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루키를 좋아한다. 정말 좋아한다. 많이 좋아한다. 나는 그의 소설과 에세이 모두 좋다. 물론 그의 소설들 중 어떤 작품에 대해서는 살짝 실망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를 좋아하는 마음은 변함없고, 그를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부르는데 주저함이 없다,
라고 하지만 이 작품이 예상외의 실망을 안겨주어 놀랐다.
처음엔 좋았다. 1권의 어느정도 까지는. 아니 2권의 어느 정도까지 라고 해야할까. 정확히 어디부터라고 말하긴 곤란하지만, 아마도 짐작해보건데, '그 천둥번개가 치던 날' 부터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아'라는 생각이 들더니 2권이 진행되면 진행될 수록 '아,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잖아, 무슨 말을 하려는거야.' 싶어지는 거다. 처음에 아오마메가 고환을 걷어찰때는 별 다섯개 였다가 다 읽고 나니....흐음. 처음엔 이 책을 읽으며 얼마나 흥분을 했는지 모른다. '조지 오웰'의 『1984』를 먼저 읽은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을 정도였다. 이 책을 읽다보니 『1984』는 물론이고, 그의 다른 모든 작품들도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상실의 시대』, 『태엽감는 새』, 『댄스댄스댄스』까지. 이런면들을 발견해 내면서 혼자 좋아라 했는데, 그 마음들이 2권의 어느 시점부터 사라져버린다. 그의 작품에 실망하게 되어 안타깝다.
이 책은 재미있다. 박민규의 장편 소설은 처음 읽는 것 같다. 언젠가의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그의 단편 [낮잠]을 읽고 퍽 좋아라 했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다시 이 책 얘기로 돌아가서, 이 책은 재미있다. 잘 읽힌다. 그런데!
불편하다. 기분 나쁘다로 표현해야 할지, 화난다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작가가 주제를 말하기 위해서 지나치게 오버를 하지 않았나 싶어지는거다. 그러니까 이 세상이 지금 미모로움을 떠받드는 것도 알겠고, 못생긴 사람들이 살기 힘든 세상인것도 알겠다, 그리고 공감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신파로 구질구질해질 필요가 있나 싶어지는 거다. 특히 '못생긴 여자'가 '잘생긴 전(前)남자친구'에게 보낸 편지는, 아이구야, 뭐 신파도 이런 신파가 없다. 당신 때문에 못생긴 내가 살 가치가 있다고 여겨졌다, 라는 편지를 장장 몇장에 걸쳐 써내는건지. 아무리 그녀가 그간 살기 힘들었다고 해도 그건 좀 심했다. 젠장, 그 뭣이냐, 아직 [삼미스타즈 무슨 클럽]인가 그 책 아직 안 읽었는데, 읽어, 말어? 어쨌든 이 작품에 '그래도 별 네개'를 준건 재미있고, 결론도 나쁘지 않기 때문.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데 이 『눈물상자』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한 강', 내가 읽고 싶었던 '한 강'은 보이질 않는다.
빠르게 읽히는 것 말고는 뭘 생각해야 할지, 뭘 느껴야 할지 통 알 수가 없다. 내가 일본 소설에서 특히 좋아하는 '사소하지만 공감하는 어떤 것'이 이 소설 안에는 없다.
물론 이 책안에는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다. 그런데, 불편하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표현할 수가 없어서 답답하다. 나는 『용의자 x의 헌신』을 읽고 아, 이시가미! 하며 가슴을 쥐어 뜯을 정도로 안타까워 하며 재미있게 읽었었다. 『회랑정 살인사건』은 기대만큼 재미있진 않았지만 뭐 그럭저럭. 그런데 이 책은 재미는 있는데 뭔가가 찜찜하다. 울컥 거리기도 하고 생각하게도 하고 그렇긴 하는데 뭔지 불편해서 갑자기 나는 '이제 히가시노 게이고는 안 읽을래' 해버리고 만다. 아직도 그 불편함의 정확한 원인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백야행'을 읽고 싶다는 마음을 접고 있다. (그런데 완벽하게 접지는 못했다.)
일큐팔사에 대해 유감이란 글을 적으려다가 생각난김에 유감이었던 작품들을 죄다 끄집어냈다. 킁킁.