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뭘까. 읽으면 읽을수록 더 재미있고 또 내가 얼마나 많이 모르는지를 알게된다. 그래서 다 알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고, 더 궁금해진다. 재생산, 낳는 문제 역시 마찬가지. 검색해보니 이 책이 보이길래 부랴부랴 사서 읽었다. 최근 SNS 에서 대리모 관련 언급된 글들 중에 상당수가 '더 활발하게 논의될 일'이라는 의견을 가진걸 보고 좀 뜨악스러웠기도 하고. 내가 누누이 얘기했던, '그건 좀 아니지'라는 감각에 대해 생각했다. 공부를 해야 알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지만, 어떤 것들은 인간으로 살아가며 충분히 윤리적 감각으로 판단되는 게 아니던가.

















그렇게 읽게된 이 책은 여러명의 저자가 재생산에 대한 의견을 다양한 방식으로 펼쳐보이고 있는데, '캐시 오닐'의 <사이보그 섹스의 역사, 2018~2073> 는 그중 가장 재미있었다. 말 그대로, '재미'.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사이보그 섹스에 대해서 2018년부터 2073년까지의 일을 기록했다는 일종의 SF 소설 식이라고 이야기하면 될까. 캐시 오닐은 자신의 글에서, 2010년대에는 섹스로봇이 남성에 의해 만들어질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여성의 몸을 대상화할거란 우려가 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한다. 사이보그들은 아이들의 교육에도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고, 남성의 폭력으로부터도 여자들을 지켜주었다는 것. 즉, 이제는 과거에는 남성들이 폭력적이었대, 라는 역사를 알고 있다는 거다.



자기 소유의 로봇 친구와 가정교사가 생겼을 때 사람들에게 나타난 대체로 예상치 못한 중요한 결과는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관한 데이터는 쉽게 얻을 수 있고, 또 확실했다. 로봇과의 성관계가 실제 남성과의 성관계보다 훨씬 더 안전했다. (P.138)



로봇과의 섹스 같은 걸 상상해본 적은 없지만, 위의 구절을 읽는데 오, 너무 그럴듯한 거다. 로봇과 섹스를 한다면 확실히 남성의 폭력으로부터 안전할 것이고, 심지어 만족감은 훨씬 커지지 않을까. 얼마전에 여자1과 얘기하는데, 그렇게 오래 연애를 하면서 한 번도 상대 남성으로부터 만족감을 받아본 적이 없어, 다른 여자들이 표현하는 '울 것 같다'는 것이 도대체 뭔지 몰라 부러웠다는 거다. 그러나 얼마전부터 사귀기 시작한 연인과 비로소 (너무 좋아서)울 것 같은 기분을 알게 됐다는 것. 여자1이 만나온 남자들이 여자1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이건 뭐 여자1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나의 경우도, 그리고 내 주변의 대부분의 여자들도 사귄 남자들로부터 만족감을 다 얻지는 못했다. 오히려 상대 남자들에게 오구오구 잘한다를 계속 해줘야 했으며, 하기 싫어도 응한 적도 많았고, 만족하지 못해 짜증난 적도 대부분이었다는 것. 재밌는 건, 그러나 그들중 다수가 '나는 섹스를 잘해', '내 고추 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다. 하아-


아니, 그런데 섹스 로봇이라니... 백번 천번 생각해도 섹스로봇이 남자보다 훨씬 나을 것 같은데 아아... 캐시 오닐은 얼마나 적확하게 짚어냈는가!


캐시 오닐은 자신의 글에서 '상당수의 여성이 인간 남성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잃어버렸고(P.140)' 라고 썼는데, 아아, 섹스 로봇이 없는 지금 2019년...에도 나는 이미 인간 남성에 대한 관심을 잃은 바, 섹스 로봇이 생긴다면 캐시 오닐이 상상으로 써낸 글은 현실이 될것이다.



다시 처음의 책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 책을 읽는데 처음부터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의 《성의 변증법》이 언급된다. 아아, 드디어 이 책을 읽어볼 때가 되었구나 싶으면서, 앞으로 계속 여성주의 책 읽을 사람들에게도 성의 변증법을 읽어두는 것은 필요한 일이겠구나 싶었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획기적인 저서 『성의 변증법』에서 신체적 재생산 자체가 여성 억압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면서 출산을 대체할 새로운 기술들을 요구했다. 또 아이들이 가부장적인 가족 체제에서 고통받는 억압된 계층이라고 주장했다. -<동성애자가 아이들을 해방시키고 싶을 때>, 마이클 브론스키, p.148







재생산 관련된 여성주의 책을 더 읽어보고 싶다.



난자 공여자는 난임인 사람이 체외수정에 사용할 수 있도록 돈을 받고 난소 자극과 난자 채취 시술을 받는데, 공여자 대부분이 젊은 여성이다. 그들은 그 불쾌하고 위험한 절차를 밟겠다는 마음이 들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난자 공여 시장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경제적 불평등이 필요하다. 프랑수아즈 베일리스 같은 페미니스트 생명윤리학자들은 의학적 도움을 받는 재생산을 위해 난자 공여자를 착취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난자 공여 여성에게 가해지는 위험은 체외수정에 관한 윤리적 논쟁에서 종종 간과된다. 공여에 대한 낮은 보수가 문제가 되는 것은 건강상의 위험과 가난한 여성의 절박감을 이용한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과도한 보수 역시 지나친 유인책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신자유주의적 완벽주의, 크리스 캐포지, P.57-58



더 저렴한 대리모를 찾는 서구의 부모들은 인도, 태국 등지에 상업적 대리모 산업을 창출해왔다. 이런 국가들에서는 대리모 보수에 마음이 동하는, 위태로운 경제 상태에 놓인 여성들을 착취할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한다. -<신자유주의적 완벽주의, 크리스 캐포지, P.58



더 깊이 들어가면, 재생산의 기술화는 신자유주의적 세계관과 일치하는 장애인 차별주의적 완벽주의 규범을 조장한다. 예를 들어, 부모가 되고 싶은 사람은 종종 완벽에 대한 특정한 문화적 이상의 전형이 되는 난자 공여자를 찾는다. 그리하여 대행사는 아이비리그 학생인 공여자를 찾는 광고를 낸다. 유전된다고 생각되는 바람직한 특성-지능, 운동신경, 음악적 재능-을 갖춘 잠재 공여자들은 웃돈을 약속받아 때로는 보수가 10만 달러를 웃돌기도 한다. 이런 관행에서 알 수 있는 점은 부모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식이 엘리트 계층에 포함되길 바란다는 것, 우리의 현재 경제 시스템이 설정한 전통적 기준에 따라 성공을 거두길 바란다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에서 하버드나 예일 대학교 학생이 되면 계층의 꼭대기에 자리하게 되고 경제적 성공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엘리트 생식세포에서 태어난 아이가 이 성공을 복제할 수 있길 희망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완벽주의, 크리스 캐포지, P.58-59









우리는 아이가 없는 커플을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저 커플은 아이를 낳길 원할까? 무슨 문제가 있나? 하지만 독신 여성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그녀가 아이를 낳으려 애쓰고 있다거나 아이를 잃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재생산에 관하여>, 머브 엠리- P24

‘자연스러워‘ 보이는 재생산이라도 모든 재생산은 도움을 받는다. 어떤 형태의 도움은 보이지 않게 주어진다. 재생산이 정치적 문제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이 도움이 당연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임신하기 위해 돈을 쓸 필요가 없는 사람은 임신에 엄청나게 많은 비용이 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임신하기 위해 몸을 변화시킬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면 임신이 힘들고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수 있다. 의사가 당신에게 상처를 주거나 조롱하거나 무시하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아이를 낳기에 충분히 건강한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것이 존재론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수 있다. 아이와 당신의 관계의 법적 상태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면 아이를 당신에게서 떼어 놓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수 있다. 자신의 안전을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꼭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수 있다. -<재생산에 관하여>, 머브 엠리- P40

파울 B. 프레시아도가 『테스토스테론 중독자』(Testo Junkie)에서 지적했듯이, 전 세게적인 노동 불안정성-죄송, 유연성!-및 감정노동 경향을 설명하는 노동의 여성화 이론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이론은 ‘여성성‘이 무엇인지를 전제로 한다. 그럼에도 이런 접근 방식은 21세기에 돈을 받고 아기를 낳는 직업은 잘 설명하지 못한다. 편안한 집(캘리포니아주)또는 병원 기숙사(네팔, 케냐, 라오스)에서 돈을 받고 임신을 한 상업적 대리모들은 주 7일 24시간 일한다. 이들은 ‘유연‘하지 않다. 이들은 순전히 기술(techne), 창의성 없는 근육일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 자궁에 대한 꿈은 1960년대에 대체로 포기되었지만, 체외수정 기술이 완성되어 몸이 전적으로 이질적인 물질을 잉태할 수 있게 된 이후, 살아 있는 인간은 줄곧 ‘보조재생산기술‘이라는 완곡한 표현의 ‘기술‘ 부품이 되었다. -<어머니 역할>, 소피 루이스- P43

기업이 특전으로 제공하는 난자 동결의 경우 그 주된 수혜자가 여성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실제로 그런 특전은 아이를 낳고 싶다는 여성의 소망보다 기업 쪽의 필요를 우선시하는 강요로 여겨질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지만 이러한 페미니즘의 역설도 야기한다.
누군가가 얻은 새로운 자유는 종종 다른 누군가가 받는 새로운, 혹은 더 심한 억압을 희생양으로 삼기도 한다. 정자 공여자와 달리 난자 공여자와 대리모는 의학적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된다. 예를 들어, 가장 최근에 내가 연구한 난자 공여자들 가운데 일부는 난자를 제공한 직접적인 결과로 심각한 합병증을 얻었다. 난자를 공여했던 사람이 나중에 불임을 겪기도 하는데, 예전에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받고 해주었던 일을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페미니즘의 역설>, 다이앤 토버- P78

나는 엠리가 가족을 만들고 싶은 모든 사람의 욕구를 수용하는 포용적 페미니즘의 미래를 요구한 것에 감사한다. 하지만 보수를 받고 재생산 기능을 제공해 그중 일부 가족이 활기를 찾도록 도와주는 제삼자들의 침묵이 마음에 걸린다. -<페미니즘의 역설>, 다이앤 토버- P78

이런 저항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전 세계의 병원은 재생산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게 보조재생산기술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판매한다. 보조재생산기술 서비스의 대다수가 안전하거나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입증되고 종종 실패로 끝나는데도 말이다. -<희망을 팔다>, 미리암 졸- P79

자신의 난자를 냉동 혹은 판매하거나 대리모로 자궁을 ‘빌려줄‘ 젊고 건강한 여성을 모집하기 위해 업계가 사용하는 마케팅 전술에 자극받은 페미니스트와 생명윤리학자 들은 난자 동결과 대리모 산업이 가난한 여성의 재생산 노동을 착취하는 한편, 상대적으로 더 부유한 여성의 희망을 금전화하여 이득을 본다는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캠페인의 범위는 병원의 마케팅에 비하면 제한되어 있다. 병원은 환자가 구매하는 서비스의 안정성과 효과, 윤리적 영향을 대수롭지 않게 만드는 데 적극적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영향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는 환자에게 사실상 실험을 하고 있고, 종종 득보다 실이 많은 증명되지 않은 고가의 시술에 대한 청구서를 내민다.
이런 청구서를 받은 소비자 대부분은 성형 수술과 마찬가지로 수술비를 현금으로 지불하고, 따라서 보험이나 의사 추천 서비스에 의지하지 않는다. -<희망을 팔다>, 미리암 졸- P80

그 때문에 비의학적으로 권고되는 보조재생산기술은 비교적 감독 체계가 느슨한 수상쩍은 세계다. -<희망을 팔다>, 미리암 졸- P81

공식 기록들을 보면 2016년에 영국에서 난자를 해동해 정상 출산을 한 경우는 겨우 19퍼센트에 불과했다. -<희망을 팔다>, 미리암 졸- P82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 인간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기적과 희망을 기대하는 연약한 생물이다. 혁신을 근사하게 묘사하는 것을 죄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자기를 보호하고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희망을 팔다>, 미리암 졸- P83

강간은 여성의 시간과 공간을 통제하는 한 방법입니다. 밤에 남편 없이 혼자 밖에 나가지 않았어야지, 집안일을 하고 다음 날을 준비하면서 아이들과 집에 있었어야지, 밖에 나간다면 대비를 했어야지, 알잖아…… 강간의 위협은 여성의 시간과 공간에 가해지는 무언의 규율입니다. -<모든 여성은 일하는 여성이다>, 실비아 페데리치- P105

폭력은 사람들이 사회에서 종속적인 위치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고 강력한 형태의 착취를 가하는 데 항상 필요합니다. -<모든 여성은 일하는 여성이다>, 실비아 페데리치- P105

치매에 걸리거나 가까이에 사는 가족이 없는 수백만 명의 노인에게 이 ‘시스템‘은 쓸모가 없다. 그래서 가정 방문 요양 분야가 떠오르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 가운데 하나다. 현재 미국에는 약 200만 명의 가정 방문 요양사가 있는데 주로 유색인종 여성이며, 대개 불법 노동자이고, 자신의 건강은 돌보지 못한다. -<페미니즘으로 나이 먹기>, 제임스 채팰- P128

이들 중 거의 4분의 1에 이르는 사람이 최저 임금보다 낮은 보수를 받는다. -<페미니즘으로 나이 먹기>, 제임스 채팰-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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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9-05-23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윤리적 감각‘이 보편적 인권감수성에 기초한 상식일 수도 있지만 대리모에 대한 당신의 편견이나 선입견일 수도 있습니다. 그 ‘윤리적 감각‘에 대해 숙고해보시길 바랍니다. 의견과 의견이 경합하고 충돌하는 지점에서 당신의 윤리적 감각이 위치한 지점은 어디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