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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평점 :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작년에 읽었던 이 책을 다시 펼쳐본다. 2011년에 나온 베스트셀러이니 처박아두고 읽기까지 마침 7년 정도
걸린 셈이다. 막상 읽기 시작하자 (잘 쓴) 스릴러답게 금방 몰입하여 끝까지 읽었다. 인물이 많지 않음에도 장마다
시점과 시간대가 바뀌는 등 초반부터 속도를 내기는 어려웠지만, 반대로 영화에서는 어떻게 접근성을 더 높였을지가
은근히 기대되기도 한다.
장편소설은 그 분량만으로도 압도적인 무언가가 있다. 플롯만 놓고 보면
단순한데 어떻게 이런 플롯으로 500쪽이 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게다가
잘 읽힌다. 예외가 있다면 현수가 죄책감으로 꾸는 꿈이나 자해의 묘사가 필요 이상으로 고통스럽고 길다는
점 정도. 반면 세령이 당하는 학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그 반복성과 일상성과 대조적으로 다분히
불충분하고 간접적으로 묘사된다. 아동 학대라는 소재는 대놓고 묘사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나머지 많은 분량은 대화와 심리묘사, 그리고 영화를 보는 듯한 시각적
이미지, ‘스릴러스러운’ 사건 진행의 서술이다. 이들은 다른 많은 (잘 읽히고 또한 잘 팔리는) 스릴러물에서 공통되는 요소일 거다. 이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디테일이다. ‘아저씨는 배를 앵커시키고, 후미 쪽에 형광색
다이빙소시지를 띄웠다. 귀환지표였다. 나는 BC포켓을 납작하게 밀착시켜 부력을 줄였다. 보조공기통을 챙기고 호흡기
상태를 체크하고, 핀(오리발) 스트랩을 당기고 아저씨와 바디라인을 연결했다. 우리는 스탠딩자세로
입수했다.’(36쪽) 이 문단의 핵심 정보는 첫 문장의 앞
절과 마지막 문장뿐이다. 나머지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일반인이라면
사는 동안 한 번 접할까 말까 한 전문용어들의 나열이다. 작가는 2년간
검찰 수사관, 119구조대 잠수교관, 토목시공기술사, 댐 운영관리팀 등을 취재하며 소설을 썼고, 그 노고는 고스란히 작품에
녹아 생생함을 더해준다.
앞에서 인용한 부분은 일례일 뿐이나, 특히 저 부분이 소설 초입인
걸 고려하면 속도감 따위보다 ‘내가 얼마나 성실하게 취재했는지, 소설이란
게 단순히 책상머리에서 쓰일 수 있는 게 아님을 너희에게 똑똑히 보여주겠어!’라는 작가의 곤조가 전해지는
듯하다. 그러니 다소 장황하게 느껴지는, 하영의 편지나 승환의
기록 등 인용문으로 서사가 풀리는 데 대한 불만은, 넘어가는 게 옳겠다.
감탄과 존경심은 들지만,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절대악이 있고, 실수로 죄를 지은 자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다 자멸하나 그의 아들은 선인의 도움으로 절대악을 물리쳐 복수를 완결 짓는다. 절대악은 왜 절대악이
되었나. [차가운 달]처럼 인간 심리의 불가지성을 전제하기라도
한 듯한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에서도 절대악 영제의 범죄 심리는 누구도 헤아릴 길이 없다. 그저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절대악이고, 타도해야 할 대상일 뿐이며, 결국은 (무릇 독자의 기대대로) 파훼된다. 어느 인물군에 비중을 더 둘지가 상업적으로 자명하다면 자명한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선악의 불균형,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플롯의 근본적인
선형성이 조금은 마뜩잖다. 작가는 현수를 중심에 두고 선악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긴 했으나 떡밥을
잘 회수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