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에 친구와 만나서 맥주를 마시면서 우리는 서로가 만났던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주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입술에 대한 얘기가 기억에 남는다. 나는 친구에게 '입술 얇은 남자랑 키스했더니 구렸다' 고 얘기를 하며, 그런데 또다른 입술 얇은 남자와도 또 구렸었다고. 나한테 입술 얇은 남자는 사실 전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데, 그건 내가 이런 사람인 줄 알기 때문에 그랬던걸지도 모르겠다. 내 말을 들은 친구는 자신도 입술 얇은 남자랑 키스한 적이 있는데 생각해보니 맞다고, 별로 안좋았었다고 얘기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세 명중에 세 명 모두 키스를 못하다니, 입술 얇은 남자는 키스를 못하는 게 백프로네!
맞네, 라고 깔깔 웃으며 맥주잔을 들어 건배를 했던 기억.
오, 그런데 여기. 나와 내 친구의 취향인줄로만 알았던 것이, 우리만의 취향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여자가 나타났다. 입술 얇은 남자에게 도무지 매력을 찾을 수 없는 우리의 동지!
"우리는 그냥 서로 안 맞더라고요. 케빈은 공화당이에요. 전 어느 당도 지지하지 않고요." 그건 사실이었으나, 진짜 이유는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테이블 저편 남자에게 설명하기엔 너무 개인적인 문제였다. 루체티 반장한테 케빈 입술이 너무 얇아서 육체적으로 끌리지 않더라는 말을 어떻게 한담? 케빈이 처음 키스한 순간 그를 향한 연애 감정은 몽땅 식었다. 하지만 케빈이 입술이 없다 해서 무슨 죄를 지었다거나 나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p.43)
나도 입술 얇은 남자에 대해서는 전혀 끌리지를 않는다. 호감이 가는 남자의 이마를, 코를, 손을, 어깨를, 팔을 다 보지만 입술도 유심히 본다. 그 입술이 얇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가브리엘의 저 말에 나도 그래요! 라고 동의하고 싶었는데, 그러다가 지하철안에서 피식- 웃고 말았다. '하지만 케빈이 입술이 없다 해서' 라는 표현이 너무 웃겨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 입술이 없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모든 로맨스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주인공이 엄청난 성적 매력을 가졌듯이, 이 소설속의 '조' 도 그렇다. 다른 여자들의 시선과 찬탄을 받고 눈빛이 강렬하고 입술마저 매력적인 남자. 그러나 가브리엘은 그의 외모에 현혹되지 않기로 굳게 다짐한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잘생긴 남자'는 여러 해 전에 끊었다. 만나봤자 육신과 감정, 정신 전반에 커다란 혼란을 불러올 뿐이다. 그런 남자들은 일종의 스니커즈 초콜릿바와 같다. 보기에 좋고 맛도 있지만 절대 균형 잡힌 식사는 될 수 없는 존재. 아직 이따금 당길 때는 있지만 이제 그녀는 남자의 근육질 육체보다는 그 안에 담긴 영혼에 훨씬 관심이 갔다. 맑게 깨인 정신이야말로 가브리엘을 달아오르게 했다. (p.31)
오, 가브리엘. 나도 그래요. 나 역시 잘생긴 남자는 피곤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끊는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억지로 끊지 않으려고 해도 사실 끊을만큼 강한 매력을 지닌 남자가 주변에 없는 것도 사실이에요. 하도 오래 잘생긴 남자를 끊었더니, 이제는 스니커즈에 대한 강렬한 욕망에 시달리네요. 그의 맑게 깨인 정신이 그와 나 사이를 굳건하고 단단하게 만들고 또 앞으로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주지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앓아 누워도 좋으니 육신과 감정, 정신 전반에 커다란 혼란이 좀 찾아 왔으면 합니다. 당신도 그런거죠? 네?
로맨스 소설이 재미있으려면 로맨스 소설속에 등장하는 로맨스가 재미있어야 한다. 그 로맨스가 재미있으려면 남자와 여자, 그 둘 사이에 대화가 핑퐁처럼 왔다갔다해야한다. 당신 말을 듣고 내 말을 하고 내 말을 듣고 당신이 말을 하고, 그런 과정들 사이에 어색하지 않은 침묵이 섞여야 그 연애는 재미있어지고 깊어진다. 그 재미란 것은 물론 농담따먹기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깔깔대고 웃는 대화도 필요하고 가끔은 서로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으로 한단계 더 가까워지기도 한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대화로 알아나갈수록 우리는 서로에게 더 가깝게 다가간다. 내가 이만큼 말을 했고 또 이만큼 당신의 말을 들어왔기 때문에 당신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것처럼 느껴진다면 당신 역시 내가 당신을 아는만큼 나를 아는것도 중요하다.
남녀사이의 핑퐁같은 대화로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건 '줄리아 퀸'이 진짜 잘하는데. <신사와 유리구두>에서는 그 대화가 얼마나 실감이 나던지 나는 그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마치 눈 앞에서 보는것처럼 생생하게 느꼈는데. 물론 이 책, <사랑이 틀림없어>의 레이철 깁슨도 나를 몇 번이나 웃게 했다. 읽으면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따위보다 이백배는 낫다고. ㅎㅎ
그는 자기 짝을 만나면 바로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알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냥 알 거라고. 강한 펀치나 번개를 맞은 듯 미간을 쾅 하고 강타하는 충격이 느껴지리라고, 그럼 그 여자일 거라고.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p.67)
위의 문장을 읽다가 잠깐 책읽기를 중단했다. 정말 내 짝을 만나면 알아볼 수 있을까? 지금까지와는 다른 경험을 선사할 남자를? 강한 펀치나 번개를 맞은 듯 미간을 쾅- 하고 강타하는 충격이 느껴지는 경험은 있었다. 그렇다고 그게 상대가 내 짝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건 그냥 상대에게 반한 거 아닌가 싶다. 반했던거다. 나 역시 손발이 후달릴정도로 심장이 벌렁거렸던 적이 있었는데, 그에게 온 에너지를 다 쏟았던 경험이 있었는데, 그는 지금 내 옆에 없으니까. 그 느낌이 '내 짝을 만나' 생긴건 아닌것 같다. 아니, 앞으로 살아가다가 그 때보다 더한 충격적인 만남이 있을 수도 있는걸까? 이건 그전까지와는 확실히 달라, 이건 진짜라고, 리얼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그런 때가? 그런 상대가? 그래봤자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그땐 그랬지..' 하게 되지 않나? 뭐 여튼 이쯤에서 스니커즈 같은 남자를 만나야 되는데..
크- 암튼간에 저 입술에 대한 부분 때문에 정신이 사납다. 언젠가 내게 얼굴중에서 특히 입술이 압권이라고 말했던 남자가 떠올라서 또 두근두근했어...나 오늘 술마시러 갈건데 이런거 생각나면...또 꽐라 될텐데... 꽐라되면 다음날 피곤한데......그런데 입술이 압권인건, 나보다 그 남자가 더했었지... 크- 나 오늘 꽐라 되겠구나...휴-
이 책을 읽다가 생각한건데, 개인적으로 남자가 서른다섯정도 되고 여자가 스물여덟쯤 되고 그랬으면, 불붙었을 때 여러가지 이유를 대서 중단하는 건 좀 안했으면 좋겠다. 늘 불붙는 게 아닌데 왜 자꾸 참어...붙었으면 태워버려야지..... 나중에 후회한다, 얘들아 ㅠㅠ
역시 오늘 꽐라 되겠구나.
아니 근데 이놈의 알라딘 ㅠㅠ 중고알림문자와서 누가 채갈까봐 후다닥 주문완료했는데 ㅠㅠ 또 다른책의 중고알림이 오면 나 뭐 어쩌라고 ㅠㅠ 주문만 하다 늙어죽으란거냐 ㅠㅠㅠ
알라딘 머그컵에 현혹되어 책을 지르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 나는 잘생긴 남자대신 알라딘 머그컵을 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