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눈이 뻑뻑하고 눈물도 자주 나고 뭔가 불편해서 안과에 갔다.
마흔이 넘으셨으니 이제 노안이 올 나이라고 ......
울적하다가
어르신?들이 남긴 고운 그림으로 위안을 받았다.
<돌아보니 삶은 아름다웠더라>는 남미에서 오래 이민생활을 한 두 부부의 잔잔한 일상을 담고 있다. 그림이 마음에 들어 잘 하지 않는 인스타 팔로우도 해봤다. 최근에는 국내로 오신듯하다.
사람들이 막연하게 그리는 이상적인 노후가 아닐까?
젊은 시절 다양한 경험을 했고
부부 금슬 좋고 아이들 건강하고 화목하고
일상에서 소소한 재미를 찾는 것이
나이들어가는 법을 찾는 것이겠지.
젊을 때보다 할 수 있는 것이 적어져도
그에 맞게 적응해나가기.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역시 두고두고 가끔 펼쳐보면 찡하다.
우직하게 온몸으로 살아온 세월이 보인다.
이렇게 가족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멀리 떨어져서 보면 장하고 멋진데
가까운 본가 어머니, 시어머님의 삶을 돌아보면 답답하고 안타깝고 그런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죄책감이 들어 더더더 멀어지는 기분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입니다>는 청소년 문화의 집에 갔다가 휘리릭 잘 넘겨보았다.
위트 넘치는 그림과 글들.
집순이의 정서를 잘 표현했다.
사람들과의 대화 편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도 다 불편해지는 그 사이클
너무나 공감.
잘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면 긴장되어 불편하고 여럿이 만나면 대화에 끼어들 타임을 찾느라 피곤하고 일대일이면 적당한 핑퐁이 되어야 하니 불편하고 너무나 친한 사람을 만나면 서로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어 무거워 힘들어지고.....그러니 결국은 혼자가 편하다는.
나 역시 그렇다.
어떨 때는 뭔가 아이들 아닌 어른과의 대화가 그리워 만남을 부러 갖기도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뿌듯하고 개운한 적이 별로 없는듯하다.
아 또 이상한 말을 진짜 많이 했어
거기를 같이 가기보다는 그곳이 나았을 텐데.
혹은 거길 가지 않았다면 그 책은 다 봤을 텐데 라든가
가지 말고 진짜 청소라도 할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교성은 없지만 사회성은 있다고 주장해왔는데
그 주장은 폐기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 상무알라딘에 좀비고와 엉덩이탐정을 팔고 새삼 충격받았다.
살 때는 수십만 원 주고 샀는데 팔 때는 수중에 단돈 몇 만원 쥐어질 뿐이다.
매입할 때 품질 판정은 엄격하고
책을 다시 살 때의 책 상태는 요즘 애들 말로 절.레.절.레.
(신간류 특히 구겨지고 표지 때탐이 심해도 신간이라고 거의 동일한 수준에서 가격이 책정된 데에는 할말을 잃곤 한다.)
해서 와이, 살아남기, 실험왕, 마법천자문 류는 상태 좋은 것만 추려서 청소년 문화의 집에 아예 기증했다.
그런데도 또 이런 책을 사들이고 있는 현실이란 ㅜ.ㅠ
<흔한 남매>는 웃찾사 코너에서 유튜브로까지 진출했나보다. 딸아이가 친구 소개로 보더니만 사달라고 간곡히 청해서 할 수 없이 구매했다.
우리집 흔한 남매도 내가 보기엔 늘 별일 아닌 걸로 티격태격이다.
아들이 얼마 전 일기에 우리는 다른 남매들이 그렇듯이 흔한남매이다. 아마 우리 나이에 사이 좋은 남매를 찾기란 풀밭에서 네잎클로버를 찾는 것보다 힘들 것이다, 라고 적었다.
딸은 책을 보더니 둘은 싸워도 그래도 으뜸이가 결국에는 동생 에이미를 챙기는데 우리집은 그렇지 않다나.
학교에서 오빠를 보아도 먼저 인사도 제대로 안 한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둘이 똑같이 생겨서 아들 친구들이 딸아이를 발견하고 니 동생 간다, 하면 부끄러워서 먼저 뛰어가는 게 딸아이는 늘 불만이다.)
<터널>을 읽고
나도 오빠를 위해 용기를 내겠다던 갸륵한 시절도 있었는데.....
뭔가 남매는 참 부모 입장에서는 대하기 까다롭다.
늘 황희 정승 코스프레를 해도 뭔가 항상 둘 다 불만이 많다.
일상에서 늘 서로 자기부터 봐달라고 하니 머리가 아프다.
엄마가 바빠서 여동생과 합심해 지냈던? (여동생을 통치했던) 내 유년기 경험으로는 도무지 참고할 수가 없는 상황이 많다.
가브리엘 제빈의 <섬에 있는 서점>을 잘 읽어서
<비바, 제인>도 읽게 되었다.
제인은 20대에 의원을 보좌하는 인턴을 하다 의원에게 빠져든다. 이 관계에서 상처받은 제인의 어머니 레이철, 제인의 아이 루비, 의원의 아내 엠베스 그리고 후반부에 다시 젊은 시절의 제인 아비바 시점으로 소설이 전개된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그림이 그려진다.
유력한 정치인과 그 주변의 젊은 여성.
불륜, 치정관계에서
이미지를 망치고 삶이 파괴되는 쪽은 이런 권력관계에서 더 아래쪽인 여성이다.
독특한 본래의 이름을 버리고 지극히 평범한 이름을 택하고 멀리 이사를 해서 살아도 삶의 고비마다 자신의 이력이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닌다. 모르는 사람의 비난이나 멸시는 그럭저럭 넘긴다 해도 가까운 가족들마저 자신을 온전하게 이해해줄 수는 없다. 특히 엄마의 과거를 알게 된 딸아이가 제인을 맹렬하게 비난하는 데 할말을 잃었다.
후반부에 예전 예능 인생극장같이 더 바람직한 쪽을 택한다면, 이라는 가정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런 가정을 따라가줄 페이지는 없다. 오로지 선택했던 결과만이 인생의 한 페이지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엄정한 현실을 보여준다.
20대 인턴과 애정놀음을 하면서도 임신을 피하기 위해 온갖 추잡한 술수를 쓴 의원님의 행태가 우습고 그런 남편을 둔 부인의 처지는 더 우습게 된다.
그런 남편이지만 그래도 생을 바쳐 사랑한 엠베스 시점의 이야기가 슬펐다.
자신의 직업에 충실했고 정치인의 아내로서 성실했건만 조롱당한다.
결혼 30주년 기념식마저 끝없는 쇼잉이고 늘 기다리게 하고 실망을 안겨주는 남편이었지만
그래도 얼마나 멋진가, 라니.
너무 슬펐다. 감정적 약자의 무력한 사랑이.
<잊기 좋은 이름>
기대하며 받아보았고 거의 단숨에 읽었다.
유년기의 소소한 기억과 당당한 어머니에 대한 기록이 좋았다.
후반부에 작가들과의 인연을 서술한 장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000 작가 이야기 하시면서 실물이 낫고 그건 자신도 그렇다고 능청을 떠시는 부분에서 많이 웃었다.
어릴 때 신춘 문예나 문예지에 등단한다면 사진을 뭘 쓰지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가당치 않게도 역시 난 실물이 나은데 사진 진짜 안 받는다,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점점 읽는 속도가 느려지는 후반부.
'세월호'에 대해 증언하는 부분을 천천히 읽었다.
그리고 작가님 덕분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다시 찾아 읽었다.
잊기 좋은 이름은 없으므로.
세상에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 300쪽
아
이렇게 평범해 보이는 이름이 가득이었고 이런 일들이 있었구나,
난쏘공을 수학능력시험, 전공 시험, 레포트 작성 등을 위해 읽고
나중에는 가르치느라 읽기도 했었는데 이렇게 다 잊었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했다.
사람이란 한계가 있어 언젠가는 잊기 마련이지만
사실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
처음부터 기억하려고 노력한다면 말이다.
모든 존재는 유일무이하고 고유하다는 것을
시시때때로 떠올리며 살아가야만 한다.
저는 여전히 어떤 이름들을 잘 모르고
삶을 자주 오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언가 호명하려다
끝내 잘못 부른 이름도 적지 않고요.
이 책에는 그런 저의 한 시절과 무능 그리고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게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다 드물게 만난 눈부신 순간도요.
그 이름과 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여기 적습니다. 302-303쪽
그런 의미에서
조만간 이 책들도 읽어야겠다.
표지도 같이 두고 보니 엄청 잘 어울린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