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자평] 도서관
오래전에 홀로 극장을 찾아 영화 『라벤더의 연인들』을 보았었다.
영화속에는 아주 나이들어버린 자매가 나온다. 그들은 바닷가의 작은 마을에서 라디오를 듣고 책을 읽고 바느질을 하는 평화로운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외국의 젊은 청년이 표류되어 그들의 앞에 나타난다. 자매는 모래사장에서 그를 자신들의 집으로 옮기고 돌보아준다. 남자는 정신이 들고 회복하고 자매들과 대화하기 위해 자매들의 언어를 배운다.
젊은 남자가 서서히 회복되어 갈수록 자매는 그에게 마음이 끌린다. 아주 오랜만에 가슴이 뛰고 설레인다. 그를 차지하고 싶다. 그가 나를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동시에 자매가 한다. 이 한적한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던 자매의 마음엔 파도가 치고 언니와 동생 사이에 긴장감이 돈다. 자신들에겐 관심도 없는 젊은 청년 때문에.
시간은 흐르고 청년은 자신의 능력에 맞추어 또 꿈을 좇아 마을을 떠난다. 자매는 그의 바이올린 연주회에 참석해 그의 연주를 듣고 집에 돌아와서는 다시 청년을 만나기 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다시 라디오를 듣고 책을 읽고 바느질을 할 것이다. 그들은 내내 평안할 것이고 행복할 것이다.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그들사이에 존재했고, 그런 마음을 들게했던 해프닝이 그들 사이에 있었지만, 자신들의 마음이 왔다갔다 했다한들, 그 일은 일어나지 않는것 보다 일어나는 쪽이 훨씬 나았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라디오를 들으며 듣게 될 음악도, 바느질에 담게 될 마음도, 책을 읽으며 감정을 이입하게 되는것도, 이 해프닝 이전과 이후에는 미묘하게 달라져있을 테니까.
갑자기 이 영화를 떠올린건, 이 책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하고 책만 읽던 여자가 나온다. 집에 쌓아둔 책 때문에 집이 무너질 지경이다. 그녀는 책을 기부해서 도서관으로 만들고 마을 사람들은 그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 여자는 이제 할머니가 되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자신의 친구와 함께 평화로운 일상을 보낸다.
그녀의 삶은 전혀 나쁘지 않다. 오히려 그녀가 가장 원하는 것을 하면서 늙어갈 수 있으니 행복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녀가 꿈꾸는 삶이 그런 삶이었다면 더 바랄것이 무엇일까. 그런데 자꾸만 이 책 위로 영화 『라벤더의 연인들』이 겹치면서, 책 속의 그녀에게도 격렬한 해프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거다. 이 해프닝은 내가 책속의 그녀에게(설사 현실속에 그녀가 존재한다 한들), 결코 강요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이런 해프닝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거다. 평안한 마음과 보통의 일상을 사는 와중에 마음속에 회오리가 불어닥친다면,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감당하면서 설레이고 아파하면서, 그녀는 그 뒤로 읽는 책들을 그 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거다. 만약 그녀에게 그런 해프닝이 일어났다면, 그녀는 지금보다 책에 집중하는 시간이 조금은 줄어들 것이다. 책을 읽다가,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그녀는 가끔은 창 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기곤 할테니까. 해프닝이 있기전보다 해프닝이 있고난 후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될 테니까. 그런 경험과 그런 감정들을 가진채로 읽는 책은 더 많은것을 그녀에게 전해주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책 속의 그녀가 안정되어 보이고 편안해보이지만, 그런 해프닝을 한번쯤 맞닥뜨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거다. 물론, 젊었을 때의 그녀에게는 내가 알지 못할 많은 일들이 책을 읽는 틈틈이 일어났었겠지만, 노년의 그녀에게도 일상을 뒤흔들만한 해프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거다. 살아있음을 격렬하게 느낄 수 있는, 그런 해프닝. 여전히 가슴이 뛰고 여전히 설레이고 여전히 아파하고 또 간혹 내가 이러는건 주책인건 아닐까 자책하게 하는, 그래서 그녀로 하여금 실로 살아있음을 깨닫게 하는 그런 해프닝. 물론, 그녀는 지금의 삶으로 충분할수도 있고, 그녀는 감정의 동요 따위 겪고 싶지 않을수도 있겠지만, 그냥 이 책을 보는데 자꾸만 라벤더의 연인들이 생각났다. 나는 그때의 그녀들의 그 질투와 시기와 긴장과 설레임이 전혀 나빠보이질 않아서. 그게 있었던 쪽이 나았을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마도 나는 『스타킹 훔쳐보기』에서 '엘리자베스 게이지'가 말했던 것처럼 '한번도 사랑하지 못한것보다 사랑을 잃고 아파하는 쪽이 더 낫다'는 쪽에 깊게 공감하는가 보다. 책 속에서 남자주인공은 사랑을 잃고 아파하는 자신을 위해 이 문장을 생각했고, 그리고는 이내 이렇게 덧붙여 생각했다. 덧없는 위로, 허무한 지혜.
일전에 y 씨와 둘이 술을 마시면서 나는 소주와 깍두기가 얼마나 환상궁합인지 얘기한적이 있었다.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그것은 소주 안주의 최정점이라고, 소주를 마시며 인생의 씁쓸함을 논하기에는 깍두기가 최고라고. 그러자 y씨는 내게 말했다. 그것보다 진화한 것이 짜장면에 소주라고. 뭐라구요? 짜장면에 소주라구요? 그는 그렇다고 말했다. 그 말은 내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고, 그래서 나는 지난주 금요일, 내내 벼르고 있던 그걸 해보고자 했다. 짜잔~

오. 좋네? 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집의 메뉴는 간단해서 시골짬뽕, 홍합짬뽕, 시골짜장, 탕수육, 짬뽕밥 정도가 있다. 내가 시킨건 당연히 시골짜장 이었는데 면발이 유독 쫄깃쫄깃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지쳐있었던 금요일밤의 소주와 짜장면. 캬~ 좋았다. 물론, 좋았지만, 나에겐 역시 깍두기에 소주가 더 최상의 메뉴인듯 하다. 아, 짜장면 왼쪽으로 보이는 저것은 두둥~ 탕수육. 훗.
음...사진을 보니 또 먹고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