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친구들을 만났다. 스파게티와 와인의 조합은 굉장히 오랜만이라 기쁘고 맛있게 잘 먹고 우리는 자리를 옮겨 맥주를 마시러 갔다. 오랜만에 만나니 반갑고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니 더 좋고 앞으로도 이렇게 먹고 마시고 수다 떨며 오래오래 지내자는 얘기를 하던 중에, 당연히 '건강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나는 친구들에게, '늘상 건강하자고 말하고 건강한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건강하자는 말이 부질없다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간 내가 그렇게나 체력이 좋고, 어떤 검사를 해도 다 이상없다 나오고(최근에 위내시경 했을 때 닥터는 30대 초반 사람들보다 더 깨끗한 위를 가지고 있다고 내게 말했다), 건강만큼은 자신있다 생각했지만 수술을 앞두고 있지 않냐. 우리가 건강하기 위해 하는 일들이 정말 우리를 건강하게 해주는걸까, 건강하자는 말은 부질없는 것 같아, 이래봤자 어디에서 갑자기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질지 모른다, 라는 얘기.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친구1이 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읽었다던 '김혼비'의 《아무튼, 술》의 한 부분을 얘기해주었다. 저자가 술에 취해 노래방에 갔다가 리모콘을 들고 택시를 탔고, 택시 안에서 마치 그것을 게임기인양 다루었던 일, 정신차려보니 지갑이 없었는데 노래방에서 연락와 지갑을 찾으러 갔다고. 노래방에서는 택시 기사님이 노래방 리모콘과 지갑을 가져다주셨다 말했단다. 저자는 택시기사님께 연락을 드려 감사하다 인사했다는데, 기사님은 끊으시며 '힘내요' 라고 했다는 거다. 당시 너무 우울하고 힘들어서 폭음을 했던 저자는, 이 말에 왈칵 울음이 터졌다고. 저자 자신은 그간 힘든 사람에게 '힘내라'라는 말은 무용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해왔다 했다. 그 말로 힘이 나지는 않을텐데, 그저 듣는 사람이 아무것도 할 게 없으니 그냥 자기 편하자고 하는 말이 힘내, 라는 말이 아니었던가 생각했던 것. 그러나 자기가 힘든 상황에서 갑자기 듣게된 힘내라는 말은 정말 힘이 되었다는 거다. 그러니 그 말이 안하는 것보다 낫다고, 설사 길에다 버리는 말일지언정 누군가는 주워갈 수 있는 거라고. 친구는 이 얘기를 들려주며, 우리가 '건강하자'고 하는 말이 결코 부질없지 않을 거라고 했다.


아, 여러분 너무 좋지 않습니까... 내 친구다, 여러분. 책을 읽고 그 책에서 일화를 가져오며 우리의 대화속에 스며들게 한다. 게다가 그것은 얼마나 맞춤한가. 제가 이런 친구를 사귀고 있습니다.



그래. 부질없지 않을 것이다. 요즘엔 건강하자는 말이 너무 부질없는 것 같다고 그렇게 궁시렁대고 살아왔는데, 아니다, 부질없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어떻게든 가 닿아서 의미와 힘을 만들어내고 있을 것이야. 작용을 하고 있을 것이야.

여러분, 건강합시다.



그건그렇고,

나는 김혼비를 아직 한 권도 안읽어봤는데 주변에 김혼비를 읽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좋다좋다 말한다. 와- 나는 진심으로 김혼비가 부러웠다. 김혼비를 읽은 사람들이 이렇게 어디가서 좋다고 말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김혼비는 알까? 나도 이참에 김혼비를 좀 읽어봐야겠구먼. 며칠전에도 다른 친구가 김혼비의 책을 읽다가 내 생각난다며 본문을 사진 찍어 보내줬더라. 거기엔 이런 구절이 적혀 있었다.



의사도 완전히 나을 때까지 무리한 운동은 절대 삼가야 한다며 정기적인 물리치료를 권했다. 물리치료실로 이동하기 직전, 진단을 받는 내내 최대 관심사였지만 마지막까지 미루고 미뤘던 질문을 조심스럽지만 다급하게 던졌다.

"술을 마시는 것도 안 좋을까요?"

당연하지, 인마. 이 질문은 왜 항상 꺼내놓고나면 이렇게나 바보 같을까? 몸 낫자고 간 병원에서 꺼내면 특히 더 그렇다. 하지만 안 물을 수도 없지 않은가. '안 마시면 좋겠지만 마셔도 크게 지장은 없어요' 정도의 답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저렇게 깔끔한 답이 아니어도 괜찮다. "마시지 마세요"라는 답일지언정 "음 …" 정도의 머뭇거림이나 약간의 갸웃거림 정도만 포착할 수 있어도 술꾼의 마음은 한결 편안해질 것입니다, 선생님. 자, 그러니까, 선생님?

"알코올이 근육 섬유를 파괴하기 때문에 나으실 때까지는 마시면 안 됩니다."

헉. 이런 쪽으로 이렇게 깔끔하게 대답하실 줄이야. 알코올이 근육 섬유를 파괴하는 거 누가 몰라요. 다만 모든 것에는 '어느 정도'라는 애매모호한 영역이라는 것이 있는 거 아닙니까. 거기에서 발휘할 수 있는 의사의 재량이라는 게 있잖아요. 흑. 의사의 재량 대신 그냥 나의 재량에 맡기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될 텐데 소심해서 또 그렇게는 못 하고 물리치료를 받고 와서는 사흘 동안 꼼짝 없이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병원을 찾아간 이유가 이것 때문은 아니었다. 정말이다. 첫 병원은 축구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찾았던 것이고, 이번에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찾았을 뿐이다. 정말이다. 물론 "술은 절.대. 마시면 안 되나요?" 라고 질문을 살짝 극단적으로 바꾼 것에는 온건한 답을 유도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아무튼, 술 中에서, 페이지는 모릅니다)





















아아, 내 얘기가 아닌가.


그러니까 나로 말하자면,

몇 해전에 산부인과를 찾았을 때 약을 처방해주는 닥터에게 나도 '술 마셔도 될까요?' 물었더랬다. 닥터는 '안된다'고 답했고, 나는 약국에 가 처방전을 내밀고 약을 받은 뒤, 그 날 술을 마셔야 하므로 약을 먹지 않았다... (네?)


엄마가 너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했는데.. 하하하하하.



몸이 아파 병원에 다녀오면 가족들은 항상 '술마시면 안되겠네' 하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술 마시지 말란 말 안했어'로 대답하곤 했다.


"술 마셔도 되냐고 물어보긴 했어?"

"안했지."


당연히 안물어봤다. 안된다는 답을 듣기 싫어서. 나는 안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으므로 마셔도 되는것이다...



며칠전에는 내과에 갔다가 사정이 사정인지라, 슬며시 물어봤다.



"저.. 술 마셔도 될까요?"

"..... 마셔도 되긴 하지만, 안마시는 게 제일 좋긴한데..."


이에, 같이 갔던 남동생은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하냐고 나한테 잔소리를 했고, 아아, 닥터는



"남동생 말이 맞아요. 안드시는 게 제일 좋아요. 저는 아무것도 못들은 걸로 할게요." 하시는 게 아닌가.



그렇지만 나는 '마셔도 되긴 하지만'에 큰 의미를 두고...... 네, 어제도 마셨습니다. 아하하하하.



아, 김혼비 책 사야겠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연달아 두 명의 친구로부터 김혼비의 아무튼, 술 얘기를 듣게 됐어.




어제만난 친구2는 헤어질무렵 우리에게 빵을 줬다. 손바닥만한 파운드케익을 두개씩 줬는데, 나는 오늘 아침 아빠 드시라고 하나를 두고 나오고 하나는 내가 먹기 위해 가져왔다. 아빠로부터 맛있게 잘 먹었다는 연락이 왔다. 마침 아메리카노도 있겠다, 나도 빵과 함께 먹었는데. 아니, 이것은 무엇? 겁나 맛있는거다. 진짜 너무 맛있어서 친구에게 네가 어제 준 빵 짱맛있다고 고맙다고 연락했는데 아아....



하나를 아빠한테 준 게 후회가 되는 것이다...


두 개 다 내가 먹을걸...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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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2019-05-24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락방님을 친구로 두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답니다.
아침에도 지하철에서 아무튼,술을 읽다가 내릴역을 놓칠뻔,,, 아니 놓치고 출근안하고 지하철에서 계속 책읽고 싶었어요 ㅋ
아무튼, 건강합시다!

다락방 2019-05-24 13:42   좋아요 0 | URL
으흐흐흐 저도 조만간 김혼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빵 다 먹었더니 배가 불러요. 빵 안에 치즈가 통째로 들어있어서 깜놀했고 정말 좋았어요. 이런 훌륭한 빵을 그 친구는 어떻게 알고 사준건지 모르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은 뭘까. 읽으면 읽을수록 더 재미있고 또 내가 얼마나 많이 모르는지를 알게된다. 그래서 다 알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고, 더 궁금해진다. 재생산, 낳는 문제 역시 마찬가지. 검색해보니 이 책이 보이길래 부랴부랴 사서 읽었다. 최근 SNS 에서 대리모 관련 언급된 글들 중에 상당수가 '더 활발하게 논의될 일'이라는 의견을 가진걸 보고 좀 뜨악스러웠기도 하고. 내가 누누이 얘기했던, '그건 좀 아니지'라는 감각에 대해 생각했다. 공부를 해야 알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지만, 어떤 것들은 인간으로 살아가며 충분히 윤리적 감각으로 판단되는 게 아니던가.

















그렇게 읽게된 이 책은 여러명의 저자가 재생산에 대한 의견을 다양한 방식으로 펼쳐보이고 있는데, '캐시 오닐'의 <사이보그 섹스의 역사, 2018~2073> 는 그중 가장 재미있었다. 말 그대로, '재미'.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사이보그 섹스에 대해서 2018년부터 2073년까지의 일을 기록했다는 일종의 SF 소설 식이라고 이야기하면 될까. 캐시 오닐은 자신의 글에서, 2010년대에는 섹스로봇이 남성에 의해 만들어질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여성의 몸을 대상화할거란 우려가 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한다. 사이보그들은 아이들의 교육에도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고, 남성의 폭력으로부터도 여자들을 지켜주었다는 것. 즉, 이제는 과거에는 남성들이 폭력적이었대, 라는 역사를 알고 있다는 거다.



자기 소유의 로봇 친구와 가정교사가 생겼을 때 사람들에게 나타난 대체로 예상치 못한 중요한 결과는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관한 데이터는 쉽게 얻을 수 있고, 또 확실했다. 로봇과의 성관계가 실제 남성과의 성관계보다 훨씬 더 안전했다. (P.138)



로봇과의 섹스 같은 걸 상상해본 적은 없지만, 위의 구절을 읽는데 오, 너무 그럴듯한 거다. 로봇과 섹스를 한다면 확실히 남성의 폭력으로부터 안전할 것이고, 심지어 만족감은 훨씬 커지지 않을까. 얼마전에 여자1과 얘기하는데, 그렇게 오래 연애를 하면서 한 번도 상대 남성으로부터 만족감을 받아본 적이 없어, 다른 여자들이 표현하는 '울 것 같다'는 것이 도대체 뭔지 몰라 부러웠다는 거다. 그러나 얼마전부터 사귀기 시작한 연인과 비로소 (너무 좋아서)울 것 같은 기분을 알게 됐다는 것. 여자1이 만나온 남자들이 여자1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이건 뭐 여자1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나의 경우도, 그리고 내 주변의 대부분의 여자들도 사귄 남자들로부터 만족감을 다 얻지는 못했다. 오히려 상대 남자들에게 오구오구 잘한다를 계속 해줘야 했으며, 하기 싫어도 응한 적도 많았고, 만족하지 못해 짜증난 적도 대부분이었다는 것. 재밌는 건, 그러나 그들중 다수가 '나는 섹스를 잘해', '내 고추 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다. 하아-


아니, 그런데 섹스 로봇이라니... 백번 천번 생각해도 섹스로봇이 남자보다 훨씬 나을 것 같은데 아아... 캐시 오닐은 얼마나 적확하게 짚어냈는가!


캐시 오닐은 자신의 글에서 '상당수의 여성이 인간 남성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잃어버렸고(P.140)' 라고 썼는데, 아아, 섹스 로봇이 없는 지금 2019년...에도 나는 이미 인간 남성에 대한 관심을 잃은 바, 섹스 로봇이 생긴다면 캐시 오닐이 상상으로 써낸 글은 현실이 될것이다.



다시 처음의 책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 책을 읽는데 처음부터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의 《성의 변증법》이 언급된다. 아아, 드디어 이 책을 읽어볼 때가 되었구나 싶으면서, 앞으로 계속 여성주의 책 읽을 사람들에게도 성의 변증법을 읽어두는 것은 필요한 일이겠구나 싶었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획기적인 저서 『성의 변증법』에서 신체적 재생산 자체가 여성 억압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면서 출산을 대체할 새로운 기술들을 요구했다. 또 아이들이 가부장적인 가족 체제에서 고통받는 억압된 계층이라고 주장했다. -<동성애자가 아이들을 해방시키고 싶을 때>, 마이클 브론스키, p.148







재생산 관련된 여성주의 책을 더 읽어보고 싶다.



난자 공여자는 난임인 사람이 체외수정에 사용할 수 있도록 돈을 받고 난소 자극과 난자 채취 시술을 받는데, 공여자 대부분이 젊은 여성이다. 그들은 그 불쾌하고 위험한 절차를 밟겠다는 마음이 들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난자 공여 시장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경제적 불평등이 필요하다. 프랑수아즈 베일리스 같은 페미니스트 생명윤리학자들은 의학적 도움을 받는 재생산을 위해 난자 공여자를 착취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난자 공여 여성에게 가해지는 위험은 체외수정에 관한 윤리적 논쟁에서 종종 간과된다. 공여에 대한 낮은 보수가 문제가 되는 것은 건강상의 위험과 가난한 여성의 절박감을 이용한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과도한 보수 역시 지나친 유인책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신자유주의적 완벽주의, 크리스 캐포지, P.57-58



더 저렴한 대리모를 찾는 서구의 부모들은 인도, 태국 등지에 상업적 대리모 산업을 창출해왔다. 이런 국가들에서는 대리모 보수에 마음이 동하는, 위태로운 경제 상태에 놓인 여성들을 착취할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한다. -<신자유주의적 완벽주의, 크리스 캐포지, P.58



더 깊이 들어가면, 재생산의 기술화는 신자유주의적 세계관과 일치하는 장애인 차별주의적 완벽주의 규범을 조장한다. 예를 들어, 부모가 되고 싶은 사람은 종종 완벽에 대한 특정한 문화적 이상의 전형이 되는 난자 공여자를 찾는다. 그리하여 대행사는 아이비리그 학생인 공여자를 찾는 광고를 낸다. 유전된다고 생각되는 바람직한 특성-지능, 운동신경, 음악적 재능-을 갖춘 잠재 공여자들은 웃돈을 약속받아 때로는 보수가 10만 달러를 웃돌기도 한다. 이런 관행에서 알 수 있는 점은 부모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식이 엘리트 계층에 포함되길 바란다는 것, 우리의 현재 경제 시스템이 설정한 전통적 기준에 따라 성공을 거두길 바란다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에서 하버드나 예일 대학교 학생이 되면 계층의 꼭대기에 자리하게 되고 경제적 성공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엘리트 생식세포에서 태어난 아이가 이 성공을 복제할 수 있길 희망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완벽주의, 크리스 캐포지, P.58-59









우리는 아이가 없는 커플을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저 커플은 아이를 낳길 원할까? 무슨 문제가 있나? 하지만 독신 여성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그녀가 아이를 낳으려 애쓰고 있다거나 아이를 잃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재생산에 관하여>, 머브 엠리 - P24

‘자연스러워‘ 보이는 재생산이라도 모든 재생산은 도움을 받는다. 어떤 형태의 도움은 보이지 않게 주어진다. 재생산이 정치적 문제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이 도움이 당연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임신하기 위해 돈을 쓸 필요가 없는 사람은 임신에 엄청나게 많은 비용이 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임신하기 위해 몸을 변화시킬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면 임신이 힘들고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수 있다. 의사가 당신에게 상처를 주거나 조롱하거나 무시하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아이를 낳기에 충분히 건강한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것이 존재론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수 있다. 아이와 당신의 관계의 법적 상태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면 아이를 당신에게서 떼어 놓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수 있다. 자신의 안전을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꼭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수 있다. -<재생산에 관하여>, 머브 엠리 - P40

파울 B. 프레시아도가 『테스토스테론 중독자』(Testo Junkie)에서 지적했듯이, 전 세게적인 노동 불안정성-죄송, 유연성!-및 감정노동 경향을 설명하는 노동의 여성화 이론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이론은 ‘여성성‘이 무엇인지를 전제로 한다. 그럼에도 이런 접근 방식은 21세기에 돈을 받고 아기를 낳는 직업은 잘 설명하지 못한다. 편안한 집(캘리포니아주)또는 병원 기숙사(네팔, 케냐, 라오스)에서 돈을 받고 임신을 한 상업적 대리모들은 주 7일 24시간 일한다. 이들은 ‘유연‘하지 않다. 이들은 순전히 기술(techne), 창의성 없는 근육일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 자궁에 대한 꿈은 1960년대에 대체로 포기되었지만, 체외수정 기술이 완성되어 몸이 전적으로 이질적인 물질을 잉태할 수 있게 된 이후, 살아 있는 인간은 줄곧 ‘보조재생산기술‘이라는 완곡한 표현의 ‘기술‘ 부품이 되었다. -<어머니 역할>, 소피 루이스 - P43

기업이 특전으로 제공하는 난자 동결의 경우 그 주된 수혜자가 여성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실제로 그런 특전은 아이를 낳고 싶다는 여성의 소망보다 기업 쪽의 필요를 우선시하는 강요로 여겨질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지만 이러한 페미니즘의 역설도 야기한다.
누군가가 얻은 새로운 자유는 종종 다른 누군가가 받는 새로운, 혹은 더 심한 억압을 희생양으로 삼기도 한다. 정자 공여자와 달리 난자 공여자와 대리모는 의학적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된다. 예를 들어, 가장 최근에 내가 연구한 난자 공여자들 가운데 일부는 난자를 제공한 직접적인 결과로 심각한 합병증을 얻었다. 난자를 공여했던 사람이 나중에 불임을 겪기도 하는데, 예전에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받고 해주었던 일을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페미니즘의 역설>, 다이앤 토버 - P78

나는 엠리가 가족을 만들고 싶은 모든 사람의 욕구를 수용하는 포용적 페미니즘의 미래를 요구한 것에 감사한다. 하지만 보수를 받고 재생산 기능을 제공해 그중 일부 가족이 활기를 찾도록 도와주는 제삼자들의 침묵이 마음에 걸린다. -<페미니즘의 역설>, 다이앤 토버 - P78

이런 저항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전 세계의 병원은 재생산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게 보조재생산기술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판매한다. 보조재생산기술 서비스의 대다수가 안전하거나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입증되고 종종 실패로 끝나는데도 말이다. -<희망을 팔다>, 미리암 졸 - P79

자신의 난자를 냉동 혹은 판매하거나 대리모로 자궁을 ‘빌려줄‘ 젊고 건강한 여성을 모집하기 위해 업계가 사용하는 마케팅 전술에 자극받은 페미니스트와 생명윤리학자 들은 난자 동결과 대리모 산업이 가난한 여성의 재생산 노동을 착취하는 한편, 상대적으로 더 부유한 여성의 희망을 금전화하여 이득을 본다는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캠페인의 범위는 병원의 마케팅에 비하면 제한되어 있다. 병원은 환자가 구매하는 서비스의 안정성과 효과, 윤리적 영향을 대수롭지 않게 만드는 데 적극적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영향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는 환자에게 사실상 실험을 하고 있고, 종종 득보다 실이 많은 증명되지 않은 고가의 시술에 대한 청구서를 내민다.
이런 청구서를 받은 소비자 대부분은 성형 수술과 마찬가지로 수술비를 현금으로 지불하고, 따라서 보험이나 의사 추천 서비스에 의지하지 않는다. -<희망을 팔다>, 미리암 졸 - P80

그 때문에 비의학적으로 권고되는 보조재생산기술은 비교적 감독 체계가 느슨한 수상쩍은 세계다. -<희망을 팔다>, 미리암 졸 - P81

공식 기록들을 보면 2016년에 영국에서 난자를 해동해 정상 출산을 한 경우는 겨우 19퍼센트에 불과했다. -<희망을 팔다>, 미리암 졸 - P82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 인간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기적과 희망을 기대하는 연약한 생물이다. 혁신을 근사하게 묘사하는 것을 죄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자기를 보호하고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희망을 팔다>, 미리암 졸 - P83

강간은 여성의 시간과 공간을 통제하는 한 방법입니다. 밤에 남편 없이 혼자 밖에 나가지 않았어야지, 집안일을 하고 다음 날을 준비하면서 아이들과 집에 있었어야지, 밖에 나간다면 대비를 했어야지, 알잖아…… 강간의 위협은 여성의 시간과 공간에 가해지는 무언의 규율입니다. -<모든 여성은 일하는 여성이다>, 실비아 페데리치 - P105

폭력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종속적인 위치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고 강력한 형태의 착취를 가하는 데 항상 필요합니다. -<모든 여성은 일하는 여성이다>, 실비아 페데리치 - P105

치매에 걸리거나 가까이에 사는 가족이 없는 수백만 명의 노인에게 이 ‘시스템‘은 쓸모가 없다. 그래서 가정 방문 요양 분야가 떠오르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 가운데 하나다. 현재 미국에는 약 200만 명의 가정 방문 요양사가 있는데 주로 유색인종 여성이며, 대개 불법 노동자이고, 자신의 건강은 돌보지 못한다. -<페미니즘으로 나이 먹기>, 제임스 채팰 - P128

이들 중 거의 4분의 1에 이르는 사람이 최저 임금보다 낮은 보수를 받는다. -<페미니즘으로 나이 먹기>, 제임스 채팰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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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9-05-23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윤리적 감각‘이 보편적 인권감수성에 기초한 상식일 수도 있지만 대리모에 대한 당신의 편견이나 선입견일 수도 있습니다. 그 ‘윤리적 감각‘에 대해 숙고해보시길 바랍니다. 의견과 의견이 경합하고 충돌하는 지점에서 당신의 윤리적 감각이 위치한 지점은 어디입니까?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6월 도서는,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입니다. 마침 제가 오늘 읽고 있는 책에서도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 언급이 있었는데요, 자, 어디 한 번 6월에도 빡세게 읽어봅시다.


음, 사실 6월 한 달은 쉴까...라는 생각을 며칠간 했습니다. 함께 읽어주시는 분들 최선을 다해 읽어주시는데, 제가 너무 매달 빡세게 몰아붙이는 것 같아, 여러분에게도 한 달 쉴 시간을 드리고 나도 한 달 쉴까.... 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게 한 달 쉬다가 다시 할 수 있을지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해보는데까지 해보는걸로..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은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자, 가봅시다! 빠샤!


















다시 한번,

같이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덕분에 힘이 됩니다.

그리고 힘내세요!!



덧붙임)

7월 도서도 안내합니다. 쟝쟝님의 의견을 받들어, 《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로 하겠습니다. 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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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19-05-23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빠샤빠샤 ❤️

다락방 2019-05-23 15:28   좋아요 0 | URL
항상 감사하고 있어요 쟝쟝님 ♡

공쟝쟝 2019-05-23 15:55   좋아요 0 | URL
호잇 저두요! 진지하게 주제잡고 책읽기는 평생 처음이네요! 비록 이핑계저핑계대면서 미루기 일쑤지만 ^.^ 올해들어 제일 잘한 일!

공쟝쟝 2019-05-23 15:54   좋아요 1 | URL
참 다다음달에는 이 책 읽고 싶어요 (사실 1장까지 읽었는데 도저히 혼자서는 진도가 안나가는 ‘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예요.) 지금까지 읽은 책들 한번 정리도 할겸 ㅋ 고려해주세요 ㅎㅎ

다락방 2019-05-23 15:46   좋아요 0 | URL
고려고 뭐고 없어요.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7월 도서까지 정해진거네요. 7월에는 반드시 그 책으로 하겠습니다. 빠샤!

다락방 2019-05-23 15:48   좋아요 0 | URL
페이퍼 수정해서 올렸어요~~ >.<

공쟝쟝 2019-05-23 15:54   좋아요 0 | URL
오예~~~~~~!!ㅋㅋㅋ 고려 감사합니다!! 부지런히 읽겠습니당🌹

다락방 2019-05-23 15:59   좋아요 2 | URL
혼자 읽기 힘든 도서 같이 읽으면 읽게 되더라고요. 쟝쟝님이 읽기 힘든 도서, 우리 같이 읽어봅시다. 그렇게 진도 쭉쭉 빼봅시다. 빠샤!

블랙겟타 2019-05-23 18:42   좋아요 1 | URL
오. 혼자서 진도가 안난다면 함께!!٩(๑^o^๑)۶

다락방 2019-05-23 18:43   좋아요 2 | URL
함께함께!! 샤라라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블랙겟타 2019-05-23 18:48   좋아요 1 | URL
이것이 함께 읽는 이유겠죠? (V•̀ᴗ-)✰

레와 2019-05-23 15: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힘들텐데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다락방님, 응원합니다!!! 아자아자!!!!!

다락방 2019-05-23 15:33   좋아요 1 | URL
응원 고마워요, 레와님!
페미니즘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그리고 페미니즘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 많이 알고 싶더라고요. 페미니즘 공부는 힘들지만 재미있어요. 오늘도 책 한 권 또 읽으면서 계속 갈증이 났어요. 계속 할거야. 히힛.

고마워요!

syo 2019-05-24 1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성의 변증법은 저도 같이 읽어요.
공부해야 되니까 안녕~ 그래놓고 지내보니 결국 읽을 건 다 읽습디다.....-_-

생각보다 별로 두껍지도 않네요.
6월 15일에 시험이니까 끝나고 나면 시작할게요.

그나저나 7월의 책 저거 어디서 많이 보던건데??

다락방 2019-05-24 11:26   좋아요 2 | URL
꺅 >.<
쇼님이 함께한다면 정말 좋지요, 좋다 좋다. 꺅 >.<
그래요, 쇼님. 일단은 시험을 잘 치릅시다. 합!격! ㅋㅋ

그쵸그쵸? 7월의 책도 좋아서 속으로 만세! 외쳤습니다 ㅋㅋ

공쟝쟝 2019-05-24 11:37   좋아요 1 | URL
고고싱🙌🏻🙌🏻🙌🏻

다락방 2019-05-24 13:41   좋아요 0 | URL
궈궈~~

블랙겟타 2019-05-24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른 5월 책 읽고 6월도 계속 달려가보겠습니다. (•̀ᴗ•́)و

다락방 2019-05-24 13:41   좋아요 0 | URL
오예~ 컴온!
 
아들의 밤
한느 오스타빅 지음, 함연진 옮김 / 열아홉 / 2019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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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이나 고요하고 적막하며 차가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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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19-05-24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이 이런 평가를 한 책은 어떤 책인지...궁금해졌어요. 오늘 도착했네요. 가볍고, 표지가 양장인데 굳이 양장으로 할 필요까지 있었을까? 난 양장 싫은데...했네요.

다락방 2019-05-24 15:04   좋아요 0 | URL
전 이 책속의 비극이 더 싫었어요.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라서.
테레사님 이거 읽고 마음 무거워지시면 어쩌죠.. ㅠㅠ

그나저나, 오랜만입니다, 테레사님! 안그래도 테레사님 서재에 새 글 뜬 거 보고 테레사님 오셨네, 했어요.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과 내가 어떻게 만나게 되는건지, 도대체 그 우연을 작동시키는 힘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내가 이 책을 읽기로 한 건 갑자기 떠오른 생뚱맞은 기억 때문이었다. 오래전에 동명의 영화를 봤는데, 갑자기 그 영화의 한장면이 생각난 거다. 존(채닝 테이텀)이 사만다(아만다 사이프리드)와 함께 집에 갔는데 라자냐를 대접하며 "우리 엄마가 만든 라자냐는 정말 알아주지" 라는 말을 하는 장면. 그런데 이 기억이 맞는 기억인지 아예 잘못된 기억인지 모르겠는거다. 갑자기 이 장면이 왜 생각났는지도 모를뿐더러, 그렇다면 이 장면은 정말 있는 장면인지, 기억의 왜곡인지.. 영화본지 오래되어 하나도 생각이 안나는데 갑자기 확인하고 싶어지는 건 왜 때문일까. 사람은 아주 가끔은 쓸데없는 동력으로 움직인다. 나는 이 기억을 확인하고 싶어서, '그렇다면 이 기회에 원작을 읽어보자' 하게된 것. 그렇게 2010년에 발행된 책을 사서는 읽은 것이다. 네, 엄마가 만든 라자냐가 세계 최고인게 맞는지 확인하려고...



책은 몇 장 읽지도 않은 상태에서 나는 내 기억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책 속에서 존은 돌도 되기 전에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났음을 언급한다. 스물셋이 된 지금까지 엄마랑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다고 했다. 돌도 되기 전에 떠나버린 엄마라니, 엄마의 라자냐를 맛보았을 리가 없지. 내 기억이 잘못되었구나. 어쩌면 영화는 책과 아주 다르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르지만.



작가 '니콜라스 스파크스'는 남자 작가인데, 남자라는 걸 알 수밖에 없게끔 쓰여진 로.맨.스. 소설이다. 로맨스 소설도 남자가 쓰면 여지없이 남자가 썼구먼, 하고 알 수 밖에 없어.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 이 책은 멋진 남자 하나 그려놓으려고 작정한 책이랄까. 이 남자 '존'은 미국을 구하는 군인이며 게다가 사랑했던 과거의 연인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며 멋지게 뒤돌아서는 남자..다. 남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자를 그대로 그려냈달까. 후훗. 존과 사바나의 로맨스 자체에 할 말이 많아서 할 예정이고 나름대로 몰입하고 또 공감되는 부분들도 적잖이 있었지만, 남자가 그려내는 남자, 남자가 그려내는 여자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번역된 한국어 책 제목 위에는 '모든 걸 다 바쳐 날 지켜준 당신께... '라고 써있어. 네...




소설의 시작은 2006년. 존이 이미 사바나와 헤어진 지금, 군시절에 배운 위장술로 자신을 위장해 그녀가 행복한지 숨어서 확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말을 사랑하고 말과 함께 사는 사바나를 지켜보는 존.



녀석들 사이를 누비고 다니기에는 체구가 너무 가냘파 보이는 그녀. 하지만 늘 말과 편히 어울렸고, 그건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다. (p.7)



사바나는 왜 가냘플까? 사바나는 왜 가냘퍼서 지켜주고 싶은 욕망이 들까? 사바나 덩치가 컸다면 어땠을까? 존과 사랑에 빠진 여자가 덩치 큰 여자였다면? 그랬다면 존은 저 상황에서 말 사이에 있는 그녀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꼭 '녀석들 사이를 누비고 다니기에는 체구가 너무 가냘파 보이는' 을 써야 했을까? 말들 사이에서, 남자들 사이에서, 무슨무슨 사이에서 가냘파 보이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거, 지나치게 진부하지 않나?



'녀석들 사이를 누비고 다니면서 맞장뜰만한 덩치의 그녀를 나는 사랑했다.'



이렇게 쓰면 어디가 덧나?


'녀석들 사이를 누비고 다니면서 덩치로 녀석들을 제압하는 그녀와 나는 사랑에 빠졌었다.'


이건 어떤가?



'녀석들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그녀를 보노라니, 그녀의 어깨로 툭 쳐서 말들을 쓰러뜨릴 수도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강인해 보였다.'


좋잖아?



뭐, 그렇다는 거다.



"음료수도 괜찮아."

"정말? 냉장 박스에 맥주는 많아. 그리고 군인들 얘기 들어 봤거든."

나는 코웃음을 쳤다.

"괜찮대도. 넌 술을 안 마시는구나."

나는 캔을 따면서 말했다.

"응."

그녀의 말투에는 방어적인 기색도 우쭐대는 기색도 없이 오직 진실만이 배어 나왔다. 그게 좋았다. (p.55)



어린 시절 존은 방황을 했고, 그 방황을 끝내고자 군에 들어갔다. 휴가를 나와 아버지와 함께 사는 집에 머물면서 해변에 나와 서핑보드를 타다가, 가방을 해안에 빠뜨린 사바나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저걸 건질 수 없다고 대수롭잖게 넘기려던 그녀의 일행들과 달리 존은 풍덩- 헤엄쳐서 그 가방을 건져냈고, 이 일을 계기로 사바나와 존은 아는 사이에서 좀 더 알고 싶은 사이로, 그리고 결혼을 약속하는 사이가 된다. 단 2주만의 일이었다. 둘 모두에게 서로는 너무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그 전에는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던 사람들이, 우연을 계기로 나중에 결혼하자고 말하는 사이가 된 것. 존은 사바나를 안 뒤로 늘 사바나를 만나고 싶고, 그러면서도 2주후에 다시 독일에 있는 군대로 돌아가게 되니 그녀와 더 깊은 사이가 되면 안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면 안돼' 라고 말한다해서 사람  마음이 어디 그대로 되던가. 마음은 언제나 제멋대로 흘러가는 법.


존은 진실로 말하는 사바나를 좋아한다. 저렇게 사바나와 함께 있는 동안 사바나와 대화하면서 그리고 지켜보면서 사바나의 '그게 좋았다'고 말하는 부분들은 자주 나오는데, 그게 바로 사랑의 시작이 아닌가 싶다. 별 거 아닌데 그게 좋다고 말하는 거. 그간 살면서 진실된 사람을 본 적이 없었겠는가. 그리고 뭐 술 안마셔서 안마신다고 말한 걸 가지고 진실 어쩌고 운운하며 좋다고 하는 것도 너무 과장됐잖아. 그러나 바로 그것이 사랑의 시작인 것이다. 뭐든 더 크게 보고 더 확장하고 더 과장하고 그러면서 '그게 좋아' 라고 하는 거. 사소한 거 하나에도 '그게 좋아' 라고 하는 거. 돌이켜보면 사랑은 늘 그런식으로 시작됐던 것 같다. 너 같은 사람은 너 밖에 없어, 너의 그런 면이 정말 좋아, 나는 그전에 한 번도 이런 적은 없었어...



아마 사랑의 끝은 그것들이 딱히 특별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면서부터 쭉쭉 진행되는 것 같다. 당신의 잘먹는 모습이 좋았다가 드럽게 식탐있네로 끝나게 되는 거....네, 경험담입니다.



아무튼, 그러니까 내 말은, 저렇게 시작할 때는 '그게 좋았다' 이 말을 수시로 하게 된다. 그 사람 왜 좋아? 그 사람 어디가 좋아? 이러면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그런데 그 이유라는 것들을 들어보면 사실 그렇게 특별할 게 없거든. 술 안마셔서 술 안마시는구나? 라는 대답에 '응' 했는데, 뭘 그게 좋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지만 사랑에 빠지면 바로 그 순간에 '그게 좋았다'가 되는 것이다. 킁킁.




그러나 존은 군에 있고 사바나는 대학생이다. 그들이 처음 알고 사귀게 되기까지는 존이 휴가온 2주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일 년을 기다려 휴가가 되어야만 존과 사바나는 다시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고, 상대의 사랑을 믿었고, 그래서 둘이 떨어져 있는 시간동안 서로 편지를 쓰고 전화를 하며 계속 사랑을 속삭인다. 그렇게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는데, 다시 만났는데 기대만큼 좋지는 않았다. 모르는 사이가 2주간 열정을 불살랐는데, 그러고는 일상을 함께 하지 못한 채로 일 년을 보내다가 다시 2주를 함께 하게 됐다. 그 사이에 그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야 했고, 또 빼곡한 스케쥴도 있어. 존은 그녀와 2주간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사바나는 친구들 모임에 자꾸 존을 데리고 다니고, 그게 불만이었던 존과 사바나는 싸우게 된다. 처음 2주간의 열정과 만나지 못한 1년을 사이에 둔 다음의 2주는 달랐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이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비행기 좌석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사바나의 말이 진실이기를 빌었다. 그녀가 나를 사랑하고 염려한다는 건 알지만, 사랑과 염려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다는 사실이 이해되었다. 사랑과 염려는 우리의 관계를 이루는 벽돌이지만, 함께 보내는 시간이라는 모르타르 없이는 언제 허물어질지 몰랐다. 당장이라도 갈라질 위험에 처하지 않으려면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녀에게는 내가 모르는 면이 많았다. 작년에 나를 떠나보낸 뒤 그녀가 어떻게 살았는지 몰랐고, 그 생각을 하며 몇 시간을 고민해 보아도 이번에는 또 그녀가 어떻게 살아갈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내 가슴에 묵직하게 자리한 우리의 관계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팽이의 회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있으면 팽이를 계속 돌릴 수 있는 힘이 있고, 그 결과 아름다움과 마법과 천진한 경이로움이 펼쳐졌다. 그런데 헤어지면 팽이의 회전 속도는 속절없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이제 기우뚱기우뚱 휘청거리게 된 우리는 넘어지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했다. (p.242-243)




여전히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둘만의 시간. 우리의 관계가 배터리라면, 그 배터리는 내가 타향에서 보내는 동안 줄곧 방전되어 있었다. 우리 둘에게는 충전할 시간이 필요했다. 한번은 아버지 옆에 앉아 심박수 측정 모니터의 뚜뚜 소리를 듣다가 문득, 사바나와 내가 함께 보낸 시간은 지난 104주 중 4주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5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비율이었다. 아무리 편지를 주고받고 전화 통화를 한다 해도, 언젠가는 허공을 바라보며 우리가 어떻게 그 오랜 시간을 버텨 왔을까 의아해할 것이다. (p.248)




존이 군대를 가기로 선택한 건 그의 결정이었고, 그건 사바나를 만나기 전의 일이었다. 사바나 역시 방학을 이용해 집을 지어주는 봉사활동을 하러 왔다가 존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됐는데, 그녀의 계획에도 역시 '멀리 떨어져서 자주 볼 수 없는 남자를 사랑하기'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존이 사바나를 만나고 사바나가 존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 그 당시, 그 순간의 그들이 처한 상황은, 상대를 의식하고 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이 놓인 그 자리에서 자신이 생각하고 선택해야 했던 것들을 선택하며 따랐을 뿐. 그들의 삶을 그렇게 지속시켜오다가 갑자기 서로를 만나게 됐고, 그렇게 서로의 옆에 상대를 두려고 하니 오랜 시간 떨어져있어야 한다는 생각지 못한 장애를 만나게된 것이다.


그들은 편지와 전화 통화로 그것들을 굳건히 지켜나갈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리고 잘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사바나는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게 됐다.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과 연애를 시작했을 때, 그 때 이미 그는 그 나라에 있고 살기를 결심한 사람이었다. 나는 이곳에 있고 그는 그곳에 있고, 게다가 그와 나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비행기로 열시간 이상이라, 우리가 매일 알콩달콩 속삭이며 행복하게 지내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아주 많은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그걸 해? 나라면 못해."


라는 말을 들었다. 그건 그 역시 마찬가지. 그렇게 먼 데 살며 앞으로도 서로 먼 데 살 여자를 사귀는 데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을 그도 그의 친구로부터 들어야했다. 그는 어느 날 내게 '우리가 먼 데 살기 때문에 이 만남이 의미가 없는거야?' 속상해하며 묻기도 했더랬다.


나는 '나라면 못해, 그걸 어떻게 해'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 때마다 '뭘 못해 닥치면 다 하는거지. 니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 있다고 생각해봐, 그러면 다 하게 되어있어, 멀리 있으니까 헤어지자고 할거야?' 그러면 하나같이 다들 아니라고들 하면서 '그래도 그렇게 못해' 라고들 했다. 나는 그 말을 듣는게 너무 싫었다. 한 번도 좋았던 적이 없다. '나는 못해' 라고 말하는 게 도대체 이미 그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무슨 필요한 말이라고 그 말들을 그렇게나 해댔을까. 나는 이미 하고 있잖아, 그런데 거기다 대고 '나라면 못해' 라고 하는 거야? 그 말을 하는 이유가 뭐야 대체? 너도 못하니까 나도 못할거란 말이야?



그러나 존과 사바나처럼 우리도 헤어졌다. 당연히 존과 같은 이유도 사바나와 같은 이유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우리는 헤어졌고, 헤어진 후 반 년이 지나 다시 연락했을 때, 그는 일상을 함께 공유하는 기쁨에 대해 얘기했다. 그 당시 데이트중인 사람이 있었던 그는, 멀리 있는 너를 만나러 가는 것과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너무 좋았지만, 사소한 일상에 항상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 때 나에게 '너와는 그게 되지 않잖아'를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하는 말에 그 때도 지금도 동의하진 않지만, 그가 하는 말이 어떤 말인지 정확히,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안다. 먼 거리, 롱 디스턴스가 사이에 있는 만남은, 일상의 로맨스라기 보다는 특별한 이벤트의 느낌이니까. 나는 그걸로 충족되는 사람이었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그걸로 충족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상의 공유. 함께 눈을 뜨고 손을 잡고 가까운 거리를 산책하고, 같이 아침을 준비하고, 서로의 꾸미지 않은 모습을 보고, 옆집 아저씨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사소하게 얘기하고, 저녁 거리를 같이 고민하고, 오늘 퇴근후엔 어땠어를 표정만 보고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반드시 필요한 일일 것이다. 그것들이 일상의 작은 힘이 되어 오늘을 내일로 연결시켜줄 것이고. 가까운 거리에 산다면 그것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 언제 어디서 만나자, 라고 반드시 정해야 하는 게 아니라, 예정에도 없이 '저녁 같이 먹을까?' 가 가능할 것이고, '오늘 치킨 사들고 우리집 가서 먹자'가 가능할 것이다. 서로의 집 욕실에 칫솔을 꽂아둘 수 있을 것이고, 귀찮은데 오늘 자고 갈까, 가 가능할 것이다. 다음날 직장에서 이메일을 보내 '당신 집에 핸드폰 두고온 것 같아, 이따 찾으러 갈게'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내 이웃을 당신이 알게될 것이고 당신 직장 동료와 내가 인사하게 되기도 하겠지. 우리에겐 어떤 기나긴 설명 보다도 이제 아 그사람, 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이런 일들이 가까운 곳에 사는 연인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사바나에게는 그렇게 '다른 사람' 이 있었다. 존이 멀리 있는 동안에 항상 사바나의 일상을 같이 할 사람. 같이 공부하고 같이 일하고 서로의 고민에 대해(심지어 존에 대한 고민까지도!) 말할 수 있는 친구. 상대에게도 역시 마찬가지라, 상대에게 어려운 일이 있었을 때 사바나는 그의 가장 좋은 벗이 되어주고, 그렇게 그 일상들 속으로 사랑이 틈틈이 스며들었다. 스며들었다, 가 맞는 표현일 것이다. 사바나에게 새로운 연인이, 새로운 연인에게 사바나가 해준 일은, 멀리 있는 존과 사바나가 할 수 없었던 일들이었다. 그리고 일상을 유지하는 데는, 사바나와 새로운 연인에게 일어난 그 일들이 '더' 필요했을 테고.




나는 헤어진지 반년이 지나 연락된 나의 옛연인이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했을 때, 그가 선택한 건 그 일상의 공유가 가능한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일상의 공유라면, 나와 결코 나눌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우리가 대화하고 함께 웃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만으로 충족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그보다 더한 것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것을 찾은 거였겠지. 무엇보다 그녀에겐 내가 가지지 못한 게 있었다. 나에게 부족했던 것. 그와의 가까운 거리. 그녀는 언제든 그를 만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나와는 몇 월 며칠을 따져가며 만나야 했지만, 그녀와는 언제든 전화나 문자로 만나는 게 가능했다. 낮에 만나 운동하는 게, 같이 마트를 가는 게, 저녁을 먹는 게 가능했다. 그러다가 서로의 이웃을 소개받기도 했을 것이고. 그렇게 일상에 스며드는 사람을, 그는 찾았던 것이었겠지. 그가 나와 헤어진 후 찾은 사람이 그런 사람이었고 나 역시 그와 헤어진 후 찾은 사람이 그런 사람이었다. 나 지금 그 근처 가는데 잠깐 볼까? 가 가능한 사람. 그렇게 편한 옷을 입고 나갔다가 혹은 다른 목적으로 다른 곳을 향해 가다가도 불쑥 만날 수 있는 사람. 오늘은 우리 집앞에서 만나고 다음 날엔 너네 집앞에서 만나고가 가능한 사람.



이렇게 서로 가까운 곳에 살았던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그래서 해피엔딩이 됐을까? 그것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을까? 가까운 거리에 살아 언제든 아무때고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결국은 연애를 좋은 곳으로 향하게 했을까? 정확히 표현하자면, 가까운 거리가 과연, '일상의 공유'를 가능하게 했을까?



아니었다.


거리가 가깝다고 해서 일상의 공유가 가능한 게 아니었다. 자주 만나고 집앞에서 만나고 마트를 같이 가고 하는 일들만으로 충분한 게 아니었다. 일상의 공유란 그런 게 아니었다. 가까운 거리에 사는 걸로 일상의 공유가 가능했다면, 어째서 그는 만나는 사람이 있으면서 나랑 대화하는 걸 더 좋아했을까? 가까운 거리에 사는 걸로 일상의 공유가 가능했다면, 어째서 나는 데이트 중이면서도 '어서 집에 돌아가 그와 통화하고 싶다'를 생각했을까? 왜 우리는 더 많은 얘기를, 더 속깊은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는 잘 하지 못하는 얘기를, '지금 가까운 옆에 있는 사람' 이 아니라, 이토록이나 멀리 떨어진 사람에게 했을까? 왜 우리는 위로를, 격려를,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먼 데 있는 서로로부터 받았을까? 왜 그래야만 했을까?





사바나와 헤어지고 2년이 지난 후, 존은 사바나를 찾아갔다. 사바나는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상태였다. 2년간 사바나는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까지 하는 것이 모두 가능했다. 존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사바나에게는 2년 전에, 존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필요했다. 여전히 존은 사바나를 사랑했고, 그래서 사바나에게 자신의 얘기를 하고 싶어 찾아왔다. 사바나 역시 존을 사랑했고,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현실의 힘든 얘기부터 마음속 고민까지 존에게 얘기한다. 2년간 떨어져 있었지만, 그들은 마치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웃고 수다를 떨 수 있게 되었다. 가끔은 현실을 망각할 정도로. 지금 그녀가 다른 사람과 결혼한 사람이라는 걸 부러 기억해야 할 정도로, 그들에게는 깊은 대화가 가능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웃는 것까지. 이 모든 대화와 사랑은 여전히 존을 향한 것이었지만, 존이 돌아가고 나면 사바나는 매일 말에게 먹이를 주는 일상을 다른 남자와 함께 살아야 한다. 그게 사바나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존 역시, 그런 사바나의 행복을 빌어주어야 하고. 그게 옳은 길일 테니까.




그렇다면

그 시절 우리가 바라본 건, 결국 허공이었나.



오늘 퇴근후엔 치즈와 와인해야지.
















처음 사바나 린 커티스를 만났을 때-그녀는 내게 늘 사바나 린 커티스다-내 인생이 이렇게 될 줄은, 군인이 일생의 직업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를 만났고, 그 때문에 지금의 내 인생은 이토록 생경해졌다. 우리가 함께했을 때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헤어진 지 몇 년이 흐르는 동안 그 마음은 되레 깊어졌다. - P9

"난 그렇게…… 삶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사람이 좋아."
"삶이 아니라 주화에 대한 열정이야."
나는 그녀의 말을 바로잡았다.
"그게 그거지. 열정은 열정이니까. 열정은 지루한 공간들 사이의 흥분이라, 어디로 향하느냐는 중요치 않아."
그녀는 발을 모래 속에 넣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아무튼 시간의 대부분을 쏟는 대상이라고. 난 지금 나쁜 습관 얘기를 하는 게 아니야."
"너와 카페인처럼."
그녀는 앞니 사이에 살짝 벌어진 틈을 드러내며 웃었다. - P83

"맞아. 그 대상은 주화든 스포츠든 정치든 말이든 음악이든 신념이든, 뭐든 될 수 있어. 내가 만나 본 살마 중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어떤 것에도 깊이 빠지지 못하는 사람이야. 열정과 만족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가 있고, 그것들이 없으면 어떤 행복도 일시적일 수밖에 없어. 행복을 지속시킬 연료가 없는 거니까. 너희 아버지가 주화에 대해 말씀하시는 걸 듣고 싶어. 그때가 어떤 사람이 최고의 모습을 보이는 때니까. 그리고 누군가의 행복은 보통 전염되거든." - P83

"몇 년 전에 어떤 여자애랑 사귀었는데, 당시에는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했어.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지. 그런데 돌이켜보면 정말 그랬던 걸까 회의가 들어. 걜 좋아했고 같이 있으면 즐거웠는데, 떨어져 있으면 별로 생각이 안 나는 거야.사귀긴 했지만 연인은 아니었던 거지. 그게 말이 된다면 말이야. 그리고 헤어진 뒤에도 마음이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그냥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했지."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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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말 기록
    from 마지막 키스 2019-05-27 09:02 
    라자냐 장면 확인하고 싶어 읽었던 책에서는, 이미 결론을 알고 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비극을 만나 동시에 바닥으로 가라앉았더랬다. 그 비극속에서 빠져나오기가 몹시도 힘들었다. 어쩌라고, 어쩌라고.. 하면서 허우적허우적. 내친 김에 영화도 다시 보자 싶었다. 라자냐 장면도 확인할 겸.'존'의 아버지는 일요일마다 라자냐를 만들었다. 왜 이 장면에 내게 와서는 '우리 어머니 라자냐는 알아주지' 가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다른 영화랑 헷갈린건가..존과 사바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