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주인공 '윌'이 교통사고를 당하기전에, 사랑하는 여인과 한 침대에서 있다가 출근하러 나가면서, 그는 애인에게 말한다.


I'll cook tonight.


오, 멋져. 오늘밤에 내가 요리할게, 라고 말하는 남자라니. 어떤 달콤한 말들은 지독하게 단순하다. 별로 요란할 것도 없다. 그저 사실만을 말해도 되는 것이다. 내가 요리를 못해서 그런지, 요리 잘하는 남자 넘나 좋은것. 멋져... ♡


그러나 나는 요리하는 윌의 모습을 볼 순 없었다. 애인에게 그렇게 말하고 출근하는 길 교통사고가 났으므로.



책을 읽었고, 그래서 잔뜩 울 준비를 하고 봤는데 눈물이 1도 안났다. 음... 영화는 그저 그렇더라. 연휴에 술마시면서 엄마랑 둘이 나란히 앉아 봤는데, 성격 급한 엄마가 자꾸만 '그래서 쟤 살아나?, 안락사 시켜?' 묻는 통에 정신 사나웠다. ㅎㅎ '엄마, 끝까지 봐' 라고 했는데, 평소에 영화를 잘 즐기지 않는 엄마는 '야, 그럼 너무 오래 기다려야 되잖아' 라고 하시는 거다. 난 끝까지 말해주지 않았고, 엄마는 어쩔 수 없이 끝까지 보셔야 했다. ㅎㅎㅎㅎㅎ


















어제는 남동생과 둘이 나란히 앉아 연휴의 마지막을 아쉬워하며 맥주랑 막걸리를 마셨다. 술을 다 마시고 자리를 치웠는데, 이대로 자기가 아쉬워 채널을 돌리다가 [뷰티 인사이드]를 보게 됐다. 일전에도 한 번 봤던 작품이라 무심히 넘겨도 좋았을것을, 나는 그냥 내가 틀어둔 데부터 계속 보기 시작했다. 중간 좀 전부터였던 것 같다. 


일전에도 느꼈지만 이건 숫제 한효주 뮤직비디오 같은 영화다. 한효주가 엄청 예쁘게 나와서, 와 예쁘다 예쁘다 하면서 보게 되는 영화랄까. 늘 모습이 변하는 애인에게, 낯설지만, 적응이 너무나 힘들지만, 자꾸 웃어주는 한효주는 정말 그 역할도 예쁘다. 그러나 적응되지 못하는 애인 때문에 신경이 쓰이고 그래서 정신분열증 약을 챙겨 먹어야 하는 한효주는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그래서 우진은 그녀에게 이별을 말한다. 손잡고 조용히 밤길을 거닐다가, 우진은 이수(한효주)에게


"헤어지자"


고 말한다. 싸우지도 않았고, 질린것도 아닌데... 손잡고 걷다가 헤어지자, 하는 것이다. 어떤 이별은 그렇게 오기도 한다. 이수는 사실 그 날 속으로 안도했다고 한다. 헤어지자는 말을 듣고. 헤어지고 아파하는 이수는, 자신의 언니를 보고는 끌어안고 운다. 언니, 나 어떡해... 하고 운다. 아아, 제기랄, 나도 같이 울었다. 줄줄, 눈물을 흘렸다. 


연애중에 봤던 이 영화는 애인과 할 말이 많은 영화였는데, 이별 후에 본 이 영화는 울게 하는 영화였다. 이별 후에, 여동생을 끌어 안고 나 어떡해, 하고 엉엉 울던 내가 생각났다. 그래서 같이 울었다.





추석날에는 여동생네 가족이 왔다. 나와 남동생과 나의 엄마는 칠살 조카, 네살 조카를 데리고 가까운 허브공원으로 갔다. 날씨가 좋았고 아이들은 뛰어 놀았다. 칠 살 조카의 볼은 발개져서 마치 볼터치를 한 것 같았다. 머리며 얼굴, 목으로 온통 땀이 흘렀다. 신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너무나 행복하다. 잠시 쉬라며 과일과 물, 과자를 먹이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이 많이 뛰어 놀아 지쳐서 금세 낮잠을 자겠거니, 했는데, 늘 그랬듯이 이렇게 자기네 집을 벗어나면, 아이들은 좀처럼 잠들려 하질 않는다. 여동생과 네 살조카가 내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내 방 침대는 퀸 사이즈. 나는 칠 살 조카를 데리고 가 옆에 함께 누웠다. 자기가 아까웠는지 칠 살 조카는 자꾸 일어나서 나가려고 한다. 나는 그런 칠 살 조카에게 말했다.



-타미야, 이모옆에 누워. 이모 옆에 누워서 사랑을 속삭이자.



그러자 칠 살 조카는 다시 내 옆에 누우며, '사랑을 속삭이는 게 뭐야?' 묻는다. 나는 그런 조카에게 '응, 타미 귀에다 대고 사랑한다고 계속 말해주는 거야' 했다. 그리고는 정말로 사랑을 속삭였다.


-이모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지?

-박타미!

-맞았어!

-이모가 그다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야?

-그건 비밀이야.

-말해줘, 제발..

-(이 아이는 제발이란 단어를 어디서 어떻게 배웠을까?) 안돼, 타미 다 말하고 다닐 거잖아.

-안말할게. 정말로.

-음.. 이모가 그 다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나 알아. *** 이지?

-응, 맞아. 타미야,

-응?

-이모는 타미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 타미가 태어났을 때부터 사랑했어. 태어난 그 순간부터 사랑했어.

-진짜? 

-응.

-타미 태어날 때 이모 봤어?

-아니, 태어나는 순간에 보지는 않았는데, 태어날 때 이모가 있었거든. 그래서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랑할 수 있었어.



말해놓고나니 정말 그랬다. 이 아이를 사랑하는 건, 이 아이의 탄생부터 시작된 거였다. 이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나는 이 아이를 사랑했다. 이 아이의 태어남부터 지금까지, 나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뜨겁게 사랑하는 애인이라도 태어남과 동시에 사랑하는 건 불가한데, 이 아이에 대한 사랑은 이토록이나 특별했다. 아, 이것은 얼마나 순전한 사랑이란 말인가! 내가 여태 살면서 누군가의 탄생부터 사랑한 적이 있었던가. 이것은 나에게도 처음이다.


이런 생각으로 잠시 말을 안하고 있었더니 아이도 조용하다. 가만 들여다보니 색색, 잠이 들었다. 이 아이가 잠이 들기전에 사랑한다는 말을 실컷 들려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순전한 사랑이었던, 프라납 삼촌을 떠올렸다. 프라납 삼촌은 나의 조카와 완전히 다른 경우인데...



그는 엄마에게 처음이자 유일한, 순전한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내가 태어난 것도 엄마를 기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아빠와 결혼했다는 일종의 증거물이었고, 배운 대로 사는 삶이 낳은 예상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프라납 삼촌은 달랐다. 삼촌은 엄마의 삶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즐거움이고 기쁨이었다.(p.85) 


















칠 살 조카는 집에 가서 제엄마에게 세상에서 아빠가 가장 좋고 그 다음이 이모, 그 다음이 엄마라고 했단다. 이에 여동생이 삐져서는 나에게 '치, 나쁜 지지배' 했는데, 음.... 나는 내가 왜 1위가 아닌 것인지 의아하다. 왜 제일 좋은 사람이 이모가 아닌거지? 어째서 그런것이지? 나는 너를 가장 사랑하는데!!!!!!!! 아, 어떤 사랑은 내가 보내는 크기만큼 돌려받지 못하는 것이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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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6-09-19 0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락방님. 한동안 글이 없으셔서 안부 물으려고 락방님 서재에 들어왔더니. 어멋. 글이 올라 있어서 넘 반갑습니다!
˝아니, 태어나는 순간에 보지는 않았는데, 태어날 때 이모가 있었거든. 그래서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랑할 수 있었어˝
이 말에 격한 동감. 저도 제 조카를 그렇게 사랑하게 되었거든요. ^^

다락방 2016-09-19 09:51   좋아요 1 | URL
비연님, 아무것도 읽기도 싫고 쓰기도 싫은 시간을 보냈어요. 글 쓰는 걸 잊겠다 싶어 부랴부랴 썼답니다. 반가워해주셔서 고마워요. 좋으네요,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우리는 여기서 오래오래 사랑을 속삭입시다!!

에이바 2016-09-19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모 옆에 누워서 사랑을 속삭이자, 태어난 그 순간부터 사랑했어˝ 때문에 저도 모르게 아침부터 눈물이 줄줄... ㅠㅠ 다락방님의 오늘 아침 페이퍼도 너무 좋아요. 행복해요.

다락방 2016-09-19 09:51   좋아요 0 | URL
크- 제가 에이바님을 행복하게 해드렸다면, 글을 쓰는 기쁨이 느껴지네요. 보람이 느껴집니다. 역시..글 쓰는 걸 멈출 수는 없겠구나, 생각하게 돼요. 좋아해주셔서 너무 좋아요.
:)

단발머리 2016-09-19 0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침대에 누워 사랑을 속삭이다 잠든 다락방님 조카가 부러운 나는....
누구인가요? ㅎㅎㅎ

다락방 2016-09-19 09:53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은, 소중한 내 친구 단발머리님 이십니다!! ㅎㅎㅎㅎㅎ
우리는 여기서 사랑을 속삭입시다! >.<
명절 잘 보내셨어요?

단발머리 2016-09-19 09:56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의 친구 단발머리는 추석연휴를 잘 보냈습니다. 많이 일하지 않았고 나름 놀았어요. 그래도 가족이 모두 제자리를 찾아간 이 시간에 혼자서도 행복한ㅎㅎ

다락방 2016-09-19 10:04   좋아요 1 | URL
혼자서도 행복한 단발머리님, 사랑해요! ♡

2016-09-19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19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윗듀 2016-09-19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앙 북플로 내리면서 봤더니 위에 에마글에서 뒷북치고 있었네요 ㅜㅜ 흙 사랑하는 사람에게 부끄러움없이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다락방님 부럽습니다!

다락방 2016-09-19 13:02   좋아요 1 | URL
사랑은 부끄러운 게 아니니까요, 러블리듀님.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 조카에게 앞으로도 꾸준히, 끊임없이 사랑을 속삭일거에요. 같이해요!

스윗듀 2016-09-19 13:06   좋아요 0 | URL
네! 사랑이라는 단어 아끼지 않을게요.

다락방 2016-09-19 14:35   좋아요 0 | URL
히히 :)

낭만인생 2016-09-19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랑할 수 있었어.

넘 멋진 글입니다. 막연한 삶이 구체적으로 조명되는 것 같습니다.

다락방 2016-09-19 13:03   좋아요 1 | URL
멋진 글이라는 칭찬, 감사합니다, 낭만인생님. 멋진 글은 별다를 게 없는 것 같아요. 그저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되는 것 같습니다.
:)

레와 2016-09-19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다음생은 다락방님의 조카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ㅎㅎ



다락방 2016-09-19 14:35   좋아요 0 | URL
욕심이 지나치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16-09-19 15:13   좋아요 0 | URL
저두요.... 내가 막둥이 할까봐요...

다락방 2016-09-19 16:26   좋아요 0 | URL
아니, 이분들이 정말!!

clavis 2016-09-19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욬
그럼 난 둘째 조카!

다락방 2016-09-19 14:49   좋아요 0 | URL
클래비스님도 욕심이 지나치십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16-09-19 15:14   좋아요 0 | URL
락방님 조카 풍년...^^;;;

clavis 2016-09-19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카모임하나 만들어요
다다조ㅡ다음생에 다락방님 조카가 되고싶은 사람들의 모임

차라리 락사모가 나을까요ㅎㅎ

다락방 2016-09-19 16:2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단 진정들 하시고요... ㅋㅋㅋㅋㅋ

이매지 2016-09-19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전 막내조카... (수줍)

다락방 2016-09-19 16:26   좋아요 0 | URL
저기... 막내는 위에 유부만두님이 찜하셨는데... ( ˝)

나와같다면 2016-09-19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모는 타미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 타미가 태어났을 때부터 사랑했어. 태어난 그 순간부터 사랑했어.

태어날 때 이모가 있었거든. 그래서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랑할 수 있었어

따뜻한 사랑고백인데 왜 이리 눈물이 나죠..? ㅠㅠ

다락방 2016-09-20 08:41   좋아요 0 | URL
아이쿠야, 나와같다면님. 울지 마세요. 오늘은 또 아침이 밝았네요.
우리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서 살아갑시다. 그건 숨길 마음이 아니니깐요.
바람이 부는데도 눈이 부시네요.
이상한 날씨에요.

감은빛 2016-09-21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딸들에게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질문했다가 상처 받아서 그 이후론 안 합니다.
좋아하는 남자애 이름이 아빠보다 먼저 나오더라구요. ㅠㅠ

다락방 2016-09-22 16:10   좋아요 0 | URL
아! 제게도 곧 그런 날이 오겠지요. 칠 살 조카도 네 살 조카도, 이모 따윈 안중에 없어지는.. 그런 날이 오겠지요. ㅠㅠ

박용수 2016-09-25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한 기회에 정말 우연히 다락방님의 따뜻한 글을 읽었습니다.

다락방 2016-09-25 18:52   좋아요 0 | URL
따뜻하게 읽으셨다니 저도 좋습니다 :)

sully0517 2016-09-26 16: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블로그를 운영하지는 않지만 다락방님의 글이 볼때마다 너무 좋아 친구신청합니다~ 그래도 될까요^^?

다락방 2016-09-26 16:25   좋아요 0 | URL
당연히 그래도 됩니다. 얼마든지요!
:)
제 아이콘 밑에 있는 친구추가 버튼은 누르셨습니까?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