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은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결국 부엌으로 달아났다. 오전 11시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천천히 씹으려고 애쓰며 억지로 먹었다. 포장을 벗겨 햄 한 조각을 꺼냈다. 그런 다음, 바나나 하나를 집어 껍질을 벗겼다. 그러는 동안 일요일은 조금씩 물러갔다. 한 입 먹고, 한 번 씹고,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일요일이 약간씩 지나갔다. (p.78)
아니아니아니다. 일요일이 언제 조금씩 물러간 적이 있던가, 언제 약간씩 지나간적이 있던가. 내게는 언제나 휙휙 지나가기만 하던데.
멀미약이 단 한 알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집 근처 약국은 닫혀 있었다. 아직 일요일이었다.(p.81)
그래, 18:36 현재. 아직 일요일이긴 하다. 그러나 이제 몇시간만 지나면 이 일요일이 완전히 지나가 버린다. 그러면 또다시 월요일이 다가올테고 그러면 또다시 나는 두 눈을 비비며 일어나 머리를 감고 출근 준비를 해야 할테고 그러면 또다시 나는 버스와 지하철에 시달리며 출근을 할테고 그러면 또다시....
아 싫다.
아직 일요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