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나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김수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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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광고에 이끌려 산 [바람의 그림자]로 사폰의 팬이 되었고(‘잊혀진 책들의 묘지’라니 이 얼마나 멋진 설정인가) 이후 한동안 그의 소설을 열심히 읽었다. 물론 세상에 영원히 멋진 것은 없고, 이 책 [마리나]가 나왔을 때쯤에는 책 소개나 작가 자신이 ‘청소년을 위해 쓰는 마지막 작품’이라고 칭한다는 사실부터 뭔가 매너리즘의 기운이 만연했다. 그래도 속는 셈 치고 팬심으로 읽어나갔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읽은 다음에는 이제 사폰 그만 읽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년시절에 형성되어 일생을 쫓아다니는 많은 것 중에서도,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만큼 끈질긴 게 또 있을까. 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의 의미부터 불명확하고, 10대 중반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게 가능한지, 가능하다고 가정해도 어딘가(결혼?)로 귀결될 수 있기나 한 건지 의문투성이긴 하다.


그러니까, 유년시절의 첫사랑이란 정의상 이루어질 수 없는 무엇인가로 봐도 될 것 같다는 거다. 20세기까지의 기준으로는 이사+전학 콤보가 단골 원인일 테고, 여기서 끝나지 않고, 시간이 흘러 재회해서 결실을 이룬다든가 하는 운명 같은 사랑을 많은 대중 예술이 단골 소재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대상이 죽었다면 재회고 뭐고 불가능하다. 물리적으로. 성인도 사별을 극복하지 못하는데, 유년에 겪은 사별은 얼마나 일생을 따라다니겠는가. 그 이루지 못한 첫사랑을, 다른 누구보다도 평생 애틋하고 아련하게 회고할 권리가 있다. 그런 아픈 첫사랑 사연에, 사폰 특유의 고딕 미스터리 모험담을 합쳐놓은 게 [마리나]다.


화자 열다섯 살배기 오스카르의 동갑인 마리나에 대한 첫사랑은 안 그래도 이루어지는 게 불가능할 터인데, 마리나는 병약한 데다가, 둘은 검은 옷의 여인(!)이라든가, 매드 사이언티스트(!) 콜베니크 같은 빌런을 좇으며 큰 위험에 휘말리기까지 한다. 어두운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오는 읽는 재미와 서스펜스는 탁월하다. 이런 건 검증된 사폰이니까.


하지만 이러한 미스터리 서사의 작위성을 덜고 첫사랑의 아련함을 더 부각하는 것이 작가 자신의 의도와 더 부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는 게 문제다. 마술적 리얼리즘 같은 수식이 과연 그의 작품에 어울리는가 하는 문제도 있지만, 이건 논외로 치자. 항상 엄청난 미스터리와 모험에 연루되는 사폰 소설의 10대 주인공들. 이게 내가 그의 작품들에서 느끼는 매너리즘의 원인이 되고, 나아가 작가가 실제 겪었을(혹은 겪었다고 가정할 법한) 가슴 아픈 첫사랑 일화에 작가 자신이 품고 있을 진정성마저, 안타깝게도, 다소간 의구심의 대상으로 만든다. ‘고딕풍 연애담’도 한두 번이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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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 정신질환자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그 혼돈의 연대기
론 파워스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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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있습니다. 외면하고 싶었던 진실을 알게 돼서 마음이 아파요. 저자는 조현병의 정의, 원인, 잘못된 인식을 정리하고 사이사이 자신의 아픈 가정사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동시에 정신질환과 정신장애를 사회가 어떻게 대했는지 폭력의 역사를 짚습니다. 세상에 꼭 필요한 책, 널리 읽히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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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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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무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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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우르릉 쾅쾅 이야기 반짝 4
임고을 지음, 이지은 그림 / 해와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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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끔찍이 싫어하고 천둥치면 무서워서 꼼짝 못 하는 한 아이에게 선물했다. 부디 비와 천둥 소리를 좋아하는 주인공을 통해 그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극복할 수 있길. 작가의 상상력으로 이야기가 판타지하게 뻗어나가는 게 대단히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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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트루스 - 가짜 뉴스와 탈진실의 시대
리 매킨타이어 지음, 김재경 옮김, 정준희 해제 / 두리반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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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미있다. 깔끔한 문장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고, 번역도 훌륭하고, 편집 완성도가 높아 읽는 동안 막히거나 거슬리는 데가 없다는 점. 내용 면에선 진실이 왜곡되는 사회현상의 원인을 다각도 분석해주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는 점. 3장까지만 읽어도 대단히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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