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단편선집 - 국내 미발표작
레오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강주헌 옮김 / 오늘의책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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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바보 이반' 등 톨스토이의 대표적인 단편소설들에서 볼 수 있는 기독교적 사상이 다시 한번 드러나는 단편 6편을 엮어놓은 책이다. '젊은 황제', '세 죽음', '무도회가 끝난 뒤', '악마' 등의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이라는데 의의가 있을뿐, 다분히 교훈적인 작품들이라는데에는 변함이 없다. IMF 체제라는 힘든 상황에서 우리에게 삶의 교훈 즉 극복과 인내를 줄 수 있는 작품으로 선별했다는게 출판사 측의 변 중 하나이나 국내 미발표작, 양장 커버, 동화적 삽화 같은 카피에서도 보이듯 상술에 치중한 책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개인적으로 '악마'라는 작품이 가장 가슴에 와닿았는데, 주인공이 육체적 쾌락 때문에 바람을 피는 내용이었다. 톨스토이답게 역시 교훈적인 문장으로 일관되지만 그나마 주인공의 심리적 갈등이 리얼하게 묘사되는 작품이었다. 톨스토이를 제대로 읽고 싶다면 역시 <부활>(61세 집필) 혹은 그 이전의 장편을 읽는 쪽을 추천한다. 말년의 그는 기독교에 경도했기 때문에 비기독교인에게는 식상하고 따분하게 느껴지는게 사실이며 특히 단편에서는 기독교적 냄새가 더 짙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03.9.2 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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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게임 1
사이토 타카오 지음 / 아선미디어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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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에 연재가 시작된 <고르고13>으로 유명한 사이토 타카오의 작품으로, <브레이크 다운>과 더불어 재난 만화의 원조, 효시라 할 수 있는 만화다. 아마 '재난물'이라는 세 글자로 이 만화의 대충의 윤곽을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위의 두 작품으로 인해 '장르화'가 이루어졌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두 작품은 아포칼립스의 설정을 제외하고는 정서라든가 전개, 캐릭터 등의 면에서 거의 동일하다.

여기서 굳이 재난물의 특징을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내용으로 바로 들어가자면 이 작품은 대지진으로 인한 아포칼립스 후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사토'라는 소년인데 심지곧고 보기 드물게 윤리의식이 확실한 소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만화답게 이 소년은 타락하거나 끔찍한 일(아포칼립스라는 상황을 제외하고)을 겪게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작가 사이토 타카오는 주인공을 영웅화하지도 않고 주인공에게 타락한 주변 인물들을 개심시키는 기적같은 힘을 주지도 않는다. 아포칼립스라는 상황 하에서도 모든게 담담하게 전개된다.

사이토 타카오는 만화에 영화의 기법을 도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최근의 '정말로 만화다운 만화'에서 찾을 수 있는 카타르시스가 발견되지 않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사실 그런 잘 된 만화가 드물긴 하지만). 그 이전에 너무나 소년만화답다는 사실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이 만화를 읽으며 탄성을 짓게 하는 것은, '재난물'로 돌아와 작가의 해박한 '생존지식' 그중에서도 약/독초에 관한 민간지식이다. 이러한 서바이벌 팁들을 통해 작가는 현대의 소년 독자들에게 유용성이라든가 실용성을 제시하는게 아니라 그 극한 상황 하에서의 담담함 혹은 심지곧음을 시사하려고 한 것이 분명하다. 위에서 언급했듯 나이브하긴 하지만 의의는 있다 하겠다. by 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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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수호자 1
오기노 마코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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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왕]으로 퇴마 만화의 거장으로 떠오른 작가라고 하는데 모르고 이 작품부터 읽게 되었다. 1권, 그리고 아마 3권까지도 秘敎와 주술에 바탕을 둔 평범한 일본적 퇴마 만화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죽은자의 문이 열리고 야차가라스가 지옥 六도에 돌입하게 되면서부터 10권에 가까워질수록 이 작품의 스케일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커져버리게 된다. 그래도 너무나 일본적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3권까지는 분명 간간히 등장하는 노출과 유머들이 그다지 부담없이 다가오며, '앞으로도 이런 식의 에피소드들로 권수만 채우는 만화가 되겠군'이라고 생각되지만 그 뒤로 정신없이 전개되는 스토리는 가히 혼란스러움의 수준이 보통 독자의 이해 수준을 능가해버리게 된다. 그 가운데 '결국 주인공이 세상을 구하겠지'라는 소년만화를 읽을 때 쉽게 생기는 독자의 믿음조차 흔들리게 되며, 결말이 다가올수록 독자는 안도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조마조마해지고 작품에 몰입하게 된다.

그렇다고 엔딩을 말해버리는건 독자의 즐거움을 뺏는 행위이므로 밝히지 않기로 한다. 다만 위에서도 언급했듯 이 만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의 고대 설화나 종교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밝힌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한계이지만 적어도 그 분야에 대해서 작가가 치밀한 연구와 고증을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전혀 봉건적, 국수주의적이지 않다. 그리고 '어찌됐든 주인공이 이겨서 히로인과 해피엔딩'식의 소년만화의 공식을 피한 것 또한 찬사를 보낼만한 점이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는데, [견신]에서도 소개된바 있는('나라는 현상은…'으로 시작되는 시: [봄과 수라]의 序) 미야자와 겐지의 문학 - 그리고 겐지 본인까지도! - 이 후반부에 걸쳐 매우 신선한 해석을 통해 재조명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작가 혼자만의 상상력인지 다른 학자의 것을 빌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겐지 같은 순수한 사람의 문학을 퇴마 만화에 차용해 중대한 요소로 발전시킨 것은 정말로 신선하고 충격적이기까지 한 시도였다.

작화 솜씨가 우수한 것은 아니지만 치밀한 구성에 의한 후반부에 이를수록 배가되는 몰입감이 정말 일품인 작품이다. 또한 전형적인 퇴마 만화적 요소들 예컨대 그로테스크한 괴물(요괴), 미녀, 전투, gore, 강간 혹은 주술적 섹스 같은 볼거리뿐만 아니라 고증된 지명, 인명 등을 통한 전문성까지 갖추고 있어서 더욱 훌륭한 작품이다. 다만 후반부에서 좀더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완급을 주어 진행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0권이라는 분량이 오히려 너무 짧게 느껴질 정도의 스케일을 담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by 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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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라문 1
카와하라 마사토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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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으나 읽다 보니 어렸을 때 포켓 사이즈의 해적판으로 대충 구경한 적이 있는 작품이었다. 연재가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꽤나 오래된 작품이라는게 커버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난다. 그리고 커버를 넘기면 어김없이 작화에서도 오래된 티를 느낄 수 있다.

내용은 한마디로 [드레곤볼]류의 무한 등장하는 강자와의 배틀 그리고 주인공의 승리다. 비슷한 격투기 만화로 [격투왕 바키] 시리즈나 [유우코의 대공] 같은 작품이 있다만 ([권법소년] 정도의 수작은 예외로 한다)시기적으로 아마 이 작품이 원조라 생각된다. 여기에 '무츠 원명류'라는 무패의 살인권이 소재로 등장한다. 알다시피 [바람의 검심] 등에서 보여지는 소년만화다운 활인권과 어느정도 대척점에 서있는 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라문] 역시 소년만화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독자가 원하는 것은 '만화 캐릭터도 인간처럼 죽는다'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주인공이 질 수도 있다'인 것이다.

격투만화 치고는 내외적으로 과장됨이 없는 것은 이 작품의 장점이다. 특히 여백의 미라고 우기면 우길 수도 있는 작풍은 다른 만화들에서 보이는 피와 근육의 난무보다 훨씬 깔끔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마초이즘의 냄새까지는 지우지 못했다. 아니 이 작품이 원조가 맞다고 하면 위에서 언급한 [유우코의 대공]이나 [격투왕 바키]에서 남자 주인공 곁에 히로인이 붙어다니며 눈물 흘리는 공식이 아마 이때 완성된건지도 모른다. '남자는 강하지만 여자는 그런 남자를 지배하므로 더 강하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다.

엔딩은 예상했던대로였다. 여백에 이어 여운을 남기는 엔딩 장치다. 다만 무츠가 죽는 모습(패배하는 모습이 아니라. 기대도 안한다) 그리고 공개되지 않은 필살기(?) 사문의 청룡, 백호 기술을 볼 수 없다는 사실만이 조금 안타까울 뿐이다. 어쨌든 격투기 만화의 효시 혹은 고전으로서의 의의는 있는 작품이었다. by 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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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회귀선
헨리 밀러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세계사 / 199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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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소설이다. 혹은 나쁜 책이다. 어쨌든 나쁜 무엇인가다. 그래서 끌리는지도 모른다. 잘 썼다고도 말하기 곤란하다. 번역의 문제 같지는 않다. 원체 이해를 목적으로 씌여지지조차 않는 문장이다. 현학적이라기보다 비속하고 몽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루하지는 않다. 사실은 굉장히 사치스러운 소설이다. 역시 그래서 끌리는지도 모르겠다. 문장이 사치스럽고 이미지가 사치스럽고 사고가 사치스럽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비유 중 사치스럽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 사치스러움을 비속한 언어와 생활로 포장하고 있는게 정말 패러독스다.

이 소설을 읽고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 있다면 '파리에 가봐야 한다'라는 강박 관념 정도. 그리고 그보다도 인상깊은 것은 한 끼 식사를 위해 돈도 품위도 지성도 인격도 섹스도 자존심도 모두 내던질 수 있는 주인공의 식사지상주의이다. 그런 의미에서 배는 고프되 자신을 버릴 수 없는 나는 한참 내공이 아래인 셈이다. 이 소설을 읽고 한 장면이라도 섹스 장면이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존경을 표하겠다. 그전에 이 소설을 끝까지 읽기만 해도 존경을 표하겠다. 그러나 물론 읽지 않는게 더 좋다. by 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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