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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대한 찬양 - 개정판
버트란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4월
평점 :
아버지는 아파트 경비일을 하신다. 아침 여섯시 반에 일을 시작하고 다음날 아침 여섯시반에 일이 끝나는 24시간 근무를 하고 계시는데, 24시간동안 잘 수 있는 건 고작 두 시간 정도 뿐이다. 텔레비젼 시청도 안되고 신문을 보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자는 것도 겨우 두어시간 허락해줄 뿐이니 침대 따위를 기대하는 건 사치고, 에어컨도 준비되어 있질 않다. 이 열악한 근무환경에 치를 떨고 밤에 잠도 자지 못하게 하는 부당한 처사에 항의라도 할라치면 '원래 경비는 자지 않고 지키는 게 임무다' 라는 답만 돌아온다.
그래, 맞다. 경비는 말그대로 아파트 입구에서 아파트 주민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감시하는 일을 하는 것일테다. 그러나 24시간 근무라고 잠을 자지 않게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조리하지 않은가? 감시와 보호 일을 제대로 잘 하게 하려면 근무시간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여덟 시간이어야 하는게 아닐까. 나는 보통의 사무직이지만 여덟시간을 넘어가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기운도 빠진다. 이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파트 경비의 특성상 그들은 오십대 이상의 남자들인데, 그들이 여덟시간이 아니라 이십사시간을 한결같이 순찰하고 감시한다는 게, 그게 합리적이라고 정말 생각하는걸까? 게다가 그렇게 해서 받는 돈은 고작해야 백만원 남짓. 그마저도 일자리가 없어 보수가 적고 근무환경이 열악해도 그들은 '자르지만 말아달라'의 심정으로 그 환경을 견디어낸다. 거기에서 잘리면 당장 먹고 살 일이 걱정이니까. 여덟시간씩 일하고 교대하게끔 삼교대로 돌려줬으면 하는 게 나의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인건비 문제로 아파트에서는 그런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또 그렇게 했을 경우 지금 두 명에게 나가는 인건비를 세 명에게 나눠준다고 하면, 지금 일하는 사람들은 고생스러워도 지금의 방식을 고수하려고 할 것이다. 아파트는 그걸 알고 있다.
왜 누군가에게 일은 고되고 힘들고 열악하며, 왜 누군가는 그런 일조차 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러야 할까?
버트런트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읽다가, 그에게 감탄했다. 이 책을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읽어보라 권하고 싶었다. 특히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세상의 모든 고용주들에게 필독하게 하고 싶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어떤 시점에서 일정한 수의 사람이 핀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들은 하루 (이를테면) 8시간 일해서 세상에 필요한 만큼의 핀을 만들어 낸다. 그때 누군가가 같은 인원으로 전보다 두 배의 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한다. 그러나 그 세게에선 핀을 두 배씩이나 필요로 하지 않을 뿐더러 이미 핀 값이 너무 떨어져서 더 이상 낮은 가격으론 팔 수도 없다.
이때 지각 있는 세상이라면 핀 생산에 관계하는 모든 이들의 노동 시간을 8시간에서 4시간으로 조정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모두 종전처럼 잘 굴러갈 것이다. 그러나 실제 우리 세게에서 그렇게 했다간 풍속 문란 행위쯤으로 여길 것이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8시간씩 일하고, 핀은 자꾸자꾸 남아돌고, 파산하는 고용주들이 생겨나고, 과거 핀 제조에 관계했던 인원의 절반이 직장에서 내쫓긴다.
결국 모두 4시간씩 일했을 때 나올 수 있는 만큼의 여가가 창출된 셈이다. 그러나 인력의 절반이 완전히 손놓고 노는 동안 나머지 절반은 여전히 과로에 시달려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불가피하게 생긴 여가는 행복의 원천이 되기는 커녕 온 사방에 고통을 야기시킬 뿐이다. 이보다 더 정신나간 짓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p.22)
경비 뿐만은 아니다. 이 나라의 많은 근로자들이 야근을 밥먹듯이 한다. 주말에도 나와서 일하기도 하고, 연월차수당을 받지도 못하면서 쉬지도 못하는 채로 일을 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많은 '일'에 시달린다. 그러나 이건 일자리가 있는 사람의 문제다.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로에 시달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일자리조차 없어 늘 불안과 가난에 시달린다. 이 환경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게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직원을 더 뽑아서 야근을 없애고 실직자도 없애는 것은 가장 당연하고 뻔한 해결방법인데도, 기업은 그 방법을 쓰지 않는다. 사람을 더 채용하면 그만큼의 인건비가 더 나가니까. 기업이 노동력 착취로 벌어들이는 이익은 어마어마할 것 같다. 그래서 부자는 계속 부자가 되고 가난하게 태어난 사람은 일에 치이거나 가난에 치일 수 밖에 없다.
왜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이 나눠서 함께 일하면 안되는걸까.
모든 도덕적 자질 가운데서도 선한 본성은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자질이며 이는 힘들게 분투하며 살아가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편안함과 안전에서 나오는 것이다. (p.33)
러셀 아저씨의 말은 버릴 게 하나도 없다. 우리는 뉴스를 보며 세상이 험악해졌다고 말하는데, 그 험악함은 어디로부터 비롯되는가. 우리 모두가 힘들게 하루하루 분투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서 선한 본성의 발현만을 기다리는 것은 누가 봐도 말이 안되는 소리 아닌가.
러셀이 주장했던 것처럼 '모두 다 네시간 근무 그리고 여가활동' 이 도무지 꿈같기만 하다면, 모두가 8시간 근무 정도는 지킬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24시간 근무하고 누구는 365일 일을 하지도 못하는 이사회는 확실히 비정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