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면허를 따기 전의 나는, 내가 운전을 굉장히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신나는 음악을 크게 틀어두고 따라부르며 고속도로를 쌩쌩 달리는 걸 즐기는 그런 사람이 될거라고 생각했다. 운전은 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거라고 당연히 생각을 했고, 그래서 내 나이 스물다섯, 이년간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백수가 되었을 때, 운전 면허를 취득하기로 했다. 필기를 보고 학원에 다니며 실기를 배웠다. 실제로 시동을 걸고 운전을 하면서야 비로소, 아, 나는 운전을 잘 해낼 수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라디오나 음악은 커녕, 옆에 앉은 강사가 뭐라고 말하는데도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은거다. 말을 걸지 말아줬으면 했다. 운전에 집중해야 하는데 대화라니 그게 웬말인가. 하물며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따라부른다고? 허, 그것 참 말도 안되는 소리로다. 내가 운전을 하는 중에는 대화도, 음악감상도 할 수 없는 사람이란 걸 그때 알았다. 아니, 그동안 내가 조수석에 탔을 때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노래를 따라 불렀던 그 많은 사람-운전자-들은, 이 어려운 일을 대체 어떻게 해낸거지? 다들 대단하다!
실기는 100점을 받았지만 주행을 가까스로 통과했다. 결과적으로 운전 면허증을 발급받았지만 나는, 운전을 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당시 사귀던 남자가 축하한다며 삼겹살을 사주러 집앞에 왔고, 앞으로 자신이 주행 연습을 시켜주겠다고 했으나, 나는 거절했다. 나는 운전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헤어 드라이어를 잘 다루지 못하는 것처럼, 요리를 잘하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해낼 수 없는 또 하나의 영역이었다. 사실 실기를 100점 받은건 식은죽 먹기였다. 해오던대로 착착 운전을 하고 주차를 하는건 얼마나 쉽던지! 그러나 그건 내가 '운전만' 할 때 가능한 거였다. 정해진 공간안에서 운전만 할때. 주행으로 나가니 이건 다른 세계였다. 신호등을 봐야했고 다른 차들을 봐야했고 보행자들을 봐야했다. 나는 이 모든것들을 한번에 다 파악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시작한거니 면허를 따긴 했지만, 그리고 때가되어 갱신하기도 했지만, 나는 운전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다. 운전은 내가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의 것이다.
사람에겐 저마다 잘하는 게 있고 못하는 게 있다고들 하는데, 그러고보면 난 참 못하는 것만 수두룩하군,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드는구나. 어쨌든 나는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인데, 세상에는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알고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음악을 듣는걸 못하고,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통화를 하지 못한다. 어제 B 님이 빨책을 내게 극찬하시는데, 나는 도무지 팟캐스트 들을 시간이 없어, 대체 그건 언제 듣나요? 물으니 인터넷을 하거나 할 때 방에 틀어둔다고 하셨다. 나는, 뭔가를 틀어놓고 인터넷을 하지도 못한다. 만약 음악을 틀어둔다면, 음악을 듣는 동안은 쓰거나 읽는걸, 키보드 치는 걸 멈춰야 한다. 그러므로 내게는 팟캐스트를 들을 시간이 없다. 내가 무언가를 들어야 한다면, 내가 하는 것들중의 무언가를 하나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암튼 내 뇌는 엄청 단순한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는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기준으로만 판단하기 때문에, 생각하기 때문에, 그게 인간의 기본적인 시스템이기 때문에, 운전을 하면서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는 사람들을 보는것이 불안하다. 내가 상대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운전중이라고 하면 허겁지겁 이만 끊자고 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운전을 할 때 통화를 한다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게 그건 매우 불안하게 여겨진다. 나는 못하는 거니까. 내가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은 한 번에 딱 하나뿐이니까.
"뭐야 이거 똑바로 안 해!" 하는 거친 소리가 났다. 그가 왜 화가 났는지는 짐작이 간다. "차가 주행 중일 때는 내비게이션을 조작할 수 없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떴기 때문일 것이다. 통상 차량용 내비게이션은 안전상의 문제로, 사이드브레이크가 채워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조작할 수 없다. 운전하면서 내비게이션을 만지면 사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정지 상태에서 사이드브레이크를 채웠을 때만 조작하라는 시스템인 것이다.
맞는 얘기다.
인간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는 있지만 그럴 땐 예상치 못하게 일어난 세 번째 일에 대응할 수가 없다.
어떤 차가 말하길 "미국 모 대학에서 실험한 결과"라는데, 굳이 실험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우리 자동차들은 진작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휴대전호로 통화는 할 수 있다. 그리고 통화를 하면서 운전도 할 수 있다. 다만 통화를 하면서 운전을 하면 옆에서 갑자기 끼어든 것에 적절히 대응할 수가 없다.
"인간의 주의력은 최대로 발휘해도 두 방향 이상은 무리야." 자파가 말한 적 있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는 있어. 하지만 그외 다른 일에 대한 주의력은 상당히 떨어지는 법, 그리고 중요한 건 자동차를 운전할 때 못 보고 지나치는 순간이 치명타가 된다는 점이지." (pp.259-260)
다시 말하지만, 나는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그걸 할 수 있다고 해서 또다른 일을 해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위의 인용문처럼, 운전을 하면서 통화를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럴 경우 예기치 않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대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두 가지 일을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도,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며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이사카 고타로를 좋아하는 작가 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그가 하는 말들에는 가끔 이렇게 무릎을 탁- 치며 적극적으로 동의할만한 것들이 있다. 내가 읽어본 그의 작품들 중에서 최고라고 생각하는 《골든슬럼버》에는, '성범죄에는 명분이 있을 수 없다'는 뉘앙스의 말이 나온다. 오래전에 읽은 책이긴 하지만, 설사 어제 읽었다 해도 정확한 문장을 기억해내지는 못하겠고, 거기에서 주인공의 아버지가 하는 말인데, 살인조차도 명분은 있을 수 있겠지만, 성범죄에 대해서만은 그럴 수가 없다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살인보다 훨씬 더 명백하게 나쁜 범죄라고 말을 하는거다. 그때 나는 이사카 고타로를 아주 높이 샀다. 그의 통찰은 정확했다. 나 역시 성범죄가 살인보다 나쁘다고 생각한다. 성범죄는 극복하기 아주 힘든 것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 앓다가 결국 극복해내지 못하고 절망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그런데 이사카 고타로는 그걸 알고 있다. 이사카 고타로의 《골든슬럼버》는 진짜 최고다. 진짜 재미있고, 진짜 최고다.
그 책에서는 그 부분이 아주 인상깊었다면, 이 책에서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는 있지만 그럴 땐 예상치 못하게 일어난 세 번째 일에 대응할 수가 없다'는 부분에서 캬- 역시 이사카 고타로구나, 했다. 뭐, 이 책이 딱히 재미있진 않았지만 말이다.
어제도 일자산을 찾았다. 지난주와 어떤 것들이 달라져있을지 궁금해서 귀찮지만 억지로 갔다. 지난주보다 다채로운 색으로 변해있었고, 입구에서 이렇듯 개나리를 만났다. 날이 좋았고 날이 좋으니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사실, 지난 금요일부터 뱃속에 커다란 응어리가 들어차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회사가 싫었다. 정확히는 상사가 싫었다. 끔찍하게 여겨졌다. 이걸 앞으로 계속해야 하나, 답답했다. 스트레스가 머리꼭대기까지 차올랐고 몸이 무거웠다. 금요일밤 집에서 혼자 와인 두 잔을 마셨는데, 금세 취해버리고 말았다. 일찍부터 잠자리에 누웠다가 잠들지 못한채로 누워있었는데 남동생이 돌아왔고, 다시 남동생과 마주 앉아 맥주를 마셨다. 토요일에도, 일요일에도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뱃속의 응어리는 풀어지질 않았다.
그렇지만 산에 가있는 동안에는 회사를 잊을 수 있었다. 맑은 하늘과 등에 고이는 땀방울만이 느껴졌고, 이어폰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디에 어떤 꽃이 피었는지 찾아보는 것도 즐거웠다. 꽃앞에 멈추어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이렇게 찍을까 저렇게 찍을까 생각하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혼자 걷는길이 무척 좋았다. 혼자 걸으면서 머릿속으로 아주 많은 생각들을 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연애하고 지냈으면 좋겠다고.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는건, 하는 동안에도 물론 즐겁지만, 이별을 겪고나서도 내게 하나의 경험을 주기 때문에 내 감정과 생각을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혼자 걷는길이 풍요롭다니, 이 얼마나 좋은가. 혼자서 생각을 하고 또 해도 생각이 멈추지 않을 수 있고, 그렇게 생각하다가 어떤 순간에는 피식- 웃기도 하니까. 더 많은 사랑과 더 많은 연애가 다채롭게 나라는 인간의 경험에 쌓이다보면, 나는 혼자서도 이미 충분히 풍요로운 사람이 되는 것 같다.
지난주에 정식이는 내게 연상이 좋으냐 연하가 좋으냐, 나이차이는 몇살까지 커버할 수 있느냐, 등을 물었는데 나는 그것들은 다 부질없는 질문이라 답했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으로 대답할 수는 있다. 이를테면 연하가 더 좋다, 라든가 위로 네 살까지 커버 가능하다, 라든가. 그러나 구체적인 예시로 들어가면 이 모두가 얼마나 부질없는지. 나보다 열살이상 많은 브래드 피트가 내게 다가온다면, 그때도 '나는 위로 네살까지만 사귈거야' 라며 내칠 수 있을까? 엠블랙의 이준이 적극적으로 들이댄다면 '나는 아래로 세살차이까지만 사귈거야' 라며 도망칠 수 있을까? 개똥같은 소리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그간 내가 가져왔던 기준들은 다 무용지물이 된다는거다.
영화 《조 블랙의 사랑》에서 안소니 홉킨스는 자신의 둘째딸에게 '항상 마음을 열어두라'고 말한다. 그래, 그 말이 맞다. 나는 연애가 한 번 끝날때마다 매번 '당분간 연애하지 않을거야' 라고 말하지만, 그럴때조차도 '그러다 현빈이 다가오면 또 말이 달라지지...'라고 해버리는 것이다. 나는 안소니 홉킨스가 충고한대로 늘 마음이 열려있는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늘 가능성을 열어두는 류의 사람이랄까. 그나저나 나 살아생전에 현빈하고 소울메이트가 될 수 있을까.
어제 산을 오르며 찍었던 사진으로 핸드폰 배경화면을 바꿨다.
이쁘다..
어젯밤에 새로 읽기 시작한 책이 무섭다. 토마스 쿡은 항상 읽을때마다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책을 쓰는 것 같다.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읽으면서도 조마조마.. 얼른 다읽고 싶다.
그나저나 중고로 샀는데 표지가 정말 리얼 중고 같았다..
어제, 산을 내려오는 내내 날이 좋았고 햇볕이 얼굴에 닿았다.
흥, 자외선 따위, 내 볼을 때리고 싶다면 때려라. 난 내 볼에 닿은 이 따뜻한 햇볕을 그대로 다 받아들일테니까.
이준이 현대무용을 배웠었단다...멋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