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무리 여름을 좋아한다 한들, 겨울에 한 여름 소설을 읽을 생각은 없었다. 물 위로 떠 있는 두 사람의 발이 인상적인, 말 그대로 여름같은 표지의 이 책을, 당연히 나는 여름에 읽을 생각이었단 말이다.
그런데 지난주였나, 텔레비젼에서 무한도전 재방송을 봤는데, 아이쿠야, 조정경기 편이었던거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보며 깔깔대고 웃다가 오오, 피츠버그의 마지막 여름을 읽자, 라고 마음을 먹었던 것. 두근두근. 표지만으로 보건데 이 소설은 내가 몇년전에 보았던 영화 『썸머 스톰』과 비슷할 것 같았다. 아직 아무것도 스스로에게 확신하지 못하는 젊은 소년 혹은 소년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남자들의 이야기.
표지에는 "[위대한 개츠비]와 [호밀밭의 파수꾼]의 계보를 잇는 위대한 문학작품!" 이라고 써있었다. 하아- 이러지말자. 이 책을 중간까지 읽으면서도 화가났고 다 읽고서도 화가났다. 대체 어디가, 어째서, 왜 위대한 개츠비와 호밀밭의 파수꾼의 계보를 잇는단 말인가. 장난하나..하아- 주인공 아서도 또 아서의 영웅 클리블랜드도, 내가 좋아하는 개츠비가 또 홀든이 될 수 없었다. 개츠비와 홀든처럼 두루두루 끝까지 그 이름이 불리어질만큼의 어떤 매력이 그들에겐 없었다. 클리블랜드의 매력은 단지 아서와 그 주변인물들에게만 뻗쳐있었을 뿐, 내게는 아니었다. '마이클 셰이본'을 나는 샐린저나 피츠제럴드처럼 좋아할 수 없었다. 그의 작품을 또 찾아 읽고 싶은 마음 같은건 생기지 않았다. 내가 이 소설에 얼마나 많은 기대를 했던가! 하아- 여름..에 읽어야 했던건가?
게다가 37페이지의 이 문장은 다듬을 필요가 있어보인다.
머릿속으로 그와 다시는 악수를 하지 않으리라 결심하는 동안, 어린 시절 내 우정은 늘 그렇게 갑작스럽고도 확실하게 느껴졌던 점이 떠올랐다. (p.37)
일곱번 쯤 천천히 읽고나니 이제야 이 문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어렴풋이 알겠다. 어렵지 않은 단어들인데 이해가 어렵다면 좀 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는게 아닐까. 머릿속, 악수, 우정, 느껴지다.. 이토록 쉬운 단어들인데 한 번에 이해되지 않는다니, 이건 내 탓은 아닌것 같단 말이다.
이 책에 대한 실망과는 별개로 나는 피클 계란말이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은 상태가 되고 말았다.
"제발 울지 마라, 벡스타인. 네가 그러는 거 정말 싫다. 피클 계란말이나 먹자."
클리블랜드는 그렇게 말하고는 약 열두 개 정도 되는 작고 붉은 혹 덩어리를 하나씩 차례로 해치우기 시작했다. 그가 손가락을 핥으며 말했다.
"술집에 피클 계란말이 안주가 있는 한, 희망을 품을 만한 이유는 있는 거지." (p.149)
으응? 피클 계란말이? 피클 계란말이가 뭐지? 아 뭐지? 게다가 작고 붉은 혹 덩어리..라고? 피클이 내가 아는 피클이 아닌거야? 그러니까 피클을 썰어서 계란말이에 마치 파를 넣듯 넣은게 아니라 독자적인 어떤 요리인거야? 작고 붉은 혹 같은? 아, 뭔데? 나는 너무 궁금해져서 구글창에 검색했다. 그랬더니 네이버 블로그가 나오는데, 거기에 나오는 피클 계란말이는 평범한 것이었다.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 피클을 썰어 넣고 계란말이를 한 것. 어어,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이게 그러니까 국내에는 없는 안주이고 미국에만 있는건가. 그렇다면 영어로 검색해야 할 텐데, 영어로는 정확히 어떤 단어일까. 그래서 나는 구글 번역기를 돌렸다. 한국말로 피클 계란말이를 쳐 넣고 영어로 번역했다. Pickles, fried egg 이렇게 번역이 된다. 중간에 컴마가 있으니 그렇다면 저건 피클과 계란말이가 따로 아닌가. 아 젠장. 그래서 컴마를 빼고 검색해봤다. 그랬더니 피클이나 계란 요리가 검색된다. 나는 다시 이미지 검색을 눌러본다. 아 짜증나. 이 책에서 설명한 작고 붉은 혹 덩어리 같은 것은 검색되지 않는다. 대신 프라이드 피클이 검색된다.
이건 뭐냐..피클을 튀긴거 아닌가. 이건..맛있으려나. 내가 찾는 건 이거랑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은데. 원문에 대체 뭐라고 되어 있는걸까, 피클 계란말이는?
그런데 검색한 내가 큰 실수를 했다. 제기랄. 내가 좋아할 만한 이미지들이 좌르르륵 펼쳐지는거다. 오, 신이시여, 구해주소서. 갓, 세이브 미!
이건 pickled fried cabbage 어쩌고 하는건데, 오와, 커다란 포크로 막 퍼먹고 싶다.
이건 totilla espanola 어쩌고 하는건데 완전 맛있겠다. 이것 역시 커다란 포크로 푹 퍼가지고 밑에 토마토 소스 같은것 듬뿍 찍어 먹으면 정말 좋겠다. 커피를 함께 마셔도 좋겠고 그보다 와인과 함께 해도 좋겠다. 아..집에 가고 싶다.
아..........이건 진짜 어쩔거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건 뭐 ㅠㅠㅠㅠㅠㅠㅠㅠ나는 왜 회사에 있는거지? 회사 관두고 싶다. 그리고 집에 푹 처박혀서 빵과 고기와 계란과 햄과 치즈와 피클과 기타 등등을 쌓아두고 이런거나 계속 만들었으면 좋겠다. 나는 요리를 전혀 못하는데, 그래도 이런건 웬만큼의 맛이 나오지 않을까? 뭐 조미료 넣거나 내가 양념할 필요는 없는거잖아? 걍 되지 않을까? 아...이거 다 먹고 배 두드리며 소파에 누워서 잠들고 싶다. 그러면 얼마나 행복할까...orz
아..일 때려치고 싶어. 회사 따위, 그만 다니고 싶어!!
하아-
- 어제는 엄마가 쪄준 대게의 다릿살을 파 먹으며 드라마를 봤다. 엄마가 보시던 드라마인데 제목이 『천번의 입맞춤』이었다. 아니 천만번인가..여튼, 어제가 마지막회였는데 당연히 그 드라마보다는 대게가 훨씬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드라마의 마지막, 이순재부부 이야기가 참 인상적이었다. 나이 든 이순재도 휠체어를 타고 다니고 이순재의 아내 역시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할 정도로 병환이 깊었다. 백혈병이란다. 아내는 어릴적부터 발레리나가 되는게 소원이었고, 그래서 이순재는 아내랑 발레 공연을 함께 보기로 약속한 터였다. 그러나 공연장에 갈 정도로 아내의 몸이 회복되기는 커녕 점점 더 나빠져서 이순재는 발레 DVD 를 구해서 침대에서 아내와 함께 관람하는 장면이었다. 사실 이장면은 그다지 새로울게 없다. 오히려 식상한 듯 느껴지기도 한다. 죽는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것, 이라는 설정은 아주 오래전, 『라스트 콘서트』에서 이미 스텔라가 했던바가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애틋해졌다. 아내가 발레를 보다가 남편의 어깨에 기대어 스르르, 죽어버린 것.
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죽고 싶지 않다. 내가 가장 크게 가진 두려움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고 또 아이를 낳아 키우는 두려움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아이를 낳아 키우는 두려움도 다른 사람들이 가진 두려움이랑은 조금 달라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을 좀 꺼려하는 편이다. 그 두려움을 얘기했을 때,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 내가 이야기하는 바를 제대로 짚어내주는 사람이 없었고, 다들 이상하다는 식으로 혹은 과민하다는 식으로 반응했기 때문에 나는 그것에 대한 건 그저 내가 그런채로만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그 두려움은 어떻게 해서도 해소가 안되고,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으면 나아지려나, 그런 생각만 가끔 했던터다. 그런데 어제 드라마의 그 장면, 이제는 늙어버린 아내가 늙어버린 남편의 어깨에 기대어 스르르 눈을 감는 그 장면 때문에, 나는 내가 가진 두려움이 조금쯤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저렇게 죽는다면, 그렇다면, 그렇다면 죽음을 그렇게까지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었던 것.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내 옆에 있고, 그 사람의 어깨에 기대어서 조용히 눈을 감게 된다면, 그러면 좀 덜 무섭지 않을까? 견딜만하지 않을까?
그래도, 그러니까 죽음이 조금 덜 무서워졌다해도, 나는 여전히 즐겁게 살고 싶은 마음이 훨씬 더 크다. 피클 계란말이가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안주인지 궁금해 하면서, 육덕진 안주를 한 상 차려두고 술을 마시면서, 그렇게 배를 두드리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살고 싶다. 아주아주 재미있는 책들을 읽으면서 또 가끔은 짜증나는 책을 읽느라 신경질을 내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 지금 당장은 그냥 집에 가고 싶다. 마트에 들러 이것저것 육덕진 음식들을 잔뜩 사가지고 기름진 음식들을 만들어 먹고 싶다. 지금 당장은 그걸 가장 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