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양재역으로 가기 위한 많은 길 중에 나는 가급적 큰 길을 선호하는 편이다. 골목길을 원래 좋아하질 않아서. 게다가 골목길에 차다니는 건 얼마나 불편한지. 차라리 인도가 있는 큰 길로 다니는 게 안전하고 편하다. 그런데 어제는 골목 입구의 편의점에 들러야 했기에 골목으로 갔다. 편의점에 들러 볼 일을 보고 나와서 걷는데, 네 살 가량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풍선을 들고 걷는다. 풍선을 한 번 놓친 뒤에는 그걸 잡기 위해 뛰었다가 또 걷고... 무심히 지나려던 나는 그 아이 옆에 어른이 아무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멈추어 섰다. 나의 여섯살 조카보다 어려보이는데, 저런 아이 옆에 보호자가 없는 건 뭐지? 혼자 다닐 수 없는 나이인 것 같은데...길을 잃었나? 불편한 마음이 되어서 잠깐 지켜봤다. 아이는 겁먹은 표정도 아니고 그저 풍선에만 집중하고 계속 걷는다. 흐음. 아이에게 가서 길을 잃었냐고, 엄마를 잃었냐고 물어봐야 할까? 고민하다가, 어른들이 알고 내보냈겠지, 나와바리겠지, 내가 보진 못했지만 어딘가에 있겠지, 싶어서 그냥 갔다. 가면서도 혹시나 다른 어른이 위험하게 다가가면 어쩌지? 생각이 들어서 불편하고 찜찜했다. 흐음. 그 아이 계속 따라가봐야 했나?
그렇게 가던 길을 가는데, 저 앞에서 방금 전의 그 아이랑 비슷한 분위기의 아이가 이쪽을 향해 뛰어온다. 방금전 작은 아이가 지나갔던 방향이다. 옷도 헤어스타일도 방금전 아이와 비슷해! 아, 저 아이가 그 아이의 언니구나 싶다. 그런데 뛴다?? 동생을 잃어버린 건가??? 나는 멈추어섰다. 조금 큰 아이는 방금 자신이 뛰어나온 놀이터를 향해 누군가에게 울면서 소리쳤다.
"동생 데려올게!"
아, 제기랄. 동생을 잃어버렸구나. 잃어버린 거야. 친구들과 놀다보니 동생이 없어진거구나. 그 작은 아이는 길을 잃은거였어! 나는 이제 그냥 갈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아이를 미아로 만들 수는 없다. 게다가 그 작은 아이를 미아로 만들면 저 큰 아이, 그래봤자 고작 여섯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는 그 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 찾아야 한다, 찾아야 한다. 나는 그 큰아이를 따라갔다. 일단 상황을 보면서 갔다. 큰 아이가 멈추어서 방향을 잡지 못한다면, 너 혹시 동생을 잃어버린 거니? 풍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니? 그 아이는 이쪽 방향으로 갔단다, 같이 찾아보자, 할 참이었다. 그러나 큰 아이는 작은 아이가 간 방향을 향해 뛰었다. 어? 제대로 뛰고 있는데? 그래서 나는 말없이 그냥 일단 따라갔다. 상황이 어찌되는지, 동생을 찾는지 보고 싶었던 거다. 그리고 따라가는데 큰 아이가 골목으로 꺾었다. 그래서 나도 꺾었다. 그 방향은 작은 아이가 간 방향이 맞았다. 어, 골목으로 돌아오는 사이 아이가 보이지 않네. 심장이 쿵- 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어디에서 헤매고 있나 싶어서 계속 가던 방향으로 가면서 두리번 거리는데, 작은 아이들이라 쉽게 눈에 띄지 않았을 뿐, 저 앞에서 동생하고 같이 자신이 뛰었던 반대 방향으로 걸어온다. 아, 찾았구나. 다행이다. 이 아이는 동생이 어디로 갈지 알고 있었구나. 아, 내가 괜히 오지랖 떨지 않아도 되는 거였구나. 하고는 나도 그 아이들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 방향이 양재역 방향이었고, 내가 왔던 방향이었으니까. 그런데 큰 아이가 작은 아이에게 울먹이면서 말했다.
"언니가 얼마나 울었는지 알아?"
아..안쓰러웠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겁났을까... 어쩐지 빠른 걸음으로 내 갈 길을 가는게 망설여졌다. 그래서 그냥 천천히 따라갔다. 작은 아이는 언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풍선을 튕기면서 1미터쯤 뒤에 걷더라. 아, 참견하고 싶었다. 너 언니 옆에 꼭 붙어다니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 아이들과 같은 방향으로 가는데 큰 아이가 돌아보더니 동생을 향해,
"이리와, 언니 손 잡고 가!"
한다. 그래, 무서웠겠지, 그래서 챙기는구나, 하는 마음에 짠해졌다. 그런데 동생은 무심히 풍선만 가지고 놀고 언니의 손을 잡을 생각을 안해 ㅜㅜ 이 큰 아이가 얼마나 겁에 질렸을지 생각하다가, 이 아이를 달래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냥 가야하는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말을 걸었다. 존대말로 물을까 반말로 물을까 잠깐 고민했다. 존대말을 쓰면 아이가 더 무서우려나? 존대말이 나으려나?
"너, 동생 잃어버린 줄 알고 많이 겁났지?"
그 뒤에 내가 생각한건 큰아이가 그렇다, 라고 하는 거였고, 그러면 나는 아줌마가 같이 찾아주려고 그랬었어, 아줌마가 동생 간 방향 보고 있었거든, 하면서 안심시킬 참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전혀 다른 말을 하더라.
"아뇨, 오빠가 동생하고 같이 사과하라고 해서 사과하러 가는거에요. 친오빠는 아니고요."
이건...뭔 상황이야, 지금?????????????????????????
하아- 복잡한 일에 휘말리게 된것 같다.. 그냥 오빠한테 사과하러 가는 거라고 하면 그래, 하며 갈 수 있었을텐데, 저 뒤에 '친오빠는 아니고요'는....뭐야????? 이건 지금 무슨 상황인거지? 나는 덜컥 겁이 났다.
- 오빠한테 사과하러 가는데 친오빠가 아니야?
- 네
- 오빠가 무서워?
- 네
- 오빠가 몇살인데?
- 몇 살인진 몰라요.
- 오빠가 때려?
- 아뇨.
- 무서우면 언니가 같이 가줄까? (아줌마로 말하기로 결심했으면서 언니라고..)
- …… 아뇨. 고맙습니다.
아..이건 뭘까..이건 뭐지. 대체 무슨 상황인거지. 나랑 대화를 마친 후 큰 아이는 작은 아이에게 '빨리 가자', '이제 금방이야' 이러면서 재촉한다. 아까 울었다는 건 무서워서 울었다는 말인 것 같았다. 하아- 아이가 같이가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니 그냥 갈까..하는 생각을 했지만, 작은 여자아이 둘이 '오빠'에게 사과하러 간다는데, 이게 어떤 상황인줄 알고 그냥 간단 말인가... 아...큰 길로 갈걸.... 아니까 그냥 지나치질 못하겠네 ㅠㅠ 놀이터까지 가는 순간 진짜 별의별 생각이 다들었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어서 나는 놀이터 바깥에서 지켜보자, 라고 생각했다. 그래, 저 아이들 또래의 남자아이라면 자기들끼리 해결할 일이 있는 것일테니 바깥에서 지켜보다가, 뭔가 여자아이이 겁먹을 상황이 온다면 적당한 때에 끼어들자. 그러나 만일 그 '오빠'라는 사람이 중,고등학생이나 청년이라면, 그건 내가 끼어들기 보다는 경찰을 부르는 게 낫다, 그렇다면 신고를 하자, 큰 '오빠'가 보이면, 일단 경찰을 부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지지 못하게 중간에 끼어들자, 내가 얻어터지기 전에 경찰이 오겠지, 이런 생각을 하고 놀이터로 갔다. 큰 아이는 놀이터로 들어가며 누군가를 향해 말했다.
"동생 데리고 왔어"
놀이터 바깥에 있겠다는 나의 다짐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나는 놀이터 안으로 아이들을 뒤따라 가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는 남자 아이 둘이 "이모다, 이모!" 이러면서 뛰어오더라. 응? 이건 뭔 상황? 작은 남자아이는 2학년쯤 돼보였고 큰 남자아이는 4학년쯤 돼보였다. 다 그냥 내 짐작이다. 이 둘이 내게 따발총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얘가 씨발이라고 욕했어요, 아무 이유도 없이요, 지난번에도 그랬어요, 저희가 막 뭐라고 하려는 건 아니고요, 욕하는 건 안되니까 욕좀 못하게 해주세요, 이러는 거다.
얘네들은 시방 지금 내게 뭐라고 말하는겨?????????? 나는 놀이터에 다른 누군가, 수상한 '오빠'가 있나 없나 두리번거렸다.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여자아이들이 사과해야 할 사람은 위험한 사람이 아닌건가? 그리고 이 남자아이들은 .. 뭐지? 혹시 얘네들한테 사과해야 하는거야? 얘네들 착해 보이는데?? 확인해야 했다. 그래서 내가 큰 여자아이에게 물었다.
"네가 누구한테 사과해야 하는거니?"
그러자 작은 남자아이가 자기라고 말했다. 아!
그냥 가도 되는 것 같은데, 나는....이건 내가 끼어들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았는데... 내가 여기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멘붕..............이런 상황을 나는 살면서 처음 맞닥뜨려봐. 초등학교 교사나 어린이집 교사들이었다면 스무스하게 다음과정으로 진행시킬 수 있었겠지만............나는 꿀먹은 벙어리마냥 가만 서있었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아, 제기랄, 그냥 갈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여기서 그냥 아무말도 없이 훅- 갈 수도 없잖아 ㅠㅠ 이 상황을 마무리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여자아이가 욕을 했다면, 그 욕에 대해 사과하게 한 후에, 그럼 사이좋게 놀아라~ 하고 가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벗어나고 싶었다. 이 화성같은 상황에서... 그래서 큰 여자아이에게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려고 애쓰며 물었다.
"네가 이 아이한테 욕을 했니?"
그렇다고 하면 그러면 오빠에게 사과하렴, 하고 사라지려고 했던 거다. 그런데 큰 여자아이는 '동생은 오늘 했고요~' 라면서 말을 하고, 그 와중에 우리의 뒷편에서 어느 여자분이 뭐라 하는 말이 들렸는데, 그 말이 들리자마자 여자아이 둘은 쏜살같이 달려가서는 갑자기 엉엉 소리를 내어 우는 게 아닌가!! 둘이 그 여자분한테 와락 안겨들며 울더라. 아, 엄마구나.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 아이들 어머님이세요?"
그러니 그렇다고 하더라. 이 와중에도 여자아이 둘은 제엄마에게 오빠들이~ 하면서 막 서러운 일을 얘기했다. 하아- 이젠 내가 없어도 된다. 그래도 내가 그냥 가면 수상한 사람이었는 줄 알고 어머님도 겁먹으시겠다 싶어서, 짧게 말씀드렸다. 아이들이 오빠들하고 싸우면서 겁먹은 것 같아서 옆에 있었어요, 라고. 그리고 나는 내 갈길을 갔다. 가면서 계속 생각했다. 아..미친 오지랖이었다. 괜한 오지랖이었어. 하아- 난 뭐냐... 미친 오지랖 ㅠㅠ 오지라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놀이터에서의 그 멘붕은 어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집에만 늦게 가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제 골목길로 안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정희진이 그랬던가, 아는 것은 상처받는 것이라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게 뭐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오지라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엄마가 나 경찰에 신고하고 그러는 것좀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오지랖좀 그만 떨라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지하철에서 내내 자책했다. 오지라퍼오지라퍼오지라퍼오지라ㅠ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집에 돌아와 여동생과 통화했다. 여동생은 그날 자신의 딸에게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했고, 나는 내가 퇴근길에 겪은 이 일을 얘기했다. 내가 너무 오지라퍼였어, 라고 하자 동생은 '아니야, 언니 잘했어, 언니 성격에 그냥 지나치지 못했겠지, 큰 일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잘했어, 근데 엄마한테는 잔소리 듣겠다' 하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내가 응, 엄마한테는 얘기하지마, 싫어해...라고 하면서 덧붙였다. '응, 오지라퍼란 생각은 들지만, 만약 시간을 돌려서 그 상황이 되면, 나는 또 똑같이 했을 것 같아' 라고. 동생하고 통화하고나니 오지라퍼란 자책에서는 좀 해방이 되었다. 밥을 먹고 샤워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렸다. 빨래가 다 되기를 기다리면서 책을 조금 읽었다. 아, 이런 게 마크 와트니의 가장 큰 매력이다! 하는 부분을 읽었다. 바로 이거야!
기분이 참 묘하다. 어디를 가든 내가 최초가 아닌가. 로버 밖으로 나가면? 그곳에 발을 디딘 최초의 인간이 된다! 언덕을 오르면? 그 언덕을 오른 최초의 인간이 된다! 암석을 걷어차면? 그 암석은 백만 년 만에 처음 움직인 것이다!
나는 최초로 화성에서 장거리 운전을 했다. 최초로 화성에서 31화성일을 넘겼다. 최초로 화성에서 농작물을 재배했다. 최초로,최초로, 최초로 말이다! (p.167)
기차나 비행기로 닿을 수 없는 그 먼 곳에,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고 자기 혼자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그 머어어언 곳에 있으면서, 매일을 비극적인 생각을 하며 절망하고 좌절하기 보다는, 또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게 너무 좋은 거다. 진짜 매력 쩐다! 완전 내 스타일이야!! >.< 그러니까 만약 마크 와트니가 내 애인이라면, 나는 지구에서 물론 그의 걱정을 하겠지만, 그러면서도 순간순간, 아, 그는 살아남을 사람이야, 방법을 찾았을 거야,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게 아닌가! 마크 와트니는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다. 그는 살고자 하고, 죽을 때 죽더라도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자, 라고 생각하며 방법들을 찾아낸다. 어제도 말했지만, 그의 그런 의지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를 살리고자 노력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도와주는 게 아니라, 그런 의지가 본인에게 강하게 있었기 때문에 그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 같다. 암튼 초매력적인 캐릭터!! 훌륭한 캐릭터다. 그리고 오늘 출근길 지하철안에서 이 부분 읽다가 빵터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14페이지에 나오는데, 읽은 사람은 뭔지 알 것이고, 안 읽은 사람들에겐 스포일러가 되지 않기 위해 말하지 않겠다. 영화에도 저게 나오는지는 모르겠다. 아 진짜 빵터졌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크 와트니 럽럽 ♡
뭐 방사선 얘기하고 기계 얘기에다가 경사 지렛대 얘기 이런거 다 나와서 눈깔이며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데, 그래도 마크 와트니의 성격이 너무 좋아서 재미있게 읽고 있다. 역시 회사는 때려치는 게 답인 것 같다. 회사에 있으니 책을 읽을 수가 없잖아. 때려치고 침대에 엎드려서 다리나 흔들흔들 하며 책이나 읽으면 얼마나 좋아!!
점심엔 오징어제육덮밥을 먹어야겠다. 움화화핫
테디는 의자를 돌려 창밖의 하늘을 보았다. 가장자리가 짙어지면서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떤 기분일까?" 그는 잠시 생각한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저 먼 곳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자기가 온전히 혼자이고 우리 모두가 자기를 포기했다고 생각하겠지. 그런 것들이 한 사람의 정신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는 벤커트를 돌아보며 다시 말했다. "지금 마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군." (p.111)
"하지만 마크는 듣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벤커트가 말했다. "그 점도 생각해봤습니다. 밝은 초록색 리본을 한 뭉텅이 준비하는 겁니다. 화성의 대기에서도 사방으로 펄럭거리면서 떨어지도록 가벼운 걸로 준비해야겠지요. 각 리본에는 `마크:통신을 켜라`라는 문구를 찍어 넣는 겁니다. 지금 저희가 투하 장치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물론 착륙이 일어나는 동안에 떨어지도록 해야겠지요. 화성 표면 위 1,000미터 상공에서 투하하는 게 이상적일 겁니다." "그거 괜찮군요. 그중 하나만 발견하면 되니까요. 밖에서 밝은 초록색 리본을 보면 틀림없이 확인해 볼 겁니다." (p.155)
그러니까 지금 내겐 몇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첫째, 트레일러를 바로 세워야 한다. 최소한 풍선이 눌리는 것은 막아야 한다. 둘째, 로버를 바로 세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로버의 견인 고리를 트레일러의 견인 고리로 교체해야 한다. 또 하나, 나사를 위해 메세지를 적어놓아야 한다. 분명히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p.507)
모든 시스템 및 하부시스템 들이 정확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제트추진연구소는 이 로버를 정말 튼튼하게 만들었다. 지구에 돌아가면 브루스 응에게 맥주 한 잔 사야겠다. 브루스 응뿐만 아니라 제트 추진연구소 사람들 모두에게 맥주를 사야 할 것 같다. 아니, 지구에 돌아가면 모두에게 맥주를 살 것이다. (p.510)
지구에 돌아가면 유명해지겠지? 모든 장애물을 극복한 용감한 우주비행사가 아닌가. 틀림없이 여자들은 그런 남자를 좋아할 것이다. 살아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p.516)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겨우 나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힘을 모았다고 생각하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의 동료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무려 1년이라는 시간을 희생해가며 나를 데리러 돌아왔다. 나사에서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밤낮으로 일하며 로버와 MAV 개조 방법을 연구했다. 제트추진연구소 사람들은 혼신의 노력을 다해 보급선을 만들었다. 그 보급선은 결국 발사 도중에 파괴되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헤르메스에 보급하기 위해 또 하나의 무인선을 만들었다. 중국 항천국은 수년 동안 매달린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추진 로켓을 내주었다. 나를 살리기 위해 들어간 비용은 수십억 달러에 달할 것이다. 괴상한 식물학자 한 명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것을 쏟아 붓다니. 대체 왜 그랬을까? (p.597)
그렇다. 나는 그 답을 알고 있다. 어느 정도는 내가 진보와 과학, 그리고 우리가 수 세기 동안 꿈꾼 행성 간 교류의 미래를 표상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타인을 도우려는 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렇지 않은듯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렇다. 등산객이 산에서 길을 잃으면 사람들이 협력하여 수색 작업을 펼친다. 열차 사고가 나면 사람들은 줄을 서서 현혈을 한다. 한 도시가 지진으로 무너지면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구호품을 보낸다. 이것은 어떤 문화권에서든 예외 없이 찾아볼 수 있는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이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 나쁜 놈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내 편이 되어주었다. 멋지지 않은가? (p.597-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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