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오랜만에 야근을 했다. 바쁘게 늦게까지 일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이래서 좋은사람,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알아두는 것이 좋다. 나는 스트레스 받아서 우우우- 한 마리의 거친 짐승이 될 뻔했지만, 그럴때마다 엊그제 다시 보았던 영화 [노팅힐]을 생각했다.
그러니까 영화의 거의 마지막 즈음, 줄리아 로버츠는 휴 그랜트를 오랜만에 다시 찾아온다. 런던에 촬영차 왔는데 그 촬영이 끝났고 내일 미국으로 돌아갈거란 얘길 하면서, 그런데 돌아가기 전에 묻고 싶었다고 했다.
"내가 여기에 머물면 당신이 나를 가끔은 만나줄지 궁금했어요...자주요."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휴 그랜트에게 그녀는 또 이렇게 덧붙인다.
"당신이 나를 다시 좋아해줄지 궁금했어요."
저렇게 말하는 줄리아 로버츠는 나같았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남자에게 나를 다시 사랑해줄건지 묻는 그 상황과 마음이, 마치 나같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대답하는 휴 그랜트도 또 나같았다.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다시 당신에게 버려지면 그 때는 버티지 못할 것 같아요."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나는 이 말이 완전 진짜 뭔지 너무나 잘 알겠는 거다. 이별을 하고 많은 시간을 '그가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 고 생각했었지만 꼭 그만큼 '아니 다시 사귀었다 헤어지면 그땐 진짜 무너질거다, 이건 모르니까 버틸 수 있었지, 이걸 알면서도 그 길로 또 걸어들어갈 순 없다, 알면서 버틸 순 없다' 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래서 줄리아 로버츠를 거절하는 휴 그랜트의 마음이 꼭 내 마음인 거다. 아아, 하나의 영화를 보면서 한 명의 등장인물이 되어도 그 영화는 좋은 영화가 되는데, 이 영화 속에서 나는 막 휴 그랜트도 되었다가 줄리아 로버츠도 되었다가 했다. 아아 세상 좋은 영화다. 진짜 최강 영화야. 모든 등장인물이 내가 된다!!
물론 그 뒤의 장면들도 몹시 좋다. 휴 그랜트는 자신의 친한 친구들에게 자신이 줄리아 로버츠를 거절했음을 밝힌다. 친구들은 처음에 그의 결정을 잘했다 해주지만 다른 한 친구가 '그녀가 너한테 사귀자고 했다니, 좋은 사람임에 틀림없네'라고 말한 것을 시작으로 다들 휴 그랜트가 멍청한 선택을 했다는 눈빛을 보낸다. 그 후에는 친구들과 함께 후다다다닥 줄리아 로버츠에게 찾아간다. 그렇게 그들은 다시 연인이 된다.
이 장면들이 너무 좋다. 다시 봐도 너무 좋아. 진짜 훌륭한 영화다. 친구들 모두 어느 부분에서는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고, 약점을 가진 사람들인데, 이들 모두가 서로 자주 모이고 함께 이야기하고 서로의 사정을 듣는 것이 너무 좋다. 나도 꼭 이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개개인으로 보자면 완벽한 사람이 하나 없을텐데, 우리가 서로의 부족함을 그대로 가진채로, 그러나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에게 좋은 친구일 수 있으니까, 이렇게 자주 모이고 고민을 함께 나누면서 오래오래 즐거이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다. 나는 혼자일 때도 너무 신나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도 너무 신난다. 사랑하는 사람과 둘이 하는 대화도 좋고, 나 혼자 책 보며 영화 보고 또 걷는 시간도 좋지만, 좋아하는 사람들 여럿과 함께 한 자리에서 수다 떠는 것도 또 너무 좋아! 며칠 전에 친구랑 술마시다 얘기했지만, 진짜 욕심 별로 없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것 먹고 마시면서 즐겁게 사는 것, 그게 내가 바라는 전부다.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나는 삶에 있어서 더 큰 걸 바라지도 않는다. 인생 뭐 있나...
지난번에 영어 공부 하겠다고 주토피아 대본 사놨다가 한 장도 안보고 팔아버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돈지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그거 팔고 노팅힐 대본 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직 한 장도 안보고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부한다고 스프링분철 해달라고 돈도 더 줬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는 늦은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가니 엄마 아빠가 쪼르르 와서는 춥지 않았냐, 밥은 먹었냐 물으시더니, 이내 그 날 하루 있었던 일에 대해 폭풍 수다를 늘어놓으신다. 엄마가 쉬지도 않고 말했다. 오늘 아빠랑 이마트가서 수영복샀어, 순두부 찌개 먹으러 갔는데 니 생각나서 쫄면순두부 시켰어, 아빠도 맛있었대, 외할머니 보청기도 아빠랑 같이 보러갔어, 아빠가 다른 데도 더 보러 가자고 하셨어 등등..
나는 들으면서 아빠가 수영복 고르러 가는데 툴툴대지 않았어? 순두부 맛있었어? 어어 아빠가 그랬어? 이러면서 대꾸하다가, 아빠 잘했네, 아빠 다정했네, 라고 칭찬해준 뒤에 아빠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 이렇게 우리 오손도손 늙어가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빠 엄마 빵터지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빠는 내가 지난번에 준 바디버터 다 썼다고 또 사달라신다. 엄마는 '그럼 당신이 바디버터 값 줘야지' 하셨고 그러자 아빠는 '내 사랑을 줄게' 하시는 게 아닌가...하아- 누가 그렇게 사랑주래..그러는 거 아니야.....돈 줘....
"아빠, 사랑은 됐고 돈 줘."
라고 했지만 아빠는 들은 척도 안하셨다. 하아- 아빠, 사랑 말고 돈....돈 줘요, 돈.........
오늘 아침에는 출근하면서 역시 출근중인 망고같은 남자랑 통화를 했다. 통화중에 망고남은 '앗차' 하며, 출근 길에 먹을 빵을 전자렌지에 넣어두고는 안꺼내 왔다는 거다. 그러면서 '내 소중한 빵...'하는 게 아닌가! 그 말을 듣자마자 너그러운 나는! 그래, 빵이 되었다!! 그가 전자렌지에 두고온 빵!!!
"아, 나는 당신이 두고온 소중한 빵이 되었네? 날 왜 두고가..소중한데 왜 까먹어..."
그러자 망고남은 내게 말했다.
"야, 너 빵에 이입하지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어찌나 너그러운지, 개구리가 되는 것도 모자라 숫제 빵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아아, 나는 휴 그랜트도 되었다가 줄리아 로버츠도 되었다가 빵도 되었다가!! 너그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