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도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고 늦게 자서 피곤했는데 어제는 와인에 치킨을 먹고나니 몸과 마음이 완전히 풀어지는 것 같았다. 일찍 자고 싶었지만 읽고 있는 책이 너무 재미있고 얼마 남지 않아 끝까지 읽고 자고 싶어서 버티고 읽어냈다. 세상에, 1부터 1000 사이의 세자리 숫자를 생각해봐, 니가 무슨 숫자를 생각할 지 내가 알아, 라는 편지가 날아오는데, 정말로 편지를 받은 주인공은 자신이 생각한 숫자 '658'을 편지 봉투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거다. 우와- 엄청 흥미롭지 않은가. 게다가 우라지게 재미있는거다. 어린 아들의 사망으로 인한 주인공 거니의 상처라든가, 옆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그의 아내 이야기까지. 뭐 하나 허투루 쓰여진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는 그야말로 재미있는 소설. 작가인 '존 버든'이란 이름을 기억하고 다른 작품을 찾아 읽고 싶어졌다.
요즈음의 나는 매우 복잡한 심경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뭐, 얼마 안가 이 복잡한 마음은 곧 안정될터이고, 실제로 며칠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상실감의 아픔과 봄이 온다는 설레임에 마치 미친년같은 상태가 되어 걷고 먹고 마셨던거다. 그 와중에 어찌나 드라이브를 가고 싶은지, 당장이라도 어디로든 달려가고 싶어졌다. 바닷가를 향해도 좋고 산으로 향해도 좋고, 목적지가 어디든 자가용을 타고 고속도로를 혹은 국도를 달리고 싶었다. 나는 운전을 하지 못하니(면허 따고 한 번도 해본 적 없음 -_-), 누군가 운전을 해주었으면 좋겠고, 운전하는 사람은 편하고 편한 상대였으면 좋겠다. 휴게소에 들러 우동을 먹기도 하고 커피를 사 마시기도 하면서, 그렇게 어디로든 훌쩍 차를 타고 가고 싶었다. 그러다 이 책에서 거니가 차를 몰고 가다 커피를 사 마시는 장면을 보고 그 갈망이 더 커졌다. 물론 거니는 목적지가 있었지만, 목적지로 가는 도중 상념에 빠져 커피를 사 마시는 거지만, 그 순간의 그 곳에서의 거니가 나는 무척 부러웠다. 아, 혼자 달린다면 더 좋을텐데. 내가 원하는 곳에 멈추어 내가 원하는 시간만큼 쉴 수 있다면 더 좋을텐데.
산길 운전을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피어니로 가려면 먼저 월넛 크로싱을 가로질러야 했다. 캐츠킬 산맥의 달느 마을들처럼 월넛크로싱도 19세기 교차로를 중심으로 발달한 마을이었다. 비록 그 역할은 사라졌지만 교차로만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마을을 상징했던 커다란 개암나무는 이 마을의 전성기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침체된 경기는 비록 그 상황이 심각할지언정 회화적인 모습으로 마을에 남았다. 낡은 헛간과 저장고, 녹슨 쟁기들, 건초 수레, 시든 국화들이 우거진 산기슭. 월넛 크로싱에서 피어니로 이어진 길은 낡은 농장들이 듬성듬성 보이는 그림엽서 같은 계곡 사이로 꼬불꼬불하게 나 있었다. 열 개 남짓한 농장들은 생존을 위해 혁신적인 방법을 도입했다. 아벨라드 농장 역시 그중 한 곳이었다. 딜위드 계곡과 강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아벨라드 농장은 '무농약 유기농 채소'로 활로를 찾았다. 밭에서 수확한 채소를 신선한 빵, 캐츠킬 치즈, 훌륭한 커피와 함께 아벨라드 상점에서 판매했다. 거니는 문득 그 커피가 너무도 마시고 싶어져서 상점 정문 앞의 조그만 비포장 주차장으로 차를 돌렸다.
그는 문을 열고 천장이 높은 상점 안으로 들어서서 오른쪽 벽에 진열된 김 솟는 커피 주전자들 쪽으로 향했다. 잔에 커피를 따르면서 그윽한 향기에 미소를 지었다. 값은 절반이지만 스타벅스 커피보다 훌륭했다. (p.85)
엊그제 퇴근후 친구를 만나기 전, 약간 늦을거란 친구의 말에 까페에 가서 이 책을 읽었는데, 읽다가 소리내서 빵터져 버렸다.
"커피가 좋으세요? 차가 좋으세요?"
"커피로 하죠."
"저도요. 솔직히 차는 왜 마시는지 모르겠어요. 개를 좋아하세요? 아니면 고양이를 좋아하세요?"
"개가 좋습니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커피도 좋아한다는 거 아세요?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고양이를 좋아하고요." (p.275)
여기까지 읽었을 때는 뭐 이런 쓸데없는 질문을 하냐 허탈하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다음문장이 이렇게 되는거였다.
거니로서는 생각할 가치조차 없는 일이었다. (p.275)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ㅋㅋㅋㅋㅋㅋㅋ쿨슄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너무 웃겨. 생각할 가지초자 없는 일이었다, 라는 문장이 나를 육성으로 터지게 했다. ㅎㅎㅎㅎㅎ
은퇴한 형사 거니의 아내 '매들린'도 매력적인 인물이다. 사실 그녀의 날카로움, 같은 것들이 같이 있는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신경 쓰이게 하는 부분도 분명 있지만, 그녀는 그렇기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관찰하고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가 거니의 옆에 있다는 거, 그게 책장을 넘길수록 든든한 사실로 다가왔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볼 줄 안다. 자기 자신과 대화를 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걸 이미 잘 알고 있고 그렇게 실천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채 들여다 볼 생각도 못하기도 한다. 때로는 잘못 알기도 하며, 그렇게 잘못안 채로 오랜 시간을 살아가기도 한다.
나는 궁극적으로 사람은 자신을 알아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잘 알고 자신을 잘 사랑하는 사람만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나 자신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면, 사실 이 세상에 또 주변 일상에 일어나는 아주 작은 일들도 행복의 빌미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들여다보고 잘 알 수 있을까? 그건 그냥 시간을 내어 '나 자신을 들여다보자' 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여태 해보지 않았으므로 무작정 앉아 눈을 감고 생각한다고 그 일이 그저 그렇게 되는 건 아닌거다. 내 경우엔, 이럴 때 책이 도움이 된다. 어제, 바로 이런 부분을 읽었다.
매들린은 한번 문을 열면 반드시 그 문으로 들어가고야 말았다.
그녀가 가냘픈 숨을 들이쉰 뒤 말을 이었다.
"대니가 죽기 전, 일은 당신 삶의 가장 큰 부분이었어. 하지만 대니가 죽은 후로 일은 당신 삶의 전부가 되었어. 지난 15년 동안 당신은 일에만 매달렸어. 난 당신이 뭔가를 보상하려고, 뭔가를 잊으려고, 아니면 뭔가를 해결하려고 애쓴다는 생각이 들어."
거니는 눈앞에 펼쳐진 사실에 매달려 중심을 잡으려 애썼다.
"나는 지금 마크 멜러리를 죽인 자의 체포를 도우려고 위철리에 가는 중이야."
자신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나이 들고 겁에 질린 답답한 사람. 이성적인 것처럼 보이려 애쓰는 사람.
매들린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의 전개를 따랐다.
"난 우리가 그 상자를 열고 작은 그림들을 보고 나서‥‥‥함께 그 애한테 작별인사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당신은 그러질 못해. 당신은 그 어떤 것과도 작별인사를 할 줄 몰라."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거니가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도시에서 월넛 크로싱으로 이사할 때 매들린은 몇 시간 동안 작별인사를 했다. 이웃들뿐 아니라 그들이 살았던 집과 그들이 남겨두고 가는 것들, 심지어는 화초들에게까지. 그 모든 것이 거니의 신경에 거슬렸다. 거니는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고 매들린을 비난하면서 생명이 없는 것들에게 말을 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고, 무의미한 일이며, 그래 봐야 떠나기가 더 힘들어질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이상이었다. 매들린의 행동은 그의 마음속에 건드려지고 싶지 않은 어떤 것을 건드렸다. 그런데 매들린이 다시 그것을 건드리고 있었다. 그 무엇과도 이별하려 하지 않는, 이별을 감당하지 못하는 그의 마음을.
"당신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들은 사실 사라진 것이 아니야. 당신은 절대 그것들을 놓아주지 않으니까. 떠나보내려면 그것들을 보아야 하잖아. 대니를 떠나보내려면 대니의 삶을 보아야 하잖아. 하지만 당신은 그걸 원치 않아. 당신이 원하는 건‥‥‥도대체 뭐야? 죽는 건가?" (pp.484-486)
이 부분은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작별을 할 줄 모르는 거니 옆에 매들린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한가, 생각했다. 누군가 자신을 들여다볼줄 모르는데, 인정하려 하지 않는데, 그걸 들여다보고 인정하게끔 도와주는 인물이 있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매들린의 존재는, 그러기 위해서 태어난 건 아니었지만, 거니로 하여금 자신을 들여다보게 도와주었다. 한 사람이 태어난 일이 어떤 목적과 의미를 갖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은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다른 누군가의 삶에 작게 또 크게 영향을 미친다. 물론 그것은 긍정적인 영향일 수도 있고 부정적인 영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우정을 나누고 관계를 이어간다는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 그것들을 받아들이겠다는 합의일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 이 소설속의 이 부분을 읽다가 나는 이렇게 생각해봤다.
나는 작별인사를 할 줄 아는 사람이던가?
책읽기를 멈추고 나는 작별인사를 할 줄 모르는 거니의 그 마음을 대신 아파했고,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나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작별 인사를 할 줄 아는 사람인가? 내 모든 이별들을 돌이켜 보았다. 내가 상실감에 젖었던 그 때, 나는 그들에게 안녕을 고했던가. 나는 아파도 그들과 마주했던가.
그렇게 잠시 생각을 하다가 나는 내가 작별 인사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결론내렸다. 나는 한다, 하는 사람이다. 건강한 사람이다, 나는, 하고. 이렇게 책이 나를 들여다보게 도와준다. 나는 이걸 말하고 싶었다. 내 스스로 생각하며 나를 들여다보는 게 아직 익숙치 않은 사람이라면 책의 도움을 받으라고. 특히나 그럴 때 얼마나 '소설'이 도움이 되는지. 사실과 주장이 나열된 책이 아니라 삶을 이야기하는 그 소설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어 내게 대신 묻는거다. 가난한 자를 돕는 등장인물이 나온다면 나는 돕는 사람인가? 하고 갸웃할 수 있고 나쁜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여자가 나온다면 나도 이런 남자랑 사랑에 빠지게 되는걸까? 묻고. 상황과 대화들을 모두 내것으로 만든다면 나는 미처 내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나에 대해 자꾸 들여다보고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제, 내 친구 정식이는(성은 무려 '한'이다. 한정식) 내게 그랬다. 다락방이 읽는 책을 정식이 자신은 읽을 수 없다고. 정식이는 논리와 이성 그리고 계획들로 머리를 채우고 있고, 그래서 그런 책들이 그에게 더 잘 맞기 때문에 감정을 줄줄 흘리는 책을 읽는게 버겁다고 했다. 조너선 사프런 포어의 책을 읽다가 덮었다는 얘기를 했고, 이 대화들 속에서 나는 내 친구 정식이가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던들, '감상적' 혹은 '감정적'인 것을 '이성적'인 것보다 한 수 아래에 있는 어떤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사람들은 이성을 감성보다 더 높게 치는 경향이 있는것 같고, 나 역시도 일정부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어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감성적이고 만들어진 이야기란 이유로 소설을 무시하는 건, 그들이 소설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 권의 책이 내게 해줄 수 있는게 얼마나 많은가,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그 책에서 얻을 수 있는가. 어제의 대화에서 나는 내가 좀 멍청한 여자로 보이나? 하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마저 읽고 덮으면서, 그 사이 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면서 아니다, 나는 정말 똑똑한 여자다, 라는 생각을 했다. 누가 뭐라든, 누가 날 어떻게 보든, 나는 똑똑한 여자다. 어떤 책을 읽든, 나는 거기서 내게 필요한 부분들을 아주 적절하게 그리고 풍부하게 잡아내고 받아들인다. 이걸 할 수 있는 내가 멍청한 여자일 리가 없다.
이 책은 분명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고, 혹여라도 갈팡질팡 하는 사람이라면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데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 알면 알수록 더 좋아지는 사람이 있듯이,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소설을 사랑하게 된다. 내가 이렇게 책을 읽는 사람이라서 무척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좋다. 다시 태어나도 나로 태어날거냐고 물으면, 그건 좀 고민을 해봐야겠지만...요즘엔 제니퍼 로렌스가 너무 예뻐서....( ")
내일은 외할머니가 이사를 하신다. 나와 남동생은 아침부터 이사를 돕기로 했는데, 오랜만에 하루종일 노가다 할 생각에 가슴이 뛴다. 아, 나는 육체노동을 사랑해, 정말 좋다. 육체노동을 한 뒤 노곤해지면 술맛은 꿀맛이 된다. 아, 내일 저녁에 쑤시는 몸을 이끌고 술 마실 생각을 하니 너무 설레여서 미치겠다. 빨리 내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게다가 점심엔 할머니가 짜장면하고 탕슉을 사주신다고 했어. -0-
어제 할머니 이사를 기념해서(한 삼주쯤 우리집에 함께 계셨다) 치킨과 소주, 와인을 두고 파티를 했는데, 내가 할머니에게 그랬다.
할머니, 할머니 남편 일찍 죽고 혼자 애들 키우느라 여태 고생했잖아요. 혼자 살게 되서 쓸쓸하다 생각하는 대신에 이제 비로소 나는 모든것들을 털어버리고 자유를 찾았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문란해지세요. 50대 남자(할머니는 80대) 집으로 막 끌여들여서 연애도 좀 하고 자유롭게 살아요.
할머니는 고맙다고 했고 엄마는 나에게 '니가 나보다 낫다' 라고 했다. 아빠만이 반대했는데, 그건 괜히 남자 잘못 만나면 할머니가 더 고생할 수 있다는 거였다. 나는 그건 할머니가 선택하게 두라고 했다. 오십대 남자 데꾸 살면서 밥해주고 싶으면 그럼 그러면 되는거라고. 할머니가 진짜 연애하셨으면 좋겠다. 문란하게 사세요, 란 말을 반복했더니 듣던 남동생이 치킨을 뜯으며 누나나 잘하라고 말했다. 어디 남들이 밟지않은 깨끗한 눈덮인 땅 같은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느냐고. 아- 내가 정말 완전 밤에 피는 야생장미 같은 사람인데....
너는 아직 나를 모르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