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주 오랜만에 드라마 하나를 본방으로 챙겨봤다. [막돼먹은 영애씨 12] 가 그것인데, 나는 이게 인기가 많았고 유명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12까지 나와있는지는 몰랐다. 방송중인지도 몰랐고. 그러니까 예전에 인기가 많았다 끝난 작품 이라고만 생각했던거다. 우연히 주말에 재방송을 보게됐는데 와, 완전 재미있는거다. 최고다 최고. 두 번인가 세 번을 재방송으로 보고나니 오, 그 뒤가 궁금해진다. 매주 목요일 밤 11시에 방송한다니 챙겨봐야겠다 싶어 어제는 티븨를 켜두고 그 시간에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깔깔대다가 또 눈물이 글썽이다가 하며 몰입했다. 젠장, 방송 시간이 11시가 아니라면 좋을텐데. 난 11시면 자고 싶어지는데.....어제는 덕분에 자정을 넘겨 잠자러 들어갔잖아. 어쨌든.
영애는(그런데 지금 시즌에서 왜 회사 사장이 영애한테 영자라고 부르는지를 모르겠음) 술김에 확- 열받아서 사장에게 키스를 해버리고 만다. 아주 제대로 된 주사였던 셈인데, 이는 사장이 영애를 절대 여자로 볼 수가 없다고 놀린것에 대한 복수쯤이라고 해도 되겠다. 여자로 느끼게 해주겠어!! 그러나 이 주사는, 주사의 특성상, 다음날 엄청난 후회를 불러온다. 내가 왜그랬지, 미쳤어 미쳤어 ㅠㅠ 캬- 술마시고 잔뜩 취해서 그김에 이성과의 스킨십을 해본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음날의 그 머리 쥐어뜯고 싶은 심정을 잘 알리라. 갑자기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이 생각난다. 여튼, 그러고나니 사장은 자신에게 접근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라며 영애를 놀리기 시작한다. 깐죽대는 대마왕. 사장 역시 영애에 대한 마음이 몽글몽글 자라고 있는것 같은데, 이 둘이 이제 연인이 된다면 이 남자가 어떤 연인이 되어줄지는 지켜봐야 알겠지만, 일단 나는 저렇게 깐죽대는 캐릭터는 딱 밥맛이다. 그보다는 영애를 누나라고 부르며 따르는 기웅이(이름이 이게 맞는지 모르겠네) 캐릭터가 더 마음에 드는데, 그건 영애에게 잘해줘서인 것도 있지만, 마음이 없는 여자에게 아니라고 확실히 말하기 때문이다. 화려한 미모를 자랑하는 예빈이가 기웅에게 영화를 보자며 데이트 신청을 했는데 기웅은 내가 왜 너랑 둘이 영화를 보냐며 다른 사람 찾아보라고 확- 거절한 것. 머뭇거리지도 웃지도 않고 상대 마음 다칠까 전전긍긍하지도 않으며 확- 화아악- 거절.
거절은, 단칼에, 머뭇거리지 말고 해야한다. 상대가 상처받을까 하는 어줍잖은 마음으로 한 두번 영화를 함께 보고 데이트 했다간 상대의 마음을 더 크게 키워놓고야 만다. 그 사람과 어찌해볼 마음이 없다면 그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요리죠리 가지고 놀아서는 안 돼. 거절해주지 않아서 한 번 영화보고 두 번 밥먹으면 이쪽에서는 아, 이사람도 나에 대해 마음이 있구나, 하면서 앞으로의 일들을 머릿속에 그려보게 된단 말이다. 나중에 내가 내 마음 고백하고 나서야 어..미안, 나 그런게 아니었는데...라고 하는 건 진짜 개같은 경우가 아닌가. 내가 그렇게 고백하기 까지는 네가 한 행위들이 있잖아, 이 머저리야. 그런데 막돼먹은 영애씨의 기웅은 아닌 사람에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 남자가 진짜 남자. 그리고 그런 남자가 영애한테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하니, 그건 '진짜' 가 아닌가 이 말이다. 하여간 여기친절 저기친절은 싫어. -_-
그리고 무엇보다, 와- 라과장 연기 쩐다 진짜. 이 여자는 영화 [스파이]에서도 눈여겨보았었는데, 어제 만취씬은 진짜 최고였어. 술 집 의자에 한 쪽 다리 올리고 앉은건 완전 와- 대박대박.
자, 이쯤하고. (술마시고 꽐라됐다고 막 키스하고 돌아다니지 맙시다!!)
오랜시간에 걸쳐 책을 한 권 읽었다. 책은 조용조용 가만가만 괜찮았는데, 요즘 내가 책만 펴면 잠이 와 -_-
우체국장이고 도서관 사서이기도 한 아다 드바쉬는 서른 살 된 이혼녀였다. 그녀는 키가 작고, 예쁘고, 포동포동하고, 방긋 웃는 얼굴이었다. 어깨 길이의 금발 머리는 오른쪽 어깨보다 왼쪽 어깨쪽에 더 많이 늘어져 있었다. 그녀가 걸어가면 커다란 나무 귀고리가 찰랑거렸다. 그녀의 눈은 따뜻한 갈색이었다. 그리고 약간 사팔뜨기였는데, 그 눈이 일부러 장난기 있게 곁눈질하는 것처럼 매력을 더해주었다. 그녀는 우체국 일과 도서관 일을 즐거워했고, 그 일들을 열심히 꼼꼼하게 수행했다. 그녀는 여름 과일과 경음악을 좋아했다. 매일 아침 일곱 시 삼십 분이면 우편물을 분류하고 편지와 소포 들을 주민들의 우편함에 집어넣었다. 여덟 시 삼십 분이 되면 우체국 문을 열고 영업을 시작했다. 한 시가 되면 우체국을 닫고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잠시 쉰 다음 다시 다섯 시부터 일곱시까지 우체국을 열었다. 일곱 시에 우체국 문을 닫았고,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곧장 도서관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그녀는 소포, 소화물, 전보 들을 처리하며 혼자 일했다. 공무에 필요한 편지를 작성했고, 우표나 항공우편 봉투를 사러 오는 고객, 청구서나 과태료를 지불하러 오는 고객, 자동차를 매입했거나 판매했다고 등록하러 오는 고객들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모두 그녀의 느긋하고 자연스러운 태도를 좋아했으며, 사람들이 카운터 앞에 줄서 있지 않을 때는 남아서 그녀와 함께 수다를 떨기도 했다. (낯선 사람들, pp.168-169)
텔일란이란 작은 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이 책은 얘기하고 있는데, 아다 드바쉬는 우체국장이며 도서관 사서이기도 하다. 이 두 일을 하는게 벅차지 않을까 싶은데, 와, 한 시부터 다섯 시까지는 매일 휴식 시간이고(!!), 도서관 문은 일주일에 두 번 열며 그것도 두 시간씩만 연다. 대단하다. 완벽하다. 멋지다. 작은 마을의 우체국이니 오는 사람들도 얼마 되지 않고 단조롭긴 하지만 여유롭게 일하는 게 확- 와닿는다. 근사하다. 나도 텔일란 마을의 우체국에서 일하고 싶다. 아니면 텔일란 마을의 도서관 사서를 해도 좋겠다. 흐음. 그런데 일을 너무 일찍부터 시작하네. 나는 아홉시부터 시작해야지. 게다가 이 여유있는 삶을 사는 서른 살 여자와 데이트하는 사십대 남자가 있고, 그녀를 연모하는 열일곱살 소년도 있다! 멋져 @.@
소년은 그녀를 연모해, 그녀가 우체국 문을 닫기를 우체국 앞에서 기다렸다가 그녀와 도서관까지 함께 걷는다. 그녀로부터 책을 빌리고 책에 대한 얘기를 하고, 그 틈틈이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언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까를 고민한다. 사랑은 역시 진행되기 전이 가장 흥미진진하고 아름답고 신나고 재미있는 것 같다. [막돼먹은 영애씨] 에서도 사장과 영애가 사랑이라는 자기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전인 지금이 두근두근 하듯이, 소년이 고민하는 순간들이 애가 탄다. 그리고 그녀에겐 말하지 못했지만, 이런 생각이 그에게 차올랐다.
'당신과 나는 서로 닮은 영혼이고 당신은 그것을 잘 알아요. 내가 당신보다 십오 년 뒤에 태어난 것은 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에요.' (낯선 사람들, p.194)
아, 절절하다. 그래. 그녀가 서른 살인걸, 그가 열일곱 살인걸, 누군들 어쩔 수 있었겠는가. 그건 그 누구의 의지도 아니었다.
하하하하 지난번 노벨문학상 탄 모옌의 소설집을 사두고 읽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번 노벨문학상 발표를 보며 떠올랐다. 우잉. 그렇다면 내가 그 책을 산 지 벌써 일 년이 다 되었다는건가. 이쯤에서 재고소진 프로젝트 들어가줘야 하는걸까. 있는 책 다 읽고 새 책 사기..로. 그렇지만 내 장바구니엔 또 이 책들이 들어있는데!!
날더러 어쩌란 말인지~ ♪ 정말 어쩌란 말인지~♬
줌파 라히리의 새 소설이 나왔다는데 지금 어딘가에서 번역되고 있습니까? 그런겁니까? 제가 언제 읽을 수 있습니까?
그나저나, 참말이지, 현빈하고 소울메이트 하고 싶은 금요일이다. 사실 목요일도 그랬고 수요일도 그랬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