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파과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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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회마다 다른 에피소드로 연작드라마 만든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60대 여자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며 장점이 될 것이고. 그러나,
소설로는 너무 아마추어 느낌이라 당황스러웠다. 그러고보면 정말 [네 이웃의 식탁]으로 오기까지 작가가 많이 발전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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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를 알게 될 거야
메건 애벗 지음, 고정아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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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른 사람들하고 다르다‘를 깨닫기 위해 너무 위험한 길을 무모하게 지나쳐왔으나, ‘사랑이 내 앞길을 막는 걸 가만두지 않겠다‘는 욕망을 품은 소녀라니, 꽤 인상깊고 신선했다. 그렇다해도 처음부터 신경줄 팽팽하게 만드는 문체는 책읽기를 지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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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김정선 지음 / 포도밭출판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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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설'이라니, 대체 뭐야, 하면서 읽었는데 와- 엄청 신선하다. '김정선'은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을 읽고 그 줄거리와 감상에 자신의 이야기를 섞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들은 나름의 흐름으로 움직이는데, 이미 내가 읽었던 작품들을 새로운 형식으로 만나니 이야기 자체가 달라지는 느낌이었다. 특히 《햄릿》이 그러했는데, 나는 셰익스피어의 남주인공들을 유약함의 대표라고 생각해왔던 터라, 김정선이 자신의 소설에서 햄릿이 '모든 걸 다 알고 행하는' 사람으로 표현했을 때 이렇게나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게다가 형식으로도 너무 참신해서, 꼭지마다 다른 작품들이 등장하면서 게다가 다음 꼭지에 나올 작품과도 연결이 된다. 읽으면서 '오오, 나도 한 번 이렇게 소설을 써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김정선이 특히 '우울'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면, 나 역시도 특히 집중할 어떤 감정을 정하는 것이 좋을 터. 그 생각을 하자마자 머릿속에 '질투'가 떠올랐다. 질투로 나는 아마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기다림' 으로도. 아니, 질투가 더 재미있겠다. 물론, 이렇게만 생각했지, 질투에 대해 어떤 작품들을 끌고 와 이야기를 진행할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김정선 같은 소설가가 아니기에. 게다가 글쓰기 능력(!!)으로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다.



김정선의 문체가 참 마음에 드는데, 요란하지도 않고 신경질적이지 않아 읽기에 좋았다. 본인은 우울해서 징징댄다고 썼는데, 내 보기엔 전혀 징징대지 않는다. 징징대는 사람들은 이렇게나 우아하지 않다. 징징댄다고 스스로 말했지만, 오히려 징징댐을 안으로 삼키고 있는 느낌이랄까.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나와는 정 반대쪽에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곱씹고 안으로 삼키고 우아하다면, 나는 내뿜는 타입이랄까. 그러니 그는 우울에 집중해 글을 쓸테고, 나는 쓰려고 해도 질투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졌겠지. 나는 결코 이런식의 글쓰기를 따라잡을 수 없을테고 닮을 수도 없을테지만, 다만 한가지 분명한 건, 내가 쓴다면, 더 쉽고 재미있을 것 같다. 문제는, 쓸 수가 없다는 데 있다. 킁킁.



신선하게 잘 읽었다. 이런 식으로 시리즈를 기획해도 좋을 것 같다. 이번에 우울에 대해 셰익스피어를 가지고 와 이야기 했다면, 다음에는 그리움에 대해 다른 작가를 가지고 오고, 다음엔 성장에 대해 다른 작가를 가지고 오고 하는 식으로 리뷰소설 시리즈를 만들면 좋을 것 같아. 나는 시리즈가 나오는 족족 읽어볼 의향이 있다. 그러면서 그의 글쓰기를 배우고 싶다.







또 알게 된 것도 있다. 내가 어머니와 그다지 친하지 못했다는 것. 내 잘못이 아니었다. 병원에서나, 어머니를 부축하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한의원을 오가는 길목에서나, 이렇게 저렇게 부딪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이구 효자 아들을 두셨네요"라며 말을 건네곤 했다. 처음엔 칭찬일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 이 말은 말하자면 사회적 은어인 셈이었다. 저런 인간들을 효자나 효녀, 효부라고 칭하자. 그래야 우리 맘이 편하니까.
아니,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부모를 간병하는 건 착한 아들이나 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게 만들려는 전략인지도 모른다. 그래야 부모와 자식 간에 개인적인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을 테니까. (p.103)

우리 삶에는 시작과 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과 마지막도 있다. 살므이 시작이 반드시 처음인 것은 아니고 삶의 끝이 반드시 마지막인 것은 아니다. 그 사이에 봄은 무수한 처음과 마지막을 반복하고 꽃과 나무도 무수한 처음과 마지막을 반복하듯이, 삶을 살아내는 우리 또한 무수한 처음과 마지막을 반복한다. (p.130)

다음이 언제인지 그걸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언제나, 누구에게나, 다음은 있는 법이다. 다음에 다시 볼 수 있기를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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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2-20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도 할 수 있다고 봐 나는.

다락방 2019-02-20 22:22   좋아요 1 | URL
으음... 쇼님은 참 좋은 사람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첫째 딸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지만 - 큰딸로 태어난 여자들의 성장과 치유의 심리학
리세터 스하위테마커르.비스 엔트호번 지음, 이상원 옮김 / 갈매나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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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첫째 딸이다. 

이십대 초반에 다녔던 첫 직장에서 내 상사는 나에게  '너 맏딸 컴플렉스 있어' 라고 했다. 나는 그제야 '뭐라고, 나한테 그런 게 있다고?' 하고 놀랐었는데, 확실히 내가 첫째 딸이기 때문에 가졌어야 했던 성격들을 나는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훗날 여러번 했다. 지금도 물론 그렇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다른 첫째 딸들 역시 나랑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는 상황을 통제하려 하고, 일을 적절히 분배하려고 하며, 그러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원하든 원치않든 리더가 되려고 한다. 손아랫사람을 배려하고 누구보다 성실하며, 따뜻한 마음도 가지고 있다. 첫째로 태어났다는 특성상 부모에게도 처음 부모가 되는 경험이었으므로 나는 온갖 주변 어른의 사랑을 받았을 것이고, 아마도 그것은 내가 자라면서 사랑을 받고 표현하는 데 자연스럽게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당당하다' 는 말을 많이 듣게 했을 것이다. 약한 사람을 보살피고 싶어하고 진지한 것이,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특징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내가 첫째이기 때문에 가진 특징일까? 나는 물어야 했다.


저자들은 네덜란드에서 맏딸들만 모아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를 기획했다고 하는데, 그 안에서 맏딸들이 공통된 자기들 특징이라고 말한 성격들이, 과연 '맏딸이기에'가능한 성격이기만 했을까? 라고 물어보면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맏딸이기에 그런 공통된 특성을 가진 것은 맞을 것이지만, 맏딸이기에 응당 그런 성격을 가질 확률도 있었겠지만, 그러나 맏딸만의 특징만은 아니라는 것. 배려심, 자상함, 진지함, 이해심, 당당함 등등이 어떻게 맏딸들의 특징이기만 하겠는가. 확률적으로 더 높다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겠다.


맏딸들은 비슷한 방향으로 발달하게 된다고 이 책은 말하는데, 다른 형제들보다 아이큐가 높다거나, 유머감각 대신 진지함을 갖게 된다는 것은 내가 가진 특징이 아니다. 게다가 이 책에서는 맏딸이 아버지에게 얼마나 큰 유대감을 가지고 있는지 말하는데, 하하하하, 나는 아버지를 내가 태어나 처음 겪은 한남이라고 말하는 사람으로서 전혀 '아니올시다' 라고 대꾸하고 싶다. '모든 맏딸이 그렇진 않아' 라는 말이 이 책을 읽는데 무슨 도움이 될까마는, 그렇다고 또 '대부분의 맏딸이 그렇긴 하지' 라고 한다면 그것도 맞는 말인 것 같고, 그러다보면 이 책을 읽다가 종국에는 '이 책을 내가 왜 읽고 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차피 이 책 읽는다고 내가 크게 위로 받는 것도 아니고 삶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며, 읽으면서 '어 이건 맞네' 하든가 '이건 아닌데'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부질없다.. 그래서 뭐 어쩌자는 것인가...



사실 이 책도 자기 방향에 있어서 오락가락 하는게 아닌가 싶은게, 우리가 사람이다보니까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러면 또 이런저런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소제목이 <막내 출신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인 꼭지에서, 이런 문장이 나오는 거다.



대부분 맏딸들의 가장 친한 친구가 맏딸 출신으로 조사되긴 했지만 막내 출신과 각별히 친해지는 맏딸도 적지 않다. (p.147)



위의 문장을 읽다가 나는 여러번 갸웃했는데, 대체 쓰나 안쓰나.. 별 의미없는 문장이 아닌가 싶어진거다. 맏딸은 맏딸이랑 친해, 그런데 꼭 그런 건 아니야... 라면, 뭐 어쩌라고?? 이렇게 되지 않나?


아무튼, 나도 꼽아보니 내가 지금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은 대부분이 맏딸이었다. 게다가 제일 좋아하는 모임은 하하하하 맏딸로만 구성되어 있다. 물론 한 명이 오빠가 있긴 하지만, 오빠 있는 집의 첫째 딸은 맏딸과 같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지만 이 책은 맏딸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위로 오빠가 있는 딸인 경우에도 맏딸 역할은 여전하다. 이런 딸들은 "오빠는 아무 일도 안 해요."라고 입을 모아 말하면서 무슨 뜻인지 알지 않느냐고 눈짓을 해보인다. 알고말고. 맏아들은 제일 먼저 학교에 입학하고 용돈이나 귀가 시간 등 일상생활의 토대를 닦아둔다. 여동생이 남자들의 세계를 알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하지만 어머니가 노쇄해 보살핌이 필요할 때가 되면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후이다. 그러면 여동생이 맏딸이 되어 오빠의 빈자리를 채우며 책임을 떠맡기 일쑤이다. (p.14-15)




내 모임 구성원들도 맏딸, 내가 금요일에 만나려는 친구도 맏딸, 내가 중국에 같이 여행가려는 친구도 맏딸... 내 주변은 맏딸로만 구성되어 있는가....  아무튼 이 책은 맏딸들의 특성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면 읽어보면 좋다고 하는데, 이 책 읽는다고 뭐가 그렇게 확 인생의 답이 찾아지거나 하진 않는다. 아버지와의 유대감 부분에서는 진짜 좀 짜증났던 게, 대부분의 모든 첫째 딸들은 자기 아버지를 미워하고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맏딸들의 특성이지 않을까. 일전에 페미니즘 공부차 모여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아버지 얘기가 나오자 강사분도 그 말씀을 하셨던 거다. 한국에서 태어난 첫째딸들에게 아버지는 미움의 대상이라고. 첫째딸이야말로 자신의 어머니가 왜, 어떻게 고생하는지, 그게 어디에서 오는지 가장 먼저, 가장 오래 보아왔으니 당연한 거 아닌가. 이 책은 네덜란드 학자들이 쓴건데, 아마도 대한민국이 아닌 곳에서는 그런 걸 볼 일이 없었던 거 아닐까... 아무튼 아버지와의 유대감 같은 거, 나는 아닙니다, 아니고요.




재미있는 건 이성애자인 맏딸의 연애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나는 오래전부터 친구들에게 '누나 있는 남자랑 사귀는 게 제일 낫다'고 말하고 다녔던 바 있다. 여동생 있는 남자랑은 확실히 다르다, 그나마 제일 애들이 좀 인간답게 잡혀있다, 고 나만의 이론을 주장하고 다녔었는데, 이 책에서는 내 주장이 사실이라고 말해주고 있다(자매품으로 '여자상사 밑에서 첫직장생활 시작한 남자가 좀 낫다'도 있습니다). 통계적으로다가. 첫째 딸과 막내아들의 만남이 가장 좋다고 말하는데, 그 막내는 형이 있는 막내랑은 또 다르다. 누나 있는 막내아들이 좋아. 그건 이미 내가 살면서 경험으로 체득한 바 있는데, 책에서도 말해준다. 하하하하. 누나들 밑에서 자란 남자가 그나마 낫다. 



다시 말해 이성애자인 맏딸은 누나 한둘과 함께 자란 막내아들과 가장 잘 맞는다. 형들이 있는 막내아들도 괜찮지만 더 좋은 것은 누나들이 있는 막내라고 한다. (p.183)



내가 살면서 만나본 남자들을 토대로 해 내가 내린 결론이긴 하지만, 누나 있는 남자가 반드시 맏딸한테만 어울리는 건 아니다. 나는 이성애자 여자들이 대체적으로 누나 밑에서 자란 남자들과 사귀는 것이 '그나마 나을 것'이라고 본다. 아무튼, 내가 사귀었던 누나 있는 막내 생각 나면서 아련아련해지는 시간이었다. (응?)




리뷰 쓰려고 하다가 뭔가 이리저리 왔다갔다 중신없이 되어버렸는데, 이 책 읽는다고 딱히 뭔가 위로가 되고 힘을 얻고 그런 것도 아니고, 다만 아아, 나만 그런 건 아니고 맏딸들 대부분이 그러는구나, 정도는 파악할 수 있겠다. 그러나 또 그것이 다가 아닌게, 그렇지만 또 그렇지 않은 맏딸들도 있지..이것도 동시에 알게 되어버려서. 결론 내자면, 많은 맏딸들이 공통된 맏딸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정도가 아닐까. 뭐, 그렇다는 거다. 



아래 문장은 내게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앞으로 살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문장이라 생각돼 인용해둔다.



맏딸인 당신은 자신의 행복뿐 아니라 사람들과 맺는 관계에 대해, 시간을 보내는 방식에 대해, 남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책임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이를 분명히 인식해야 남들 챙기느라 기진맥진해지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사람들이 당신 없이도 해나갈 수 있다는 점을 믿어야 한다. 기억하라. 물론 당신이 하면 조금 더 낫겠지만 어떻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로 물러서 있을 줄 알아야 한다. (p.106)



세상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고 했다. 난 말도 안 된다고,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했다.
-루시 반 펠트Lucy Van Pelt(찰스 슐츠Charles M. Schulz의 만화 <피너츠Peanuts>에 등장하는 맏딸) (p.25 재인용)

2007년 <사이언스Science>지에는 맏아이가 평균 이상의 지능을 보인다는 내용이 실렸다. 전 세계 IQ 평균은 90에서 110 사이인데 맏이들은 이보다 2~3점이 더 높았다는 것이다. IQ 3점은 별것 아니라 여겨질지 모르지만 전문가들은 이것이 결정적 차이를 낳을 수 있다고 말한다.(p.41)

맏딸들은 결국 비슷한 방향으로 발달하게 된다. 맏딸들은 자기 형제자매보다도 다른 맏딸들과 더 많이 닮았다. 착한 아이, 뭐든 잘 하는 아이가 되어 내 자리를 안전하게 진킨다는 믿음응ㄹ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공유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p.98)

맏딸들은 온갖 잡다한 일들에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이 된다. 자녀나 동료들이 남에게 하는 말이든, 남들이 하는 생각이든, 늦은 밤에 베란다에서 나와 우는 이웃집 고양이든, 기후 변화든 다 마찬가지다. 맏딸들은 이 모든 문제에 대해 개인적인 책임감을 느낀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할 때 수많은 맏딸들이 책임감을 언급하는 것도 그래서 놀랍지 않다. 기억도 안 나는 오래전부터 남들의 모범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p.105)

형제자매 관계 1503건(인원수로는 3552명)에 달하는 영국 가구 패널 좌를 바탕으로 학업 열망과 성취도를 살펴본 결과, 부모의 교육 수준과 직업 지위의 영향을 고려한 상황에서도 맏이들은 동생들에 비해 교육받으려는 열망이 7%나 높았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맏딸들은 맏아들에 비해 열망이 13% 더 높았다는 점이다. 맏딸들은 야망이 있었다. 삶과 자기 자신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어내고자 했다. 동기부여가 가장 잘된 집단 역시 맏딸들이었다. (p.33-34)

때로 맏딸들은 그런 성실함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오늘은 어떤 일에도 나서지 않겠어, 가만히 앉아서 남들이 나설 때까지 기다릴 거야.‘ 하고 결심하기도 한다. 하지만 프로젝트 마감 기한이 다가오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상황이 펼쳐지면 결국 성실한 맏딸이 떠맡게 된다. ‘좋아, 내가 해주지.‘ 라면서.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아이의 스포츠클럽이든 친구들 모임이든 마찬가지다. 맏딸이 있는 곳 어디서나 맏딸은 필요한 일을 맡아 훌륭하게 해낸다. (p.107)

경계를 확실히 하고 그 경계를 지켜라. 누가 어머니를 위해 장을 볼지, 산책을 모시고 나갈지, 사무실 문을 마지막으로 잠글지 정해라. 무언가 바꾸려는 사람은 자기 입장을 분명히 정해야 한다.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Yes‘ 만큼이나 ‘No‘라는 말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면 운명을 자기 손에 넣은 셈이다. 이렇게 할 수 있어야 성실성은 강력한 자질로 남는다. (p.108)

맏딸들은 전체를 보는 눈과 조직하는 기술을 타고난다. 집으로 들어서기만 해도 무엇이 필요한지 보이고 곧 일을 분배할 수 있다. 사람들은 불평이나 질문 없이 맏딸의 지시를 따른다. 그 의견이 옳다고 보기 때문이다. 맏딸의 권위는 인정받는다. 물론 맏딸은 자신이 리더라고 전혀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늘 하던 일을 할 뿐이니 말이다. 늘 총대를 메는 것은 맏딸이다. 아니면 다른 누가 한다는 말인가?
농담조로 자신을 프로 간섭꾼이라고 부르는 맏딸들도 있다. 자기도 모르는 새에 남들 일에 관여를 한다. (p.108-109)

1985년에 출간된 책 [나는 왜 나인가The Birth Order Book)에 소개된 결과를 보자. 외동이나 첫째 집단에서는 예외 없이 누군가가 쪽지를 집어 들고 읽었다고 한다. 둘째나 막내 집단에서는 누구도 쪽지를 먼저 집어 들지 않았다. 둘째들은 늦게라도 그럭저럭 과업을 따라갔지만 막내들은 잡담에 빠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고 한다. 첫째와 외동들은 훌륭한 발표를 한 반면 둘째는 간혹 훌륭했고 막내들은 그저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자기는 모르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막내들에게 말해줘야 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결국은 모든 참석자들이 자신들이 정확히 출생 순위에 맞는 행동을 하고 있음을 깨닫고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맏이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과업을 해냈던 반면 막내들은 누군가가 할 일을 알려주기까지 기다리면서 놀고 있었던 것이다. (p.10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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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9-02-17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맏딸인데, 언제부터인가 아 내가 맏이라서 가지게 되는 특성이라는 게 있구나 라는 걸 느껴요. 실제로 친한 친구들도 맏딸인 경우가 많았던 것 같구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지만, 가끔, 둘째나 막내면 좋았겠다. 훨씬 자유로왔겠다 라는 마음이 들기도 하죠..^^;;;

다락방 2019-02-18 10:44   좋아요 0 | URL
맏딸은 맏딸을 알아보는걸까요, 비연님? 비연님 맏딸, 저도 맏딸, 밑에 유부만두 님도 맏딸.. 지금 이 공간의 모두가 맏딸....

유부만두 2019-02-17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맏딸.... 흠...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어요.

다락방 2019-02-18 10:44   좋아요 0 | URL
아아, 제 주변엔 왜 이다지도 맏딸들만 많단 말입니까! 그건 제가 맏딸이기 때문입니까!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다시 여름, 한정판 리커버)
박준 지음 / 난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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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전에 류근 시인 산문집 읽고 대실망 했었는데 박준은 그보다 낫지만, ‘남자 시인의 산문집’은 읽지 않는 걸로 결정했다. 박준은 시만 읽고 류근은 시도 안읽어야지. 이병률도 아무것도 안읽어야지. 이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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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2-12 0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피톤 산문집도 싫었어 ㅎㅎ

단발머리 2019-02-12 07:42   좋아요 0 | URL
좋아요, 하는 쓸쓸한 마음...
다락방님 조언에 나도 에피톤 안 읽을꺼야 결심하는 아침. 다락방님, 굿모닝^^

다락방 2019-02-12 15:45   좋아요 0 | URL
그 책 안읽어도 사는 데 아무 지장 없어요. 패쓰하세요 ㅎㅎ

보물선 2019-02-12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오글거리시나요? ㅋㅋ

다락방 2019-02-12 08:53   좋아요 4 | URL
뭐랄까, 남자시인들 특유의 감성이 있는 것 같아요. 오글거리고 찌질한 ㅋㅋㅋㅋㅋㅋㅋㅋ 넘나 제 취향 아닌 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왜 그 노래 있잖아요, 김건모의 <미안해요>

그대여~ 밥 한 번 못사주고 미안해요~ 이러는 거. 밥도 못사주는 찌질함에 미안하다고 울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싫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물선 2019-02-12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그러네요. ㅎㅎㅎㅎ

뒷북소녀 2019-02-14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에피톤도 산문집 있었어요?ㅋㅋ 저는 이석원도요.

다락방 2019-02-14 13:25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이석원 한 권 읽고 제 타입 아니다, 멀찌감치 밀어버렸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