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친구들을 만났다. 스파게티와 와인의 조합은 굉장히 오랜만이라 기쁘고 맛있게 잘 먹고 우리는 자리를 옮겨 맥주를 마시러 갔다. 오랜만에 만나니 반갑고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니 더 좋고 앞으로도 이렇게 먹고 마시고 수다 떨며 오래오래 지내자는 얘기를 하던 중에, 당연히 '건강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나는 친구들에게, '늘상 건강하자고 말하고 건강한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건강하자는 말이 부질없다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간 내가 그렇게나 체력이 좋고, 어떤 검사를 해도 다 이상없다 나오고(최근에 위내시경 했을 때 닥터는 30대 초반 사람들보다 더 깨끗한 위를 가지고 있다고 내게 말했다), 건강만큼은 자신있다 생각했지만 수술을 앞두고 있지 않냐. 우리가 건강하기 위해 하는 일들이 정말 우리를 건강하게 해주는걸까, 건강하자는 말은 부질없는 것 같아, 이래봤자 어디에서 갑자기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질지 모른다, 라는 얘기.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친구1이 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읽었다던 '김혼비'의 《아무튼, 술》의 한 부분을 얘기해주었다. 저자가 술에 취해 노래방에 갔다가 리모콘을 들고 택시를 탔고, 택시 안에서 마치 그것을 게임기인양 다루었던 일, 정신차려보니 지갑이 없었는데 노래방에서 연락와 지갑을 찾으러 갔다고. 노래방에서는 택시 기사님이 노래방 리모콘과 지갑을 가져다주셨다 말했단다. 저자는 택시기사님께 연락을 드려 감사하다 인사했다는데, 기사님은 끊으시며 '힘내요' 라고 했다는 거다. 당시 너무 우울하고 힘들어서 폭음을 했던 저자는, 이 말에 왈칵 울음이 터졌다고. 저자 자신은 그간 힘든 사람에게 '힘내라'라는 말은 무용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해왔다 했다. 그 말로 힘이 나지는 않을텐데, 그저 듣는 사람이 아무것도 할 게 없으니 그냥 자기 편하자고 하는 말이 힘내, 라는 말이 아니었던가 생각했던 것. 그러나 자기가 힘든 상황에서 갑자기 듣게된 힘내라는 말은 정말 힘이 되었다는 거다. 그러니 그 말이 안하는 것보다 낫다고, 설사 길에다 버리는 말일지언정 누군가는 주워갈 수 있는 거라고. 친구는 이 얘기를 들려주며, 우리가 '건강하자'고 하는 말이 결코 부질없지 않을 거라고 했다.


아, 여러분 너무 좋지 않습니까... 내 친구다, 여러분. 책을 읽고 그 책에서 일화를 가져오며 우리의 대화속에 스며들게 한다. 게다가 그것은 얼마나 맞춤한가. 제가 이런 친구를 사귀고 있습니다.



그래. 부질없지 않을 것이다. 요즘엔 건강하자는 말이 너무 부질없는 것 같다고 그렇게 궁시렁대고 살아왔는데, 아니다, 부질없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어떻게든 가 닿아서 의미와 힘을 만들어내고 있을 것이야. 작용을 하고 있을 것이야.

여러분, 건강합시다.



그건그렇고,

나는 김혼비를 아직 한 권도 안읽어봤는데 주변에 김혼비를 읽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좋다좋다 말한다. 와- 나는 진심으로 김혼비가 부러웠다. 김혼비를 읽은 사람들이 이렇게 어디가서 좋다고 말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김혼비는 알까? 나도 이참에 김혼비를 좀 읽어봐야겠구먼. 며칠전에도 다른 친구가 김혼비의 책을 읽다가 내 생각난다며 본문을 사진 찍어 보내줬더라. 거기엔 이런 구절이 적혀 있었다.



의사도 완전히 나을 때까지 무리한 운동은 절대 삼가야 한다며 정기적인 물리치료를 권했다. 물리치료실로 이동하기 직전, 진단을 받는 내내 최대 관심사였지만 마지막까지 미루고 미뤘던 질문을 조심스럽지만 다급하게 던졌다.

"술을 마시는 것도 안 좋을까요?"

당연하지, 인마. 이 질문은 왜 항상 꺼내놓고나면 이렇게나 바보 같을까? 몸 낫자고 간 병원에서 꺼내면 특히 더 그렇다. 하지만 안 물을 수도 없지 않은가. '안 마시면 좋겠지만 마셔도 크게 지장은 없어요' 정도의 답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저렇게 깔끔한 답이 아니어도 괜찮다. "마시지 마세요"라는 답일지언정 "음 …" 정도의 머뭇거림이나 약간의 갸웃거림 정도만 포착할 수 있어도 술꾼의 마음은 한결 편안해질 것입니다, 선생님. 자, 그러니까, 선생님?

"알코올이 근육 섬유를 파괴하기 때문에 나으실 때까지는 마시면 안 됩니다."

헉. 이런 쪽으로 이렇게 깔끔하게 대답하실 줄이야. 알코올이 근육 섬유를 파괴하는 거 누가 몰라요. 다만 모든 것에는 '어느 정도'라는 애매모호한 영역이라는 것이 있는 거 아닙니까. 거기에서 발휘할 수 있는 의사의 재량이라는 게 있잖아요. 흑. 의사의 재량 대신 그냥 나의 재량에 맡기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될 텐데 소심해서 또 그렇게는 못 하고 물리치료를 받고 와서는 사흘 동안 꼼짝 없이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병원을 찾아간 이유가 이것 때문은 아니었다. 정말이다. 첫 병원은 축구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찾았던 것이고, 이번에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찾았을 뿐이다. 정말이다. 물론 "술은 절.대. 마시면 안 되나요?" 라고 질문을 살짝 극단적으로 바꾼 것에는 온건한 답을 유도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아무튼, 술 中에서, 페이지는 모릅니다)





















아아, 내 얘기가 아닌가.


그러니까 나로 말하자면,

몇 해전에 산부인과를 찾았을 때 약을 처방해주는 닥터에게 나도 '술 마셔도 될까요?' 물었더랬다. 닥터는 '안된다'고 답했고, 나는 약국에 가 처방전을 내밀고 약을 받은 뒤, 그 날 술을 마셔야 하므로 약을 먹지 않았다... (네?)


엄마가 너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했는데.. 하하하하하.



몸이 아파 병원에 다녀오면 가족들은 항상 '술마시면 안되겠네' 하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술 마시지 말란 말 안했어'로 대답하곤 했다.


"술 마셔도 되냐고 물어보긴 했어?"

"안했지."


당연히 안물어봤다. 안된다는 답을 듣기 싫어서. 나는 안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으므로 마셔도 되는것이다...



며칠전에는 내과에 갔다가 사정이 사정인지라, 슬며시 물어봤다.



"저.. 술 마셔도 될까요?"

"..... 마셔도 되긴 하지만, 안마시는 게 제일 좋긴한데..."


이에, 같이 갔던 남동생은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하냐고 나한테 잔소리를 했고, 아아, 닥터는



"남동생 말이 맞아요. 안드시는 게 제일 좋아요. 저는 아무것도 못들은 걸로 할게요." 하시는 게 아닌가.



그렇지만 나는 '마셔도 되긴 하지만'에 큰 의미를 두고...... 네, 어제도 마셨습니다. 아하하하하.



아, 김혼비 책 사야겠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연달아 두 명의 친구로부터 김혼비의 아무튼, 술 얘기를 듣게 됐어.




어제만난 친구2는 헤어질무렵 우리에게 빵을 줬다. 손바닥만한 파운드케익을 두개씩 줬는데, 나는 오늘 아침 아빠 드시라고 하나를 두고 나오고 하나는 내가 먹기 위해 가져왔다. 아빠로부터 맛있게 잘 먹었다는 연락이 왔다. 마침 아메리카노도 있겠다, 나도 빵과 함께 먹었는데. 아니, 이것은 무엇? 겁나 맛있는거다. 진짜 너무 맛있어서 친구에게 네가 어제 준 빵 짱맛있다고 고맙다고 연락했는데 아아....



하나를 아빠한테 준 게 후회가 되는 것이다...


두 개 다 내가 먹을걸...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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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shin 2019-05-24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락방님을 친구로 두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답니다.
아침에도 지하철에서 아무튼,술을 읽다가 내릴역을 놓칠뻔,,, 아니 놓치고 출근안하고 지하철에서 계속 책읽고 싶었어요 ㅋ
아무튼, 건강합시다!

다락방 2019-05-24 13:42   좋아요 0 | URL
으흐흐흐 저도 조만간 김혼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빵 다 먹었더니 배가 불러요. 빵 안에 치즈가 통째로 들어있어서 깜놀했고 정말 좋았어요. 이런 훌륭한 빵을 그 친구는 어떻게 알고 사준건지 모르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