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부쩍 채식을 한다는 사람이 늘었다. 또한 집에 놀러오겠다는 사람도 늘었다.
하여 뭔가 기쁘고 즐겁게 나눠 먹을 채식요리를 연습하려고 하던 중 눈이 번쩍 귀가 쫑긋한 요리책을 발견하였는데 그 녀석은 바로 이놈이다.
보자마자 주문한 <Plenty : Vibrant Vegetable Recipes From London's Ottolenghi>라는 아름다운 요리책이 도착했다. 혼자 신이 나서 레시피를 훑어보다 이내 좌절했다. 소개된 요리의 70%정도는 오븐이 필요한 요리였다. 아------
집에서 쉬는 동안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요리를 좀 해볼 요량이었는데 정작 오븐은 없고, 오븐을 사기 위해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는가. 아-------
우선 오븐이 필요없이도 할 수 있는 요리에 포스트잇을 붙여 놓았는데 뭐랄까 이 수습할 수 없는 기분이란, 김수영시인의 시를 읽고 시는 절대 아무나 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은 좌절감과 흡사했다.
이 책은 야채 종류별로 만들 수 있는 요리가 소개되어 있는데, 아------ 이런 생치즈랑 듣도 보도 못한 허브는 또 왜 이렇게 많은 것일까. 오븐만 있으면 해결될 것처럼 황군에게 말했는데 그것도 아니구나. 아-------
뒤숭숭한 소식을 전하는 뉴스들을 보면서 이 책을 같이 보고 있노라니 참으로 백석의 시가 떠오르는 것이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요리책을 만나서 오늘밤은 눈이나 푹푹 내려라,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요리를 못하는 것은 요리책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요리 같은 건 식욕이 없어서 버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요리책은 나를 유혹하고 어데서 진열되어 있는 오븐은 이런 내가 좋아서 후끄후끈 달아오를 것이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