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맞다, 이거였다, 이래서였다.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 지금의 터질듯한 긴장감. 이것 때문에 나는 내가 만난 단편들의 김 숨을 장편으로 만나고 싶었던거였다. 왜 읽고 싶었었지? 하며 책장을 넘기다가 다 읽고나서야 아, 이것 때문이었구나, 했다. 이 긴장감을, 김 숨을, 나는 또 찾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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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친구와 알라딘 파우치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셰익스피어를 선택했는데 너는 무얼했냐, 피츠제럴드를 하지 않다니 의외로구나, 부터 시작해서 필립 로스가 있으면 그걸 택할텐데 까지. 친구는 원하는 작가의 이름을 단 한 명만 선택할 수 있다면 필립 로스를 파우치에 새기고 싶다는 거였다. 나는 선뜻 한 명을 고를 수 없다고 말했다. 피츠제럴드는 당연히 좋긴 하지만 파우치 디자인이 별로였고, 그래서 셰익스피어를 선택했지만 셰익스피어를 좋아하니 상관없다. 누군가 신청할 수 있는거라면 코맥 매카시를 해야 할까, 존 쿳시는 어떨까, 로맹 가리는, 줌파 라히리는 등등. 친구는 내게 계속 한 명만 선택하라 말했고, 나는 그렇게 어려운 것엔 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친구는 다시, 생존 작가들중 필립 로스가 가장 좋다며, 자신은 필립 로스를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전 필립 로스와 만나고 싶어요!!!」


정확히 위와 같이 친구는 말했고, 이런 대화를 이어가다 이렇게 종결되어 가는 시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전 현빈.....」


이어지는 친구의 답은 이랬다.


「ㅋㅋㅋㅋㅋ」

「지금 세차게 기침 했음 ㅋㅋㅋ」


그랬다. 나는 파우치나 에코백에 피츠 제럴드, 로맹 가리, 코맥 매카시, 줌파 라히리를 넣기를 원하고, 그들의 얼굴이 그려진 에코백을 선택하는 것이 기쁘지만, 마찬가지로 이런 대화를 친구와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도 어마어마하게 기쁨이지만, 그래도 만나고 싶은건 그들이 아니라 현빈이었다. -0-


















어렵게 읽긴 했지만 어쨌든 다 읽기는 한 이 책의 초창기에, 이반 일리치는 이런 말을 한다.


사실 내 인생은 대부분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된 결과이다.– 71쪽




아, 지극히 당연하고 너무나 멋진 말이다. 실상 이반 일리치와 데이비드 케일리가 나눈 대화를 읽다보면 이반 일리치는 약간 까탈스러우며 까다로운, 까칠한 사람이란 인상을 받게 된다. 그의 앞에서는 말을 잘못했다가 무식해보이는 게 식은 죽 먹기란 생각도 들고. 교수로서의 그를 만나고 싶어진단 생각이 '조금' 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와 내가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고, 그의 질문 세례도 받고 싶지 않아진달까. 


그러나 이 까칠한 학자가 본인이 좋아하는 친구에 대해서 말할 때는 그 애정이 보통의 것보다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그런 그가, 누군가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저런 사람과 내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기대한다는 것도 꽤 놀랍다. 더 많이 알고 더 지적이고 수많은 외국어를 익힌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경외감을 가지고 있는, 그런 보통의 인간인 것이다. 나랑 같은, 우리랑 같은!



충격이었다! 나로서는 그로부터 3~4년 안에 우리가 친한 친구가 되고 또 그가 만년에 쿠에르나바카에서 나와 함께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굿맨을 내가 알게 된 위대한 사상가의 한 사람으로, 또 사려 깊고 따뜻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223쪽




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사람과 친구가 되다니, 그는 얼마나 감탄했을까. 스스로도 수없이 되뇌이지 않았을까. 으악, 내가 이 사람과 정말 친구가 되다니, 정말 놀라워! 하고. 이반 일리치에게 '폴 굿맨'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친구로는 도저히 상상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어쨌든 그들은 그런 친구가 됐다.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으니, 나 역시 그런 존재를 만나, 상상도 하지 못한 순간에 가까워지며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될런지도 모른다. 내 앞에 얼마나 많은 가능성들이, 얼마나 많이 다양하게 펼쳐져 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미래의 시간들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떻게 친구가 될까. 그리고 그들과 어떤 사이가 될까.


최근에 친구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래,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거야, 라고 계속 생각하면서도 우리들 사이가 예전같지 않게 될거란 사실이 무척 아팠다. 한 친구는 울었다고도 했다. 앞으로도 연락을 하고 지낼거지만, 만나기도 할테지만, 그 전과는 조금 달라진 것 같은 이 상황 때문에 우리는 모두 힘들어했다. 우리는 우리가 이렇게 조금 멀어지게 될 거라곤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그러면서 다른 친구들과 조금 더 가까워진 사실이 떠올랐다. 누군가와는 조금 더 멀어지고 누군가와는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것, 그렇게 살아가는건가 보구나, 하는 당연한 깨달음을 새삼 떠올렸다. 그러던차에 이반 일리치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사람과 친구가 되는걸 보노라니 마음속에 꿈틀, 희망이 생기는 것도 같은거다. 나 역시 그럴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누군가에게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가 나의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친구가 되지 않을까. 이를테면 현빈 같은....설마 현빈이, 말도 안돼, 싶지만, 어쩌면 정말 2-3년안에 나의 소울메이트가 되어 있을 수도 있는거 아닌가! 한 달에 한 번쯤 만나 맛있는 걸 함께 먹으며 밀린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소울메이트...그렇게 되지 말란 법도 없잖은가! 꺅!



이 책의 <사랑이라는 가면>이란 챕터에서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친구들에 대해 얘기하는데, 그래서 이 챕터를 읽는게 좋았다. 위의 인용문도 이 챕터의 것이고 아래의 것도 마찬가지.



(존 홀트에 대해 얘기하며)그는 한 가지 일에 열중하는 멋진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정말 있을까 싶어 가끔씩 찾아가서 만져볼 정도로 멋진 사람이었다!– 231쪽





폴 굿맨도 존 홀트도 사실 내게는 외계어와 다름없는 이름이지만-그것은 '이름'이라기보다 알지 못하는 용어로 읽힌다-, 맙소사, '그런 사람이 정말 있을까 싶어 가끔씩 찾아가서 만져볼 정도로 멋진' 사람이라니. 너무나 근사하지 않은가. 이 까칠한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라니. 아니 대체 존 홀트는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이 들었던 존재가 있었다. 그를 어떻게 정의내려야 할 지 모를 그때. 우리의 관계가 어떤건지도 명확히 정의내릴 수 없었던 그때. 그의 포지션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모르겠는 그때. 나는 수없이 많이 생각했었다. 몇번이나 생각했었다. '이런 사람이 있다니!' 하고. 이런 사람과 내가 알고 지내고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니! 하고. 간혹 이런 사람들이 내게 존재한다는 게 신의 축복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중 어떤 이들은 처음의 그 빛을 잃고, 그들중 어떤 이들은 갈수록 그 빛을 더하며 내 옆에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그런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을것이다. 와, 이런 사람이 정말 있는걸까 싶어 가끔씩 찾아가서 만져볼 정도, 인 그런 사람. 아- 가슴에 애정이 들끓는다. 그가 반짝거리던 그때, 내 손을 들어 그의 팔에 살며시 가져다대었던 그 기억. 내 손바닥에 느껴지던 그의 팔의 느낌. 또다른 사람, 그 사람과 지하철 역에서 각자의 방향으로 지하철을 타야 하기 위해 작별의 인사를 하던 순간, 이 사람이 너무 좋아, 하는 생각으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던 기억. 그 순간에 나는 입밖으로 신음을 터뜨리고 싶었다. 으윽- 하고. 으윽, 헤어지기 싫어, 하는 뜻을 담아.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계속 쿵쾅대던 가슴, 같은 것을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그는, 신이 나를 사랑해 만들어 보내준 사람 같았다. 그러나 신이 그를 사랑해 나를 만든건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좋아하는 사람들과는 헤어짐이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헤어짐은 존재하지 않는채로, 새로운 만남들이 계속계속 쌓여갔으면 좋겠다. 기대와 설레임과 행복함이 찾아드는 만남은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 내일도 모레도 내년에도 삼십년 후에도, 그런 사람과 계속 새롭게 만나 새롭게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지만, 만남이 있어도 헤어짐은 없었으면 좋겠다.




월요일을 어떻게든 우울하지 않게 맞이하고 싶어 빨간색 매니큐어도 바르고, 출근길에 캬라멜마끼아또도 사서 마셔보았다. 뭐, 그랬다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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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4-05-19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반 일리치가 그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그 이반인 줄 알고 아는 척 하려고 했는데 ㅋㅋ 아니군요! 이 붉은 색은 그냥 그런 빨강이 아니라 아주 독특하고 묘해 보입니다. 이쁘네용.

다락방 2014-05-19 16:10   좋아요 0 | URL
저도 정여울의 책을 읽다가 알게됐어요. 이반 일리치란 이름이 언급되길래, 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 했는데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궁금해서 읽게 된건데 어렵더라고요. 좀전에 이 책이 어렵다는 제 리뷰를 보고 친구가 이반일리치 입문서를 선물로 보내줬는데, 하아- 입문서라고 어디 쉬울까..싶기도 하고 ㅠㅠ

손톱이 예쁘니 남자나 만나러 갈까 하다가 만날 남자가 없어 관뒀습니다, 블랑카님. ㅋㅋㅋㅋㅋ

자작나무 2014-05-19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다악방 파우치가 갖고싶습니다.

다락방 2014-05-19 16:11   좋아요 0 | URL
어떻게, 개인제작 해서 하나 보내드릴까요?

자작나무 2014-05-20 08:45   좋아요 0 | URL
네!!!!

아무개 2014-05-19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한테는 다락방님이 그런 존재랍니다.
'우와 내가 이런 사람이랑 알고 지내다니, 심지어 나를 친구라고도 불러준다니! '이렇게요 ^0^

다락방 2014-05-19 16:11   좋아요 0 | URL
아이쿠야, 이런 어마어마한 말씀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해한모리군 2014-05-19 1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왠지 저도 다락방님으로 하고 싶어요.... 라고 말해야할거 같지만... 전.......... 원빈으로 하겠습니다...

다락방 2014-05-19 16:11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
제가 현빈하고 소울메이트가 되면 원빈도 소개시켜 달라고 해서 휘모리님 부를게요. ㅋㅋㅋㅋㅋ

건조기후 2014-05-19 20:33   좋아요 1 | URL
나는 강동원 소개해줘요 ㅎㅎㅎㅎㅎ

다락방 2014-05-20 08:11   좋아요 1 | URL
건조기후님은 강동원? 오케. 콜콜!! 내가 다 해줄게요. 일단 내가 현빈하고 소울메이트만 되면 ㅋㅋㅋㅋㅋ

자작나무 2014-05-20 0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때 다락방이 내 옆방에 있었지. 그때가 내 인생의 황금기였어.

-보스-

다락방 2014-05-20 09:57   좋아요 1 | URL
난 니 옆에 있을때 우울증에 시달렸다 이 보쓰놈아. ㅎㅎㅎㅎㅎ

자작나무 2014-05-20 12:44   좋아요 1 | URL
좋아하는 다락방과 헤어짐이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보스-

단발머리 2014-05-20 1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는 이 글이 너무 좋아서 여러 번 읽었어요.
상상도 못할 누군가와 특별한 친구가 되는 상상을, 다시 한 번 해보게 되네요.

그리고, 네....
지금 말해야 되는거죠?

김수현을 소개시켜 주세요. 제 핸폰 번호 아시죠? ^^



다락방 2014-05-20 16:27   좋아요 1 | URL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단발머리님 좋아합니다~

단발머리님은 김수현. 오켕, 콜!!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
데이비드 케일리 외 지음, 권루시안(권국성) 옮김 / 물레 / 2010년 3월
절판


사실 내 인생은 대부분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된 결과이다.-71쪽

사람들이 학교에서 배운 과목과 그 과목을 배운 사람을 요구하는 직업에서 이들이 발휘하는 능률 간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 사람의 학교교육에 들어간 돈의 액수와 그 직업에 종사하면서 평생 벌어들이는 수입 간에는 아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지만, 학교에서 습득하기로 되어 있는 역량과 업무 효율 간에는 입증할 만한 고나계가 없다는 말이다.-79-80쪽

우리가 여기 앉아 함께 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그것은 당신과 당신 아이들 간의 감정에 내가 첫눈에 깊이 감명 받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는데, 아동기라는 개념이 자리 잡은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이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진지하게 대하기 위해 아동기라는 개념을 당신이 버렸다는 사실은 아이들 편에서 보면 특별한 이점으로 작용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모범이 아니다. 모방의 대상으로 삼을 행동이 아니라 앞 다투어 그렇게 해야 할 행동이다. 이 독특한 불꽃을 우리는 소중히 길러야 한다.-88-89쪽

나는 우리가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 것들이 있음을 분명히 해두고자 했다. 나는 주장한다. 전문 언어학자의 생각과는 달리, 서로 진정으로 대화하는 사람들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도구가 일정한 강도 이상으로 성장하면 수단에서 목적으로 변모할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꺾어버리게 되는데, 『공생을 위한 도구』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그렇게 되는지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나는 반생산성이라는 개념을 세우고자 했다. 어떤 도구-예를 들면 운송체제가-가 일정한 강도를 넘어 성장하면, 그 도구가 만들어진 목적으로부터 멀어지는 사람이 그것의 장점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되는 사람보다 반드시 더 많아진다는 사실 말이다. 통근-즉 필수적인 교통-목적의 경우 교통이 가속화되면 사회의 구성원 대다수에게 날마다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데에 소요되는 시간이 필연적으로 증가한다. 반면 세계 어디든 거의 동시에 오고갈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125쪽

나는 기술에 대해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지만 사람들에 대한 희망은 계속 품고 있다. 사람들의 아름다움과 창조성과 놀라운 창의력을 믿고 있다.-126쪽

나는 글을 쓰는 법을 알고 있다. 무엇에 대해 글을 쓰고 싶어 하는지 스스로 알고 있다. 사람들이 나를 읽게 하는 것이다. 그 외의 사람에게는 다가가고 싶지 않다. 지금도 이 태도에는 변함이 없다.-134쪽

물이 비교적 싸게 집 안까지 들어온 것은 사실이다. 1920년에 이르러 미국 가족의 절반이 옥내 화장실과 샤워를 갖추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여성이 들통에 물을 담아 들고 거리를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는 식으로 생각했다. 게다가 가족은 전보다 물을 더 많이 쓸 수 있었고 더 깨끗해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슈워츠코원 여사가 아주 분명하게 보여준 바와 같이, 그 이후 욕조를 청소하고, 화장실과 욕실을 치우고, 세탁기를 돌리고, 심지어 세탁기 등을 구입하기 위해 밖에 나가 돈을 버는 등 여성이 집안에서 처리해야 하는 노동의 양은 그 이전 사회에서 물과 관련하여 여성에게 기대하거나 부과된 노동의 양보다 훨신 더 많아졌다. 어떤 유형의 활동-공동 급수장에서 몇 시간씩 서서 기다리며 수다를 나누고 굉장한 뒷공론을 주고받는 쪽과, 각기 자기 집 욕실 안에 갇혀 바닥을 청소하는 쪽-을 여성이 선호할지 나로서는 그들의 결정에 맡긴다.
내 논지는 상품을 쓸모 있는 것으로 변환하기 위해 투입해야 하는 종류의 노동을 하나의 경제 활동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노동에 보수가 따를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황당해보여도 그렇게 해야 한다. -174-175쪽

충격이었다! 나로서는 그로부터 3~4년 안에 우리가 친한 친구가 되고 또 그가 만년에 쿠에르나바카에서 나와 함께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굿맨을 내가 알게 된 위대한 사상가의 한 사람으로, 또 사려 깊고 따뜻한 사람으로 생각한다.-223쪽

(존 홀트에 대해 얘기하며)그는 한 가지 일에 열중하는 멋진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정말 있을까 싶어 가끔씩 찾아가서 만져볼 정도로 멋진 사람이었다!-231쪽

그들은 댈러스에 호수가 있어야 할지 없어야 할지를 두고 70년 동안 벌여온 논의 기록을 내게 보냈다. 댈러스는 역사가 130년도 되지 않았는데 이 문제를 놓고 70년 동안 논의를 계속한 것이다. 재정적으로 가능한가? 경제에 보탬이 되겠는가? 환경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겠는가? 이런 여러 관점 하나하나에 대해 그들은 70년 동안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었다. 한 가지에 대해서는 다들 확신하고 있었다. 호수가 아름다울 거라는 점이었다. -271쪽

그렇기에 나는 살아 있자고, 그리고 누리자고-정말로 누리자고- 모든 고통과 모든 불행과 함께 이 순간 허락돼 있는 살아 있음을 의식적으로, 의례적으로, 공개적으로 즐기자고 말한다. 내가 볼 때는 이것이 절망이나 종교성-저 사악한 종류의 종교성-에 대한 해독제인 것 같다.-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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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
데이비드 케일리 외 지음, 권루시안(권국성) 옮김 / 물레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미국이 제3세계에 자원봉사자를 보내는 것이 결국은 해를 가져온다는 것, 학교라는 교육 기관 역시 도구로서 인간에게 해를 가져온다는 것, 의료 기술의 발전 역시 해를 가져온다는 것, 성별을 인정하지 않으니 성차별이 생겨난다는 것 등등, 그의 주장들은 그 주장에 대한 근거를 읽지 않는다면 처음엔 대체 그게 무슨 소리람, 싶어진다. 그러나 그가 조목조목 하는 말들을 천천히 읽으면 아, 그렇겠구나,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말들이 내게 무척이나 어려워서 잘 이해했다는 생각이 들질 않는다. 만약 내가 잘 이해했다면 그의 주장과 근거를 인용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거나 설득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입 밖으로 낼 수 없는건 내 스스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이고, 그러므로 나는 매우 안타까운 것이다.


이 책은 분명 읽을만한 가치가 있긴 하지만, 지금의 내가 읽기엔 온전히 이해되기 어려울 정도의 내용들로 가득차있고, 그렇다고 십 년이 지난후에 읽어도 내가 이해할 수 있을지 역시 자신이 없다. 이 책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한 해설서가 나왔으면 싶어지는 것이다. <이반 일리치 입문서>같은게 필요한 것이다. 흑흑.



그나저나 지구 이편에 나라는 인간이 있듯이 지구 저쪽 편에는 '열한 개의 언어를 익히고, 신학과 역사학과 화학 분야의 학위를 갖고 있는' 이반 일리치가 존재했구나. 그 간극은 물리적 거리보다 더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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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4-05-19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나중에 저한테 파셔요. 도전!!!

교육, 의료 기술발전, 성별의 차이 이런것들 뿐만아니라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은
모두 다 장단점을 갖고 있지 않을까요? 라고..소심하게 써봅니다^^

다락방 2014-05-19 09:33   좋아요 0 | URL
제가 밑줄 그은 부분들이 있지만 그냥 드릴게요. 팔기는 무슨.. ㅎㅎ
아 머리에 쥐나는 독서였네요. 이제 김 숨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어찌나 팔랑팔랑 잘도 넘어가는지. ㅠㅠ

2014-05-19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19 16: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5-19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 없는 사회'를 추천합니다.

다락방 2014-05-20 08:12   좋아요 0 | URL
학교없는 사회는 다 품절이나 절판이네요. 그래도 박홍규의 '이반 일리히'를 선물 받았습니다. 움화화핫. 언제 읽게될진 모르겠지만요. -0-
 

역시 잠이 안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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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4-05-19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 저도 새벽 네시에 잠들어서 지금 죽겠네요

다락방 2014-05-19 10:57   좋아요 0 | URL
으악 소이진님! 저보다 더 늦게 잤네요! 오늘 하루 잘 버텨요. 빠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