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출근하는 동안과 퇴근하는 동안, 그리고 잠들기 전에 이 책을 읽었다. 주인공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읽다가 퇴근길 지하철안에서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깔깔깔은 아니고 키득키득 수준이었지만. 그러니까 여덟살? 아이가 집의 요리사와 대화를 하는데 '내장'이 뭔지 모르는 거다. 이에 요리사는 그것이 아이는 알지 않아도 되는 단어라고 말한다.



세라 할멈은 이상한 일에 별 이유도 없이 예민했다. 어느 날 셀리아가 주방에 들어가 세라 할멈에게 뭘 만드는지 물었다.

"내장 수프예요, 아가씨."

"내장이 뭔데?"

세라 할멈은 입을 다물었다.

"꼬마 숙녀가 묻기에 좋지 않은 것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뭔데?" 셀리아의 호기심이 더욱 커졌다.

"자, 그만해요, 아가씨. 아가씨 같은 꼬마 숙녀가 그런 걸 캐묻는 건 좋지 않아요."

"세라." 셀리아는 춤을 추며 주방을 돌아다녔다. 옅은 금발 머리가 찰랑거렸다. "내장이 뭐야? 그게 뭔데? 내장……내장……내장?"

화난 세라 할멈이 프라이팬을 들고 달려오자 셀리아는 주방에서 나갔다가 몇 분 후 다시 고개를 들이밀고 물었다. "내장이 뭐야?"

다음에는 주방 창문에 나타나 똑같이 물었다.

세라 할멈은 잔뜩 화가 나 어두워진 얼굴로 대답은 않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p.95-96)



아..너무 귀여운 거다. 너무 웃겨. 내장이 뭐야? 그게 뭔데? 이렇게 연거푸 묻는 게 너무 귀엽고 웃겨가지고 혼자 키득거렸는데, 아아, 이 키득거림은 시작에 불과했다.



세라 할멈은 바느질 담당 하녀를 미워했다. 그래서 그녀를 사생아라 욕하는데...



베넷은 하인들을 막 대하고 심부름도 시켰기 대문에 그들은 그녀를 몹시 싫어했다.

"주제에 으스대는 꼴이라니." 셀리아는 세라 할멈이 중얼대는 소리를 들었다. "애비 이름도 모르는 사생아 주제에."

"사생아가 뭐야?"

세라 할멈의 얼굴이 빨개졌다.

"꼬마 숙녀의 입에서 나올 소리가 아니에요, 셀리아 아가씨."

"내장이야?" 셀리아가 기대하며 물었다.

옆에 있던 케이트가 큰 소리로 웃다가 발끈한 세라 할멈에게 입조심하라는 타박을 들었다. (p.99-100)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 진짜 너무 귀여워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러니까 이 작은 아이가, 꼬마 숙녀가 알아서는 안될 것이라며 내장에 대한 설명을 거부하고, 그 뒤에 또 꼬마 숙녀가 알아서는 안된다는 단어로 사생아가 등장하니, 사생아=내장?? 이런 사고를 한 것일텐데, 아 너무 귀여운 거다. 그러니까 왜 애 호기심에 답을 안해줘, 물어서 답을 안해줄거면 애 앞에서 말을 말던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진짜 지하철 안에서 



"내장이야?"



읽고 너무 웃겨서 키득키득 웃었는데, 어젯밤 자기 전에 갑자기 이 장면이 생각나는 거다. 요리하는 할멈 옆에서 알짱거리며 '내장이 뭔데?' 묻다가, 하녀들끼리 얘기하는 걸 귀 쫑긋 거리고 들으면서 '사생아가 뭐야?' 하다가, '내장이야?' 하는 꼬마 숙녀를 생각하니 진짜 너무 귀여운 거다. 이 장면에서 여덟살인가 아홉살인가 그런데, 이제 막 초등학교 입학한 내 조카 생각도 나면서 너무 웃긴 거다. 조카도 나랑 여동생이 얘기하거나 엄마랑 얘기하고 있으면 갑자기 옆에 와서는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우리 어른들의 대화를 듣는 거다. 그리고 이건 뭐야, 저건 뭐야 엄청 묻는데, 지난 번에는 내가 '낭비하면 안돼' 라고 했더니 '낭비가 뭐야?' 물어서 대답을 어버버 했던 적이 있더랬다. 낭비는..뭐라고 해야하나..그래서 내가 '쓸데도 없는 걸 또 사려고 하는 걸 말해' 라고 했더니 아아, 나의 조카가 이랬더랬다.



난 다 쓸 데 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 이모가 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나는 조카의 손을 잡고 문구점에 가서 인형인지 열쇠고리인지 이런 걸 또 사주고야 말았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돈은 왜 버나요? 조카에게 예쁜 거 사주려고 돈을 버나요? 이번에도 알라딘 스티키노트 너무 예뻐서 두 개나 받아가지고 조카들 하나씩 줬다. 그거, 별 거 아닌듯 보이지만, 그거 하나 마련하려면 책을 오만원어치 사야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거 두 개 받아서 조카들 하나씩 주기 위해서 나는 십만원 이상을 썼어. 꽥!!!!!!!!!!!!!!!!!




아무튼 어린 셀리아의 저 장면을 읽다가 진짜 너무 귀여워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장이 뭐야? 내장이야? 이러는데 진짜 아아 완전 안아주고 머리통에 뽀뽀폭탄 날려주고 싶다. 완전 꽉 끌어안아 주고 싶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지만 더 자란 셀리아는 더이상 사랑스럽지 않다. 그건 그거고, 아니 이 어린 셀리아가 자라서 그러니까, 아주 예쁜 숙녀가 된거다. 그래서 여러 남자로부터 청혼을 받는다. 나이 많은 남자, 지적인 남자, 돈 많은 남자 등등으로부터 청혼을 받고 다 거절을 하는데, 그러다가 친하게 지냈던 친구의 오빠 '피터'로부터도 청혼을 받는다. 피터는 셀리아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셀리아 역시 피터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셀리아는 피터의 청혼을 승낙하지만 피터는 시간을 좀 주겠다고 말한다. 셀리아는 젊고 예쁘고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자격이 있다, 셀리아는 자유롭다, 2년쯤 후에 그 때에도 니가 좋은 짝을 못만났다면 그 때 나랑 결혼하자, 이러는 거다. 그러면서 전출 명령을 받고 인도로 떠나는데, 셀리아는 결혼해서 같이 가고 싶다고 하지만 피터는 셀리아에게 '넌 자유로워' 이러는 거다. 진정한 사랑이라 믿으며 애정을 뿜뿜 한달까.




셀리아는 피터와 당장 결혼해서 함께 인도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피터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그는 셀리아가 열아홉 살밖에 되지 않았으니 많은 기회를 누려야 한다고 고집했다.

"욕심 사납게 셀리아를 낚아챈다면 난 누구보다 끔찍한 인간이 된 기분일 거야. 셀리아의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고……나보다 셀리아를 더 좋아해주는 사람이 나타날지도 몰라."

"안 그래요……난 안 그럴 거예요."

"그건 모르는 일이야. 열아홉 살 때 누군가를 좋아했다가, 스물두 살쯤 되면 그의 어떤 점이 좋았는지 의아해하는 여자들도 많아. 난 조바심내지 않을 거야. 셀리아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해. 실수가 아니라는 확신이 들어야 해." (p.220)



그래, 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연인이 되기로 결정했을 때, 나랑 함께 살기로 결정했을 때, 그것이 실수가 아니라는 확신, 강한 확신이 있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이미 나를 사랑하고 결혼하겠다고 말한 사람에게 '넌 아직 어려서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어' 이러면서 시간..을 준다? 그래, 이것은 정말이지 아주 이해심 넓은, 상대를 엄청나게 배려해주는, 그런 진정한 사랑, 리얼 러브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 계속 보자.



"셀리아는 정말 아름다워요. 더 나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전 셀리아의 짝으로 형편없으니까요."

"그렇게 겸손할 필요는 없어." 미리엄이 불쑥 말했다. "여자들은 그런 걸 높이 사지 않아."

"네, 아마 그렇겠죠."

이 주 동안 셀리아와 피터는 정말 행복했다. 이 년은 금방 지나갈 것 같았다.

"당신에게 충실하겠다고 약속할게요. 피터, 당신을 기다리는 나를 보게 될 거예요."

"셀리아……약속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 셀리아는 전적으로 자유로워."

"그러고 싶지 않아요."

"아니, 셀리아는 자유로워."

셀리아가 갑자기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당신이 날 정말 사랑한다면, 당장 결혼해서 함께 가길 바랄 거예요."

"셀리아, 내 사랑, 내가 정말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다는 걸 모르겠어?"

그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보면서 셀리아는 깨달았다. 그의 사랑이 진심이라는 것을, 간절히 바라던 보물을 움켜쥐기를 두려워하는 것 같은 사랑이라는 것을. (p.222)



하아- 저기, 미리엄, 셀리아의 엄마도 말했다. '여자들은 그런 걸 높이 사지 않아' 라고. 이 말은 반만 맞다. 왜냐하면, 여자들만 그런 게 아니니까. '그렇게까지 겸손한' 건 여자든 남자든 누구든 싫어한다. 누구나 지나친 겸손, 지나친 자기낮춤을 맞닥뜨려 짜증난 적이 있지 않나? 나는 지나친 자기 겸손이야말로 가장 짜증나는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셀리아의 짝으로 형편없다고 생각했으면 애초에 사랑고백은 왜했담? 사랑하고나서 연인이 되어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그럼에도 자기가 한참 모자란다 생각이 들면, 그러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 되잖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로, 너는 더 좋은 사람을 만날 가치가 있어, 난 너무 형편없지...이딴 개소리를 자꾸 해대면...... 어떻게 되는 줄 아냐?




삼 주 후 피터는 배에 올랐다.

일 년 삼 개월 후 셀리아는 더멋과 결혼했다. (p.222)




참....어지간히 바보 같은 짓이다. 아니, 여자가 놔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너랑 결혼하겠다, 지금 당장 하고 싶다 이러고 있는데도 '난 너에게 부족해, 너에게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날지도 몰라, 넌 자유로워.' 이러고 있으니, 그 자유로운 시간동안 다른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는 건, 그래, 네가 감당할 몫이다, 피터... 사람 좋은 척 하다가 사랑하는 여자를 잃는 거야, 이 바보야.. 


결국 피터는, 예측 가능한대로, 후회한다. 




나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어. 당신에게 부유한 사람과 결혼할 기회를 주려고 했지. 그런데 당신은 나보다도 가난한 사람과 사랑에 빠졌군. 

사실 당신은 그가 나보다 더 용기 있다고 느끼겠지. 당신이 당장 결혼해서 함께 떠나겠다고 했을 때 그래야 했는데……난 지긋지긋한 멍청이였어. 난 당신을 잃었고, 모두 내 잘못이야. 그는, 당신의 더멋은 나보다 나은 사람이겠지…… 틀림없이 좋은 사람일 거야. 아니라면 당신이 그를 좋아하지 않았을 테니까. 두 사람에게 늘 최고의 행운이 따르길 바랄게. 그리고 나 때문에 속상해하지 마. 이건 당신이 아니라 내가 책임질 일이야…… 그런 빌어먹을 멍청이 짓을 한 내 발등을 찧고 싶군. 행운이 있기를, 내 사랑…… (p.231)




지나친 겸손이 겸손이 아니듯 지나친 배려도 배려가 아니다. 뭐든 지나치면 모자르니만 못하다. 사랑해서 '너무 사랑해서' 다른 사람 만날 기회를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면, 그래, 다른 사람에게 가버리고 당신에겐 세이 굿바이, 네가 너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라며.... 아니, 이렇게 진정 사랑한다고, 리얼 러브라고 시간을 주고 양보하면...그러면 정작 당신은 누구랑 함께하나?? 참, 올해 만난 명문이다.



삼 주 후 피터는 배에 올랐다.

일 년 삼 개월 후 셀리아는 더멋과 결혼했다.



아아.... 그래서 내가 생각이 많아졌다. 역시 가장 먼저 생각할 건 내 자신이구나. 내가 이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거기다 대고 쓸데없이 '당신에게 더 나은 사람을 찾아, 찾아보다 안되면 그때 내가 있을게' 같은 거, 할 필요가 전혀 없어. 그거 했다가 진짜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가는거야...그래놓고 훗날, 내가 그 때 그러지 말걸...하고 땅을 치고 후회해봤자 늦었지. 내가 상대를 정말 원한다면, 내가 가진 건 이것 뿐이지만, 이걸로 최선을 다해서 당신과 함께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보겠다, 해야지, 괜히 '더 좋은 사람 만날 기회를 줄게' 하지 말아야지... 그러다가 일 년 삼 개월 후에 더멋하고 결혼한다니까?



생각이 많다.



아니, 근데 대체 무슨 생각이야? 왜 더 부자 만날 수도 있으니까 자유롭게 행동하라고 하지? 하아- 뭐,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둘은 맺어질 운명이 아니었나보지. 그래, 세상에 사람은 많고 사랑하는 방법도 다양하지..그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뭐 그런 거지..그렇지만 그렇게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질 순 없을 것 같아...뭐, 안 맺어져도 되지, 혼자 즐겁게 잘 살면 되니까...



응?


놔줄지 말지 똑바로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영영 놓칠 수가 있다니까? 그때 돼서 후회해봤자 늦어...늦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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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7-03-07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이책 있어요!!!! (아직 안 읽음.ㅎㅎ)
내일 연차냈으니 이 책을 읽어보리다.

요즘 소설이 잘 안 읽혀서.. (시무룩)

다락방 2017-03-07 16:44   좋아요 0 | URL
나도 이 책 책장에 꽂힌지 엄청 오래 되었어요. 엊그제야 꺼냈지 뭐야. 아직도 꺼내지길 바라는 책들이 많아요 ㅠㅠ

이 책 읽다가 이렇게 키득키득 웃게 되어서 좋았어요. 아직 다 안읽었는데 끝에 어떻게 될지 너무 궁금하고. 레와님, 같이 읽어요! >.<

단발머리 2017-03-07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이 책의 표지가 너무 익숙해서 내가 읽은 줄 알았어요 ㅠㅠ
피터, 바보씨 이야기 땜에 꼭 읽어야겠어요.
내장이야? 도 확인해야겠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의 명문은...
지나친 겸손이 겸손이 아니듯 지나친 배려도 배려가 아니다.

잘 읽고, 막 웃고 가요^^

다락방 2017-03-08 08:07   좋아요 0 | URL
얼른 끝까지 읽고 싶은데 다 읽지 못해서 궁금해요. 이게 명랑소설이 아니라 끝에 뭐랄까 서글플 것 같은데, 으윽, 알고 싶지 않으면서 알고 싶은..벌써부터 남편에 대해서 으응??? 하는 점도 보이고요. 아아, 다 읽고나면 조금은 울적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흑.

내장이야?는 너무 재밌죠? 진짜 귀여워요. 생각하고 또 해도 귀엽고 웃겨요. 아 너무 귀여워.... 헤헷.
 

어제는 오랜만에 야근을 했다. 바쁘게 늦게까지 일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이래서 좋은사람,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알아두는 것이 좋다. 나는 스트레스 받아서 우우우- 한 마리의 거친 짐승이 될 뻔했지만, 그럴때마다 엊그제 다시 보았던 영화 [노팅힐]을 생각했다.
















그러니까 영화의 거의 마지막 즈음, 줄리아 로버츠는 휴 그랜트를 오랜만에 다시 찾아온다. 런던에 촬영차 왔는데 그 촬영이 끝났고 내일 미국으로 돌아갈거란 얘길 하면서, 그런데 돌아가기 전에 묻고 싶었다고 했다.



"내가 여기에 머물면 당신이 나를 가끔은 만나줄지 궁금했어요...자주요."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휴 그랜트에게 그녀는 또 이렇게 덧붙인다.


"당신이 나를 다시 좋아해줄지 궁금했어요."



저렇게 말하는 줄리아 로버츠는 나같았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남자에게 나를 다시 사랑해줄건지 묻는 그 상황과 마음이, 마치 나같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대답하는 휴 그랜트도 또 나같았다.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다시 당신에게 버려지면 그 때는 버티지 못할 것 같아요."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나는 이 말이 완전 진짜 뭔지 너무나 잘 알겠는 거다. 이별을 하고 많은 시간을 '그가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 고 생각했었지만 꼭 그만큼 '아니 다시 사귀었다 헤어지면 그땐 진짜 무너질거다, 이건 모르니까 버틸 수 있었지, 이걸 알면서도 그 길로 또 걸어들어갈 순 없다, 알면서 버틸 순 없다' 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래서 줄리아 로버츠를 거절하는 휴 그랜트의 마음이 꼭 내 마음인 거다. 아아, 하나의 영화를 보면서 한 명의 등장인물이 되어도 그 영화는 좋은 영화가 되는데, 이 영화 속에서 나는 막 휴 그랜트도 되었다가 줄리아 로버츠도 되었다가 했다. 아아 세상 좋은 영화다. 진짜 최강 영화야. 모든 등장인물이 내가 된다!!



물론 그 뒤의 장면들도 몹시 좋다. 휴 그랜트는 자신의 친한 친구들에게 자신이 줄리아 로버츠를 거절했음을 밝힌다. 친구들은 처음에 그의 결정을 잘했다 해주지만 다른 한 친구가 '그녀가 너한테 사귀자고 했다니, 좋은 사람임에 틀림없네'라고 말한 것을 시작으로 다들 휴 그랜트가 멍청한 선택을 했다는 눈빛을 보낸다. 그 후에는 친구들과 함께 후다다다닥 줄리아 로버츠에게 찾아간다. 그렇게 그들은 다시 연인이 된다.




이 장면들이 너무 좋다. 다시 봐도 너무 좋아. 진짜 훌륭한 영화다. 친구들 모두 어느 부분에서는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고, 약점을 가진 사람들인데, 이들 모두가 서로 자주 모이고 함께 이야기하고 서로의 사정을 듣는 것이 너무 좋다. 나도 꼭 이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개개인으로 보자면 완벽한 사람이 하나 없을텐데, 우리가 서로의 부족함을 그대로 가진채로, 그러나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에게 좋은 친구일 수 있으니까, 이렇게 자주 모이고 고민을 함께 나누면서 오래오래 즐거이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다. 나는 혼자일 때도 너무 신나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도 너무 신난다. 사랑하는 사람과 둘이 하는 대화도 좋고, 나 혼자 책 보며 영화 보고 또 걷는 시간도 좋지만, 좋아하는 사람들 여럿과 함께 한 자리에서 수다 떠는 것도 또 너무 좋아! 며칠 전에 친구랑 술마시다 얘기했지만, 진짜 욕심 별로 없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것 먹고 마시면서 즐겁게 사는 것, 그게 내가 바라는 전부다.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나는 삶에 있어서 더 큰 걸 바라지도 않는다. 인생 뭐 있나...






지난번에 영어 공부 하겠다고 주토피아 대본 사놨다가 한 장도 안보고 팔아버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돈지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그거 팔고 노팅힐 대본 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직 한 장도 안보고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부한다고 스프링분철 해달라고 돈도 더 줬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는 늦은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가니 엄마 아빠가 쪼르르 와서는 춥지 않았냐, 밥은 먹었냐 물으시더니, 이내 그 날 하루 있었던 일에 대해 폭풍 수다를 늘어놓으신다. 엄마가 쉬지도 않고 말했다. 오늘 아빠랑 이마트가서 수영복샀어, 순두부 찌개 먹으러 갔는데 니 생각나서 쫄면순두부 시켰어, 아빠도 맛있었대, 외할머니 보청기도 아빠랑 같이 보러갔어, 아빠가 다른 데도 더 보러 가자고 하셨어 등등..


나는 들으면서 아빠가 수영복 고르러 가는데 툴툴대지 않았어? 순두부 맛있었어? 어어 아빠가 그랬어? 이러면서 대꾸하다가, 아빠 잘했네, 아빠 다정했네, 라고 칭찬해준 뒤에 아빠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 이렇게 우리 오손도손 늙어가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빠 엄마 빵터지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빠는 내가 지난번에 준 바디버터 다 썼다고 또 사달라신다. 엄마는 '그럼 당신이 바디버터 값 줘야지' 하셨고 그러자 아빠는 '내 사랑을 줄게' 하시는 게 아닌가...하아- 누가 그렇게 사랑주래..그러는 거 아니야.....돈 줘....



"아빠, 사랑은 됐고 돈 줘."



라고 했지만 아빠는 들은 척도 안하셨다. 하아- 아빠, 사랑 말고 돈....돈 줘요, 돈.........






오늘 아침에는 출근하면서 역시 출근중인 망고같은 남자랑 통화를 했다. 통화중에 망고남은 '앗차' 하며, 출근 길에 먹을 빵을 전자렌지에 넣어두고는 안꺼내 왔다는 거다. 그러면서 '내 소중한 빵...'하는 게 아닌가! 그 말을 듣자마자 너그러운 나는! 그래, 빵이 되었다!! 그가 전자렌지에 두고온 빵!!!



"아, 나는 당신이 두고온 소중한 빵이 되었네? 날 왜 두고가..소중한데 왜 까먹어..."



그러자 망고남은 내게 말했다.



"야, 너 빵에 이입하지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어찌나 너그러운지, 개구리가 되는 것도 모자라 숫제 빵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아아, 나는 휴 그랜트도 되었다가 줄리아 로버츠도 되었다가 빵도 되었다가!! 너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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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7-03-03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오랜만에 다락방님 글 읽으면서 킥킥 웃었네요. 삼실인데...내가 쓸 컴터가 안켜져 할 일 못하니까 핸폰으로!^^ 빵 터지는 다락방님 페이퍼, 사람 냄새 나고 감정이입돼서 넘 좋아요!!♥♥♥

다락방 2017-03-03 14:24   좋아요 0 | URL
아니 일을 해야하는데 컴터가 안켜지면 얼마나 불편할까요 ㅠㅠ 답답하시겠어요. 그나마 그 시간에 웃음을 드릴 수 있었다니 다행입니다!! 잘 지내고 계시죠?

레와 2017-03-03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 미치겠다.

엄마 아빠한테 ‘그래, 이렇게 우리 오손도손 늙어가자.‘ 라니..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빵도 되고 휴 그랜트도 되고 줄리아 로버츠도 되는 락방 내가 격하게 애정한다!!

다락방 2017-03-03 14:24   좋아요 1 | URL
내가 레와님의 애정을 느끼고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레와님아, 우리 다정하게 늙어가자!! 서로에게 한껏 다정하자!!

2017-03-03 1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7-03-03 14:25   좋아요 0 | URL
오오 그러셨습니까? 저는 또 사놓고 쳐다보지도 않네요. 이번엔 그래도 봐야지..라고 생각은 하고 있어요. -0-

스윗듀 2017-03-03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사랑스러워...🎈

다락방 2017-03-03 14:25   좋아요 0 | URL
어머! ♡.♡

단발머리 2017-03-03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줄리아 다락방과 휴 다락방과 빵 다락방 중에 나는... 빵 다락방이 젤로 좋아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7-03-03 14:25   좋아요 0 | URL
빵 먹고 싶네요, 단발머리님. 많이..많이....많이 빵 먹고 싶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17-03-03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며칠전에 이거 다시 봤는데~
정말 멋진 영화에요 ㅎ

다락방 2017-03-03 14:31   좋아요 0 | URL
저 비연님의 글 읽었더랬어요. 읽으면서 우앗 찌찌뽕~ 했었습니다. ㅎㅎㅎㅎㅎ

단발머리 2017-03-03 16:22   좋아요 0 | URL
찌찌뽕 2~~~~!!!
넘 멋진 영화예요~~~^^

다락방 2017-03-03 17:15   좋아요 0 | URL
노팅힐로 대동단결!! ㅋㅋㅋㅋㅋ
 

먼 친척 집에 방문했다. 시골이었고 마당에 개 몇 마리를 풀어 놓았었는데, 나는 그 중 한 마리를 집에 데려다 놓았다.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나로서는 개를 돌볼 시간이 거의 없는 셈이었고, 그래서 그 개를 돌보는 건 상대적으로 나보다 낮 시간에 집에 더 오래 있는 아빠와 엄마 몫이었다. 그런데 아빠와 엄마는 처음부터 개와 함께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게다가 개는 어딘가 아파 보였다. 동물병원에 데려가 이 아픈 증상에 대해 얘기를 하고 약을 받아 먹이고 치료를 해야 하는데, 아빠 엄마는 원치 않는 일이었고, 나는 당장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아빠 엉마는 두 분이서 '이 개를 버리자' 고 하셨다. '한강 근처에 가서 풀어놓자'고. 나는 그것이 너무 잔인하다 생각했고 그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이 개를 버리지 말자고 얘기하기 위해 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출근준비를 하며 고통스러웠다. 저 개를 어쩌지, 버리면 안되는데, 저 개를 데려온이상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데, 함께 가야 하는데, 아프면 병원에도 데려가고, 산책도 시키고, 똥도 치우고, 밥도 먹여야 하는데, 내가 그걸 하지도 못하면서 데려와서, 가뜩이나 동물과 함께 살기 싫어하는 부모님께 맡겨두고, 이제와 버리면 안된다고 소리를 지르면, 내가 그게 할 짓인가..내가 도대체 저 개에게 무슨 짓을 한거지. 아아, 버릴 순 없어, 유기견을 만들 순 없어, 그렇지만 나는 낮동안에 저 개와 함께 있지 않고, 저 개를 아빠 엄마가 낮에 버리면 나는 ... 책임질 수 없는 생명을 데려다놓고.....아아.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지..그냥 혼자 나가서 저 개랑 둘이 살까, 그러면 낮에는 외롭지만 그래도 버려지진 않을텐데..아아 괴롭다, 고통스럽다, 부모님이 더 저 개랑 오래 있어본다면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을텐데, 아아, 책임지지도 못할 상황을 나는 왜 만들었던가, 책임지지도 못할 생명을 왜 멋대로 데려다놓고 이렇게 잔인한 짓을 하려는건가, 아아, 어쩌지, 답이 안나온다, 어쩌지...고통스럽다, 어쩌지....




하다가 알람이 울려서 깼고, 그래서 꿈인 줄 알았다. 아, 진짜 눈물나게 다행한 일이었다. 저게 현실이 아니라서, 진짜로 내가 책임질 수도 없는 생명을 가져다놓고 곧 버릴 상황을 만든 게 아니라서, 아아, 진짜 다행이다, 다행이야 ㅠㅠ 정말 다행이다 ㅠㅠㅠ 평생 씻지 못할 죄를 지을 뻔 했어. 엉엉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주말 이틀동안 일자산에 다녀왔는데, 갈 때마다 개를 데리고 산책 온 사람들을 많이 마주쳤더랬다. 아마도 그래서 저런 꿈을 꾸었는지도 모르겠다. 휴.. 책임질 수 없다면, 끝까지 함께 갈 수 없다면, 그렇다면 섣불리 예쁘거나 귀엽다거나 나 외롭다는 이유로 반려동물을 들이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렇게 꿈에서 고통을 당하고 나니 더더욱 그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혹여 나중에 혼자 살게 되어도, 나 외롭다는 이유만으로 반려동물을 들이진 말자, 내가 그 존재에게 최선을 다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나는 그저 책을 벗삼아, 술을 벗삼아, 그렇게 조용한 삶을 살자, 새삼 마음 먹었다.




토요일엔 여동생집엘 갔었다. 큰 조카가 유치원졸업하고 초등학교 입학 예정이고 작은 조카는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에 입학 예정이다. 제부는 지난 주에 가족 제주도여행중에 양주를 사왔고, 그걸 함께 마시며 파티를 하자고 나와 남동생을 부른 것이었다. 제부네 집에 술을 마시러 가면 안주는 늘상 제부가 준비를 한다. 부대찌개 끓이는 솜씨는 수준급이라, 사 먹는 부대찌개는 이제 별 맛이 없을 정도다. 이번에는 새로운 안주를 만들어보겠다며, 그렇지만 처음 해보는 것이니 잘 못만들어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제부는 차돌숙주볶음과 버터조개찜을 만들었다. 차돌숙주볶음은 내가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가 없는 안주인데, 실제로 제부가 차돌을 듬뿍 넣어서, 남동생과 나는 연신 칭찬하며 맛있게 먹었다. 이거 이자까야 가면 숙주만 엄청 많고 고기는 몇 점 없잖아요, 하면서, 아아 여기 고기 듬뿍듬뿍 너무 좋아, 이러면서 흡입했다. 두 번째 준비된 안주는 조개찜이라고 했는데, 나와 남동생은 해산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나는 특히나 조개를 싫어해...먹고 싶지 않아...그래서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오오, 제부여, 왜 버터에 볶는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냄새며 비쥬얼이 장난 아니고, 오오, 먹었을 때 진짜 맛있는 거다. 내가 제부에게 몇차례나 얘기했다. 저 진짜 조개 싫어하는데 여태 살면서 먹어본 조개중 제일 맛있어요, 라고. 매운고추까지 있어서 진짜 맛있었다. 버터가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 것 같다. 버터만세!! ♡ 






금요일엔 여자지인과 남자지인을 만나 셋이 함께 술을 마셨다. 우리가 그러니까.. 2011년부터 알아왔던가... 만난 횟수가 많진 않지만 서로 호감이 있는 사이라서, 이 만남은 항상 하고나면 너무나 즐겁다. 1차로 중국집엘 갔는데, 마파두부, 동파육, 유린기를 시켜 맛있게 먹고 2차를 가기로 했다. 2차는 가볍게 맥주 한잔 하자, 하고 일어났던 거였는데, 중국집 근처에 내가 가끔 가는 레스토랑이 있는 게 생각나, 와인 어떠세요? 물으니 두 분 다 좋다고 하시는 거다. 감바스를 안주로 시켜두고 와인 한 병을 시켜두고 우리는 계속 수다를 떨었다. 여행 얘기며 일 얘기, 그리고 내 글에 대한 이야기까지. 아 진짜 너무 재미있고 좋은 시간이었다. 2차는 제가 살게요, 하고 자리를 파하기 전에 계산을 했는데, 우리 이렇게 오래 만나다보니 와인도 같이 마시네요, 하고 별 거 아닌 순간들까지도 꽤 좋게 느껴졌다. 우리가 처음에 알 때는 서로의 사적인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사적인 얘기가 하나씩 둘씩 늘어가는구나 싶었다. 한 순간도 대화가 끊기지 않고 계속계속 얘깃거리가 나와서 참 좋았다.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나 역시 상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건 진짜 큰 축복인 것 같다. 좋은 시간이었다.




술이 좋아.......




그나저나 주말에 여동생네 식구를 위해 책을 한 권씩 준비해갔었단 말이다.



















왼쪽부터 다섯살 조카, 여덟살 조카, 여동생, 제부.... 에게 준 책인데....하아- 이들은 왜 책을 좋아하지 않는거지....조카 두 명에게 읽어줄까? 했더니 됐다고 하고...제부는 관심도 없는 것 같고.....제부랑 여동생이야 뭐.... 그렇다쳐도, 아니, 조카들아, 니네 이모가 다락방이야....니네 이모가 다락방이라고........그런데 왜 너희들은 책에 관심이 없니? 왜지? 어릴 때부터 이모가 책 읽는 걸 봐왔고, 우리 집에만 오면 이모방을 제일 먼저 오고 또 들어와서는 안나가려고 하잖아......그런데 왜때문에 너희들은 책을 좋아하지 않지???? 아아 그러나 무언가를 좋아하라고 내가 강요할 순 없는 법이지.......조카들아 이것만 알아주렴, 너희들이 책을 보고 싶을 때 이모 책장에 있는 책들은 너희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흙 ㅜㅜ 조카와 함께 즐거운 책읽기..이런 로망은 실현할 수 없는 것인가....... 






그래, 그런 로망 실현하지 않으면 어때.... 괜찮아.....나는 성인 남자와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로망은 많이 실현했으니까....그래, 사람이 다 가질 순 없지.....조카들아, 너희들은 너희들이 즐거운 걸 찾아서 행복해지렴...이모도 그렇게 할게......그러고보니.....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과 성인 남자는.............책 읽는 걸 좋아하지 않네? ... 그래 괜찮아....내가 좋아하니까.......위 아 더 월드, 월드 피스!






아주 오래전에는 GQ 계속 사봤었는데 언젠가부터 관심에서 멀어져버렸더랬다. 그런데 이번 호에는 한국남자에 대한 칼럼이 몇 개 실렸나보다. 오오, 궁금해. 

이번호 지큐는 사서 읽어봐야겠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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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부인 2017-02-27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먹는 사진을 올리시는 알라디너를 젤로 좋아하지 않아요. ㅜ ㅜ ㅋ

다락방 2017-02-27 09:37   좋아요 0 | URL
아흐흐흐흑 죄송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달걀부인 2017-02-27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게요게 정말 그림의 떡이거든요. 게다가 고통스럽기까지. ㅜ ㅜ

다락방 2017-02-27 12:13   좋아요 0 | URL
네 이해합니다. 저는 미국에 있는 친구가 스테이크 먹을때마다 그 진실한 스테이크의 모습에 몸부림쳐요. 흙 ㅠㅠ

레와 2017-02-27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터 + 바지락, 오케이! 나도 만들어 먹어봐야겠어요. 침나와요. ㅎㅎ


다락방 2017-02-27 12:14   좋아요 0 | URL
매콤한 고추까지 넣으니까 참 좋더라고요. 요거 괜찮네 싶었어요. 와인안주로도 좋을것 같은데, 실제로 제부는 와인안주로 좋다는 말을 블로그 검색하면서 봤나보더라고요. 근데 이거 양이 이렇게 많아도 너무 금세 먹어. 조개는 껍질 때문에...흐음... 더 많이, 더 많이 해야해요!! >.<

2017-02-27 1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28 0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17-02-27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좋아하면 주변 사람들도 책을 좋아해주면 좋을텐데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가끔은 책을 강요하고 싶지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가족에겐 권유를 하지만 상대방은 어떻게 느낄런지... 다행히 저희 가족은 조금씩 책을 좋아하게 되고 있습니다. 감사한 일이네요^^

다락방 2017-02-28 08:03   좋아요 0 | URL
책도 그렇고 그게 뭐든 강요한다고 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강요한다고 되는 거였으면 저도 공부를 잘했겠죠...하아- 저는 지금도 너무 아쉬워요. 학창시절에 제가 공부를 하지 않은게요. 왜그렇게 공부를 안했을까요... 하아-

남동생은 조금 책을 읽긴하는데 장르소설만 읽어요. 다른 거 읽으라고 가끔 주면 되게 싫어해요 ㅋㅋㅋ 그렇지만 이렇게 한우물을 파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일단 재미로 시작하면 되는 거니까요. 조카들도..언젠가는..독서를 좋아할 날이 올까요? 오겠죠? 하핫.

moonnight 2017-02-27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네는 제부마저 멋지심^^

다락방 2017-02-28 08:03   좋아요 0 | URL
늘 멋지지는 않고요, 멋짐이 터지는 순간들이 좀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막 늘 멋진 사람은 아니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건 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17-02-27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카들아!! 니네 이모가 바로 다락방님이란 말이야!!
ㅋㅋㅋㅋ
어떡해요??ㅜㅜ
근데 전 그대목에서 죄송하게도 빵 터졌어요.

참고로,아기다리 고기다리하던 친조카가 제게도 있어 뭔가!!
조카를 무릎에 앉혀 책 읽어주는 알흠다운 고모의 모습을 기대하며 울애들이 보던 그림책들을 한 권씩 먼지 닦아가며 몇 박스를 들려보내줬었어요.나는 이때쯤이면 알흠다운 고모 코스프레를 좀 하려고 준비자세를 취하려 했더니 조카는 도무지 책에도 관심도 없으려니와 당최 사람 무릎에 앉으려는 것에도 관심밖이고 오로지 뛰어다니는 것만 좋아하는 아이로 성장해가고 있어서 음~~~실망을 좀했죠!!
알고봤더니 올케랑 남동생이 책을 좋아하지 않으니 그들의 2세도 당연히~~~~~!!!!!!
도서관에라도 책을 기증을 할껄!!!
후회했다죠??^^
저는 조카가 누워있는 아가였을때 다락방님과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넌 복 받았구나!! 내가 바로 책나무닷!!‘하면서요ㅋㅋㅋ

그나저나 올해 벌써 강아지꿈을 두 번이나 꾸셨군요??
아~~전 꿈인줄도 모르고 어쩐대??그러면서 안타까워 했더니 또 반전!!!
그래도 꿈이어서 다행이에요^^

다락방 2017-02-28 08:05   좋아요 0 | URL
크 책나무님!

저는 첫째 조카가 다섯살 때였나, 서점에 데려가서 같이 책 보는 게 꿈이었거든요. 조카가 사달라는 책 다 사줄 마음을 먹고 갔더랬어요. 조카가 책더미에 둘러쌓여서 이모 이것도 보고 싶고 저것도 보고 싶어, 라고 하면 그래그래 이모가 다 사줄게, 이러고 싶었는데, 아아, 조카는 서점에 가더니 책은 쳐다보질 않고 장난감 매대로 가더군요...거기로 뛰어가서 책을 돌아보지 않아요............ 하아- 삶은...제 생각대로 진행되는 게 진짜 아닌가봅니다. ㅎㅎㅎㅎ


제가 올해 강아지 꿈을 두 번이나 꿨던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건 뭘 뜻하는걸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거 뭐 숨겨진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걸까요, 아니면 그냥 개꿈일까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벗지 말걸 그랬어 그림책 마을 4
요시타케 신스케 글.그림, 유문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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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거 너무 귀여워서 ㅋㅋㅋ 보다가 나도 모르게 킥킥댔다. 이 작은 아이가 옷을 벗다가 얼굴에 걸려가지고 상상이 쭉쭉 뻗어나가는데 엄마가 너무 쿨슄하게 벗기고 안고 들어가는 거 진짜 너무 웃기고 ㅋㅋㅋ 바지 벗다가 망하는 것도 웃기고 ㅋㅋㅋ 아 귀여워 ㅋㅋㅋㅋㅋ선물용으로 한 권 더 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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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2-24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보던 건 다섯 살 조카 줘야지 ♡

2017-02-25 2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27 0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7-02-26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카아이와 읽는데 진심 깔깔깔 웃어서 행복했어요. 진짜 귀엽죠♡

다락방 2017-02-27 08:19   좋아요 0 | URL
이거 너무 귀여워요!! 저도 소리 내서 웃었는데 이거 읽어준다니까 조카아이가 듣는 척도 안해서.... 왜 저의 조카들은 책을 안좋아할까요? 왜죠?
슬퍼요..흙 ㅜㅜ
 

꿈을 꿨다. 꿈에, 토요일 낮이었고 직장이었는지 학교였는지 어쨌든 뭐가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었는데, 내 여행친구와 나는 함께 '집으로 가자' 했다. 지하철 역까지는 거리가 꽤 됐는데, 나와 친구가 있는 곳은 높은 언덕 위에 있었고 그 밑으로 주루루룩 길게 놓여진 계단을 내려가서 또 걸어야 지하철 역이 나오는 걸로 설정 되어 있더라. 친구는 이 역에서 지하철 타는 거 어렵다, 자주 오지 않는다며 뛰자고 했다. 그러면서 내 앞으로 다다다닥 계단을 뛰며 내려가는 거다. 나는 뛰어가는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친구는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 때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내 남동생이 그러는데 KFC 에 이제 맥주 판대요."



그러자 친구는 "아 그래요?" 하더니, 그러면 우리 지금 바로 집에 가지 말고 KFC 가서 치킨에 맥주 하고 갈까요? 그러는 거다. 그래서 내가 웃으면서 "네!" 했는데, 아아, 그렇게 치킨을 먹기 전에 알람이 울렸고 나는 잠에서 깬것이다.



깊.  은.   슬.   픔.



오늘 아침은 유독 일어나기 힘들었는데 ㅠㅠ 눈을 뜨고도 한참을 꼼지락 거리다가 몸을 일으키며, 라디오를 켰다. 그런데, 오오, 내가 꾼 것은 예지몽이었던가! 아니, 들어본 적도 없는 이런 노래가 나오는 거다. 노래 내내 치킨~ 양념 치킨~ ♪ 이러는 게 아닌가!







아아..아침부터 치킨 치킨하다...



















페미니즘 관련서적을 읽을 때마다 너무나 괴롭다. 나의 지난 발언들, 행동들이 떠올라 몹시 괴롭다. 그때 내가 어렸지, 라고 스스로를 다독여 보아도 괴롭다. 아아, 나야말로 진짜 빻은 발언들을 많이 하고 다녔구나.. 떠올리며 언급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빻고 빻고 또 빻았었어..... 괴롭다......



특히 이 책에서 '이유나'의 <성 정체성:여자인지 어떻게 아세요?> 부분을 읽을 때는 더 그랬다. 나도 청소년기에 이 책을 만났더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런데 이 책을 만났다고 내가 좀 달라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어른들은 어린아이들을 보며 말합니다.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는 역시 달라, 딸은 역시 애교지, 이 맛에 딸 키운다, 남자아이라 극성맞은 건 어쩔 수가 없어." 어찌 보면 당연한 말처럼 들립니다. 이미 평생을 그렇게 길러져 왔으니까요. 그러나 이런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수줍음 많고 다정한 남자아이나 골목대장 노릇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여자아이가 세상에는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일부의', '유별난' 아이들로 분류될 뿐입니다. '여자 아이의 것'으로 분류되는 특징과 '남자아이의 것'으로 분류되는 특징을 모두 가진 그냥 '아이'들도 결국에는 '여자아이여서 그래, 남자아이여서 그래.'라는 범주에 묶여 버릴 뿐이지요. (이유나, 성정체성,p.155)



한 개인이 남성이나 여성 또는 그밖의 성별이라고 스스로 인식할 때 성별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치마가 성별을 구별하는 기준이 아니라면, 치마를 입고 싶고, 안 입고 싶고는 여러분의 성별을 판단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치마는 여자만 입는 것이라고 명확히 정해져 있으면, 여자인 여러분중 치마를 입고 싶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이런 '혼란'은 성별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여자와 남자라는 단 두 가지 선택 항을 차별적으로 구성해 온 사회에서 매우 당연한 것입니다. '혼란을 느끼기에 너무 어린 나이'라는 것도 결국은 우리가 얼마나 어린 나이부터 남자 아니며 ㄴ여자라는 차별적인 이분법 속으로 들어가기를 강요받는가에 달려 있지요. 아주 어린 나이부터 성별 분류에 시달리는데, 사회적으로 정의된 '여자'라는 성별에 자신이 얼마나 들어맞는지 생각해 보는 것은 몇 살부터 괜찮다는 걸까요? (이유나, 성정체성, p.157-158)




조카들이 우리 집에 놀러오면 제 삼촌과 몸으로 노는 걸 즐긴다. 이제 여덟살이 된 여자아이와 이제 다섯살이 된 남자아이 둘다 공격~ 파워~ 하면서 제 삼촌위로 올라 타고 주먹을 휘두르며, 남동생은 이얏~ 하면서 그런 아이들을 하나씩 들어 올려 함께 노는 것이다. 여동생은 땀난다고 그만하라고 해도 애들에게는 그 말이 들리지 않는다. 혼자 상대하는 남동생이 힘들어서 '이제 그만하자'고 해도 아이들은 좀처럼 멈출 줄 모른다. 삼촌 힘들어 그만해~ 라고 주변에서 어른들이 말리면, 아니, 요놈들이, 이제 이모를 공격하자~ 하고 내게 달려드는데, 아아, 나는 걔네가 달려오는 것만 봐도 힘들어, 이모한테 하지마~ 이러면서 도망치기 바쁘다.


여덟살 여자 아이는 어제 유치원 졸업식이었는데, 장래 희망이 태권도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고 싶다는 거다. 의사와 과학자가 되겠다고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는데(요즘도 그런 아이들이 많나??), 이 아이는 태권도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고, 우리 동네 자랑거리를 묻는 질문에는 태권도 학원이 있는 거라 했단다. 아 너무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태권도에 잔뜩 재미를 붙여서는 태권도 선생님까지 하겠다고 하는 아이인데, 나는 이 아이가 이렇게 운동에, 자기 몸을 쓰는 것에 재미를 붙인 것이 무척 좋아 보인다. 제 삼촌을 공격하겠다고 처음에 폼을 잡을 때도 오오, 예전과는 달라졌다. 자세가 나온달까. 어쨌든 제 동생과 둘이서 힘차게 몸싸움 하며 제 삼촌과 논다. 그러다 혼자 노는 시간에 남자 조카는 변신 로봇을 갖고 놀고 그걸로 자기 혼자 1인극을 하다가, 변신이 잘 안되면 제 누나를 부른다. 누나~ 이거 변신시켜줘~ 하고. 그러면 제 누나는 달려와서 다다다닥 변신을 도와준다. 이럴 때 제부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러는 거다.



확실히 남자아이가 달라...




??????????????????????????????????????????????????? 몸싸움도 같이 했는데, 변신 로봇도 여자조카가 더 잘 변신시키는데, 남자아이가...뭐가 다르다는 걸까? 누나는 장난감 미싱을 갖고 노는 그 순간에 동생은 변신 로봇을 갖고 놀아서, 그래서 '남자아이는 확실히 다르다'고 말하는걸까?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이 쌓인다. 잊고 있었던 과거의 일들이 떠오르면서, 아아, 나도 그 때 그런 말을 했었지, 하고는 부끄러워지는 거다. 또한 불편해진다. 그냥 넘길만한 발언이 점점 줄어드는 거다. 다 거슬리는 발언들 뿐이야. 아아 기분 나빠, 왜저렇게 말하지..하는 상황이 너무 자주 발생하는 거다. 아니, 이전부터 그래왔는데, 그것이 왜 불편한지를 몰랐던것 같다. 이를테면 김치녀, 된장녀 같은 말들을 들었을 때, 그런 말들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되게 기분이 나빴던 거다. 처음 그런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빴을 때는 '나한테 그러는 것도 아닌데 왜이렇게 기분이 나쁘지'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것이 여성을 혐오하는 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내가 기분이 나쁜 부분에 대해 원인을 알게 됐다고 하는 게 맞을까(나는 요즘 나의 직감을 믿는 게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점점 확신하고 있다). 원인을 모르면 고칠 수 없지만 원인을 알면 개선의 가능성이 보인다. 그러니 이 불편함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게 된다면, 불편함을 느끼며 사는 것이 싫지만, 바꿔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열이면 열, 번번이 차별적인 시선과 대화 앞에서 그걸 고치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지만 그 중에 몇 번은 언급하다 보면 지적 받은 당사자는 앞으로 발언할 때 조금 더 생각해보게 되지 않을까.



내가 지난 과거에 내가 했던 발언들과 행동들에 대해 부끄럽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현재에는 완벽해졌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나는 배우고 있고, 여전히 나는 어딘가에서 어떤 발언에서 실수를 하고 있을 것이다. 공부가 쌓이고 보이는 게 많아지면, 또 미래의 언젠가에 지금을 떠올리며 부끄러워할지도 모르겠다. 그때 부끄러워하지 않기 위해서 더 생각하고 더 얘기하고 더 조심해야 겠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스트라고 선언을 하고 살아가면서 정말 많이 '페미니스트가 왜그래?'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되는데, 나 스스로도 '페미니스트라며 이래도 될까?'하는 의문을 아주 많이 던지게 된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거 아닌가, 내가 페미니스트를 욕보이는 거 아닌가 하고. 이럴 때 록산 게이가 '나쁜 페미니스트'를 들고 나와서 좀 편해졌었는데, 그렇다해도 내가 걷는 길이 매번 옳다고 확신할 수가 없다. 내가 실수할까봐, 내가 잘못할까봐, 내가 틀렸을까봐 겁난다. 옳은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고 믿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길을 잘못들면 어떡하지? 고민이 많다. 그런데 이 책의 서문에서 정희진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해줬다.




페미니즘, 우리말로는 여성주의라고 하지요. 이 페미니즘은 아주 다양합니다. 1인 가족, 자녀가 없는 가족, 삼대 이상이 모여 사는 대가족, 이성애 커플이 아닌 동성애자 가족 등 여러 가지 형태의 가족이 있듯이, 페미니즘 이론도 한 가지가 아닙니다. 그래서 최근 유엔 공식 기구나 인권 운동 진영에서는 가족(families)이나 페미니즘(feminism/s)을 복수형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저는 100명의 여성이 있다면 100가지 페미니즘 이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성들의 처지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지요. (정희진, 프롤로그, p.9)



내게는 좋은 친구가 많다. 우리는 대부분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만, 그런 친구들 사이에서도 어떤 것들에 대한 의견은 종종 갈린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다 다른 게 맞을 것이다. 나는 내가 옳다는 방향으로 가면서, 또 친구들이 옳다고 하는 방향을 들어보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 되겠다. 자꾸만 나는 '어디 하나 잘못하기만 해봐' 하고 딱 두고보며 대기하는 시선들을 마주치지만, 굴하지 않고 가겠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또 넘어지기도 하니까. 




치킨으로 시작한 페이퍼이니 치킨으로 끝을 맺어야겠지만, 딱히 치킨으로 끝맺을만한 게 생각나지 않는군. 우먼스 타이레놀을 한 알 먹었고, 나는 집에 가고 싶다. ㅜㅜ





페미니즘은 여자와 남자가 별로 다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찬찬히 살펴보면 여자와 남자의 차이보다는 여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 또는 인종과 인종 사이의 차이가 더 크기 때문이에요. 생각해 보세요. 도시에 사는 디자이너 여성과 농촌에 사는 농부 여성, 팔순잔치를 앞둔 할아버지와 내일 중학교를 졸업하는 소년. 이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하는 경험은 같은 성별이어도 너무나 다르지 않을까요?
페미니즘은 사람들 간에 무수한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차이보다는 ‘인간‘이라는 공통점이 훨씬 크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차이에 주목하기 때문에 차이가 커 보이지만, 공통점에 주목하면 공통점이 훨씬 많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여자와 남자 모두 인간이고, 인간은 제각기 다른 개성을 지니며, 모든 인간은 개성에 상관없이 평등하고 존엄하다‘는 아주 당연한 상식을 지향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랍니다.(김고연주, 공동체 생활, p.40)

왕따 현상에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는 듯합니다. 첫째는 ‘왕따를 당하는 아이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에요. 둘째는 ‘왕따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왕따인 친구와 어울리다가 나까지 왕따를 당할지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두려움입니다.
먼저, 첫 번째 원인을 들여다볼까요? 앞서 말한 대로 이러한 생각은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행위를 합리화하는 것입니다. 차이는 다양성이고, 다양성은 존중해야 하는 것이지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라고요? 그렇다면 그 친구를 한번 떠올려 보세요. 목소리는? 말버릇은? 걸음걸이는? 취미는? 장래 희망은? 좋아하는 과목은? 성격은? 아마도 그 친구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을 거예요.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친구의 여러 모습 중에서도 사회의 촘촘한 차별 기준에 따라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모습이 더 쉽게 눈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김고연주, 공동체 생활, p.41)

"예쁜 것도 능력이야."라는 말도 흔히 들을 수 있습니다. 예뻐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윤리적 차원의 문제가 된 것입니다. 더 나은 외모는 자기를 향상시킨 증거가 되지요. 이런 식으로 여성을 옭아매는 시각은 외모의 문제를 개인의 노력, 능력의 문제로 돌려 버리고 외모 평가의 화살은 여성 개인에게로 향합니다. (김애라, 외모지상주의, p.7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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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7-02-23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명한건 계속 공부하고 있고 혹여 본인이 잘못하고 있는건 아닌지 그리고 과거 이러이러한 일은 잘못했다라는 자기 반성을 끊임없이 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다락방 자신이라는 겁니다. 주변에 다락방만큼 성찰하며 성장하고 있는 사람은 없어요.

지금까지 잘 하고 있어 다락방!!!


모든 질문에 대답할 필요도 없고요, 특히 시비거는 글엔 더더욱 답할 필요 없고요.


망할 생리증후군. 이시기가 빨리 지나가면 좋겠어요.



다락방 2017-02-23 17:00   좋아요 0 | URL
으흐흐흐.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그러니 다 지나가겠지요. 잘 버텨봐야지. 점심엔 갈비 먹었어요! >.<

고마워요. 잘 하고 있다고 얘기해주고 또 내 얘기도 잘 들어주고, 이렇게 매번 글도 잘 읽어줘서. 그리고 폭풍칭찬 해줘서!!! 고맙습니다!!!! 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