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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무사 - 조선을 지킨 무인과 무기 그리고 이름 없는 백성 이야기
최형국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9년 4월
평점 :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역사를 구분하자면, 전쟁시기와 전쟁하지 않은 시기로 나눌 수 있으며, 대부분 사람들은 역사에 기록된 유명한 인물만 기억하지 실지로 그 전쟁을 수행한 병사와 그들의 물자를 대주었던 백성들의 땀과 노고를 이해를 하지 못하는 상항에서 그들의 실제 삶과 일반인들의 왜곡을 시정하고자 하는 한 일환으로서 이 책을 쓴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일반인들이 갖고 있는 편견 – 조선은 文의 나라다 –을 깨뜨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조선이 결코 무를 천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 초 무관이 되기 위해서는 마상무예를 익혀야 되고 병서를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마상무예를 배우려면 말을 가지고 있어야 했고 글을 배운다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으면 무관이 될 수 없었다고 한다. 조선 양반의 균형의 한 축이었던 무관이 홀대를 받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성적이 나빠도 채용하게 되면서부터 이며 숙종 때는 18,000명을 동시에 합격시키기도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영,정조 때를 거치면서 무관의 위상을 다시 높아지기 시작하였기에 일반적으로 조선의 文官으로 이뤄진 사회라고 보는 것은 오해와 편견임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사실, 점포를 운영하는 점장의 입장에서 보자면, 점포도 영업과 지원 두 파트로 이뤄져 있지만, 매출에 집중하다 보니 영업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매출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그에 수반하는 각종 소모품의 적정한 공급이 이뤄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원 파트에게 많은 업무에 대한 주문을 하게 된다. 더불어서 업무를 잘한다고 생각되는 직원이라고 판단되면, 우선적으로 영업으로 보직을 발령을 내는 경향이 있다. 본사에서도 유능한 영업 직원들에 대한 평가나 포상은 많지만,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는 지원 직원들에 대한 부분은 미약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를 저자의 관점으로 보자면 유통업에서도 일종의 편견이 있는 것이라고 보면, 점포의 매출목표 달성의 경우도 영업과 지원 두 파트가 수레의 두 바퀴로서 균형을 잘 조화를 이룰 때 성취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다시 한 번 더 지원파트에 대해 생각의 전환을 해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둘째로, 저자는 승자 중심의 역사로 위대하고 용맹한 개인의 관심에서 그 승자의 주역들과 더불어 자신의 몸과 마음을 헌신한 작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전환되어야 함을 각종 축성의 일화로서 설명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조선시대의 각종의 도성과 산성의 경우, 어떻게 저것을 만들 수 있었을까 하는 감탄만 하지 그 축성에 관련된 일반 백성의 피와 땀을 생각하지 못하는 태도, 즉 보이는 것만 전부인양 하는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저자의 두 번째 지적을 점포로 환원해서 생각해보면, 점포에서 매출과 서비스가 잘 나오는 것은 점장이 잘해서라기 보다는 그 점포에서 근무하는 무수한 파트 사원과 동료 사원 그리고 협력업체 직원들의 피와 땀에서 나오는 것임에도 내가 잘해서라든지 아니면 매니저 혹은 담당들이 잘해서라고 너무 쉽게 우리는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을 하게 된다. 향후, 당점의 매출과 서비스의 결과가 잘나오게 된다면, 당점에서 근무하는 수 많은 파트 사원과 동료사원들에게 그 고마움을 정말로 표현해야겠다라는 다짐을 해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그 엄청난 역사적 사실도 “하루”에서 시작됨을 지적하고 있다. 즉, 특정한 사건이 발생한 경우,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건의 전,후로 많은 시간을 고려해야 되겠지만, “하루”라는 시간적 제약을 넘어서지 못하며, 그 하루가 쌓이고 쌓여서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발생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하루”를 살아갔던 일반 조선무사와 백성들의 모습이 조선의 역사가 된 것처럼, 점포에서 하루 하루를 어떻게 실천하고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당점의 역사를 만드는 것이며 나의 역사 그리고 우리 점포에서 근무하는 모든 직원들의 미시사를 만드는 것임을 깨닫게 되며 그 “하루”의 소중함을 일깨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