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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제국 - 결혼이 지배하는 사회 여자들의 성과 사랑
노부타 사요코 외 지음, 정선철 옮김 / 이매진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우에노 치즈코'는 이 책으로 처음 만났는데, 다른 책을 좀 더 읽어봐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만으로는 뭔가 불편한 마음이 들게 하는 작가여서. 이 책은 '우에노 치즈코'와 '노부타 사요코'의 대담으로 이루어졌는데, 대부분의 주장에 대해 나는 우에노 치즈코와 같은 생각이긴 하지만, 그런데 어느 지점인지 묘하게 불편한거다. 상대를 윽박지르는 것 같다는 생각과 지나치게 고집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이게 대담집이기 때문에 더 두드러진 건지도 모르겠다. 노부타 사요코는 화나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후기를 보면 화내기는 커녕 우에노 치즈코로부터 많이 배웠다고 되어있다.
우에노 치즈코에 대한 어떤 불편함이 아니라도 책 자체로 크게 만족스럽진 않다. 일본이라는 공간적 배경과 이 대담이 이루어진 2002년(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온 건 2008년)시대적 배경의 차이 때문일까, 너무 오래전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 대담에서 나온 주장이나 실천들보다 더한 것이 지금은 필요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음, 좀 더 나가야지, 약해' 랄까.
가장 불편하게 했던 건, 이 책에서 이들이 대담 도중 드러내는 사례들이다. 윽. 데이트폭력 가정폭력등의 예시들이 나오는데 너무 끔찍한 거다. 그걸 읽는데 너무 답답하고 고통스러웠다. 물론, 페미니즘 도서들에서 사례를 짚어낼 때는 불편한 사례들만이 나오는 것은 각오해야 할 일이지만.
어쨌든 썩 만족스런 독서는 아니었는데, 엉뚱하게도 이들이 대화도중 요즘 내가 계속 생각했던 페르귄트와 솔베이지에 대해 얘기하는 것에는 크게 공감했다.
우에노: 저는 "남자의 인간 성장의 이야기가 이 정도 밖에 (다게다 세이지의 '히말라야 신부'를 얘기하면서)안 되는가?" 라고 느끼면서, "도대체 네 히피 체험은 무엇이었는데, 너는 도대체 방랑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데"라고 묻고 싶어졌어요. 이런 수준의 인간 성장이 감동 이야기가 되고 있는 것 자체가, 저는 정말 역겨워요.
노부타: 입센의 희곡 [페르귄트Peer Gynt](1867)도 그렇지 않나요? 저는 그 작품의 음악은 좋아하지만, 줄거리가 싫어요. 곳곳을 떠돌던 페르귄트는 마지막에 자기를 계속 기다리다가 눈 멀게 된 아내가 혼자서 하프를 연주하고 있는 곳에 돌아와 "너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구나"라고 말하면서 이야기가 끝납니다. 그걸 읽었을 때 "뭐야, 이런 어이 없는 이야기는"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자기 편의적인 이야기가 있을 수 있나요? 아무리 엉망진창인 남자에게도 마지막에는 한 명의 여자가 따르고 있다니, 그런 이야기에 매달려 살 수밖에 없는 남자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자기보다 연약한 성이 밑에 있고, 그 위에 자기가 위치한다"는 인식이잖아요. "남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정말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바로 남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p.126-127)
나는 솔베이지가 페르귄트를 기다리는 것을 이해하고 공감하지만, 결국 페르귄트가 돌아올 곳으로 와야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죽기 바로 직전의 껍데기만으로 찾아와 아무것도 함께하지 못하고, 그저 솔베이지에게 준 것은 기다림 뿐이라는 게 너무나 속상하다. 그게 뭐야? 어디서 실컷 즐기고 와놓고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와서 안겨? 올 거라면 빨리와야지, 빨리 와서 조금이라도 더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뭐라도 좀 더 함께 해야지. 빌어먹을..
가정 폭력에서 피해자인 아내가 다시 남편에게 돌아가는 것, 그 자리를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 둘 모두 좀 더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부족한 느낌이랄까. 읽으면서 제대로 가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웠는데, 어쩌면 이게 너무 과거에 쓰여진 책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지금쯤은 그들도 이 때와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되고 더 깊어졌을 지도 모를 일. 그런 아쉬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에노 치즈코의 센 말은 또 속시원한 면도 있다. 이 대담 속에서 남자 작가 한심하다고 까는 것도 너무 좋고 ㅎㅎㅎ 남자 니네 뭐 이따위야, 라고 하는 것도 좋다. 뭐랄까, 눈치보지 않고 가차없이 까버린달까. 우에노 치즈코에게는 '다른 사람이 나를 욕하지 않을까, 나를 어떻게 볼까' 같은 생각은 아예 없는 듯. 한심한 남자 작가를 깔 때는 이런 자세가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아유, 한심해, 별 볼 일 없어요, 라고 그냥 확 까놓고 말하는 것. 딱히 우에노 치즈코의 팬이 될 순 없을 것 같지만, 그런 점은 응원한다.
우에노: 제가 ‘그루밍 산업(치유해주고 어루 만져주는 산업)‘이라 말하는 것은 섹스라는 회로가 필요없는, 완전히 자기애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르시시즘이라는 것에는 한 가지 난관이 있어요. 나르시스의 역설입니다만, 이 자기애라는 것은 타인의 승인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로 ‘누구도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 나‘를 돈을 지불함으로써 ‘관심을 살 수 있는 나‘로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그루밍 산업이죠. ( p.17)
우에노: 정신분석학적인 페미니스트 제인 겔롭Jane Gallop의 [딸의 유혹 The Daughter‘s Seduction](1986)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유혹자인 딸‘ 이라는 개념은 정신분석의 핵심어 중 하나죠. 이것은 프로이트 식의 도착, 다시말해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것입니다만, 여성의 육체에 가치가 있다고 판정하는 것은 남자의 시선이어서 그 가치를 가르는 권한은 남자의 수중에 있지 여자에게는 없다는 것. 더구나 여자는 그것을 조정할 수 없습니다. 여자의 값어치는 전적으로 남자의 평가에 의존한다. 그런데도 남자는 자신을 유혹하는 원인이 여자 안에 내재되어 있다고, 여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셈이죠. 책임 전가라는 면에서는, 가정폭력의 가해자도 마찬가지죠. "그 여자가 꼭 나한테 폭력을 휘두르게 만든다"는 말을 자주 하잖아요. (p.82-83)
우에노: 이토 세이(1905-1969)가 "남자에게 있어 가족은 자아의 일부와 같아, 아내를 때릴 때에는 자기도 아픈 법이다"라고 이야기했을 때, 당시 이토는 문단의 대원로였기 때문에, 젊은 시절의 에도 준은 조심스럽게 "그러나 결국 남자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 아닙니까?" 라고 말했어요. 이걸 보면 아내를 때린다는 것이, 남자의 자의식 속에서는 자해 행위의 연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실제 제가 알고 있는 사람의 남편이 그런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너를 때릴 때, 나는 마음 속으로 울고 있다"고. 그렇지만 "맞아서 아픈 것은 네가 아니잖아"라고 말하고 싶네요. (p.124)
노부타: "이 여자는 내 것, 튼튼한 애기를 낳아줄 것 같다"고 생각해 결혼을 결정하는 남자들도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최근 절감하고 있는 게 "어쩌면 남자는 여자를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거예요. 우에노: 최근에요? 그럼 지금까지는 여자가 남자에게 ‘인간‘ 취급을 받아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나요? (p.143)
노부타: "여자의 경우에도 남자를 때리지 않는가" 하는 말은 정말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습니다. 그렇다면 남자의 신체에 상처가 남는다고 똑같은 폭력이 되는 걸까요? 아니죠. 여자가 남자를 때린다고 해도, 남자에게는 아무런 공포심이 없어요. "애완동물이 물었다, 애완동물이 장난치고 있다", "어이, 시건방지게, 나한테 대들 생각이야" 같은 느낌입니다. 거기에는 공포도 경악도 없어요. 남자와 여자가 대칭이 아닌 거예요. 우에노: 남자가 정말 무섭게 느끼는 공포는, ‘여자가 달아나버리는 것‘입니다. 자기 지배 아래 있다고 생각한 여자가, 그렇지 않다고 자기 주장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무서운 거죠. 노부타: 맞아요. 자기의 지배력이 위협받는 거니까요. 그래서 남자는 무서워 벌벌 떨면서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죠. 남자는 무엇을 무서워하는가? 여자가 도망치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은 상당히 나중 단계입니다. (밑에 계속)
노부타: 대체로 가정폭력의 피해자를 보면, 남편 이상의 달변가들이에요. 그래서 남편의 논리에서 약한 곳을 파고들거나, 부족한 곳을 지적함으로써 폭력을 부르는 거죠. 그것을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권력이란 상황을 정의할 수 있는 힘"이라는 표현을 빌린다면, 상황의 정의자로서 남자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린다는 두려움 아닐까요? 우에노: 공감합니다. 취약한 남성성의 정체성이 흔들린다는 거죠. 노부타: 취약한 남성성의 정체성이라기보다는, "내가 법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남자는, 일단 여자가 "그래요, 당신 말이 옳아요"라고 대답해주기 바랐지만, "그런데도 이상해요", "아뇨,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같은 말을 하는 순간에 욱하고 성질이 나는 것이 아닐까요? 아.... 역시 취약한 남성 정체성이 흔들린다는 거네요. 우에노: 결국은 자기의 지배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죠. 노부타: 성질 나쁜 남자들은 그것을 지배라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무조건 자기가 옳다는 거죠.(p.165)
우에노: 대들지 않는 자는 때리지만, 대드는 자에게는 손을 대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닐까요? 아이를 때리던 남자들도, 사춘기가 된 아들은 때리지 않게 되잖아요. 아들이 사춘기가 되면 가정 안에서 힘의 균형이 변하게 되는 거죠. "때릴 때 반격해 오는 놈은 때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정말 알기 쉬운, ‘비열한 놈들‘입니다. 저항하지 않는 놈만 골라 때리고 있으니까요. (p.177)
우에노: 가정폭력은 단순하게 육체를 구타하는 게 아닙니다. 폭력은 위협이죠. "폭력으로 가장 상처받는 것은 인격." 육체보다 인격입니다. 노부타: 저도 그렇게 말해요. "폭력을 겪고 있다는 것은, 당신이 썩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라고. 그러면 그 여자는 울어요. 하지만 울면서도 또다시 남편에게 돌아가요, 무엇 때문인지. (p.188)
우에노: 일본에는 여자가 늙어가는 것에 대한 통속적인 이데올로기가 존재합니다.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늙어서 사랑받지 못하면, 살아갈 가치도 없는 건가요? 저는 딱 질색입니다. 요즘 고령자 대상 강연회에서 큰 박수를 받는 말이 있어요.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지금까지 귀엽지 않던 내가 갑자기 귀여워질 리가 없잖아요." 노부타: 저도 꼭 박수쳤을 거 같네요. 우에노: "갑자기 귀여워질 수는 없어요. 앞으로 귀엽든지 귀엽지 않든지 관계없이, 노인은 제대로 부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큰 박수를 받아요.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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