, 왈칵~ ㅠㅠ 교수님 덕에 분석하다 보니 평정심으로 돌아왔지만. 마침 이번 주 `낭독의 발견` 녹화가 김훈 편이란 걸 알게 돼서 방청신청 했는데 되려나 모르겠어요.
어쨌든 이제 방학입니다. 너무~ 좋아요! ^^

굿바이 2011-12-20 08:44   좋아요 0 | URL
오호~ 블리의 리포트 굉장히 궁금하다.

그나저나 이제 방학이구나. 얼굴 한 번 보자 :)

Tomek 2011-12-21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을 읽고 양화진성지에 갔었어요.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토요일 오후였는데, 매일 그곳을 지나다니면서도, 유심히 바라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빗물이 베어든 잠두봉은 흡사 핏물이라도 흘리는 듯...

이곳에서 목이 베이고 허리가 끊긴 사람들은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

하긴, 그곳은 봄에도 항상 쓸쓸한 풍경이었어요...

굿바이 2011-12-21 17:42   좋아요 0 | URL
무섭고 외로웠다,는 표현이 제일 정확할 것 같아요.
몇 번 다녀온 곳이지만 그곳에 가면 매번 몸도 마음도 아팠던 것 같아요.
상상을 하면 저는 정말 참아낼 수 없는 공포와 고통이었을 것 같아서...

봄에도 쓸쓸하던가요?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