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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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마리아, 과장을 해도 정도껏 해야지. 그건 사오십 분 정도에 불과해. 아니, 옷 벗고, 예의상 애정 어린 몸짓을 하고, 하나마나한 대화 몇 마디 나누고, 다시 옷 입는 시간을 빼면, 섹스를 하는 시간은 고작 십일 분밖에 안 되잖아."(p.117)라는 (아마도) 니아의 말마따나 고작 11분에 불과한 섹스란 것이, 우리의 삶에서는 강박적일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인류학적, 고고학적, 생물학적, 경제학적 유래와 원인이 다 있겠지만, 그건 여기서 할 얘기가 아니니 차치하자. 어쨌든 현대사회의 섹스란 11분이라는 짧은 시간으로 환원되는 무감흥한 행위이면서도, 사람들은 그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끝없이 집착하는 일상적인 행위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11분]은 장르를 구분하자면, 단순한 로맨스 소설 혹은 에로티카로 분류해도 아무 상관없을 소설이다. 성장 소설이라고까지 보는 건 약간 오바. 여기에 추가되는 게 바로 섹스와 성스러움의 관계다. 줄거리상 중후반부에 특히 두드러지는 내용인데,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는 않다. 그런데 여기서 성스러운 섹스라는 것이 사랑, 순결, 결혼 등 고리타분한 가치들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점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오히려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예를 들어 결혼이라든가), 서로 구속하면서 일상적인 11분의 섹스로 돌아간다고 주장한다. 즉 작가는 섹스에다가 정신적, 종교적, 그리고 비의적(arcane)이기까지 한 색체를 투사하고 있는데, 한편 쌩뚱맞아보이면서도, 동양적인 정서에 와닿아 조금 마음이 끌리는 게 사실이다.

생각해보라. 수 세기 동안 신화화된 사랑이라는 허구, 그리고 그 허구적인 사랑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판타지의 대상으로서의 섹스. 그런 수많은 연애공식(과 이별공식)에 충실하기 위해 골머리썩힐 바에, 차라리 그 노력을 섹스 행위 자체에 들인다면. 그럼으로써 일상적인 섹스 이상의 육체적 쾌락과 정신적 황홀경에 닿을 수 있다면! 그런 의미에서 "…사랑의 기술은 그림과 같아요. 테크닉과 인내, 그리고 무엇보다 커플간의 실천을 요구하니까요. 또 대담해져야 하구요. 사람들이 흔히 '사랑을 나눈다'고 부르는 것 너머까지 가야만 해요."(pp.329-30)라는 마리아의 지적은 실로 예리하다. 모든 독자들이(반성, 또 반성 중…) 진지하게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멋진 데이트 상대와의 근사한 첫날밤을 상상하는 매스컴의 희생자들이여, 꿈 깨시라. 어이 거기, 매일밤 하는 섹스가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하는 젊은 커플도, 부디 분발하시길.

이상을 종합해서, 실용적인 측면에서, 이 소설의 메시지를 대략 요약하자면, 서로 구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두 영혼이 열심히 서로를 탐구하며 쾌락을 추구하면 저 멀리 '빛'의 영역에 도달할 수 있다,라는 소리가 되겠다. 음, 근데 이거 요약이랍시고 해놓고 찬찬히 읽어보니, 내가 보기에도 참 아스트랄하네 -_- (필유, 2006.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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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 Buckley - Grace
Jeff Buckley 노래 / 소니뮤직(SonyMusic)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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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를 하나의 악기로 비유한다면,
제프 버클리의 목소리는 차라리 '인간 이상의 그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1994년 스물일곱의 나이로 그는 데뷔작 [Grace]를 발표했고,
2년 9개월 후 어이없는 익사로 세상을 떠났다.
내가 제프 버클리를 알게 된 건 이미 그가 죽은 후였지만,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의 음악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있다.
Eternal Life. 그의 노래처럼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있을 거다.

'꼭 한 장은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할 명반'이라는 카피는 과장이 아니다.
당신이 지금 당장 이 음반을 사지 않더라도,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당신은 수도 없이 제프 버클리에 대한 전설을 듣게 될 것이다.
[Grace]는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빛을 발하는 음반이다.
(2005년 9월, 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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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도 마침내 들어왔군요.
9월부로 재발매된 본 미드 프라이스반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또한번의 울궈먹기라든가, 제프 버클리의 싸구려화(-_-)라든가.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아직도! 이 음반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절호의 구매 찬스가 왔다는 사실 말이죠.

다음 글은 9월 중순에 모 쇼핑몰에 게재된, 해당 음반사 현직 종사자 한 분의 해명(?)글입니다.
창고 베스트 리뷰로 뽑혀서 대문에 한동안 걸려있었죠.
제프 버클리의 팬이라면 한번 읽어보세요.
(노파심에서 하는 얘기지만, 특정 회사 또는 인물에 대한 광고 목적이 아님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http://www.changgo.com/changgo/n_review.cust_list?a_cust_id=jfk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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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리포트 SE [dts] - [할인행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톰 크루즈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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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못 봤던 거라 아쉬웠던 영환데, 어제 밤에 티비에서 나오길래 또 채널 고정해버리고 감상했다. 익히 광고 등을 통해 살짝살짝 본 적이 있는 비주얼 퀄리티는, 역시나 상당한 수준이었다. 극장에서 본다면 분명 더 엄청났을 테지. 그런 면에서 볼 때 티비는, 영화의 '형식'보다는 '내용'에 초점을 맞추게 해주고, 결과적으로 영화를 어느정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아 이건 사실 극장 못 간 데 대한 핑계다-_-) 

그러니까 '내용'만 가지고 얘기하자.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익히 알려진 필립 K. 딕([블레이드러너]의 원작 [안드로이드는 전자양의 꿈을 꾸는가]의 저자인)의 동명 단편소설을 기초로 하고 있는 만큼, 일정 수준 이상의 탄탄함을 보여준다. 라고는 하지만, 사실 뭐 엄청난 반전이라든가 복잡한 복선이나 두뇌게임을 제공하는 건 아니다. 대신 SF의 관점에서, 미래사회의 디스토피아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는데 큰 비중을 할애하고 있었다. 원작은 못 읽어서 모르겠고, 적어도 영화는 그랬다. 

그러니까 [1984](이외에도 많지만)처럼 개인이 거대권력에 의해 강하게 통제받는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망막을 주민등록증(혹은 신용카드로도 가능할지도)처럼 사용한다는 설정인데, 주민등록증과는 달리 망막은 뒷주머니 지갑 속에 넣고 다니다가 필요시에만 꺼내서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특히 행인의 망막을 감지해서 개인맞춤형 광고를 하는 장면은 상업자본주의를 까대고 있는 인상을 받는다. 범죄예방국(precrime)으로 대표되는 거대권력이 하는 일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범죄자 한 명을 찾기 위해 빈민가의 아파트를 돌며 혐오스러운(!) '스파이더' 로봇을 침투시켜 거주민들에게 망막 신원확인을 강제하니까. 이건 지금 사회의 경찰들이 하는 불심검문과 단순히 '강도'의 차이만 있는 게 아니다. 영화에서 신원확인의 대상이 되는 것은 거주지가 분명치 않은 빈민층이라는 점에서, 즉 신원이 분명치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프라이버시는 물론이고 인권도 존중해주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문제가 있다. 즉, 미래사회에서 개인의 인권침해 문제는 빈부의 격차 및 소외계층 문제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가 없는, 결국 '자본'의 문제로 귀결되는 문제들이라는 얘기.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제목이 뜻하는 '소수 보고서'('소수 의견 리포트'라는 번역은 좀 이상하지 않나-_-?)는 중의적으로, 바로 이 디스토피아 속에서 살고 있는 '소수'들의 삶을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저자가 의미한 '소수 보고서'는, 영화속에도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예지된 미래와는 별개의 또다른(alternate) 미래에 대한 리포트다. 여기서 잠깐 살펴보면, [다크 씨티]라든가 [싸이퍼] 등에서처럼, 미래사회에서 개인의 기억이 권력에 의해 조작되는 내용을 그린 영화는 많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좀더 새로운 내용을 그리고 있다. 이미 일어난 과거가 아니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까지도 조작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물론 이건 이미 '예지자'들의 존재에 의해 가능한 일인데, 단지 이를 악용하는 것이 범죄예방국이라는 점에서 문제의식이 조금 나이브하게 다가오기도 한다.(과학은 가치중립적인가,라는 논쟁을 생각해보라) 어쨌든 정해지지도 않은 미래를 일어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미래는 단순한 미래가 아니라 정해진 '운명'이 된다. 운명의 신을 짜는 세 여신을 상징하듯 예지자가 세 명인 것도 의미심장하다. 그러니까, 아가사가 존의 '내 소수 의견 리포트는 어딨어!?'하는 질문에 '없어요'라고 대답하는 장면은, 비유적으로 미래사회에서는 개인의 미래, 아니 반드시 오게 될 미래라는 의미에서는 운명,조차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로 보면, 버지스가 엔딩부에서 딜레마에 빠지는 것은 참 그럴싸한 장면이다. 버지스 역시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선택하고 싶어한다. 그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이며, 당연한 일이다. 개인의 미래는 권력의 것이 아니라 온전히 개인의 것이다. 그래서 권력의 핵 버지스는 스스로 자신의 권력을 부정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것은 곧 범죄예방국이라는 권력의 몰락을 의미한다.

뭐, 글이 길어졌는데; 대충 그런 내용인 것 같다. 늘 대중 곁에 서있는 스필버그 할아버지 영화답게,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고 달리 해석할 여지도 없을 것 같다. 어쨌거나 브라보 해피엔딩,이랄까. 그야 남의 메시지를 빌려왔으니 메시지가 과히 날카로운 편은 아닌데, 애초에 스필버그 할아버지는 그런 거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문제의식에 비해 대안이 비리비리한 것도 사실이다. 범죄예방국은 사라졌지만 망막 주민등록증은 계속될 테니까. 하기사 문제 해결과정 자체가 완전 톰 크루즈 영웅만들기인 건 또 어떻고-_- 에이, 스필버그 할아버지한테 기대할 걸 기대해야지. 뭐, 그냥 화려한 SF 블록버스터 봤다고 생각하는 게 그냥 마음 편한 일일 듯.(05-12-17, 필유) 


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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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권 - 할인행사
원화평 감독, 성룡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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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나온 지 30년이 다 되가는 영화를 감상한다는 행위 자체가 상당히 엄한 행위인 게 사실인데 게다가 그 영화가 상업영화인데다가 액션영화였으니, 이 시대 관객의 시각으로 보면 구식으로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시 막 이소룡을 대체하기 시작한 새로운 액션스타 성룡의 전성기 무술연기를 볼 수 있다는 의의는 부정할 수 없다. 30년 뒤에 [옹박]을 보는 관객이 어딘가에 존재하리란 사실이 자명하듯이 말이다. 

또 하나 '취권'이라는 웃기는(?) 무술을 정말로 웃기게 소화하고 있는 성룡의 연기는 나름대로 굉장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이미 성룡은 이 영화에서, 후에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클리셰들을 충분히 이용하고 있다. 권선징악적인 내용은 그렇다 치자. 진지할래야 진지할 수가 없는 성룡이라는 캐릭터는 30년 전에도 그대로였고, 거기에 어울리게 지형지물(!)을 활용하는 코믹하고 난잡하며 이따금 아크로배틱하기까지도 한 액션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확실히 이 분야에서 성룡을 따라갈 배우는 없을 거다. 

현재의 성룡표 영화에는 여기에 로맨스가 추가되었다는 정도의 차이점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너무 매너리즘에 빠지고 있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로 '거기서 거기'라는 게 아쉽다면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만...  흔히들 말하는 '명절용 영화'에 성룡 영화만큼 어울리는 영화가 또 어디 있을까. 악은 언제나 패배하고 선은 언제나 승리하는 무겁지 않은 내용과, 코믹해보이는 동시에 감탄스러운 무술 연기. [취권]은, 성룡의 이런 전형적인 스타일이 막 확립될 무렵의 그를 만날 수 있는 나름대로 유익한 감상이었다.(05-12-17, 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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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losions In The Sky - Those Who Tell The Truth Shall Die
Explosions In The Sky 노래 / 파스텔뮤직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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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런 음악은 진짜, 뭐라고 말로 설명하기가 좀 그렇다.

그냥 들어보라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차라리 눈도 감고 불도 끄고,
그냥 음악만 들어보라고,
그렇게만 말하고 싶다.

바꿔 말하면, 단지 쉽게 들을 수 있는 음악,
아무 부담없이 틀어놓고 딴짓하면서 흥얼거릴 수 있는 음악,
그런 음악을 찾는 사람이라면, mp3조차 들을 필요도 없을 음반이다.

글쎄, 처음에는 나름대로 객관적인 평을 써볼까 했는데
막상 씨디를 사서 부클렛을 펴보니 장육 씨가 쓴 글이 너무나 완벽해서,
더이상 뭐라뭐라 더 늘어놓을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아, 이런 기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것 같다.
우리가 음악을 듣는 이유는,
바로 이런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어하기 때문이 아닐까.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음반...
다음에 기회가 나면 길게 써봐야겠다, 아마도 2집이나 데모 앨범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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