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영화는 정말이지 너무 좋다. 전편인 『비포 선라이즈』보다 훨씬 훠어어얼씬 좋다. 일전에 비포 선라이즈를 봤다는 페이퍼를 작성했을 때, 여러 분이 비포선셋이 더 좋았다고 댓글을 달아 주셨더랬는데, 아아, 정말 그렇더라. 비포 선셋은 진짜 짱이다!!
그들이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나 하루를 같이 보내고난 후, 9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남자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으며 책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책으로 인해 파리로 날아가 작가와의 만남을 한다. 그 자리에, 여자가 나타난다. 여자는 이미 그의 책을 읽고난 후다. 아아, 너무나 근사해. 너무 멋져. 이들은 9년전 여행지에서 처음 만나고난 후, 6개월뒤에 다시 만나자고 구두로 약속한 상태였지만, 그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만남을 잊지 못해 남자는 책을 썼고, 여자는 그가 쓴 책을 읽고 그가 와있다는 파리의 서점으로 가, 그와 재회한다. 9년 만에!
그들에게도 9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내가 그들의 첫 만남을 본 지도 좀 시간이 흐른 지라, 모든 장면들을 기억할 수 없었다. 이들이 9년만에 만나 그때 우리가 이랬었지 저랬었지 얘기하는 걸 듣노라면, 그 중에 어떤 것들은 나도 기억하고 혹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하는 것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내가 깜짝 놀랐던 건 섹스에 관한 것이었는데, 나는 그들이 섹스하지 않았다고 기억하고 있는데, 남자가 여자에게 '우리 섹스했잖아' 라고 말하고 여자가 '우리 섹스 안했어' 라고 말할 때였다. 여자 말이 맞아, 섹스 안했잖아!! 라고 당근 생각했는데, 나중에 여자가 '사실은 다 기억해, 우리 두 번 섹스했어' 할 때는 멘붕이 왔다... 나 모르게.. 한거구나. 아니, 다시보면 섹스씬이 나오려나? 만약 섹스를 했다면, 섹스를 했다는 사실을 잊기는 힘들지 않나? 나는 내가 누구와 섹스했는지, 누구와 섹스를 하려다 말았는지, 누구와 섹스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는지를 다 기억하는데, 이걸 기억 못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아니, 섹스 경험이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많으면 까먹기도 하고 그러는건가???????????????????????? 뭐, 어쨌든 내가 기억 못하는 것이 나의 섹스가 아니라 남의 섹스였으니 상관없다. 영화속 남자와 여자의 섹스를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게 잘못은 아니니까.
남자와 여자는 재회한 후 쉼없이 대화를 나눈다. 걸으면서 대화하고 커피숍에서 대화하고 유람선을 타고 대화한다. 남자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고 비행기 출발 시간이 다가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대화를 한다. 이 영화 『비포 선셋』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의 대화로만 이루어진다. 영화가 끝날때까지 그러한데, 그들의 대화속에 완전 쏙~ 빨려들어서, 시간이 후딱 지나가버린다. 아아, 벌써 영화가 끝난단 말이야? 하고 어찌나 안타깝던지!
마지막, 남자는 공항에 가서 기다리느니 너와 대화를 조금 더 하겠다며 여자에게 차를 한 잔 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자의 집에 들어간다. 여자는 가끔 노래를 만들었는데, 이에 남자는 여자가 만든 노래를 들려달라 말한다. 여자는 영어로 만든 노래중 하나를 들려주는데, 아아아아아, 예술은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가. 그 노래에는 9년전 여행지에서 만나 자신의 에너지를 몽땅 쏟아부었던 바로 그 시간과 그 남자를 향한 것이었다. 아아, 그들에게 9년은 무의미하게 흘러간 게 아니었다. 남자가 여자를 그리워해 그 이야기를 책으로 써냈는데, 여자는 남자를 그리워해 그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었어!!!
예술 만세!
예술은 위대하다!
예술 짱이야!!
위 아 더 월드!!!!!!!!!!!!!!!!!!!!!!!
나만 그리워한 게 아니었어, 나만 좋았던 게 아니었어, 나만 잊지 못한 게 아니었어. 그 날, 그 시간에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쏟아부었던 게, 나뿐만이 아니었어. 아아 ㅠㅠ 이런 이야기는 정말이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사랑합니다 비포 선셋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여자는 얘기하다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감정이 격해지는데, 그때마다 남자는 한순간도 다른 곳에 시선을 둘 수 없다는 듯이 여자만 바라본다.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넘나 좋은것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는 책을 쓸테니 당신은 노래를 만들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지화자~ 얼쑤~ 세상은 아름다운 것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사람에겐 누구나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몽땅 쏟아붓게 되는 시간이 오는 것 같다. 그것은 십대에 올 수도 있고 이십대에 올 수도 있다. 혹은 삼십대에 올 수도 있고. 그 시간을 보내기 전과 후에, 바로 그 시간같은 시간이 또 올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그런 때가 온다. 그런 때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살아가는 동력이 될것인데, 만약 그 시간이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시간이었다면, 그때 그 시간에 나의 사랑을 받았던 상대 역시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기를 바라게 된다. 쌍방이 맞아야 우리는 같은 크기의 그리움을 가지게 될텐데, 만약 나는 쏟아부었는데 상대는 미적지근 했었다면, 나는 평생을 그리워하고 상대는 자신을 그리워하는 나를 징그럽게 여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감정의 크기가 언제나 쌍방에게 같게 흐르는 게 아니다.
영화속 남자와 여자에겐 그 시간이 같은 크기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리고 같은 크기였음을 서로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 바로 비포 선셋이고. 크- 좋구먼.. 인생에 있어서 어느 한 순간만큼은 이런 기적같은 일이 생겨도 좋지 않은가!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고두심은 암에 걸렸고 수술중이다. 책을 쓰고 있던 고현정은 책을 다 쓴 후에 조인성에게 찾아가기로 했는데, 엄마가 큰 수술을 앞두고 있어 조인성에게 '기다리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 엄마가 수술하는 병원에서 자세를 바꾸지도 않고 엄마의 수술이 무사히 끝나기를 기다린다. 수술종료라는 안내메세지가 뜬걸 확인하고, 고현정은 수술실로 달려간다. 달려가다가, 막 휠체어를 끌고 온 조인성을 마주친다. 고현정은 거기에서 조인성을 마주칠 줄 몰랐다. 조인성이 올 줄은 몰랐다. 조인성은 슬로베니아에 살고 있으니까. 거기서부터 여기까지는 아주 머니까. 온다는 말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놀람과 반가움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그런 그를 환영하지도 못한 채로, 잠깐 멈칫했을 뿐, 고현정은 계속 수술실을 향해 뛴다.
자신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뜨는 고현정을 보며 조인성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런 조인성을 보며 내가 다 서운했었다. 너를 보기 위해 그 먼 데서 여기까지 왔는데, 너는 어쩌면 그렇게 한마디 말도 없이 나를 지나치니, 하고.. 그러다 조인성이 그 서운함에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냥 가지말라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고현정이 지금 엄마의 수술 결과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라고, 그 정도쯤은 기다려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나는 속으로 애가 타며 말했다. 그러다 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완(고현정)과 연하(조인성)은 서로 사랑한다.
그들은 서로 멀리 떨어져있지만 서로를 사랑하고 있고, 그 오랜 시간을 서로의 곁에(물리적으로는 아니지만) 있었다. 그 사랑은 단단하다. 거기서부터 여기까지 오게 한 사랑이니, 이것은 그저 서툰 사랑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에 서운하다고 다시 돌아갈, 그런 사랑이 아니다. 그런 사랑을 했던 남자와 여자라면, 이런 서운한 시간을 이겨낼 것이다. 그래, 조인성이라면, 기다릴 것이다. 고현정이 지금 힘든 시간임을 알고 기다릴 것이다, 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아니나다를까,
병원 한 구석 복도에 쪼그리고 앉아 우는 고현정을,
조인성은 찾아낸다.
찾아내서, 그 앞에 가서,
완아,
하고 이름을 부른다.
그래서 고현정은 얼굴을 들고, 조인성을 보고, 조인성에게 기대어 운다.
고현정도 조인성을 무시한 게 아니고, 조인성도 그런 고현정에게 서운해서 돌아선 게 아니다.
몇 시간을 병원에서 돌아다니는 조인성을 보며, 윤여정과 박원숙은 말한다. 참 예쁘다고. 그리고 멋지다고.
멋지네. 거기서 여기까지.
저 말이 계속 맴돌았다. 거기에서 여기까지, 거기에서 여기까지. 거기에서 여기까지, 조인성은, 고현정을 보려고 왔다.
고두심에겐 항암치료가 남았다. 조인성은 슬로베니아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항암치료 받는 엄마의 옆에 있어야 하는 고현정은, 떠나는 조인성에게 '기다리지마'라고 말한다. 그러자 조인성은 이렇게 말한다.
안기다려. 그냥 있지.
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나는 폭풍 눈물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안기다려 그냥 있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조인성은 고현정이 슬로베니아를 떠난 이후로 내내,
계속,
지금까지,
그냥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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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있었더니,
아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가 되었다.
나는 당신을 기다리지 않겠지만,
내 걸음이 당신의 미래에 이르게 된다 해도
당신 놀라지 말아요. (p.237)
삶에는 가끔 기적이 찾아들기도 한다. 기적같은 순간이 불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