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제국 - 결혼이 지배하는 사회 여자들의 성과 사랑
노부타 사요코 외 지음, 정선철 옮김 / 이매진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우에노 치즈코'는 이 책으로 처음 만났는데, 다른 책을 좀 더 읽어봐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만으로는 뭔가 불편한 마음이 들게 하는 작가여서. 이 책은 '우에노 치즈코'와 '노부타 사요코'의 대담으로 이루어졌는데, 대부분의 주장에 대해 나는 우에노 치즈코와 같은 생각이긴 하지만, 그런데 어느 지점인지 묘하게 불편한거다. 상대를 윽박지르는 것 같다는 생각과 지나치게 고집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이게 대담집이기 때문에 더 두드러진 건지도 모르겠다. 노부타 사요코는 화나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후기를 보면 화내기는 커녕 우에노 치즈코로부터 많이 배웠다고 되어있다.


우에노 치즈코에 대한 어떤 불편함이 아니라도 책 자체로 크게 만족스럽진 않다. 일본이라는 공간적 배경과 이 대담이 이루어진 2002년(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온 건 2008년)시대적 배경의 차이 때문일까, 너무 오래전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 대담에서 나온 주장이나 실천들보다 더한 것이 지금은 필요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음, 좀 더 나가야지, 약해' 랄까.


가장 불편하게 했던 건, 이 책에서 이들이 대담 도중 드러내는 사례들이다. 윽. 데이트폭력 가정폭력등의 예시들이 나오는데 너무 끔찍한 거다. 그걸 읽는데 너무 답답하고 고통스러웠다. 물론, 페미니즘 도서들에서 사례를 짚어낼 때는 불편한 사례들만이 나오는 것은 각오해야 할 일이지만.


어쨌든 썩 만족스런 독서는 아니었는데, 엉뚱하게도 이들이 대화도중 요즘 내가 계속 생각했던 페르귄트와 솔베이지에 대해 얘기하는 것에는 크게 공감했다.



우에노: 저는 "남자의 인간 성장의 이야기가 이 정도 밖에 (다게다 세이지의 '히말라야 신부'를 얘기하면서)안 되는가?" 라고 느끼면서, "도대체 네 히피 체험은 무엇이었는데, 너는 도대체 방랑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데"라고 묻고 싶어졌어요. 이런 수준의 인간 성장이 감동 이야기가 되고 있는 것 자체가, 저는 정말 역겨워요.


노부타: 입센의 희곡 [페르귄트Peer Gynt](1867)도 그렇지 않나요? 저는 그 작품의 음악은 좋아하지만, 줄거리가 싫어요. 곳곳을 떠돌던 페르귄트는 마지막에 자기를 계속 기다리다가 눈 멀게 된 아내가 혼자서 하프를 연주하고 있는 곳에 돌아와 "너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구나"라고 말하면서 이야기가 끝납니다. 그걸 읽었을 때 "뭐야, 이런 어이 없는 이야기는"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자기 편의적인 이야기가 있을 수 있나요? 아무리 엉망진창인 남자에게도 마지막에는 한 명의 여자가 따르고 있다니, 그런 이야기에 매달려 살 수밖에 없는 남자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자기보다 연약한 성이 밑에 있고, 그 위에 자기가 위치한다"는 인식이잖아요. "남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정말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바로 남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p.126-127)




나는 솔베이지가 페르귄트를 기다리는 것을 이해하고 공감하지만, 결국 페르귄트가 돌아올 곳으로 와야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죽기 바로 직전의 껍데기만으로 찾아와 아무것도 함께하지 못하고, 그저 솔베이지에게 준 것은 기다림 뿐이라는 게 너무나 속상하다. 그게 뭐야? 어디서 실컷 즐기고 와놓고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와서 안겨? 올 거라면 빨리와야지, 빨리 와서 조금이라도 더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뭐라도 좀 더 함께 해야지. 빌어먹을..



가정 폭력에서 피해자인 아내가 다시 남편에게 돌아가는 것, 그 자리를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 둘 모두 좀 더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부족한 느낌이랄까. 읽으면서 제대로 가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웠는데, 어쩌면 이게 너무 과거에 쓰여진 책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지금쯤은 그들도 이 때와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되고 더 깊어졌을 지도 모를 일. 그런 아쉬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에노 치즈코의 센 말은 또 속시원한 면도 있다. 이 대담 속에서 남자 작가 한심하다고 까는 것도 너무 좋고 ㅎㅎㅎ 남자 니네 뭐 이따위야, 라고 하는 것도 좋다. 뭐랄까, 눈치보지 않고 가차없이 까버린달까. 우에노 치즈코에게는 '다른 사람이 나를 욕하지 않을까, 나를 어떻게 볼까' 같은 생각은 아예 없는 듯. 한심한 남자 작가를 깔 때는 이런 자세가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아유, 한심해, 별 볼 일 없어요, 라고 그냥 확 까놓고 말하는 것. 딱히 우에노 치즈코의 팬이 될 순 없을 것 같지만, 그런 점은 응원한다.





우에노: 제가 ‘그루밍 산업(치유해주고 어루 만져주는 산업)‘이라 말하는 것은 섹스라는 회로가 필요없는, 완전히 자기애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르시시즘이라는 것에는 한 가지 난관이 있어요. 나르시스의 역설입니다만, 이 자기애라는 것은 타인의 승인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로 ‘누구도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 나‘를 돈을 지불함으로써 ‘관심을 살 수 있는 나‘로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그루밍 산업이죠. ( p.17)

우에노: 정신분석학적인 페미니스트 제인 겔롭Jane Gallop의 [딸의 유혹 The Daughter‘s Seduction](1986)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유혹자인 딸‘ 이라는 개념은 정신분석의 핵심어 중 하나죠. 이것은 프로이트 식의 도착, 다시말해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것입니다만, 여성의 육체에 가치가 있다고 판정하는 것은 남자의 시선이어서 그 가치를 가르는 권한은 남자의 수중에 있지 여자에게는 없다는 것. 더구나 여자는 그것을 조정할 수 없습니다. 여자의 값어치는 전적으로 남자의 평가에 의존한다. 그런데도 남자는 자신을 유혹하는 원인이 여자 안에 내재되어 있다고, 여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셈이죠.
책임 전가라는 면에서는, 가정폭력의 가해자도 마찬가지죠. "그 여자가 꼭 나한테 폭력을 휘두르게 만든다"는 말을 자주 하잖아요.
(p.82-83)

우에노: 이토 세이(1905-1969)가 "남자에게 있어 가족은 자아의 일부와 같아, 아내를 때릴 때에는 자기도 아픈 법이다"라고 이야기했을 때, 당시 이토는 문단의 대원로였기 때문에, 젊은 시절의 에도 준은 조심스럽게 "그러나 결국 남자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 아닙니까?" 라고 말했어요.
이걸 보면 아내를 때린다는 것이, 남자의 자의식 속에서는 자해 행위의 연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실제 제가 알고 있는 사람의 남편이 그런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너를 때릴 때, 나는 마음 속으로 울고 있다"고. 그렇지만 "맞아서 아픈 것은 네가 아니잖아"라고 말하고 싶네요. (p.124)

노부타: "이 여자는 내 것, 튼튼한 애기를 낳아줄 것 같다"고 생각해 결혼을 결정하는 남자들도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최근 절감하고 있는 게 "어쩌면 남자는 여자를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거예요.
우에노: 최근에요? 그럼 지금까지는 여자가 남자에게 ‘인간‘ 취급을 받아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나요? (p.143)

노부타: "여자의 경우에도 남자를 때리지 않는가" 하는 말은 정말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습니다. 그렇다면 남자의 신체에 상처가 남는다고 똑같은 폭력이 되는 걸까요? 아니죠.
여자가 남자를 때린다고 해도, 남자에게는 아무런 공포심이 없어요. "애완동물이 물었다, 애완동물이 장난치고 있다", "어이, 시건방지게, 나한테 대들 생각이야" 같은 느낌입니다. 거기에는 공포도 경악도 없어요. 남자와 여자가 대칭이 아닌 거예요.
우에노: 남자가 정말 무섭게 느끼는 공포는, ‘여자가 달아나버리는 것‘입니다. 자기 지배 아래 있다고 생각한 여자가, 그렇지 않다고 자기 주장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무서운 거죠.
노부타: 맞아요. 자기의 지배력이 위협받는 거니까요. 그래서 남자는 무서워 벌벌 떨면서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죠. 남자는 무엇을 무서워하는가? 여자가 도망치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은 상당히 나중 단계입니다. (밑에 계속)

노부타: 대체로 가정폭력의 피해자를 보면, 남편 이상의 달변가들이에요. 그래서 남편의 논리에서 약한 곳을 파고들거나, 부족한 곳을 지적함으로써 폭력을 부르는 거죠. 그것을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권력이란 상황을 정의할 수 있는 힘"이라는 표현을 빌린다면, 상황의 정의자로서 남자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린다는 두려움 아닐까요?
우에노: 공감합니다. 취약한 남성성의 정체성이 흔들린다는 거죠.
노부타: 취약한 남성성의 정체성이라기보다는, "내가 법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남자는, 일단 여자가 "그래요, 당신 말이 옳아요"라고 대답해주기 바랐지만, "그런데도 이상해요", "아뇨,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같은 말을 하는 순간에 욱하고 성질이 나는 것이 아닐까요? 아.... 역시 취약한 남성 정체성이 흔들린다는 거네요.
우에노: 결국은 자기의 지배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죠.
노부타: 성질 나쁜 남자들은 그것을 지배라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무조건 자기가 옳다는 거죠.(p.165)

우에노: 대들지 않는 자는 때리지만, 대드는 자에게는 손을 대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닐까요? 아이를 때리던 남자들도, 사춘기가 된 아들은 때리지 않게 되잖아요. 아들이 사춘기가 되면 가정 안에서 힘의 균형이 변하게 되는 거죠. "때릴 때 반격해 오는 놈은 때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정말 알기 쉬운, ‘비열한 놈들‘입니다. 저항하지 않는 놈만 골라 때리고 있으니까요. (p.177)

우에노: 가정폭력은 단순하게 육체를 구타하는 게 아닙니다. 폭력은 위협이죠. "폭력으로 가장 상처받는 것은 인격." 육체보다 인격입니다.
노부타: 저도 그렇게 말해요. "폭력을 겪고 있다는 것은, 당신이 썩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라고. 그러면 그 여자는 울어요. 하지만 울면서도 또다시 남편에게 돌아가요, 무엇 때문인지. (p.188)

우에노: 일본에는 여자가 늙어가는 것에 대한 통속적인 이데올로기가 존재합니다.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늙어서 사랑받지 못하면, 살아갈 가치도 없는 건가요? 저는 딱 질색입니다. 요즘 고령자 대상 강연회에서 큰 박수를 받는 말이 있어요.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지금까지 귀엽지 않던 내가 갑자기 귀여워질 리가 없잖아요."
노부타: 저도 꼭 박수쳤을 거 같네요.
우에노: "갑자기 귀여워질 수는 없어요. 앞으로 귀엽든지 귀엽지 않든지 관계없이, 노인은 제대로 부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큰 박수를 받아요.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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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은 너무 복잡해》에서 '제인(메릴 스트립)'과 '제이크(알렉 볼드윈)'는 십 년전에 이혼한 부부로 나온다. 십 년전에 남편 제이크가 바람을 피워서 이혼하게 된건데, 그들 사이에 자녀가 있으므로 그들이 아예 안보고 지낼 수는 없지만, 그 뒤로 제인은 제이크를 보는게 딱히 편하지는 않다. 게다가 무슨 행사에 항상 제이크는 그의 젊은 아내를 데리고 오는 것이다. 못마땅해..


그러던 어느날, 아들의 대학 졸업식을 앞두고 그들이 시내의 한 호텔에서 묵게 되는데, 자녀들은 자기들대로 논다고 나가버리고 제인 혼자 바에서 술을 마시다가, 혼자서 술마시던 제이크를 마주치고, 그들은 술을 함께 마시면서 자연스레 웃으며 대화를 하게 되고 그날 밤을 같이 자게 된다. 제이크는 너무 좋고 황홀했다고 씐나서 이 관계를 계속 해나가자고 한다. 제인은 내가 이전에 너의 아내였던 건 사실이지만, 지금 너에겐 아내가 있으므로 이건 불륜이다, 이건 해서는 안된다, 어젯밤은 실수였다, 하지만, 꽤 오래 남자들과 데이트 하지 않았던 제인도 이 만남이 싫지 않다.


제이크는 젊은 아내와 함께하는 게 행복하지 않았는데, 제인과 보내는 시간은 너무 좋다. 이들 사이에 자녀들이 셋 있어서 가족시간을 보내는 것도 너무 좋고, 제인의 집에 가면 제인이 요리해주는 음식들은 너무 맛있고, 제인은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 그러나 젊은 아내는 그에게 요구사항만 있고 그를 전혀 편하게 대해주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자꾸만 자꾸만 제인을 찾는데, 그렇다면 제인을 '불륜의 상대'로 두지 말아야 하는거잖아. 그러니까 아내와 이별해야 하잖아. 그러면서 뻔뻔하게 제인에게는 '니가 나에게 대답을 해주지 않으니 아직 아내에겐 말을 못하지' 하면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것이다. 히융-



어쨌든 제인도 안되지만 이 만남이 싫지 않아 하고 있는 상황에, 그런 제인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새로운 남자 '아담'이 있다. 아담은 싱글인데 제인이 무척 마음에 들어 사귀는 남자 있냐고 물어보지만 제인은 없다고 한다. 그런 아담의 데이트 신청도 몹시 끌리는 거였지만, 제이크가 '그 날 우리 둘이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자'며 '그 만남을 거절해' 라고 하는 바람에, 제인은 아담에게 '노'를 말하고, 제이크와 둘이 보낼 시간을 위해 요리를 하고 상을 차려두고 예쁘게 차려입는다. 그러나 제이크는 외출하기로 했던 아내가 외출하지 않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제인은 혼자 앉아서 식어버린 요리와 아름답게 꾸민 자신에게 실망한다. 아, 역시 이 관계는 안되는 거였는데... 그렇게 제인은 다음날 제이크에게 이별을 말한다. 이거 안되는거야, 이러면 안돼, 내가 너를 다시 믿은 게 잘못이지. 그러나 제이크는 어떻게든 제인의 마음을 돌리고자 한다. 아내가 눈치챘어, 나는 이제 너밖에 없어, 하며 가방을 싸들고 와버리는 것.


꺼져..



제인은 아담을 가족 파티에 초대하고, 기분도 꿀꿀한터라 대마초도 하고 .. 그렇게 깔깔대고 웃다가 아담과 둘이 파티장을 빠져나가서는 배고프다는 아담을 자신의 레스토랑으로 데려간다. 제인은 빵과 쿠키, 음료를 파는 레스토랑(까페)의 사장님 이었던 것. 깊은 밤 문닫힌 레스토랑을 열고서는 아담에게 '메뉴판에 있는 것 중 아무거나 먹고 싶은 걸 골라라,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이 때 아담은 '초콜렛 크루아상'을 얘기한다.







그러자 그 밤에 그 큰 주방에서 제인과 아담은 같이 반죽을 만들고 초콜렛을 바르고 오븐에 구워 초콜렛 크루아상을 잔뜩 만들어내고, 그걸 둘이 함께 먹는다. 아담은 먹으면서 너무 맛있다고 신음 소리를 내고.. 크- 나는 방금 막 구워낸 초콜렛 크루아상이 마치 내 입안에 있는 것 같아서 미쳐버릴 것 같은 기분이 되어버렸지...



제이크는 집으로 들어와 이미 싫다고 말했던 아내의 침실에 들어오고 거기서 큰 실수를 저지른다. 결국 그들 사이는 역시나 다시 나빠지게 되고, 그 실수가 아담에게 한것이어서 제인은 아담을 찾아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우리가 만났던 건 사실이지만, 그런데 끝냈어, 라고. 3년전에 아내와 이혼했던 아담은 그런 제인에게 '다 이해해요' 라고 한다. 다 이해하지만, 자신은 마음이 작은 사람이라 더이상 제인을 볼 수 없을 것 같다고 한다. 그러면서 말하길,


"당신은 그사람에게 끝났다 말했다 했지만, 그 사람은 당신을 아직 사랑해요. 그건 정리된 게 아니에요."



사실 이 영화가 딱히 좋지도 재밌지도 않았는데, 저 말은 곰곰 되씹어야 했다. 당신과 나 사이, 우리 둘 사이. 내가 당신에게 안녕을 말했으나 당신이 나를 여전히 사랑한다면, 그러면 그 사이는 정리된 게 아닌건가? 그렇다면 정리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그 정리는 당사자의 몫이 아닌가? 아마 이것도 그 헤어짐이 어떤 것이었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쪽의 감정이 여전히 생생하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정리되지 않은 것일까? 내 감정이 남아 있다면 '나혼자' 정리되지 않은 것일까, '우리가' 정리되지 않은 것일까?




회사 건물 1층에는 까페가 있다. 그 까페에서는 스파게티와 샐러드, 맥주도 팔지만 커피와 빵도 팔아, 어느 아침에는 유독 빵냄새가 심하게 날 때가 있다. 그러면 아침부터 동료들과 아아, 몸이 딸려나간다...하며 빵냄새가 나는 까페로 금방이라도 달려나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오늘이 바로 빵 냄새가 심하게 난 날이었다. 내 육체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멋대로 까페로 달려가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의지, 강력한 의지, 파워풀한 의지가, 그러지 말라고 잡아 끌어서 다시 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는데, 동료 L이 말했다. 며칠 전에 집에 가다가 초콜렛 크루아상을 먹고 싶어서 퇴근 길에 아래 까페에 들러 사먹었는데 정말 맛잇었다고.


아아 동료여...그대는 왜 하필이면 눈앞에 그려지고 냄새까지 손에 잡힐 듯한 초코 크루아상을 얘기하는가.. 왜, 하필, 왜...


나는 며칠전 내가 본 영화속의 장면, 아담과 제인이 함께 초콜렛 크루아상을 만들어 막 구워낸 그것을 맛있게 먹던 장면이 생각나 버렸고, 그러자 갑자기 '지금 당장 초콜렛 크루아상을 먹어야해!'하게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안돼, 그러지말자, 참자, 이따 점심때 밥이나 먹어... 하고 잘 참고 점심 때가 되어 다른 동료 K와 식당에 가 김치찌개를 시켜먹었다. 나는 K에게 이 영화의 저 장면과 오늘 아침 초콜렛 크루아상 얘기한 L 의 얘기를 들려주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밥먹고 까페 들르자. 초콜렛 크루아상 사러."


그렇게 나는 입에는 김치찌개를 넣으면서, 밥에 김치를 얹어 슥슥 비벼 먹으면서, 젓가락으로는 도라지와 오이 무침을 집으면서, 머릿속 한가득 초콜렛 크루아상을 생각했고!!! 밥을 다 먹자마자 까페로 가 초콜렛 크루아상을 하나 사서!! 사무실로 올라와 L 에게 샀어, 같이 먹자, 하고는 반으로 잘라 사이좋게 먹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아아, 얼마나 맛있었던지... 그러나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이었나. 돼지고기김치찌개 먹고 온 사람.... 크루아상 반 쪽을 먹고난 지금... 앉아있는 것초자 힘들어... 너무 배가 부르다... 아아 나여...... 왜 참지 못하죠? 왜죠? 왜 무심히 넘기지 못하고 생각나면 바로 행동에 옮기죠? 왜죠?



왜죠

왜 미안하단 말을 내게 하죠..








괜찮아..후회하지 말자..그리고 앞으로 그러지말자.. 괜찮아... 먹는 동안 행복했잖아..그러면 됐어... 이제 정말 이런 짓은 그만둬. 무심히 넘겨. 초콜렛 크루아상 따위.... 넘겨, 넘겨, 넘겨버리자... 그리고 다음주부터 다시 태어나자. 새롭게 태어나는 거야. 다음주부터는 식탐 없는 나로 새롭게 태어나자!! 점심에 밥 먹고나서 또 뭐 사먹고 이런 짓 이제 .. 그만두자.



내가 오늘 먹었던 초콜렛 크루아상은 크루아상 안에 초콜릿이 들어있었다. 헤헷. 쓰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구먼. 내가 산 걸 사진 찍었으면 좋았겠지만, 사와서 자르자마자 먹느라고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신 가져오는 스타벅스의 초콜릿 크루아상..






근데 뭔가 좀 아쉽다. 뭔가 부족해.

아마도 까페에서 사온 걸 그냥 먹어서 그런 것 같다.

스타벅스 보니까 이거 기본이 따뜻하게 데움이던데.... 스타벅스 가서 먹으면..따뜻하게 데워줄텐데...... 그러면........



아니야, 그만둬, 생각 뻗어가지마. 여기서 그만.....



오늘은 초콜렛 크루아상 데이.....




그리고 에피톤 프로젝트!












에피톤 프로젝트의 새로운 앨범이 나왔다. 어제 저녁 여섯시에 나온다고 해서 퇴근길에 들었는데..음... 좋은 노래가 있긴 했지만, 1,2 집 만큼 앨범 자체가 막 좋진 않다.


그래도 <연착>은 아주 마음에 든다!!







어제 여동생이 에피톤 앨범 듣다가 '사랑이 뭘까?' 물어왔고, 나는 동생에게 말했다.


"먼 데까지 가는 것. 내가 타미보러 안산 가듯이."


<연착>은 그런 노래다. 오래 기다리고 결국은 찾아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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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라는 게 어떤건지도 알고 왜 선택하는지도 알고, 만약 내가 누군가랑 함께 살게 된다면 나 역시 '동거'라는 방법을 선택하고 싶은데, 그래서일까.. 이 책에서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 부분들을 읽는데, 새로운 내용이 아니면서도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이 책은 틀별히 어떤 부분이 '네덜란드 가고 싶다'는 충동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데, 이상하게 이 책을 다 읽기 전에 나는 잠시 책을 덮어두고 스카이 스캐너에 항공권을 검색하고 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직항이 있는 암스테르담이여....


자, 나는 이제 어쩔 것인가...

지금부터 부지런히 할부를 갚아나갈 것인가..


인생 뭘까?




사실 스펙 쌓기는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더 돋보이게 하려는 경쟁 심리에 기인한다. 학점, 외국어 점수, 자원봉사활동은 물론, 심지어 유럽 배낭 여행도 스펙 리스트에 포함되어, 개인을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런 스펙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사실 본인의 능력보다는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꿈도 꿀 수 없는 것들도 있다. 부유한 가정의 학생들은 부모의 지원 아래 손쉽게 스펙을 쌓는 데 반해, 이보다 덜 부유한 가정의 학생들은 두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 내기에도 벅찬 캠퍼스 생활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스펙이 개인의 잠재력과 역량을 제대로 검증해 줄 수 있을까. 오히려 진정한 실력이 아니라 겉보기 스펙만 갖춘 인재를 채용하게 되는 실수를 범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런데도 기업들이 여전히 스펙으로 채용을 결정한다면 스펙을 쌓기 위한 경쟁은 더 치령해지고, 취업 시장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P.19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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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 성소(聖所)에 당신을 간직해 두었지. 난 왜 당신을 좀 더 일찍 만나지 못했을까.















폴은 대학에 입학했던 그 나이에 동네에 사는 오십대 여자 '수전'과 연인 사이가 되었다. 그들은 사랑의 도피까지 감행했지만, 수전은 불행했고 알콜중독에 시달렸다. 수전의 곁에서 수전을 지켜주려고 했지만 점점 지쳐갔던 폴은 다른 여자친구를 사귄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첫연애상대인 수전에 대해서 늘 신경을 쓰고 있고, 그녀의 존재와 또 자신이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새로 사귄 또래의 여자친구 '애너'에게 말했다. '애너'는 폴의 말을 듣고 이해하며 수전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사실 그렇게 기쁘거나 행복한 일은 아니었다. 그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은 온전히 자유롭지 못했으니까. 수전이 술을 얼마나 마시느냐에 따라 그들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폴, 이 말은 해두는 게 좋겠어. 수전 매클라우드 …… 는 사실 나하고 맞는 여자는 아니야."

"알겠어."

"내 말은, 그래도 너를 위해 늘 수전한테 잘해주려고 노력할 거란 뜻이야."

"그래, 뭐, 그건 정말 너그러운 태도지. 이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내가 수전한테 내 인생에는 늘 수전을 위한 자리가 있을거라고 약속했다는 이야기도 해두는 게 좋겠네, 설사 그게 다락방이라 해도."

"폴, 내 인생에는 다락방을 원치 않아." 그러더니 그녀는 그 말을 하고 말았다. "그 안에 미친 여자가 있는 건 더더욱 원치 않아."

나는 마지막 말이 우리 사이에 커져가는 정적을 채우도록 내버려두었다. (p.282)




영화 《몽 루아》에서 여자는 아주 달콤한 남자를 만나 사귀게 되고 함께 살게 된다. 그런데 이 남자에게도 역시 '다락방의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아프고 신경질적이고 그래서 종종 남자는 밤에 잠을 자다가도 그 다락방의 여자에게로 달려간다. 그의 아내는 그것이 몹시 싫지만, 남편은 그 다락방의 여자를 포기하지도 못하고 계속 신경쓸 수밖에 없다. 다락방의 여자를 신경쓰고 챙겨줄 수 있는 건 자신 뿐이라면서.



내가 '애너' 였어도 폴과의 관계를 오래 가져가지 못했을 것이다. 숨겨도 느껴질만한 존재를 가진 사람, 그런데 나에게 '나에게는 다락방에 숨겨둔 여자가 있어' 라고 말하면서 그 관계를 인정하길 바라는 남자와 내가 어떻게 다정한 연인 관계를 가져갈 수 있단 말인가. 몽 루아속 아내도 마찬가지. 어려울 때마다 달려나가야 하는 다락방 여자가 있는 남자를 어떻게 한결같은 사랑으로 인내하며 지낼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사람들은 한 사랑이 끝나고 다음 사랑을 맞이하면서, 언제나 새로운 사랑에게 충실할 수 있다. 과거의 사랑을 묻어두고 혹은 잊은 채로 '지금 사랑이 최고야, 여기에 최선을 다할거야' 하며, 현재의 상대에게 충실하고 최선을 다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나에겐 일곱번째 여자가 가장 강렬했고, 그 전에도 후에도 그런 여자는 없었지, 내 삶에 다른 여자를 아무리 만나도 그 여자만한 여자는 없을 것이고, 나는 그여자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내가 두번째 연애한 남자는 내 인생 남자다, 그 전후에 진행된 연애들에 있어서도 나는 그 사람만큼 사랑할 수 없다' 하고 깊이 각인된 존재가 있을 것이고. 그러나 만약 누군가랑 함께 살기로 했다면 사실 그 존재를 지금 연애의 상대에게 알려서도, 드러내서도 안되는 게 아닐까. 그리야 지금 현재의 사랑이 원만하게 잘 굴러갈 수 있을테니까. 만약 내가 가슴에 품은 다름 사람이 있다는 걸 상대가 알거나 티가 난다면, 그 사랑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을까? 아니, 그것은 사랑일까?



'줄리언 반스'의 책 속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현재의 연애 상대를 아주 미쳐버리게 하는 과거의 존재다. 걸리적거리고 거슬리는 존재. 그러니까 나였어도 도무지 허락할 수 없는 상황. 싫어, 나는 대체품이 되지 않을 거고, 니가 그녀를 가슴에 품은채로 내 옆에 있다는 건 나에게 못할 짓이야, 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디스 워튼은 좀 다르다. 이디스 워튼은 그렇게 성가신 존재를 만들어내지 않았다. 이디스 워튼의 존재가 내게 좀 더 가까운데, 이디스 워튼은 자신의 소설, 《순수의 시대》에서, 한 사람이 깊이 마음에 품게 된 사람에 대해서 '마음 속 성소' 라고 표현했다. 언제나, 세월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사람, 결코 지울 수 없는 사람, 내 삶에 끝까지, 부재하면서도 함께 하는 사람.


'아처'는 '엘렌'을 가슴 속에 품는다.





그 후로 그들 사이에 더는 연락이 없었다. 그는 자기 마음속에 일종의 성소(聖所)를 만들어 놓고 비밀스러운 생각과 열망가운데 그녀를 간직해 두었다. 그곳은 조금씩 그의 진짜 삶이자 이성이 활동하는 유일한 장이 되어 갔다. (p.324)













어떤 사람들은 마음 속 성소를 가만 묻어둔 채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고 웃으며 지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마음 속 성소를 만들어둔 채로 그 성소와 함께 산다. 그런 사람의 경우에는, 아마도,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가 없을 것이다. 내 중심, 내 축, 내 단단한 기둥은 이미 내 성소가 되어버렸으니까. 성소는 내 마음속에 있어서 온통 나를 휘어잡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일상을 살고, 친구들을 만나고, 여행을 하면서도 언제나 그 부재의 상대가 나와 같이 있음을 느끼며, 내 마음속 성소를 단단히 느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다른 파트너를 만나는 순간, 아마도 그 성소는 상대에게 '다락방의 미친사람'이 되지 않을까. 그러니 내 마음속 성소를 있는 그대로, 그 단단함과 소중함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다락방의 미친사람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속 성소가 있다면, 다른 상대를 또 찾는 대신, 마음속 성소와 그냥 함께 살아야 하는 것 같다.




나는 마음속 성소를 가진 사람일 수도 있고, 누군가 나를 마음 속 성소에 넣어둔 존재일 수도 있다. 또한 나는, 마음 속 성소를 가진 사람을 만나 '다락방의 미친사람'존재를 느끼고 분노할 수도 있다. 나는 내가 사랑하게 된 사람에게 다락방의 존재가 있다면, 그 사람을 아무리 사랑해도 그 사람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자 함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아무리 사랑해도 그 사람에게 내가 우선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면, 두 달 내내 울지언정 그 사람에게 이별을 말할 것이다. 그 사람에게 다락방의 존재가 있다는 걸 알면서 내가 곁에 있다는 건, 나에게 할 짓이 아니다. 나를 그렇게 두어서는 안돼. 내 옆에 있기로 했다면, 몸과 마음이 모두 내게 있어야 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난 당신이 수키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건 들으려고 여기까지 따라왔어요. 당신이 이 여자와 섹스하지 않는다는 건 알아요. 수키가 다른 사람에게 빠져 있다는 것도 알아요. 그리고 당신이 나보다 수키를 더 원한다는 것도 알아요. 난 나를 동정하는 남자와 섹스를 하지는 않을 거예요. 나를 원하지 않는 남자와 살지 않을 거예요. 나는 그보다는 더 가치가 있어요. 내 생의 나머지 시간이 다 걸린다고 해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없앨 거예요. 당신이 여기 조금 더 머물 거라면, 나는 당신 집에 돌아가서 내 물건을 싸서 사라질게요.」 (pp.212-213)










오늘 저녁에 에피톤 프로젝트의 새앨범이 나온다고 한다. 지난 앨범 에서의 <회전목마>는 나의 시그널 뮤직 이었는데, 이번 에피톤의 새앨범에서도 '앗, 이건 시그널이다' 할만한 곡이 있을까. 너무나 기대가 된다. 두근구든.


그리고 이상하게 마음이 너무 아프다. 매운 족발을 먹으면 괜찮아질 것 같은 마음 아픔이다...










어쨌든 절대 잊지 마세요, 폴 도련님.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는 걸. 모든 사람에게. 대실패로 끝났을 수도 있고, 흐지부지되었을 수도 있고, 아예 시작조차 못 했을 수도 있고, 다 마음속에만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진짜에서 멀어지는 건 아니야. 때로는, 그래서 더욱더 진짜가 되지. 때로는 어떤 쌍을 보면 서로 지독하게 따분해하는 것 같아.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을 거라고는, 그들이 아직도 함께 사는 확실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어. 하지만 그들이 함께 사는 건 단지 습관이나 자기만족이나 관습이나 그런 것 때문이 아니야. 한때, 그들에게 사랑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야. 모두에게 있어. 그게 단 하나의 이야기야." (p.75-76)

나는 펠리온과 오사가 누구인지 또는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보다는 수전의 지식에 내 지식을 쌓는다는 생각에 더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것이 연인들이 하는 일 아닌가, 사실. 연인들은 세상에 대한 서로의 이해를 합했다. 또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어쨌든 성경에서는, 그 사람과 섹스를 한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나는 이미 그녀의 지식 위에 내 지식을 쌓은 셈이었다. 설사 그것이 콩으로 쌓은 언덕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콩으로 쌓은 산의 높이가 얼마든. (p.111-112)

"내가 알아야 하는데 알지 못하고 있는 게 있나요? 수전에 관해서, 또는 수전과 나에 관해서 나한테 해줄 수 있는 말, 도움이 될 만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모든 게 망하고 잘못되어버리면 너는 아마 극복을 하겠지만 수전은 못 할 거라는 거야."
너는 충격을 받는다.
"별로 친절한 말은 아니네요."
"나는 친절한 건 안 해, 폴. 진실은 친절하지 않아. 인생이 시작되면 금방 알게 될 거야." (p.212)

슬픈 섹스는 그녀가 술에 취하지 않고, 너희 둘 다 서로를 바라고, 너는 어쨌거나 상관없이 그녀를 늘 사랑할 것임을, 그녀가 어쨌거나 상관없이 너를 늘 사랑할 것임과 마찬가지로 사랑할 것임을 알지만, 너는-어쩌면 너희 둘 다-이제 서로 사랑 하는 것이 반드시 행복에 닿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때다. 그래서 너의 사랑을 나누는 행동은 위로를 찾는 것이라기보다는 너희의 서로 행복하지 않은 상태를 부정하려는 가망 없는 시도가 된다. (p.231)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살밍 전개되면서, 신중함과 조심성이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조운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가진 적이 있으며, 어떠면 다른 이야기는 이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이제 남녀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그것이 식어버린 뒤에도 오랫동안, 집착하는-많은 경우, 각각 이야기의 서로 다른 부분에-것, 심지어 서로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지경에 이르도록 집착하는 것을 전보다 잘 이해했다. 나쁜 사랑은 여전히 좋은 사랑의 잔재, 기억을 포함하고 있었다-어딘가, 깊은 곳, 그들 둘 다 더는 파헤치고 싶지 않은 곳에. (p.34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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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2018-10-05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읽고 에피톤 프로젝트 들어야지! 라고 생각하다가 잠들어버렸네요. 매운 족발은 드셨나요.. 매운 족발이라도 다락방님의 마음 아픔을 달래줄 수 있었다면 좋겠네요.

다락방 2018-10-05 10:17   좋아요 0 | URL
매운 족발은 못 먹었구요. 내일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후훗.

에피톤 프로젝트 이번 앨범 들었는데요, 좋은 곡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음.. 1,2집 만큼 좋진 않네요. 에피톤 프로젝트는 1,2 집이 최고인 것 같아요!
 
















챈틀 뒤퐁은 패리쉬 섬에 다리를 놓기 위해 스카우트를 이용하게 된다. 스카우트는 도시 남자로 이 섬에 잠깐 들른 것이었는데, 어쩔 수없이 부상을 입은 채로 챈틀 뒤퐁의 명령에 수긍하게 되고, 그렇게 그들은 한집에서 살면서 서로에게 아주 강력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스카우트가 챈틀 뒤퐁에게 거침없이 들이대고 다가갈 때마다, 챈틀 뒤퐁도 너무나 그를 원하지만, 그러나 도시에 잘 나가는 그의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나는 너 약혼자 있는데 그렇게 한 번 자는 그런 여자가 되진 않을거야' 하고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욕망을 억누른다.


그러나 다리가 완성되고 축제가 벌어지던 날 밤, 축제의 기운과 그동안 참아왔던 모든 욕망이 화산처럼 폭발하고, 챈틀 뒤퐁은, 아아, 그가 이제 가버릴 사람이지만 나는 어쩔 수가 없다, 하고 자기 욕망 앞에 무릎 꿇는다. 그렇게 스카우트를 유혹해, 그들은 그날밤 베리 핫한, 엄청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아침, 스카우트는 챈틀 뒤퐁이 자는 사이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가 도시로 간다.



챈틀 뒤퐁은 그럴거라 생각했지만, 그걸 알면서도 그런거지만(우리 모두 이런 거 알잖아요?), 그러나 그가 정말로 그의 약혼자에게 돌아갔다는 사실에 매우 상처 받는다. 어차피 부족들을 위한 다리도 완성되었고, 그녀는 도시의 자기 일자리로 간다. 그녀는 어느 대학의 교수였고, 임무도 완수했고 어차피 그와 사랑으로 연결될 것도 아니니 사요나라, 굿바이- 떠나버리는 것.



오오, 그러나 우리의 스카우트는 이렇게 강렬한 만남, 이런 뜨거운 사랑을 생전 한 번 느껴보지 못해, 나름대로 관계 정리를 하기 위해 도시로 돌아간 것이었다. 도시로 돌아가 약혼자에게 우리 끝내자고 말하기 위해서,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기 위해서 간 것이었다. 자신이 약혼한 상태이면서 챈틀 뒤퐁과 계속 만나고 사랑한다는 것은 챈틀 뒤퐁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고 약혼녀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으므로. 게다가 그 자신에 대한 예의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 역시 순수한 싱글 그 자체로 그녀앞에 서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게 순수한 싱글로 그녀 앞에 나타나, 정식으로 사귀자고 하고 싶었던 거다. 그러나 이 모든 정리를 하고 섬으로 돌아왔을 때 챈틀 뒤퐁은 없었다.



그는 미칠것 같은 마음으로, 초조한 마음으로 그녀를 찾아 헤맨다. 알만한 사람에게 물어 물어 그녀가 대학 교수로 있는 곳까지 갔지만, 이미 그녀는 퇴근한 뒤였고, 그녀의 비서에게 갖을 설득을 다해 그녀가 사는 곳을 알아낸다.



챈틀 뒤퐁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집 앞 바닷가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곳에서 전혀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너무 그리워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냐고 묻고 그들은 재회의 대화를 시작한다. 나는 나의 다른 관계를 정리하고 너에게 오려고 했고, 그런데 니가 없었고, 찾아 헤매다가 이렇게 왔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고. 챈틀 뒤퐁이 일어날 거라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이 기적처럼 일어난 것이다.




나는 이 소설 속의 챈틀 뒤퐁을 좋아한다. 엄청 끌리면서도 이렇게 부적절한 관계로 진행해서는 안된다고 이를 악무는 챈틀 뒤퐁을 좋아한다. 그 답답함과 고지식함이 나를 닮아서 내가 다 아플지경이다. 나 역시 챈틀 뒤퐁과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면서, 그러면서 챈틀 뒤퐁에게는 '이 여자야, 그깟 섹스가 뭐라고, 육체가 뭐라고, 자신을 던져버려, 즐겨!1' 막 이렇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챈틀 뒤퐁 역시, 만약 스카우트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아마 '에헤라 그냥 오늘밤 나를 던져보세 닐니리맘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어느 한 순간의 사람으로만 있는 게 싫어 이를 악물고 참았을 것이다. 내게 의미 있는 사람이니, 나 역시 당신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이렇게 순간의 기분에 나를 던져서는 안된다..같은 것.



그런 그녀에게 기적처럼 그가 찾아든다.



얼마전에 제주에 갔을 때 친구와 연신 '좋다, 좋다' 하면서 나는 친구에게 물었었다. '너는 베트남이나 제주에서 살 수 있다면 어딜 선택할래?' 친구는 '나야 제주도지' 하고 고민없이 말했다. 나 역시 고민없이 '나는 베트남'이라고 말했다. 나는 뉴욕에서 살고 싶었고, 베트남에서 살고 싶었고, 프라하에서 살고 싶었고, 포르투갈에서 살고 싶었다. 한 번도 제주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러나 이번에 제주에서 바다를 보고, 하늘을 보고, 해가 저무는 풍경을 보고, 바람을 느끼고, 그 한적함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면서,



'챈틀 뒤퐁이 있었던 곳은 아마 제주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챈틀 뒤퐁이라면 제주도지... 라고. 챈틀 뒤퐁이 스카우트가 올 줄도 모르고서 스카우트를 기다리던 곳은 제주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챈틀 뒤퐁은 제주도.... 이렇게 된 것이다. 챈틀 뒤퐁이 되기 위해서는, 챈틀 뒤퐁같은 진행을 위해서는 제주여야 하는 것인가......








(위는 모두 2016년의 제주, 표선)




(위는 2018년의 제주, 구좌읍. 챈틀 뒤퐁이 있었던 곳은 표선보다 이곳에 더 가까울 듯)



제주의 챈틀 뒤퐁.

챈틀 뒤퐁 이름도 너무 좋아.



지난번 제주에 다녀온 이후로 자꾸만 챈틀 뒤퐁이 생각난다. 챈틀 뒤퐁은 제주도 같은 곳에 있었을 거야, 스카우트는 제주도에 찾으러 왔을거야, 바로 여기가 그녀가 머물만한 곳이지.....




나는 서울에 있다.


나는 서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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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챈틀 뒤퐁과 인생의 정점
    from 마지막 키스 2018-11-16 09:39 
    '챈틀 뒤퐁'은 패리쉬 섬에 다리를 놓기 위해 도시에 사는 남자 '스카우트'를 이용한다. 그 과정에서 스카우트에게 어마어마한 호감을 느끼게 되는데,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 그러나 스카우트는 도시에 약혼녀가 있는 상황. 서로 엄청 끌리면서도 '이러면 안돼'가 그들 사이에 있다. 정확히는 챈틀 뒤퐁에게. 그를 안고 싶지만, 그는 약혼녀가 있지... 하고 그에게로 끌리는 자신을 애써 막아보려 하는 것. 그렇게 욕망에 시달리는 낮과 밤을 보내다가, 그들은 섬의
 
 
비연 2018-10-01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스산합니다. 나는 서울에 있다. 제주가 아니고 베트남이 아니고 서울.

다락방 2018-10-04 07:37   좋아요 0 | URL
지금 네덜란드에 사는 한국사람이 쓰는 책 읽고 있는데 네덜란드 가고 싶네요?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