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출근할때 읽으려고 어젯밤 미리 챙겨둔 책은 다른것이었는데, 나는 오늘 아침에 충동적으로 이 책으로 바꾸었다.
'아모스 오즈'라면 나는 이미 『나의 미카엘』로 만났던 바, 그의 작품이 좋지 않을리 없다는 강한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책의 두께도 부담스럽지 않았으며 행간도 (열린책들인데!) 넓었다. 쉬이 읽히겠군. 나의 미카엘만큼 좋을까? 아니면 그보다 더 좋으려나?
책의 뒷편을 보니 이렇게 줄거리가 요약되어 있었다.
1939년 폴란드, 유대계 수학자이자 시계공인 엘리샤 포메란스는 아름답고 지적인 아내 스테파를 남겨 둔 채 독일군을 피해 어둡고 적막한 숲 속으로 몸을 피한다. 세월이 흘러 전쟁도 막을 내리고, 엘리샤는 이스라엘의 한 시골 마을 양치기로, 스테파는 러시아의 비밀 요원으로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
우앗. 너무나 흥미롭다. 수학자가 양치기가 되고 지적인 아내가 스파이가 되다니. 하아- 기대감에 부푼 나는 책장을 펼쳤다. 그러다가 16페이지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그는 땀을 흘리며 팔꿈치를 자신의 주위에 내보낸 음악에 기댔다. (p.16)
뭐라고? 무슨말인지 모르겠다. 다시 읽었다.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또다시 읽었다. 그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하아- 팔꿈치를 음악에 기댔다..주위에 내보낸은 음악을 수식하는 말인가...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다섯 번은 읽은것 같은데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 그래서 패쓰했다. 그런데 그 뒤로도 내가 한 번에 명쾌하게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이 더러 나온다. 나는 쉼표가 있는 문장에서는 한 번 쉬어주고 느낌표로 끝나는 문장에서는 더 강하게 읽어주는 등 나름대로 문장부호를 꽤 충실하게 지켜내는 독자라고 자부하는데, 이건 쉼표에서 제대로 쉬어주어도 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들이 자꾸만 나온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45페이지에서 이런 문장을 맞닥뜨린다.
찬장 위에는 전쟁에 나갈 때 바르는 칠을 한, 조각한 아프리카의 전사가 사나운 모습으로 서 있었다. (p.45)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이건 대체 무슨말이야. 전쟁에 나갈 때 바르는 칠을 한...무슨 칠....아 진짜. 욕이 막 튀어나올라고 해서 45페이지에서 나는 책장을 덮어버렸다. 안읽어. 포기. 몇몇 문장들을 이해하기 위해 두세번씩 읽다보니 내용파악이 안되는거다. 급기야 45페이지 까지 읽다가 아내가 만나는 교수가 갑자기 왜 아내의 집에 와있는지를 모르겠는거다. 이거 책 내용이 궁금해서 끝까지 읽고 싶다가도 문장 이해하려고 노력하다보면 책 내용 파악이 어림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아, 이렇게 스트레스 받느니 관두자 싶어지는거다. 아.
양미간에 주름만 잡히고 스트레스만 받은채로 책장을 덮고 집에와서는 남동생에게 이 두문장을 읽어보라고 줬다. 야, 이거 무슨말인지 알겠냐? 나 이해시켜봐. 남동생은 소리내서 읽어보더니 16페이지의 문장을 보고는 음악에 푹빠졌다는건가? 라고 말했고 두번째 문장을 읽어보더니 "나는 짧은 평서문도 이해못하는데 이런거 이해하겠냐?' 라고 대꾸했다.
아,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불가. 다른책을 읽어야겠다.
퇴근길의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다가 덮어버리고 나는 인피니트의 동영상이나 보자 싶어서 재생시켰다. 그리고 반복해서 정신을 잃고 보다가 길동역에서 내려 여전히 동영상에 심취해 걷고 있는데 누군가 달려와 나를 끌어안는다. 놀라서 쳐다보니 우리 엄마. 우연히 길동역에서 만나게 된거다. 아마도 같은 지하철을 탔는가보다. 그래서 어떻게 이렇게 만나냐며 신기해하고 있는데 엄마가 그랬다. 뒤에서 봤는데 코트랑 부츠가 너 같은거야. 틀림없이 넌데 머리에 꽃이 달렸더라고. 어? 쟤는 꽃을 안달고 다니는데 싶어서 부르지는 못하고 뛰어와서 확인했더니 너더라. 라고 하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선물받은 꽃 머리끈 ㅋㅋㅋㅋㅋㅋㅋㅋㅋ엄마가 몰랐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머리에 꽃이 달려있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집에 와서는 훈제오리를 구워서 와인을 머그컵에 가득 따라 함께 먹었다.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