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출근하는 동안과 퇴근하는 동안, 그리고 잠들기 전에 이 책을 읽었다. 주인공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읽다가 퇴근길 지하철안에서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깔깔깔은 아니고 키득키득 수준이었지만. 그러니까 여덟살? 아이가 집의 요리사와 대화를 하는데 '내장'이 뭔지 모르는 거다. 이에 요리사는 그것이 아이는 알지 않아도 되는 단어라고 말한다.
세라 할멈은 이상한 일에 별 이유도 없이 예민했다. 어느 날 셀리아가 주방에 들어가 세라 할멈에게 뭘 만드는지 물었다.
"내장 수프예요, 아가씨."
"내장이 뭔데?"
세라 할멈은 입을 다물었다.
"꼬마 숙녀가 묻기에 좋지 않은 것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뭔데?" 셀리아의 호기심이 더욱 커졌다.
"자, 그만해요, 아가씨. 아가씨 같은 꼬마 숙녀가 그런 걸 캐묻는 건 좋지 않아요."
"세라." 셀리아는 춤을 추며 주방을 돌아다녔다. 옅은 금발 머리가 찰랑거렸다. "내장이 뭐야? 그게 뭔데? 내장……내장……내장?"
화난 세라 할멈이 프라이팬을 들고 달려오자 셀리아는 주방에서 나갔다가 몇 분 후 다시 고개를 들이밀고 물었다. "내장이 뭐야?"
다음에는 주방 창문에 나타나 똑같이 물었다.
세라 할멈은 잔뜩 화가 나 어두워진 얼굴로 대답은 않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p.95-96)
아..너무 귀여운 거다. 너무 웃겨. 내장이 뭐야? 그게 뭔데? 이렇게 연거푸 묻는 게 너무 귀엽고 웃겨가지고 혼자 키득거렸는데, 아아, 이 키득거림은 시작에 불과했다.
세라 할멈은 바느질 담당 하녀를 미워했다. 그래서 그녀를 사생아라 욕하는데...
베넷은 하인들을 막 대하고 심부름도 시켰기 대문에 그들은 그녀를 몹시 싫어했다.
"주제에 으스대는 꼴이라니." 셀리아는 세라 할멈이 중얼대는 소리를 들었다. "애비 이름도 모르는 사생아 주제에."
"사생아가 뭐야?"
세라 할멈의 얼굴이 빨개졌다.
"꼬마 숙녀의 입에서 나올 소리가 아니에요, 셀리아 아가씨."
"내장이야?" 셀리아가 기대하며 물었다.
옆에 있던 케이트가 큰 소리로 웃다가 발끈한 세라 할멈에게 입조심하라는 타박을 들었다. (p.99-100)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 진짜 너무 귀여워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러니까 이 작은 아이가, 꼬마 숙녀가 알아서는 안될 것이라며 내장에 대한 설명을 거부하고, 그 뒤에 또 꼬마 숙녀가 알아서는 안된다는 단어로 사생아가 등장하니, 사생아=내장?? 이런 사고를 한 것일텐데, 아 너무 귀여운 거다. 그러니까 왜 애 호기심에 답을 안해줘, 물어서 답을 안해줄거면 애 앞에서 말을 말던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진짜 지하철 안에서
"내장이야?"
읽고 너무 웃겨서 키득키득 웃었는데, 어젯밤 자기 전에 갑자기 이 장면이 생각나는 거다. 요리하는 할멈 옆에서 알짱거리며 '내장이 뭔데?' 묻다가, 하녀들끼리 얘기하는 걸 귀 쫑긋 거리고 들으면서 '사생아가 뭐야?' 하다가, '내장이야?' 하는 꼬마 숙녀를 생각하니 진짜 너무 귀여운 거다. 이 장면에서 여덟살인가 아홉살인가 그런데, 이제 막 초등학교 입학한 내 조카 생각도 나면서 너무 웃긴 거다. 조카도 나랑 여동생이 얘기하거나 엄마랑 얘기하고 있으면 갑자기 옆에 와서는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우리 어른들의 대화를 듣는 거다. 그리고 이건 뭐야, 저건 뭐야 엄청 묻는데, 지난 번에는 내가 '낭비하면 안돼' 라고 했더니 '낭비가 뭐야?' 물어서 대답을 어버버 했던 적이 있더랬다. 낭비는..뭐라고 해야하나..그래서 내가 '쓸데도 없는 걸 또 사려고 하는 걸 말해' 라고 했더니 아아, 나의 조카가 이랬더랬다.
난 다 쓸 데 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 이모가 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나는 조카의 손을 잡고 문구점에 가서 인형인지 열쇠고리인지 이런 걸 또 사주고야 말았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돈은 왜 버나요? 조카에게 예쁜 거 사주려고 돈을 버나요? 이번에도 알라딘 스티키노트 너무 예뻐서 두 개나 받아가지고 조카들 하나씩 줬다. 그거, 별 거 아닌듯 보이지만, 그거 하나 마련하려면 책을 오만원어치 사야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거 두 개 받아서 조카들 하나씩 주기 위해서 나는 십만원 이상을 썼어. 꽥!!!!!!!!!!!!!!!!!
아무튼 어린 셀리아의 저 장면을 읽다가 진짜 너무 귀여워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장이 뭐야? 내장이야? 이러는데 진짜 아아 완전 안아주고 머리통에 뽀뽀폭탄 날려주고 싶다. 완전 꽉 끌어안아 주고 싶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지만 더 자란 셀리아는 더이상 사랑스럽지 않다. 그건 그거고, 아니 이 어린 셀리아가 자라서 그러니까, 아주 예쁜 숙녀가 된거다. 그래서 여러 남자로부터 청혼을 받는다. 나이 많은 남자, 지적인 남자, 돈 많은 남자 등등으로부터 청혼을 받고 다 거절을 하는데, 그러다가 친하게 지냈던 친구의 오빠 '피터'로부터도 청혼을 받는다. 피터는 셀리아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셀리아 역시 피터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셀리아는 피터의 청혼을 승낙하지만 피터는 시간을 좀 주겠다고 말한다. 셀리아는 젊고 예쁘고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자격이 있다, 셀리아는 자유롭다, 2년쯤 후에 그 때에도 니가 좋은 짝을 못만났다면 그 때 나랑 결혼하자, 이러는 거다. 그러면서 전출 명령을 받고 인도로 떠나는데, 셀리아는 결혼해서 같이 가고 싶다고 하지만 피터는 셀리아에게 '넌 자유로워' 이러는 거다. 진정한 사랑이라 믿으며 애정을 뿜뿜 한달까.
셀리아는 피터와 당장 결혼해서 함께 인도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피터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그는 셀리아가 열아홉 살밖에 되지 않았으니 많은 기회를 누려야 한다고 고집했다.
"욕심 사납게 셀리아를 낚아챈다면 난 누구보다 끔찍한 인간이 된 기분일 거야. 셀리아의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고……나보다 셀리아를 더 좋아해주는 사람이 나타날지도 몰라."
"안 그래요……난 안 그럴 거예요."
"그건 모르는 일이야. 열아홉 살 때 누군가를 좋아했다가, 스물두 살쯤 되면 그의 어떤 점이 좋았는지 의아해하는 여자들도 많아. 난 조바심내지 않을 거야. 셀리아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해. 실수가 아니라는 확신이 들어야 해." (p.220)
그래, 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연인이 되기로 결정했을 때, 나랑 함께 살기로 결정했을 때, 그것이 실수가 아니라는 확신, 강한 확신이 있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이미 나를 사랑하고 결혼하겠다고 말한 사람에게 '넌 아직 어려서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어' 이러면서 시간..을 준다? 그래, 이것은 정말이지 아주 이해심 넓은, 상대를 엄청나게 배려해주는, 그런 진정한 사랑, 리얼 러브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 계속 보자.
"셀리아는 정말 아름다워요. 더 나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전 셀리아의 짝으로 형편없으니까요."
"그렇게 겸손할 필요는 없어." 미리엄이 불쑥 말했다. "여자들은 그런 걸 높이 사지 않아."
"네, 아마 그렇겠죠."
이 주 동안 셀리아와 피터는 정말 행복했다. 이 년은 금방 지나갈 것 같았다.
"당신에게 충실하겠다고 약속할게요. 피터, 당신을 기다리는 나를 보게 될 거예요."
"셀리아……약속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 셀리아는 전적으로 자유로워."
"그러고 싶지 않아요."
"아니, 셀리아는 자유로워."
셀리아가 갑자기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당신이 날 정말 사랑한다면, 당장 결혼해서 함께 가길 바랄 거예요."
"셀리아, 내 사랑, 내가 정말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다는 걸 모르겠어?"
그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보면서 셀리아는 깨달았다. 그의 사랑이 진심이라는 것을, 간절히 바라던 보물을 움켜쥐기를 두려워하는 것 같은 사랑이라는 것을. (p.222)
하아- 저기, 미리엄, 셀리아의 엄마도 말했다. '여자들은 그런 걸 높이 사지 않아' 라고. 이 말은 반만 맞다. 왜냐하면, 여자들만 그런 게 아니니까. '그렇게까지 겸손한' 건 여자든 남자든 누구든 싫어한다. 누구나 지나친 겸손, 지나친 자기낮춤을 맞닥뜨려 짜증난 적이 있지 않나? 나는 지나친 자기 겸손이야말로 가장 짜증나는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셀리아의 짝으로 형편없다고 생각했으면 애초에 사랑고백은 왜했담? 사랑하고나서 연인이 되어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그럼에도 자기가 한참 모자란다 생각이 들면, 그러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 되잖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로, 너는 더 좋은 사람을 만날 가치가 있어, 난 너무 형편없지...이딴 개소리를 자꾸 해대면...... 어떻게 되는 줄 아냐?
삼 주 후 피터는 배에 올랐다.
일 년 삼 개월 후 셀리아는 더멋과 결혼했다. (p.222)
참....어지간히 바보 같은 짓이다. 아니, 여자가 놔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너랑 결혼하겠다, 지금 당장 하고 싶다 이러고 있는데도 '난 너에게 부족해, 너에게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날지도 몰라, 넌 자유로워.' 이러고 있으니, 그 자유로운 시간동안 다른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는 건, 그래, 네가 감당할 몫이다, 피터... 사람 좋은 척 하다가 사랑하는 여자를 잃는 거야, 이 바보야..
결국 피터는, 예측 가능한대로, 후회한다.
나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어. 당신에게 부유한 사람과 결혼할 기회를 주려고 했지. 그런데 당신은 나보다도 가난한 사람과 사랑에 빠졌군.
사실 당신은 그가 나보다 더 용기 있다고 느끼겠지. 당신이 당장 결혼해서 함께 떠나겠다고 했을 때 그래야 했는데……난 지긋지긋한 멍청이였어. 난 당신을 잃었고, 모두 내 잘못이야. 그는, 당신의 더멋은 나보다 나은 사람이겠지…… 틀림없이 좋은 사람일 거야. 아니라면 당신이 그를 좋아하지 않았을 테니까. 두 사람에게 늘 최고의 행운이 따르길 바랄게. 그리고 나 때문에 속상해하지 마. 이건 당신이 아니라 내가 책임질 일이야…… 그런 빌어먹을 멍청이 짓을 한 내 발등을 찧고 싶군. 행운이 있기를, 내 사랑…… (p.231)
지나친 겸손이 겸손이 아니듯 지나친 배려도 배려가 아니다. 뭐든 지나치면 모자르니만 못하다. 사랑해서 '너무 사랑해서' 다른 사람 만날 기회를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면, 그래, 다른 사람에게 가버리고 당신에겐 세이 굿바이, 네가 너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라며.... 아니, 이렇게 진정 사랑한다고, 리얼 러브라고 시간을 주고 양보하면...그러면 정작 당신은 누구랑 함께하나?? 참, 올해 만난 명문이다.
삼 주 후 피터는 배에 올랐다.
일 년 삼 개월 후 셀리아는 더멋과 결혼했다.
아아.... 그래서 내가 생각이 많아졌다. 역시 가장 먼저 생각할 건 내 자신이구나. 내가 이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거기다 대고 쓸데없이 '당신에게 더 나은 사람을 찾아, 찾아보다 안되면 그때 내가 있을게' 같은 거, 할 필요가 전혀 없어. 그거 했다가 진짜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가는거야...그래놓고 훗날, 내가 그 때 그러지 말걸...하고 땅을 치고 후회해봤자 늦었지. 내가 상대를 정말 원한다면, 내가 가진 건 이것 뿐이지만, 이걸로 최선을 다해서 당신과 함께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보겠다, 해야지, 괜히 '더 좋은 사람 만날 기회를 줄게' 하지 말아야지... 그러다가 일 년 삼 개월 후에 더멋하고 결혼한다니까?
생각이 많다.
아니, 근데 대체 무슨 생각이야? 왜 더 부자 만날 수도 있으니까 자유롭게 행동하라고 하지? 하아- 뭐,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둘은 맺어질 운명이 아니었나보지. 그래, 세상에 사람은 많고 사랑하는 방법도 다양하지..그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뭐 그런 거지..그렇지만 그렇게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질 순 없을 것 같아...뭐, 안 맺어져도 되지, 혼자 즐겁게 잘 살면 되니까...
응?
놔줄지 말지 똑바로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영영 놓칠 수가 있다니까? 그때 돼서 후회해봤자 늦어...늦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