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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 꼭 읽어야할 한국의 명시 100
신경림 엮음, 김용문 시도자 / 글로세움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시는 언어의 예술이라고 혹자는 말하지만, 그 언어가 시대를 떠나서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이해할 때 시는 바로 그 시대를 나타내는 지표이자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의 경우, 약 100년에 걸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애송되는 시 – 대부분 국정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 와 편집자의 선택에 의해 다양한 방면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1부의 경우, 주로 일제 식민지 시대를 살 수 밖에 없었던 저자들의 슬픔을 표명한 거라면 2부의 경우, 산업사회를 이뤄가면서 소외되는 사람들과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사라져 가는 우리의 모습과 깨어진 인간관계를 잘 묘사하고 있다.
시라는 것이 압축된 언어로 표현되다 보니 일반적인 책보다 분량은 적어도 더 많은 에너지가 요구되고 각 단어와 단어 사이 그리고 단락과 단락 사이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재미가 솔솔하였다. 그 중에서도 김수영의 ‘풀’, 황명걸의 ‘한국의 아이’, 그리고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 를 읽으면서 바로 우리 매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많이 상기되었고 그 구절구절 속에서 매장 직원들의 땀과 눈물이 보였다.
김수영의 ‘풀’의 마지막 단락인 –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발목까지/발밑까지 눕는다./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바람보다 늦게 울어도/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에서 그 바람을 고객으로 풀은 매장에서 근무하는 직원으로 대입해보면 그 의미가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즉, 고객 컴플레인을 처리하면서 항상 그 고객보다 먼저 상황을 정리해야만 하는 우리 매장의 수 많은 담당과 협력직원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사실, 고객 앞에서 한 없이 작아지는 우리 직원들의 경우, 고객보다 먼저 손을 내밀고 먼저 사과하고 먼저 인사해야만 하며, 고객이 화를 내어도 먼저 웃어야 하기 때문에 김수영의 ‘풀’이 바로 우리 실상을 바로 보여주는게 아닐까 싶다.
황명걸의 ‘한국의 아이’의 경우, 앞서 시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내는 자화상이라 말한 것에 바로 들어맞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파멸이 미국발 신용위기로 촉발된 지금 그리고, 끊없는 경쟁을 강요 당하는 한국사회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이 시대의 아이들이 모습이 너무 적나라하게 그려지고 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인 다음 구절은 – 그리고 명심할 것은 아이야/일가친척 하나 없는 아이야/혈혈단신의 아이야/너무나 외롭다고 해서/숙부라는 사람을 믿지 말고/외숙이라는 사람을 믿지 말고/그 누구도 믿지 마라/가지고 노는 돌맹이로/미운 놈의 이마빡을 깔 줄 알고/정교한 조각을 쪼을 줄 알고/하나의 성을 쌓아 올리도록 하여라 – 은 어쩌면 아이 뿐만 아니라 조직에서 생활하는 조직원에게도 맞는 얘기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황명걸은 마지막 구절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희망을 마지막 세 구절에 – 맑은 눈빛의 아이야/빛나는 눈빛의 아이야/불타는 눈빛의 아이야 – 에 남겨두고 있다. 그 맑고 빛나고 불타는 눈빛에 과연 무엇이 들어 있을까? 정말로 아무로 믿지 말고 남을 짓밟고 올라가는 상황을 담았을까?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그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성장 가능성에 시인은 희망을 노래하고 있고 그 속에서 독자인 나도 희망을 가져본다.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는 짧은 구절 –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은 조직의 관리자로서 나는 부하직원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인식될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점장으로서 많은 부하직원들과 동료사원들을 거느리고 있지만, 그들에게 나는 어떻게 행동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정말로 열정을 불러 일으키고자 노력했는지 반성하게 된다. 관리자이기 때문에 잘못된 일이 있으면 엄하게 지적만할 줄 알았지 그 상대방에게 삶과 일에 대한 열정을 불어놓고자 노력은 미흡하지 않았나 싶다. 연탄재를 발로 차기 전에 부하직원들의 마음에 열정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연탄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 관리자의 태도여야만 한다고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는 지적하고 있다.
처음에는 시를 읽는 것이 경영도서를 읽는 것보다 분량이 적어서 만만하게 보았지만, 그 말들의 속삭임과 준엄한 질책은 다른 어떤 도서보다 더 큰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한편으로 왜 외국계 기업의 CEO들이 휴가기간에 장편소설이나 시를 왜 보는지에 대한 답 – 기업을 움직이는 것이 바로 사람이기에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와 소설이 필수적이다 – 을 알게 되었다. 다시 한 번 사람에 대한 이해가 넓어질 수 있도록 다른 시와 소설에도 시간을 투자해야 겠다라는 다짐을 한 번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