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중학교 시절 『좁은 문』을 읽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이십 년만에 다시 만나는 거라고. 그런데 읽다 보니 이 작품은 낯설고 생소했다.
내가 기억하는 좁은 문은 이랬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한다. 남자는 여자에게 각자 일기장을 마련해 일기쓰기를 제안한다. 상대에 대한 사랑을 일기로 표현하는 것. 그리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것을 서로 교환해 보기로 한거다. 어느 순간 여자는 일기를 바꿔 읽자고 말하지만 남자는 미루고 그리고 또 한참이 지나 일기를 교환하기로 했을 때 남자의 일기장은 비어 있었다. 남자는 그녀에게 일기를 쓰게는 해놓고 자신은 쓰지 않았던 것. 그때 내가 부르르 떨면서 그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그것 말고 뭔가 다른게 더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읽었는데, 오, 이 책은 내가 기억하는 내용과는 정 다른 내용이 아닌가! 대체 나는 무얼 읽은거지? 내가 읽은건....내가 생각했던 좁은 문은...뭐지? 뭘까?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은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 책은 아닌데, 재미가 없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 모두가 이해는 되는데, 글쎄, 용납이 안 된다고 해야할까. 다 읽고나서도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개운하지 않은 기분이다. 그나마 뒤에 이 작품의 해설이 없었다면 나는 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할 작품으로 기억하게 됐을 것 같다. 책 뒤의 해설은 내게 많은 도움이 됐다. 해설을 읽고 나니 나는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책보다 나는 '앙드레 지드', 이 작가에게 더 호기심이 생겼다. 책을 읽기도 전부터. 책 날개의 작가 소개를 보니 궁금해지고 만거다. 이 책의 책 날개에 있는 작가소개를 일부 인용해보겠다.
1891년에 자전적인 첫 작품으로 사촌 누이 마들렌 롱도에 대한 열띤 사랑의 표현을 담은 『앙드레 와테리의 수기』를 발표했다. 1895년 5월에 어머니가 사망했으며, 같은 해 10월에 마를렌과 결혼한다.
친구의 아들과 사랑에 빠져 오랜 기간 연인 관계를 지속하기도 한 지드는 동성애를 옹호하는 내용의 작품 『코리동』(1924)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으며,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자신이 목격한 제국주의의 횡포를 비판하는 『콩고 여행기』(1927)를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공산주의에 우호적이었다가 소련 방문후 크게 실망하여 그에 대한 환멸감을 담은 『소련에서의 귀환』(1936)을 출간했다. (책날개중 일부 인용)
모든 작가가 그렇겠지만, 앙드레 지드의 소개를 읽노라니, 이 작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작품을 통해 하는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거다. 사랑하는 여인을 향한 글을 쓰고 결국 그녀와 결혼하고,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시인하고 그에 관련하여 책을 쓰고, 자신이 비판하게 되는 것들에 대하여 또 책을 쓰고. 그의 주제는 한 가지만을 향한게 아니었다. 사람이 모두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듯이 작가 역시 '작가로서도' 다른 식의 개성을 가질터, 앙드레 지드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가 옹호했던 동성애와 그가 비판한 제국주의 또 공산주의에 대해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거다. 물론, 이 책, 좁은 문을 다 읽고나서는 그의 다른 책들을 읽고 싶다는 마음은 사라졌지만.
나는 분명 내가 좋아하는 책의 장르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읽고 싶다. 그러나 가끔, 아주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다고 한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실제로 그렇게 해보기도 한다. 그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걸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고, 그걸 내가 알게 됨으로써 그 사람과 더 많은 혹은 더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나는 내가 몰랐던 것에 대해 새로이 알게 될 수도 있고.
이 영화속에서 공상과학 소설을 읽는 남자는 자신이 관심을 가진 여자 때문에 제인 오스틴을 읽게 된다. 그녀와 함께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 대해 토론하고자 제인 오스틴의 작품 여섯 편을 모두 읽는다. 그는 그녀에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 그래서 그는 당연히 그녀도 그래줄줄 알았다. 그래서 그녀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선물했다. '어슐러 K. 르 귄' 이 바로 그 작가였다. 그러나 다 읽었느냐고, 어땠느냐고 물을 때마다 번번이 여자는 아직 읽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남자는 실망한다.
그러던 어느날 밤, 그녀는 남자가 선물한 책을 한 권 집어든다. 그리고 침대에 앉아 잠들기 전, 그 책을 다 읽는다. 불을 끄고 자려다가 그녀는 다시 불을 켜고 일어나 그가 선물한 그 작가의 다른 책을 한 권 집어들고 내처 읽는다. 그리고 새벽에 가판에 달려가 그 작가의 또다른 책을 사려고 한다. 그러나 그 작품은 없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남자가 여자에게 자신이 그 책을 빌려주겠다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집에 당신이 좋아할만한 작가들의 책이 많아요.
와- 나는 이 말을 듣고 어찌나 좋은지 완전 쑝--------------- 하고 가버렸다. 와- 완전 멋져.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읽어주고, 내가 알지 못하는 작가의 책을 소개해주고, 자신의 집에 내가 좋아할 만한 작품들이 많다고 말하다니. 와- 진짜 울트라캡숑짱으로 멋진 남자가 아닌가!! 오, 정녕 당신같은 남자는 영화속에만 존재하는 겁니까!
뿐만 아니라, 이 남자, 어찌나 귀여운지, 스타벅스에서 텀블러를 꺼내들고는 '이걸 사니까 계속 리필해 주더라구요' 라고 말한다. 아- 나, 텀블러 싫어하는 여자, 그 순간, 스타벅스 가서 텀블러 사고 싶었어. 흑흑.
이 영화는 지독하게 사랑스럽다.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주 보여지는데, 아, 책읽는 사람들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게다가 그들은 같은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눈다. 좋아하는 책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 중, 내가 읽지 못한 네 권을 마저 읽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그러나 내가 읽은 두 권을(『오만과 편견』, 『설득』) 내가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건너뛰기로 했다. 대신, 르 귄의 작품을 읽어봐야지.
나는 너만 있으면 돼, 라는 말은 진정 개소리다. 이 영화에서는 그걸 여실히 드러내 보여준다. 사람은 둘이 짝지어 쌍으로만 살 수 없다. 여분의 사람이 필요하다, 라고. 우와- 나는 이 말이 너무 좋아서 기절할 뻔 했다. 그렇다. 여분의 사람은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혹은 같이 사는, 일상을 공유하는 나의 짝을 내가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사랑이 모든것의 해법은 아니잖은가!-, 그 사람 말고 다른 사람은 필요한 거 아닌가. 나와 다른 이야기를 하고 다른 음식을 먹고 다른 영화를 보며 다른 식으로 웃을 수 있는 사람. 우리가 서로에게 무슨 일이 생겨 홀로 남겨졌을 때, 달려와 나의 집 문 초인종을 누르고 나를 들여다봐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필요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서 인간은 홀로 떨어진 섬일 수 없다. 우리는 연결될 수 밖에 없는거다.
이 영화의 DVD 를 아주 오래전에 사두고 보지 않고 있었다. 책이 좋았었기 때문에 영화가 그걸 깨부술까봐 걱정됐기 때문이었는데, 웬걸, 영화가 엄청 좋은거다! 나는 내가 이 책을 읽고 또 이 영화를 봤다는 사실이 무척 좋아서, 이 영화를 다 보자마자 책장 앞에 가 섰다. 혹시 내가 이 책을 팔아치운건 아닌지 걱정됐던 거다. 그러나 책은 책장에 당당하게 꽂혀 있었다. 아! 나는 몇 백권의 책을 팔아치웠지만, 이 책은 남겨둔거다! 아, 이럴 때 나는 내가 진짜 미치게 좋다.
이 영화의 몇 장면에서 나는, 소리내서 웃기도 했다.
이 책은 책 제목 그대로 런던의 디자인을 산책한다. 런던 곳곳의 디자인들을 보여주는데, 일상적인 시장이나 까페의 사진부터 생활에 사용되는 여러가지 물건들의 디자인까지. 몇몇 사진들이 무척 좋아서 물끄러미 들여다보기도 했다.
펭귄디자인 책이 나올때는 심지어 반갑기까지 했다니까!!
그렇지만 이 책은 퇴근길 지하철안에서 읽으면 안되는 책이었다. 컬러사진이 많이 들어가있으니 책이 무거운데, 무거워서 그렇다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퇴근길 지하철안에서 읽고 있었던 이 책에 이런 문장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바쁘게 일한 하루의 끝자락, 식초에 소금까지 잔뜩 뿌린 칩스 한 접시로 겨우 허기를 달래고 맥주 한 잔으로 입가심을 하고는 또다시 반복될 아침을 기다린다. (p.208)
아아아아 나는 이 부분을 읽자마자 맥주랑 감자칩 생각밖에 안났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집에 가는길에 마트에 들러 맥주를 사고 감자칩도 샀다.
나란 인간은 정말이지, 흑흑. orz
그런데 이 책의 저자, 잔인하다. 저 문장 뒤에 이런 문장들이 뒤따라 온다.
이처럼 염분이 많고 당도 높은 음식을 즐기는 나라, 영국의 비만 인구는 네 명에 한 명 꼴로 유럽 31개 국가 중 최고다. (p.208)
오!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갓, 세이브 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의 거의 끝부분에 이르러 작가가 식당에 들어가 시킨 계란에 마음을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아, 포크로 퍼먹고 싶다, 저 계란!!!!!!!!!! 얼마전에 직장 동료가 오사카 짬뽕 먹으러 일본에는 안가냐고 묻던데(;;) 저 계란 먹겠다고 영국에 가진 않겠다. (불끈!)
지금 저 밖에서 우는 건 귀뚜라미겠지? 냉장고에 맥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