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동네에서 산다고 이렇게까지 말이 많은 도시는 본 적이 없어요. 어디에 살든 그게 뭐 대수라고?  여기도 괜찮은 동네라던데."
"상류층이 사는 곳은 아니죠."
"상류층이라고! 당신네들은 다들 그런 걸 노상 따지고 사나요? 왜 자기 좋을 대로 하면 안 되나요? 하지만 내가 너무 내 식대로 살아온 것 같기는 해요. 어쨌든 당신네들이 하는 대로 하고 싶어요. 나도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고 싶고, 안전하다고 느끼고 싶어요."
(p.95) 

 

 

 

 

 

 

 

 

아직 95쪽까지 밖에 안읽어서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 없지만, 이 여자, 왜 그런걸 따지고 살아야 하느냐, 그러나 어쨌든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고 싶기 때문에 니네들이 하는 대로 해보겠다, 라고 하는 이 여자가, 그러나 그렇게 살 수 있을까? 내 식대로 살고 싶지만, 내 식대로 사는게 사랑받지 못하는 방법이라면 나는 어떤 절충안을 내놓아야 할까. 내 식대로 살고 사랑을 포기하거나 내 식대로 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받거나. 그러나 내 식대로 살지 않으면서 사랑을 받는다면 그건 그대로 불만족스럽지 않을까? 어쨌든 이 여자가 앞으로 어떻게 살지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궁금하다.  

백작 부인과 공작은 거의 이십 분 가까이 얘기를 나눴다. 그런 다음 백작 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홀로 넓은 거실을 가로질러 뉴랜드 아처의 옆에 앉았다.
숙녀가 한 신사와 있다가 다른 사람과 어울리려고 일어나서 걸어가 버린다는 것은 뉴욕의 거실에서는 예법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예법대로라면 숙녀는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남자들이 옆에 와서 앉을 때까지 조각처럼 꼼짝 말고 기다려야 한다.
(p.83) 

아. 정말 화나는 일이다. 내가 저 시대에 태어나 저 예법을 따르는 여자였다면 나는 평생가야 어느 신사하고도 얘기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남자들이 옆에 와서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니! 그럼 그동안 나는 뭘하나? 벽 보고 멍때리나? 벽 보고 멍때리면서 제발 내게 와서 말을 걸어줘요, 라고 간절히 소망해야 하나? 아니면 남자들을 두리번 거리면서 제발 나를 봐 나를 봐 하고 최면이라도 걸어야 하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이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것이 천만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책 속의 여자처럼 과감히 예법을 깨고 살지는 못했을테니까. 아니야, 그랬을까? 글쎄 알수가 없다.  

지하철에서 내려 책을 가방에 넣고 출근하는 길, 나는 내가 이 시대에 태어나, 이 책 속에 드러나는 파티며 만찬에 초대받는 입장이라면 어떤 삶을 살게 됐을까를 상상해봤다. 음, 일단 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 자체를 즐기지 않으니까 초대받은 만찬이며 파티에 백프로 참석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니 거의 참석을 안하고 집에서 자수를 놓지 않았을까?(응?) 그러다가 몇몇 친한 이들이 이번엔 꼭 참석해, 라고 강요하면 마지못해 몇번 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술만 홀짝이다가 집에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멋진 신사를 보게 되는거지. 그 뒤로 나는 내가 초대받는 모든 만찬에 참석하기로 결심한다. 단순히 그를 보겠다는 열정으로. 그러나 그 역시 번번이 참석하는 사람이 아닌지라 나는 그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계속 만찬에 참석하는 것이 부질없으며 힘들다고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파티며 만찬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여자친구를 만들것이다. 그리고 늘 그 친구에게 정보를 얻을 것이다. 이번 파티에는 누가 온대? 누가 오지 않는대? 흘러가듯 무심히 물어볼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얻게되는 정보로 만찬 참석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시대적 분위기가 분위기인만큼 나는 동네사람들에게 험담을 듣기 시작할 것이다. 그녀는 제멋대로지, 하는 말들. 그러나 나는 그러든말든 흥! 하며 내 마음대로 할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가 전해준다. 그 신사는 당분간 영국에 가서 머물러야 한대. 수개월 걸린다나봐. 나는 그 말을 듣고 침통해하며 모든 만찬과 파티에 가지 않게 될것이다. 사람들은 어차피 초대해도 오지 않는걸, 해가며 서서히 나를 초대하지 않고 나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집에서 자수만(응?) 놓을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흘러 그가 돌아오고 ,그가 돌아온 후 열리는 첫 만찬에 참석할것이라는 정보를 나는 입수하게 된다. 나는 가장 좋은 드레스를 꺼내입고 가장 정성들여 화장을 하고 마차를 준비시킬 것이다. 그러다가 불현듯 깨닫는다. 나는 이 만찬에 초대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 제기랄. 어쩌지. 난 이제 왕따인데.. 그러나 나는 가기로 결심한다. 초대를 했든말든 일단 가고 본다. 그리고 가서는 오랜만에 그를 본다. 그는 다른 숙녀와 얘기중인데 나는 초대받지 못했는데도 거기에 와있다는 사람들의 숙덕거림을 뒤로 한채로 그에게로 씩씩하게 간다. 그리고 말하는거다. 

"그거 알아요?" 

그는 오랜만에 보는 나에게 반갑다는 인사를 할 참이었는데 갑자기 던져진 질문에 당황한다. 그러나 그가 당황하든 말든 나는 계속 얘기한다. 

"나, 이 만찬에 초대받지 못했어요." 

그는 자신이 떠난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 상황이 더더욱 당황스럽다. 그는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나는 계속 얘기한다. 왜냐하면 여기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으니까. 어떤 누군가는 내게로 와서 당신은 초대받지 못했으니 꺼지시지요, 할지도 모를 일이니까. 나는 마음이 급할것이다. 그래서 계속 얘기할 것이다. 

"초대받지 못했는데 이 만찬에 당신이 온다잖아요. 그래서 왔어요. 당신 볼라고. 나 정말 짱이죠?" 

그는 흥미롭다는 듯 나를 주시하고 나는 서서히 내게로 모아지는 시선들을 더이상 감당할수가 없어져서 이제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를 봤고, 할 말을 다 했으니까. 그리고 돌아서려는데 그가 묻는다. 

"초대받지 못했다고요?" 

나는 네, 라고 말한다. 그러자 그는 주변을 둘러본다. 그리고는 자신의 코트를 챙긴다. 그리고 말한다. 

"같이가요, 당신집으로." 

나는 미친년처럼 활짝 웃고 그는 내 팔을 잡고 문으로 걷는다. 나는 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 멋진 신사를 내가 데리고 빠져나올 수 있다는 데서 엄청난 자신감을 갖게 되고, 그 자신감 때문에 완전 초절정울트라캡숑으로 예쁘고 환하게 보인다. 우하하하.   

 

이럴 때 흐르는 노래는 Leona Lewis 의 I got you. i got you i got you~~♪
노래의 전체적인 가사는 내가 생각하는 i got you 가 아닌것 같지만 뭐 어쨌든 나한테 들린건 i got you  뿐이니까. 아이 갓 츄~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새벽에 깨지 않고 잤다. 내게는 드문일인데. 그랬더니 아침에 일어나서도 기분이 좀 괜찮아졌다. 이 역시도 오랜만이다.  

어제, 혜교의 전화번호가 필요하다는 남자에게(응?) 나는 혜교의 번호라며 내 번호를 알려줬다. 그러자 전화가 왔다. 

"혜교니?" 

나는 미안하다고 했다. ㅜㅜ 

 

회사로 걸어오며 계속 상상을 하는데 너무 기쁜 나머지 웃긴거다. 그래서 혼자 막 노래를 들으면서 웃으며 걷고 있는데 내 앞에 걷던 여자가 갑자기 뒤를 돌아 나를 본다. 앗, 나 아직 표정을 숨기지 못했는데! 그 여자는 내가 혼자 실실 쪼개는 걸 봤다. 그 여자는 다시 앞을 보고 걷더니 다시 뒤를 돌아 나를 본다. 아 어쩌지. 나 아직도 표정을 숨기지 못했는데. 그녀가 내가 자신의 뒷모습을 보고 웃었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아, 표정을 어떻게 금세 바꾸지? 

나는 표정을 숨기는 데 서투르다. 대부분의 다른 모든것들에 서투른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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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1-02-17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빠다.

예쁜 아치니?
나는 미안하다고 했다...

다락방, 표정 바꾸지 말고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버려요. 난 다락방의 서툰 점이 좋아요. 물론 다락방은 인용과 비유의 다락방이지만.

다락방 2011-02-17 13:43   좋아요 0 | URL
예쁜 아치 ㅎㅎ 난 혜교보다 아치가 좋아요. 히히

난 그 여자가 내가 자기보고 비웃었다고 생각할까봐 걱정되지 뭐에요. 내가 웃은건 그녀와 전혀, 전혀 상관없는 일인데요!!

turnleft 2011-02-17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교 번호를 물었던 남자는 현빈인가요? @_@

무스탕 2011-02-17 11:34   좋아요 0 | URL
이병헌인지도... =3=3=3

다락방 2011-02-17 13:46   좋아요 0 | URL
현빈과 이병헌은 이미 혜교의 번호를 알고있지 않을까요? ( '')

음....저 남자는....음......음.......바다 하리 였습니다! ㅎㅎ

잘잘라 2011-02-17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교의 전화번호가 필요하다는 남자에게 혜교의 번호라며 내 번호를 알려줄 때,,, 내가 그런것도 아닌데 왜 내가 이렇게 떨리는지.. ㅋㅋ

다락방 2011-02-17 13:47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 저는 화가 나던데요. 왜 니가 필요한 번호는 혜교의 번호냐. 왜 나의 번호가 아닌것이냐...........( '')

2011-02-17 1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7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02-17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욱 견고하죠. 지금과 그때가 다를 것이 없어요. 차라리 난 순수의 시대가 낫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겉으로만 자유를 주는 척 하지는 않으니까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여자로 보입니다.

다락방 2011-02-17 15:23   좋아요 0 | URL
저 여자와 아처, 그리고 아처의 약혼녀가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해서 미치겠어요, 쥬드님. 그런데 저는 사무실이고 일도 많고 대체 언제 읽을 수 있으려나요. 아 빨리 읽고 싶어요.
다 읽고나면 쥬드님, 보고하겠습니다!

마노아 2011-02-17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좋다! 좀전까지 무지 짜증이 나서 인상 팍팍 쓰고 있었는데 다락방님 페이퍼를 다 읽고 나니 내가 활짝 웃고 있어요. 아, 마법같은 다락방님!!

다락방 2011-02-17 15:24   좋아요 0 | URL
웃어야죠, 마노아님. 이거 웃으라고 쓴건데요.
저도 상상하면서도 웃었고, 쓰면서도 웃었어요. 그러니까 읽는 사람들도 웃어야 그래야 제대로 된거에요. 히히.
마노아님을 웃게 했다니, 히융~ 좋아요!
짜증은 왜 났어요? 내가 계속계속 마노아님 웃게 해줄게요!

레와 2011-02-17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경이나 특히 의상을 [순수의 시대] 의상으로 상상하고 있는데, 말투가 지금 말투야.
'나 정말 짱이죠?!'

아놔.. 진짜 깬다, 다락방! 이 어메이징한 여자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1-02-17 15:25   좋아요 0 | URL
그니까. 어쩔거임, 나 정말 짱이죠? ㅎㅎㅎㅎㅎ 그런데 그런 여자를 따라 나오는 남자는 또 뭡니까! ㅎㅎ 아, 그건 다락방이 어메이징한 여자라 그런걸까요?
이거 읽으니까 기분 막 좋아졌죠? 그쵸? 내가 쓰고나서 이거 레와님이 읽으면 좋아하겠다 싶었어요. ㅋㅋㅋㅋㅋ

나는 어메이징한 여자 ♡

L.SHIN 2011-02-17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님의 '만찬 파티'가 재밌어요. 그 다음 이야기는 없나요? 응? 응?
주말에 시간이 된다면 만화로 그려서 올려주고 싶은 이야기에요.(웃음)

다락방 2011-02-18 08:39   좋아요 0 | URL
그 다음이야기는 에로 버전이므로 생략합니다, 엘신님. 다음 이야기는 각자의 상상에.. ( '')
ㅎㅎ

blanca 2011-02-17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다락방님 저랑 비슷하군요. 저도 막 그 시대에 내가 태어났으면, 심지어 조선시대 임금의 후궁이었다면 ㅋㅋ 이런 상상까지 해봤다니까요. 그런데 저 상상 너무 실감나고 재미있어요. 근사해요. <순수의 시대> 궁금했는데 좋아요, 다락방님?

다락방 2011-02-18 08:40   좋아요 0 | URL
저는 [람세스] 읽으면서 왕의 여자가 되려면 왕비는 되지말고 첩이 되자 뭐 이런 생각을 했어요. 왕비는 진짜 힘들겠더라구요.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의 역할이라든가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의 역할만 하는게 아니라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의 조언자가 되기도 해야 하니까요. 반면 첩이 되면 굳이 정치사에 끼어들지 않아도 되고 그냥 남자랑 사랑만 하면 되니까.. ( '')
야망없는 다락방. ㅎㅎ

아직 절반정도 밖에 못읽었어요, 블랑카님. 그런데 꽤 좋아요. 이제 막 그들이 사랑한다고 속삭였거든요. 여자는 유부녀고, 남자는 여자의 친척과 약혼한 상태인데 말입니다. 아우.

자하(紫霞) 2011-02-18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수의 시대> 제가 좋아하는 소설이지 말입니다~
순전히 위노나 라이더가 나오는 영화<순수의 시대>때문이긴 하지만 말입니다=3=3
민음사 책 표지의 저 사진이 영화<순수의 시대>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다락방 2011-02-18 11:06   좋아요 0 | URL
이 책 재미있게 읽고있어요. 지금 읽는 부분에서는 아처가 약혼녀랑 결혼을 했네요. 저도 영화 찾아 보도록 해야겠어요.

아이리시스 2011-02-19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락방님이 그냥 백수였으면 좋겠어요.
그럼 맨날 이런 글 볼꺼 아니예요, 완전 시대를 앞서가는 여자 아닙니까.

아, 괜찮아요. 나 오해 안했으니까 걱정마요.
좀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하면서 걸어왔어요,ㅋㅋㅋ

다락방 2011-02-20 22:19   좋아요 0 | URL
아이리시스님이었군요! ㅎㅎㅎㅎㅎ
정말 오해한거 아니죠? 다행이에요. 전 앞에 가는 사람보면서 웃는건 잘 안해요. 대신 제가 걸으며 혼자 웃을 때는 머릿속에 나름의 바보같은 상상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저도 제가 백수였으면 좋겠어요, 아이리시스님.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사실이 저를 또 우울의 수렁속으로 밀어버리고 있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