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김정선 지음 / 포도밭출판사 / 2018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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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소설'이라니, 대체 뭐야, 하면서 읽었는데 와- 엄청 신선하다. '김정선'은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을 읽고 그 줄거리와 감상에 자신의 이야기를 섞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들은 나름의 흐름으로 움직이는데, 이미 내가 읽었던 작품들을 새로운 형식으로 만나니 이야기 자체가 달라지는 느낌이었다. 특히 《햄릿》이 그러했는데, 나는 셰익스피어의 남주인공들을 유약함의 대표라고 생각해왔던 터라, 김정선이 자신의 소설에서 햄릿이 '모든 걸 다 알고 행하는' 사람으로 표현했을 때 이렇게나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게다가 형식으로도 너무 참신해서, 꼭지마다 다른 작품들이 등장하면서 게다가 다음 꼭지에 나올 작품과도 연결이 된다. 읽으면서 '오오, 나도 한 번 이렇게 소설을 써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김정선이 특히 '우울'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면, 나 역시도 특히 집중할 어떤 감정을 정하는 것이 좋을 터. 그 생각을 하자마자 머릿속에 '질투'가 떠올랐다. 질투로 나는 아마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기다림' 으로도. 아니, 질투가 더 재미있겠다. 물론, 이렇게만 생각했지, 질투에 대해 어떤 작품들을 끌고 와 이야기를 진행할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김정선 같은 소설가가 아니기에. 게다가 글쓰기 능력(!!)으로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다.



김정선의 문체가 참 마음에 드는데, 요란하지도 않고 신경질적이지 않아 읽기에 좋았다. 본인은 우울해서 징징댄다고 썼는데, 내 보기엔 전혀 징징대지 않는다. 징징대는 사람들은 이렇게나 우아하지 않다. 징징댄다고 스스로 말했지만, 오히려 징징댐을 안으로 삼키고 있는 느낌이랄까.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나와는 정 반대쪽에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곱씹고 안으로 삼키고 우아하다면, 나는 내뿜는 타입이랄까. 그러니 그는 우울에 집중해 글을 쓸테고, 나는 쓰려고 해도 질투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졌겠지. 나는 결코 이런식의 글쓰기를 따라잡을 수 없을테고 닮을 수도 없을테지만, 다만 한가지 분명한 건, 내가 쓴다면, 더 쉽고 재미있을 것 같다. 문제는, 쓸 수가 없다는 데 있다. 킁킁.



신선하게 잘 읽었다. 이런 식으로 시리즈를 기획해도 좋을 것 같다. 이번에 우울에 대해 셰익스피어를 가지고 와 이야기 했다면, 다음에는 그리움에 대해 다른 작가를 가지고 오고, 다음엔 성장에 대해 다른 작가를 가지고 오고 하는 식으로 리뷰소설 시리즈를 만들면 좋을 것 같아. 나는 시리즈가 나오는 족족 읽어볼 의향이 있다. 그러면서 그의 글쓰기를 배우고 싶다.







또 알게 된 것도 있다. 내가 어머니와 그다지 친하지 못했다는 것. 내 잘못이 아니었다. 병원에서나, 어머니를 부축하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한의원을 오가는 길목에서나, 이렇게 저렇게 부딪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이구 효자 아들을 두셨네요"라며 말을 건네곤 했다. 처음엔 칭찬일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 이 말은 말하자면 사회적 은어인 셈이었다. 저런 인간들을 효자나 효녀, 효부라고 칭하자. 그래야 우리 맘이 편하니까.
아니,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부모를 간병하는 건 착한 아들이나 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게 만들려는 전략인지도 모른다. 그래야 부모와 자식 간에 개인적인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을 테니까. (p.103)

우리 삶에는 시작과 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과 마지막도 있다. 살므이 시작이 반드시 처음인 것은 아니고 삶의 끝이 반드시 마지막인 것은 아니다. 그 사이에 봄은 무수한 처음과 마지막을 반복하고 꽃과 나무도 무수한 처음과 마지막을 반복하듯이, 삶을 살아내는 우리 또한 무수한 처음과 마지막을 반복한다. (p.130)

다음이 언제인지 그걸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언제나, 누구에게나, 다음은 있는 법이다. 다음에 다시 볼 수 있기를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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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2-20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도 할 수 있다고 봐 나는.

다락방 2019-02-20 22:22   좋아요 1 | URL
으음... 쇼님은 참 좋은 사람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