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실즈 지음, 김명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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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손톱은 일주일에 1밀리미터쯤 자란다. 발톱이 자라는 속도는 손톱의 4분의 1 정도로 한 달에 1밀리미터쯤 자란다. 피아니스트나 타자를 많이 치는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손톱이 빨리 자란다. 손톱은 11월에 가장 빠르게 자라고, 7월에 가장 느리게 자라며, 밤에는 덜 자란다. 엄지와 새끼손가락의 손톱은 더 늦게 자란다. 날씨가 몹시 추울 때에도 손톱이 느리게 자란다. 30세에서 80세가 되는 동안 손톱 성장 속도는 50퍼센트 줄어든다.-31쪽

1930년대에 미국으로 수입된 유럽산 마네킹은 생식기의 크기에 따라 세 규격으로 나뉘었는데, 소형, 중형, 그리고 '미국인'이었다(다른 문화에 비해 미국 사람들은 음경이나 가슴 같은 생식기의 크기에 집착하는 성향이 강하다).-82쪽

'17세에는 불행한 연애를 하기 마련이다.' 프랑수아 사강은 제대로 알았던 게 틀림없다.-83쪽

19세기 말 사람들은 식욕 부진이 여성의 섬세함과 고상함을 증명한다고 보았다. 왕성한 식욕을 인정하는 아가씨는 '쟁기꾼처럼 먹는다'는 말을 들었고 조롱과 희롱의 대상이 되었다.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은 설령 산모라 해도 배고픈 내색을 하면 안 된다는 훈계를 들었다. 배고픔을 토로하더라도 가볍고, 달콤하고, 맛있는 것을 한 입만 갈망해야 했고, 고기는 안 되었다. 고기는 성욕을 자극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두툼한 로스트비프 덩어리를 즐기는 여성은 스스로는 잘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저속한 성질을 지녔을 것이라고 했다-123쪽

헤링 박사가 해준 농담 하나. 결혼한 부부의 섹스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처음 결혼했을 때는 성욕이 흘러 넘쳐서 집 안의 모든 방에서 섹스를 한다. 몇 년이 지나면 열정이 좀 수그러지고, 침실로만 공간을 제한한다. 더 세월이 흐르면, 복도에서 지나치면서 서로 중지를 치켜세운다.

그녀는 친구로 지낼 수는 없느냐, 섹스는 잊으면 안 되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관두자. 나는 겉옷과 넥타이를 의자에서 낚아채고, 소파 밑으로 손을 넣어 신발을 꺼내고, 성난 걸음으로 문까지 간 뒤, 현관에서 최후의 독설을 날렸다. 그녀의 장난과 연극은 물리도록 보았다고 말했다. 6개월의 낙담, 6개월의 청결하고 섹스 없는 관계면 충분하다 못해 지나쳤다. 나는 즐겁고 충만한 관계의 사랑과 온기를 필요로 하고 바라며, 그녀도 같은 것을 원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친구를 원한다면 개를 샀겠지." 내가 이 대사를 어디에서 들었는지, 아니면 읽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틀림없어, 이건 결정타다. 그 말을 들은 그녀는 말 그대로 혀가 공중에서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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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2013-05-27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이 책을 다락방 님이 읽고 말았군요!

다락방 2013-05-27 17:35   좋아요 0 | URL
이 책이 왜요?

자작나무 2013-05-28 10:36   좋아요 0 | URL
제가 좋아하는 책이거든요. 다락방 님이 읽으면 어떤 소감일까 궁금했어요.

다락방 2013-05-28 10:38   좋아요 0 | URL
아. ㅎㅎ
이 책 되게 재미있어요, 자작나무님!!
 
사랑의 사막 펭귄클래식 124
프랑수아 모리아크 지음, 최율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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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바쁘고 정신없는 일정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은 늘 사랑을 위한 빈자리를 찾아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몰랐다. 세상에서 제일 바쁜 정치가라도, 정부(情婦)를 위해서라면 세상 전체를 중단시킨다는 것도 그녀는 알지 못했다.-39-40쪽

쿠레주가의 사람들이 조금 더 예민했더라면, 생명 탄생의 신비 자체는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밤나무의 새싹이 움트고 있는것은 관찰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바로 곁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적을 눈치채지 못했다. 마치 유능한 고고학자의 첫 번째 삽질에, 몇 세기 동안 컴컴한 땅 속에 묻혀 있던 아름다운 석상이 빛을 보는 것처럼, 마리아 크로스의 최초의 눈길이, 꾀죄죄하고 소심한 소년 안에 감춰져 있던 한 남자를 탄생시키는 이 신비로운 기적을. 한 여자의 뜨거운 눈길 아래서 그때까지 버려져 있던 레몽의 육체는, 고대의 숲 속 울퉁불퉁한 나무둥치에서, 잠들어 있던 한 여신이 깨어나는 것처럼 그렇게 새로운 모습을 하고 일어섰던 것이다. -66-67쪽

아! 자기에게 전혀 마음이 없는 여자에게 푹 빠진 사람, 보답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불행한 사랑을 선택한 사람은 얼마나 가엾은 존재인가? 그가 아무리 필사적으로 사랑한다 해도, 그녀는 그가 죽든 살든 관심이 없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이처럼 우리에게 무관심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법이다.-89쪽

"마리아는 정말 누구와도 같지 않은, 희한한 여자예요. 그래서 내가 집을 떠나 있을 때면, 어처구니없는 결단을 내리지 않을까 걱정이 된답니다. 종일 꿈만 꾸고, 묘지 아니면 외출도 안하고‥‥‥. 혹시 그게 다 독서의 영향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네, 책 때문일지도 모르지요."-131쪽

매일의 노동이 끈난 후 돌아와 이 여자 곁에 드러누울 수 있는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그러나 그때 내 곁에 누운 여자는 지금의 마리아가 아니겠지‥‥‥.아이도 몇 번이나 출산했을테고‥‥‥.몸 전체에, 나날의 하찮은 의무로 과로하고 마모된 흔적이 가득한 여자겠지‥‥‥.더 이상 욕망도 엇이 지겨운 습관만이 있을 거고‥‥‥.아, 벌써 새벽이구나.-188-189쪽

"사랑에 빠지면 고통스러워지고, 그러면 난 화가 나요. 그래서 사랑이 지나가기를 잠자코 기다리지요. 오늘은 그를 위해서 죽을 수 있을 것처럼 굴지만, 내일이 되면 모든 게 변하고 아무것도 아닌 게 될 테니까. 내게 그토록 커다란 고통을 주었던 사람이, 언젠가는 쳐다볼 가치조차 없는 대상이 될 거니까. 사랑하는 것은 끔직하게 힘든 일이지만,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도 수치스런 일이지요."-221-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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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2013-05-27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이 지나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육체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은 참 맹목적이어라.

다락방 2013-05-28 08:45   좋아요 0 | URL
그걸 안다고 멈출 수는 없잖아요, 사랑도 삶도 말이죠.
 
사랑의 사막 펭귄클래식 124
프랑수아 모리아크 지음, 최율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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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건 당신이 아니라 당신에 대해 내가 가진 환상인 건 아닐까. 사랑이 깨어지는 이유가 그 환상이 무너졌기 때문이듯이, 지속할 수 있는건 환상이 무너지지 않을만큼 먼 거리에 있기 때문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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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8 0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28 0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실즈 지음, 김명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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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이 책은 내가 읽었던 그 어떤 교양인문서보다, 에세이보다 재미있다. 오래전에 추천해주신 굿바이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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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3-05-27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솔직히 죽는건 뭐 죽고나면 끝이라고 생각하니까 두려운건 없는데 늙는게 참 두렵네요.



다락방 2013-05-27 12:01   좋아요 0 | URL
맞아요. 나이 먹는것도 두려워요.. ㅠㅠ
 

삶과 죽음은 정말로 운명에 바탕을 둔 게 아닐까. 그리고 사람은 자신이 죽을 때가 되면 아 이제 때가 됐구나, 하고 깨닫는걸까.



루이자는 말년에 건강이 나빠 고생하며 요양소에서 살았다. 어느 날 그녀는 보스턴에 있는 아버지를 방문했다. 아버지는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루이자는 아버지의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속삭였다. "아버지, 여기 루이가 있어요. 이렇게 행복하게 누워서 무슨 생각을 하세요?" 브론슨 올컷은 팔을 뻗어 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는 올라간다. 나랑 같이 가자." "아,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루이자는 아버지에게 입 맞추며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루이자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틀 뒤에 죽었다. (pp.38-39)
















왜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같이 가자고 말했을까, 하필 왜 그 순간에, 하필 왜 그녀에게? 그리고 그녀는 왜 그랬으면 좋겠다고 대답했을까? 그리고 도대체 왜, 이틀 뒤에 그녀가 죽은걸까? 사람에겐 정말 운명이란 게 있는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삶과 죽음에 대해서만큼은.




한 명씩만 읽어야지, 생각하고 엊그제는 '헤밍웨이' 편을 읽었다. 그러다가 '연필 일곱 자루가 있는 아침' 을 만났다.



여행을 다니고 사고를 치고 폭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헤밍웨이는 훈련된 작가였고 매일 아침 8시에 책상에 앉아서 오전 내내 글을 썼다. 그는 일이 되는 날을 "연필 일곱 자루가 있는 아침"이라고 묘사했다. (p.51)



어? 연필 일곱 자루가 있는 아침? 이건 내 서재 친구인 h 님의 서재, 프로필 사진 밑에 적혀있는 문구가 아니던가? 나는 내 기억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 서재로 갔다. 그리고 오, 내 기억은 맞았다.




므흐흣. 저 문장이 헤밍웨이로부터 나온거였구나! 반가워라. 흐흣 :)





어제 꿈에는 2PM 이 나왔다. 꿈에서 나는 쓰러졌다. 왜 쓰러졌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아팠는가보다. 여튼 쓰려졌는데 투피엠 멤버중에 한 명이 그런 나를 침대로 옮기려 했다. 그래서 안으려는데 무거워서 안지를 못하는거다. 그 멤버의 이름은 내가 모르니, 어쨌든 그 멤버는 안되겠다, 라고 중얼거리더니 밖으로 나가 투피엠 멤버를 세 명정도 더 불러왔다. 야, 이 여자 쓰러졌는데 내가 혼자 못옮기겠어 내가 다리 잡을테니까 누가 상체좀 잡아줘, 라고 말했다. 그러자 택연이 나서서 내가 할게, 라고 했다. 내가 쓰러진 걸 발견한 멤버는 내 다리를 들고 일어났고 그렇다면 내 상체를 택연이 들어야 하는데, 택연은 놀랍게도 한 손으로 내 이마를 움켜쥐고는 번쩍 들어올리는거다. 헐. 이래가지고 들어지겠냐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나는 꿈 속에서 의식은 있지만 한마디 말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쓰러졌으니까...여튼 그런데 내가 그 택연의 손아귀에 번쩍 들어올려지는 거다. 그렇게 멤버1과 택연은 나의 이마와 다리를 들고는 침대로 옮겨 나를 뉘었다. 그리고 꿈에서 깼는데 새벽에 잠깐 깨서는 이 꿈이 너무 웃겨서 혼자 피식 웃었다. 아침 출근길에 이 꿈을 생각하는데 새삼 웃음이 나왔다. 좋았다. 감동이었다. 그러니까 남자의 커다란 한 손이 내 얼굴을 들어올릴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어쩐지 내가 음, 약한(?)여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 물론 다리를 들어올린 남자는 따로 있어야 했지만;; 여튼 택연의 한 손에 들어올려진다니, 뭔가 좋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는 마크 트웨인을 읽을 차례다. 이따 퇴근하고 집에 가기전, 잠깐 짬을 내어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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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2013-05-23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걸작의 공간 좋아서 주문했네요
ps) 이마를 움켜쥐고 번쩍 들면 경추에 큰 부하가 걸립니다 경추간 분리가 일어날 수도 있어요

다락방 2013-05-27 10:35   좋아요 0 | URL
아하! 경추간 분리가 일어날 수도 있군요. 택연을 만나면 이마를 움켜쥐지는 말라고 말해줘야겠어요. ㅋㅋ

2013-05-23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27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관찰자 2013-05-23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필 일곱자루'하니까 생각나는데,
하루키 에세이 중에 연필을 보고 '세일러복을 입은 소녀'가 생각난다던 구절이 갑자기 팟.

다락방 2013-05-27 10:35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하
하루키 새 책이 나왔던데 말입니다!!

프레이야 2013-05-23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 좋아요^^

다락방 2013-05-27 10:36   좋아요 0 | URL
너도 한 명씩 읽어가며 좋아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뜬금없지만, 역시 헤밍웨이 보다는 피츠제럴드가 좋아요.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