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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리포트 SE [dts] - [할인행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톰 크루즈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극장에서 못 봤던 거라 아쉬웠던 영환데, 어제 밤에 티비에서 나오길래 또 채널 고정해버리고 감상했다. 익히 광고 등을 통해 살짝살짝 본 적이 있는 비주얼 퀄리티는, 역시나 상당한 수준이었다. 극장에서 본다면 분명 더 엄청났을 테지. 그런 면에서 볼 때 티비는, 영화의 '형식'보다는 '내용'에 초점을 맞추게 해주고, 결과적으로 영화를 어느정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아 이건 사실 극장 못 간 데 대한 핑계다-_-)
그러니까 '내용'만 가지고 얘기하자.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익히 알려진 필립 K. 딕([블레이드러너]의 원작 [안드로이드는 전자양의 꿈을 꾸는가]의 저자인)의 동명 단편소설을 기초로 하고 있는 만큼, 일정 수준 이상의 탄탄함을 보여준다. 라고는 하지만, 사실 뭐 엄청난 반전이라든가 복잡한 복선이나 두뇌게임을 제공하는 건 아니다. 대신 SF의 관점에서, 미래사회의 디스토피아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는데 큰 비중을 할애하고 있었다. 원작은 못 읽어서 모르겠고, 적어도 영화는 그랬다.
그러니까 [1984](이외에도 많지만)처럼 개인이 거대권력에 의해 강하게 통제받는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망막을 주민등록증(혹은 신용카드로도 가능할지도)처럼 사용한다는 설정인데, 주민등록증과는 달리 망막은 뒷주머니 지갑 속에 넣고 다니다가 필요시에만 꺼내서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특히 행인의 망막을 감지해서 개인맞춤형 광고를 하는 장면은 상업자본주의를 까대고 있는 인상을 받는다. 범죄예방국(precrime)으로 대표되는 거대권력이 하는 일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범죄자 한 명을 찾기 위해 빈민가의 아파트를 돌며 혐오스러운(!) '스파이더' 로봇을 침투시켜 거주민들에게 망막 신원확인을 강제하니까. 이건 지금 사회의 경찰들이 하는 불심검문과 단순히 '강도'의 차이만 있는 게 아니다. 영화에서 신원확인의 대상이 되는 것은 거주지가 분명치 않은 빈민층이라는 점에서, 즉 신원이 분명치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프라이버시는 물론이고 인권도 존중해주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문제가 있다. 즉, 미래사회에서 개인의 인권침해 문제는 빈부의 격차 및 소외계층 문제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가 없는, 결국 '자본'의 문제로 귀결되는 문제들이라는 얘기.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제목이 뜻하는 '소수 보고서'('소수 의견 리포트'라는 번역은 좀 이상하지 않나-_-?)는 중의적으로, 바로 이 디스토피아 속에서 살고 있는 '소수'들의 삶을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저자가 의미한 '소수 보고서'는, 영화속에도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예지된 미래와는 별개의 또다른(alternate) 미래에 대한 리포트다. 여기서 잠깐 살펴보면, [다크 씨티]라든가 [싸이퍼] 등에서처럼, 미래사회에서 개인의 기억이 권력에 의해 조작되는 내용을 그린 영화는 많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좀더 새로운 내용을 그리고 있다. 이미 일어난 과거가 아니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까지도 조작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물론 이건 이미 '예지자'들의 존재에 의해 가능한 일인데, 단지 이를 악용하는 것이 범죄예방국이라는 점에서 문제의식이 조금 나이브하게 다가오기도 한다.(과학은 가치중립적인가,라는 논쟁을 생각해보라) 어쨌든 정해지지도 않은 미래를 일어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미래는 단순한 미래가 아니라 정해진 '운명'이 된다. 운명의 신을 짜는 세 여신을 상징하듯 예지자가 세 명인 것도 의미심장하다. 그러니까, 아가사가 존의 '내 소수 의견 리포트는 어딨어!?'하는 질문에 '없어요'라고 대답하는 장면은, 비유적으로 미래사회에서는 개인의 미래, 아니 반드시 오게 될 미래라는 의미에서는 운명,조차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로 보면, 버지스가 엔딩부에서 딜레마에 빠지는 것은 참 그럴싸한 장면이다. 버지스 역시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선택하고 싶어한다. 그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이며, 당연한 일이다. 개인의 미래는 권력의 것이 아니라 온전히 개인의 것이다. 그래서 권력의 핵 버지스는 스스로 자신의 권력을 부정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것은 곧 범죄예방국이라는 권력의 몰락을 의미한다.
뭐, 글이 길어졌는데; 대충 그런 내용인 것 같다. 늘 대중 곁에 서있는 스필버그 할아버지 영화답게,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고 달리 해석할 여지도 없을 것 같다. 어쨌거나 브라보 해피엔딩,이랄까. 그야 남의 메시지를 빌려왔으니 메시지가 과히 날카로운 편은 아닌데, 애초에 스필버그 할아버지는 그런 거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문제의식에 비해 대안이 비리비리한 것도 사실이다. 범죄예방국은 사라졌지만 망막 주민등록증은 계속될 테니까. 하기사 문제 해결과정 자체가 완전 톰 크루즈 영웅만들기인 건 또 어떻고-_- 에이, 스필버그 할아버지한테 기대할 걸 기대해야지. 뭐, 그냥 화려한 SF 블록버스터 봤다고 생각하는 게 그냥 마음 편한 일일 듯.(05-12-17, 필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