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퇴근후에 동료와 떡볶이에 순대를 먹고 집에 돌아가보니 남동생은 나보다 먼저 들어와서 저녁을 다 먹고 티븨를 시청하고 있었다. 농구였나 배구였나 여튼 뭔가 스포츠였던것 같다. 나는 가방을 내 방에 두고는(무거웠다) 다시 거실로 나와 코트도 벗지 않고 목도리도 풀지 않은채로 남동생과 얘기를 나누었다. 우린 둘다 속상해했고 화가났고 슬펐다. 분노하다가 곧 울것같다고 하다가 그 기분을 잊고 싶어서 조카와 영상통화를 하기도 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더니 안방에 계시던 아빠가 거실로 나오셨다 나를 보시고는 넌 아직 옷도 안갈아입고 뭐하냐셨고, 나는 그제서야 꿈지럭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한 후 내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알라딘에서 받은 달력을 꺼내어 뜯었다. 지난번 표지인물 달력은 받아서 친구에게 줬었다. 친구는 좀처럼 탁상달력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 알라딘 달력과 은행에서 받은 달력등을 포함해 보냈었다. 나는 탁상달력을 회사에 두고 쓰고 집에서는 사용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더는 필요가 없는 상황이긴 했는데, 그래도 집에 알라딘 탁상달력 없으면 서운하지 않을까 싶어서 도서관 달력을 선택해 어제 받았던 상황.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뜯어서는, 그래도 뜯었으니 어떤 그림들인가 볼까 싶어 침대에 앉아 달력 사진들을 구경했다. 그런데 와- 첫장부터 감탄. 갑자기 위로가 되는 기분이었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는 얼른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보냈다. 이건 분명 친구도 감탄할거야, 하고. 그 사진들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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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일랜드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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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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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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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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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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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보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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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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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트리아
처음 아일랜드 도서관 사진보고 우와- 했는데 자꾸 근사한 도서관들이 나와서 미치겠다. 물끄러미 도서관 사진들을 보다가, 그중에서도 저기, 보스턴의 도서관에 앉아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창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햇볕과 함께 책을 읽는다면 책에 집중도 잘되고 그보다 더 책을 읽고 있다는 그 순간에 대해 행복한 마음이 물씬 생길것 같은거다. 아, 저기로 가고 싶다, 저기에 앉아서 책을 읽고 싶다. 저기에 앉아 책장을 넘길 생각을 하니 마구 가슴이 뛰는거다. 두근두근.
그러다 문득 이 뜻밖의 도서관 사진들에 위로 받은 나를 발견하고는 어어, 나 이런 사진 너무 좋아, 도서관 사진 정말 좋으네, 하면서 이 사진들을 좀 더 보려면 어떡해야하지? 이런 사진들만 실린 책이 있지 않을까? 하고 검색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달력의 표지에 이 사진들의 출처가 나와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책 이름으로 검색해보았다.
들어가는 글
오스트리아 빈 오스트리아 국립 도서관
오스트리아 아드몬트 아드몬트 베네딕트회 대수도원 도서관
독일 울름 비블링겐 수도원 도서관
독일 메텐 메텐 베네딕트회 수도원 도서관
독일 바이마르 안나 아말리아 공작부인 도서관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 도서관
이탈리아 피렌체 리카르디 도서관
프랑스 파리 마자랭 도서관
프랑스 파리 학사원 도서관
프랑스 파리 상원 도서관
프랑스 샹티이 오말 공작 서재
스위스 장크트갈렌 장크트갈렌 대수도원 도서관
영국 옥스퍼드 보들리 도서관
영국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 렌 도서관
영국 맨체스터 존 라일런즈 도서관
아일랜드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
체코 프라하 체코 국립 도서관
에스파냐 산로렌소데엘에스코리알 산로렌소데엘에스코리알 왕립 도서관
응? 근데 왜 미국 보스턴은 목차에 없지? 여하튼 이 책을 너무 갖고 싶은거다. 그런데 가격이...가격이.....물론 이렇게 아름다운 도서관에 대한 사진들이 가득하다면, 책장에 꽂아두고 꺼내볼 때마다 위로 받는다면 이정도의 가격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게 그러니까 한방에 똭 카드를 긁기에는 좀 ... 히잉. 그래서 혼자 막 어젯밤에 침대에 앉아서 흐음, 내가 나한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면 되지 않나? 라고 생각했다가 금세 거뒀다. 왜냐하면 어제 나는 이만큼의 책들을 배송받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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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박스에서 책을 꺼내면서 어? 이건 뭐야? 하는 책들도 있었다. 내가 사놓고. -_-
이래놓고 또 저 어마어마한 가격의 책을 배송받는다면 나는..나는........그런데 갖고 싶네? 며칠만 더 고민해봐야겠다. 아니 근데 저 책들을 나는 언제 다 익으려고.....아니 근데 나 ..... 왜이렇게 많이 샀지? 이러면서도 컵 또 받고 싶어서 딱 한 번만 더 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해당도서에 갖고 싶은 책이 없었다. 아무리 아무리 들여다봐도 없더라. 쓰읍-
도서관 사진들을 오늘 아침에도 보다가 문득 아주아주 오래전에 본 드라마 생각이 났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르겠고, 하도 오래전이라 그 드라마가 아침 드라마였는지 저녁 드라마였는지도 모르겠다. 드라마에는 중년의 여자대학교수가 나온다. 이 교수는 싱글인데, 학생중 한명이 이 교수에게 구애를 하는거다. 당연히 이 교수는 이 학생에게 이러지마라, 장난치지 마라, 하면서 자신은 학생과 연인이 될 수는 없음을 자꾸 얘기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동년배의 남자사람 친구를 만나 이 일에 대해 털어놓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미치겠다고, 힘들다고, 걔가 왜그러는지 모르겠다고, 그런데 더 모르겠는건 나라고. 자꾸 걔 앞에서 예쁘게 보이고 싶다고. 스스로 여자라는 생각이 든다고. 이런 마음 때문에 힘들다고.
그 고민을 듣던 남자사람친구는 사실 그 여자교수를 좋아하고 있던터라 이 고백에 충격을 받는다. 그런 다음에 어떻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고 여하튼 그 장면만은 내게 아주 오래 남아있는데, 그 전부터인지 혹은 그 후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교수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다. 어느 학문을 연구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지식을 전파하겠다는 사명감에서 비롯된 것도 아닌 꿈. 무슨 교수를 하든 좌우지간 교수가 되서 대학으로 출퇴근 하는게 꿈이었다. 그런 내게는 삼십대 중반이나 후반무렵 자꾸만 구애를 하는 남학생이 생기는거다. 해마다 이런 학생들은 생기는데(응?) 어느 해에는 그 중 한 명 때문에 나는 몹시 마음고생을 하는거다. 너 이러지마, 이러면 안돼, 니 나이 또래의 학생과 좋은 관계를 맺으렴, 하며 타이르는거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척, 너같은 어린애한테 관심도 없다는 모드를 유지하면서. 그러나 실상의 나는 언제나처럼 그 학생이 내 눈에 띄기를 바라고 다시 내게 말걸어주기를 바란다. 그러던 어느날 집에 돌아가는 추운 겨울날,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학생을 발견하고........나는 무너지고야.....................................마는가........................................................................
도서관이라고 하니 유콜잇러브도 생각난다. 극중에서 공부를 아주 잘하고 열심히 하던 소피마르소는 공부할 때는 뿔테 안경을 꼈었다. 그리고 공부를 마치면 안경을 벗었는데, 안경을 벗고나면, 대부분의 영화에서 그렇듯이, 아주 예쁜 눈이 드러나는 초미인이 되는거다. 중학교때 그 영화를 보고 나는 공부를 잘 하는 안경낀 여성이 되고 싶었다. 그 당시 나는 안경을 끼고 있으니 공부만 잘하면 되는거였는데, 그 영화를 본 즉시 화장실로 달려가 거울을 보며 안경을 벗었는데, 거기엔 초미인으로 변신할 얼굴이 있지는 않았다. 안경을 쓰나 벗으나 거기엔 내가.............있었다.
이런 버젼은 수도 없이 많다. 가운을 벗고 틀어올린 머리를 풀어헤치는 연구원과 과학자 버젼도 있고, 모든것에 서투른 벨보이와 사랑에 빠지는 호텔 사장 버젼도 있다. 그렇지만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하자. 나는 그저 보통 회사에 다니는 보통의 회사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