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정말 좋은 책, 그냥 그런 책, 안 봤더라면 좋을 책들을 보면서 보낸 여름이다. 남부지방에 이사 와 살면서는 여름 지내기가 많이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여름은 그래도 며칠 빼고는 견딜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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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올해의 미숙>은 한참 전에 독립서점에 가서 사서 보았는데 이제야 기록에 남긴다. 폭력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란 미숙이 친구 재이에게 온 마음을 열었지만 쓰라리게 배신당하는 이야기. 

 

'재이'는 미숙을 노골적으로 '미숙아'라 부르며 따돌린 무리들보다 더욱더 잔인했다. 미숙의 삶을 훔쳐가 멋대로 재단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다. 재이는 미숙의 가정사를 소설로 써서 상을 탔고 이후 승승장구한다?

 

시인인 남편에게 맞고 산 어머니는 훗날 중병에 걸린 남편을 간호하며 억울하지 않냐는 물음에 본인이 더 나은 사람임을 보여주는 것이 복수라고 한다.

 

미숙도 그냥 어딘가에 재이가 있을 것이라고 무심히 넘겨버리는 것으로 나름대로 복수한 것이 아닐까? 없는 사람으로 치고 증오하고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런 사람이 있었지, 하고 넘기는 것으로.

 

아픈 이야기를 순정만화 같은 그림체로 담담하게 전하고 있다.

 

가족들은 중병에 걸려 하나하나 사라지고 미래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지만 '미숙'은 더 이상 미숙아가 아니다.

 

삶에서 일어난 일들을 본인만의 방식으로 매듭 짓고 한 발짝 더 디딜 수 있다면 성숙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조숙'이었을 수도 있는 미숙은 이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익어갈 것이다.    

 

 

 

 

 

 

 

 

 

 

 

 

 

 

 

 

 

 

 

 

이런 시국에 일본작가 책을 봐도 되나 싶지만 일단은 빌려 봤다. 아이들 방학이면 늘 보게 되는 술술 넘어가는 사회파 추리소설들.

 

 

야쿠마루 가쿠를 독서 모임 회원에게 소개받고 꾸준히 보았는데 <우죄>는 그럭저럭 보아 넘겼고 <데스미션>은 진짜 보기 힘들었다.

 

<우죄>에서는 저널리스트가 되려던 마스다가 우연한 기회에 공장에서 스즈키라는 동료를 만나며 그의 엄청난 과거를 알게 되어 벌어지는 일들이 담겨 있다.

 

<우죄>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자를 주변에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묻고 있다.

 

그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갱생의 길을 걷고 있다면 사회에서 받아주어야 한다고 쉽게 인도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가 내 주변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면 크게 마음 쓰이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고유정이 나중에 출소하여 나의 이웃이고 동료가 된다면 어떨까?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속죄의 방법은 없다. 그냥 쏟아지는 비난을 감내하며 누구와도 연을 맺지 않고 지내는 것이다. 범죄로 희생당한 그 누군가는 그렇게 사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했으니.

 

<데스미션>은 시한부 인생이 되어서 연쇄살인마가 된 남자와 시한부인데도 불구하고 남은 생을 그런 범인을 쫓는 데 바치는 형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읽는 내내 불편했는데 대체 이 자가 왜 이렇게 된 건지 궁금해 끝까지 보았다.

 

결론만 말하자면 안 봤어도 좋았을 이야기이다. 

 

그저 요 몇년 사이 자꾸 사회파 추리소설을 읽게 되는 내 심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이들을 기르면서? 순간순간 불안하고 그 불안의 강도와는 정반대로 엄청 무료하게 흘려보내야 하는 시간들이 있기에 자극적인 설정으로 도피하는 건 아닌지.

 

<데스미션>을 끝으로 진짜 이런 사회파 추리소설들에서 당분간 멀어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래 전에 읽고 리뷰를 꼭 쓰고 싶었는데, 너무 좋은 리뷰가 이미 많아 관두었다.

일단은 정말 표지가 다했다. 

 

특성화고 학생에 대한 편견은 대개의 편견이 그러하듯 '잘 모름'에서 생겨나고 편견은 '접촉 없음'으로 강화된다.         10쪽 

 

진짜 내가 잘 몰랐다는 생각만 든다.

 

내가 중학교에 다녔던 90년대 초에나 상고나 공고에 대해 공부 못하거나 형편 어려운 집 아이들이 가는 데라는 편견이 있었지, 요즘 특성화고에 대한 생각은 많이 다르지 않나, 그렇게만 여기고 있었다. 그건 내가 비교적 최근에 만나본 특성화고 학생이 MB 정권 시기에 고졸 특채로 공기업에 들어온 친구였기 때문이다.

 

특성화고 학생들의 현장실습이라든가 진로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금융권이 특히 고졸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심하고 여러 기술을 익히고 자격증을 취득해도 원하는 현장에 가기는 하늘에 별따기라는 것이 이제야 실감난다.

 

그리고 동준이 어머님이 계속 말씀하시는 것이 세월호 어머님들과 같아서 마음 아팠다. 사람들이 자꾸 자식 이야기를 하지 못 하게 막는 것이 더 힘들다는 말씀.  

 

이 책을 만나는 엄마들에게 꼭 권하고 있다.

 

 

 

 

 

 

 

 

 

 

 

 

 

 

 

 

육아서는 이제 졸업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그래도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세계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자존감이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그보다는 '존재감'이 더 중요하다고. 반에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그런 아이라면 심각한 문제지만, 조용하지만 그 아이가 있다는 걸 누구나 안다면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초등 시기의 '자기 중심성'은 탈피해야 할 나쁜 것만이 아니라 자기 중심성을 남에게 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충분히 누려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모든 걸 알 수도 없고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아이는 자기 세상과 관계 안에서 지지고 볶고 갈등하며, 상처를 주고받으며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배울 줄 안다. 아이는 부모의 분신이 아니라 엄연한 타인이다.

 

 

149-150쪽   

 

 

줄치고 매일매일 복창해야겠다.

 

 

 

 

 

 

 

 

 

 

 

 

 

 

 

 

사둔 지 오래되었는데 이제야 거의 삼분의 이 지점을 다 읽었다. 그 많던 재산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나중에는 끼니를 잇기 힘들 정도의 극빈에 처해 서울로 돈을 벌러 따로 나와야 했을 정도인지는 몰랐다.

 

반가의 아녀자로서 하기 힘든 삯바느질, 공장일을 어린 아들을 데리고 이어가시는 부분을 읽을 때 그 심정이 어떨지 누가 정확히 알까 싶어 마음 아팠다. 자신의 안위보다는 내내 남편 걱정, 자식 걱정으로 가득했다.

 

고어투에 모르는 인물이 많아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는 않지만,

그 어투 자체가 귀중한 자산 같다.  

 

광복절이라고 아이들이랑 <밀정>, <암살>, <박열>을 쭉 보았는데, 어투가 다 현대 입말에 복식도 현대에 맞게 화려하게 해서 그런지 뭔가 아쉽다. 차라리 흑백을 택한 <동주>의 선택이 더 탁월했을지도.

 

다만 <암살>에서 김원봉 역을 맡은 조승우 배우님이 타겟을 타겟트라고 발음한 부분에 많이 설렜다. 또 봤는데도 여전히 같은 지점에서 반하고야 마는.

 

 

 

 

 

 

 

 

 

 

 

 

 

 

 

 

이번 주말을 책임져준 <조선 정신과의사 유세풍>

 

조선정신과의사에 이끌려 빌렸는데 구르미 같은 류인가 싶어 망설이다가 다 읽어냈다.

 

사실은 구르미...성균관유생.... 이런 책들을 아예 읽지도 않았다.  

뭐든 읽지도 않고 섣불리 판단하지는 말아야겠다. 

 

역사에서 취할 수 있는 건 무궁무진하구나.

 

조선시대에도 '심의' '정신과의사'가 있었다면 자결하는 수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가부장제 하에서 인고의 세월을 겪어 비정상이 된 여인들과 신분과 직업, 가정사로 문제를 겪는 여러 군상을 보다보면 조선시대라고 해서 지금과 크게 다를까 싶기도 하다.

 

어투가 많이 발랄한 부분이 있어 드라마화를 노린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머릿속으로 마구마구 홀로 캐스팅을 하며 즐겁게 읽었다.

 

 

 

 

 

 

 

 

 

 

 

 

 

 

 

 

 

 

중간중간 함께 보고 있는 에세이들

 

둘 다 명성이 자자한데 다 읽어내질 못하고 있다.

책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빌린 책들 반납일이 닥쳐오면서 그 책들부터 해치우느라.

 

 

 

 

 

 

 

 

 

 

 

 

 

 

 

 

 

 

빌리고 나니 전에도 읽었었지, 아차 싶었다. 

 

그래도 현재 내 삶과 가장 맞닿은 책이라 그런지

또 봐도 반갑다.

 

작가님 성향이 나와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그게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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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방학을 보내며 책도 이제는 나만 읽고 (둘 다 유튜브에 빠져 살고 있음. 시야에 안 보이면 안 봐도 유튜브, 몰래몰래 좋아하는 채널 보고 있는 것.)

 

여기저기 나들이도 많이 다니며 이런저런 상념에 젖었는데

글로 남겨두질 않으니 다 흩어져 버렸다.

 

남겨도 역시 부질없겠지만

그래도 기록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부쩍 자주 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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